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신상엽(경남진주 신안초-대아중-대아고, 2016 수시 일반전형)

[베리타스알파=이우희 기자]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신상엽(20)군은 학업과 독서를 관통해낸 지적 호기심의 끝판왕이다. 공부를 하거나 생활을 하다 무엇이든 의문 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끝장을 본다. 그래서 별명도 ‘문헌연구법’. 공부하다가 막히거나 궁금한 내용이 생기면 대충 문제만 이해하고 넘어가는 대신, 백과사전부터 관련 서적을 쌓아두고 근본까지 파헤쳐 완전히 이해하고서야 직성이 풀렸다. 막대한 시간이 소모되는 공부법이지만, 전략과 비법 등의 단어와는 거리가 먼 ‘진짜 공부’를 한 셈이다. 진짜 공부는 교과뿐만 아니라 고전 독도 경제 통계 무엇이건 가리지 않았다. 일단 관심이 생기면 관련 책을 찾아 읽는 것은 기본. 집요함은 내신/수능공부도 마찬가지다. 교과서를 거의 외우는 것은 기본, 기출 10년치를 뽑아 풀어보고 오답노트를 작성했다. 그래도 의문이 남으면 선생님들을 쫓아다니며 질문공세를 펼쳤다. 고전과 문학 철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지식의 흐름을 따라 읽는 독서량은 그야말로 가공할 수준이다. 철학을 전공한 국어 선생님과 작가를 논하고 철학적 사조를 평론했다. 호기심의 갈래가 너무나 다양해서 서울대 자유전공학부를 택했다. 대학 4년간 목표는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이다.

<문헌공부법>
신상엽군은 고교진학 후 자꾸만 공부가 재미 없었다. 마음을 잡지 못하고 1학기를 보내면서, 도대체 왜 그럴까 원인을 생각해봤다. 공부할 양이 많다는 핑계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을 암기하고 넘어가는 공부가, 스스로 너무나 아쉬웠다. 2학기부터는 ‘의문 나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끝장을 보자’고 마음먹었다. “쉬는 시간에는 선생님께, 자습시간에는 교과서와 백과사전에게 ‘딴지’를 걸었다. 역사를 공부할 때는 백과사전을 기본으로 관련 책 서너 권씩 쌓아두고 사건의 뿌리까지 파헤치며 공부했다.” 그 모습에 질려버린 친구들은 신군의 공부방식을 두고 ‘문헌연구법’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효율적인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다시 공부가 즐거워졌다.

수학을 극복하는 과정이 대표적이다. 수학은 신군이 가장 두려워하던 과목. 충격적인 시험성적에 고민하던 신군은 인터넷에서 ‘어떻게 문제를 풀 건인가’라는 교육학 책을 발견했다. 즉시 책을 구해 읽었다. “책을 통해 엉성한 직관에 의존하기 보다는 개념이해를 기반으로 ‘필연적 풀이’를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중학교 교과서까지도 펼쳐보며 소홀히 했던 기본을 다졌다. 튼튼하게 쌓은 논리적 바탕 위에 직관력이 더해지자 과목에 대한 자신감이 쌓였다.” 자신감이 붙자 호기심도 커져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2학년1학기 때 동전 3개를 던지면 왜 앞면이 3개 나올 확률이 1/4이 아닌지 너무 궁금해 책을 찾아봤다. 결국 문제가 2학기 때 배울 독립시행의 확률로 설명된다는 사실을 알고 혼나서 미리 공부해본 경험이 생생하다. 모르는 것에 호기심을 느껴 공부를 통해 이해하면서 느낀 쾌감은 공부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게 했다”고 설명했다.

내신 공부도 집요했다. 교과서와 EBS교재는 통째로 암기가 기본이다. 신군은 “EBS는 정말 지겹도록 봤다. 한국사와 사회문화 같은 사회탐구 과목은 거의 책을 외우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생소한 개념이나 내용은 사교육특강 대신 학교 선생님에게 묻고 이해될 때까지 반복해서 문제를 풀었다. 수능 사회문화에서 50점 만점을 받았다는 신군은 “EBS 사회문화 교재에 수록된 생소한 개념 설명이나 어려워 보이는 선지, 자료들은 수능 2달 전부터 따로 공책을 만들어 하나 둘씩 정리했다. 사회문화 기출 10년치를 모두 뽑아서 공부하면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선지는 형광펜으로 표시해두었다가 다시 공책 모아뒀다. 선생님들을 쫓아 다니면서 이해가 될 때까지 질문했다. 난도가 높은 표 분석 문제도 마찬가지다. 인터넷강의로 ‘표분석 특강’을 듣는 대신, 학교에서 방법을 배운 뒤, 하루에 3개씩 표 분석 문제를 풀었다.”

/사진=신승희 기자 pablo@veritas-a.com

<엄청난 독서량>
신군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엄청난 독서량이다. 신군 스스로는 독서가 서울대 합격의 비결이라고 믿는다. 고교 3년간으로 한정하면 매월 최소 2~3권에서 최대 4~5권을 읽었다. 주로 자기 전 한두 시간을 활용했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책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심지어 대입 면접 대기실에서도 책을 읽을 정도였다. “고려대 면접 당일 아침 대기시간에 남들은 다들 자소서와 학생부를 읽을 때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고 있었다. 면접 때문에 서울에 올라가면서 책 몇 권 아무런 이유 없이 집어 들고 올라갔다. 호기를 부리고 싶었는지 이상하게 책이 읽고 싶더라.” 수능 시험 사흘 전까지도 밤마다 책을 읽다가 잠들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그 때 읽었다. 그나마 컨디션 조절 때문에 한 달 전부터 빨리 자는 습관을 들이면서 평소보다 많이 읽지는 않았다. 수능 이후에는 좋아하는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을 마음껏 읽었다.

독서는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학생부에 기재한 책들 중에서만 뽑아보면 기형도전집(기형도) 여행의기술(알랭드보통) 모든것은소비다(볼프강울리히) 영원한일본(넬리드레이) 프로파간다(에드워드버네이스) 호모루덴스(요한호이징하) 베토벤(빌터리츨러) 하리하라의생물학카페(이은희) 존재의기술(에리히프롬) 설국(가와바타야스나리) 페스트(알베르카뮈) 연인(마르그리트뒤라스) 부분과전체(베르너하이젠베르크) 우상의눈물(전상국) 문자의역사(조르주장) 폭풍의언덕(에밀리브론테) 머니볼(마이클루이스) 등 다양하다. 학생부가 모자라 기재하지 못한 책이 더 많다.

자소서에 쓴 책은 ‘사회학적 상상력(C.라이트밀즈, 돌베게)’ ‘빅데이터를 지배하는 통계의 힘(니시우치히로무, 비전코리아)’ ‘바그너-세기말의 오페라(필리프고트프루아, 시공사)’다.

책을 고를 때 입시기관이나 서울대필독서 등은 참고하지 않았다. 신군은 “책은 엮어가면서 읽는 재미가 있다. 다만 민음사 고전 시리즈를 즐겨 읽는 편이었다”고 말했다. 입시기관의 필독서 추천과 합격자 평균 독서량을 분석하는 방식에 대해선 비판을 가했다. “사교육업체에서 서울대 일반전형을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정형화된 인간을 만들겠다는 발상이나 마찬가지다. 입시는 물론 결과가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형화된 틀대로 학생을 뜯어고치려는 시도에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독을 통한 독해능력 향상으로 국어영역은 주어진 80분 중 50분이 남는다. 시험시작 30분에 모두 풀고 남은 시간은 검토에 쓴다. 신군은 서울대에 합격한 후 후배를 만날 때마다 항상 책을 읽으라고 조언한다. 실제 서울대 입학본부는 웹진 ‘아로리’를 통해 책을 많이 읽는 인재에 대한 믿음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서울대는 “다양한 독서로 기른 역량은 ‘창의적 지식공동체’를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 서울대가 선발하고자 하는 인재상의 밑바탕이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자유전공을 선택한 이유>
서울대 자유전공학부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신군은 신입생 OT 이야기를 꺼냈다. “자유전공학부 OT에서 교수님의 첫 마디가 기억난다. 교수님은 “여러분들이 자기소개서에 적은 거짓말 잘 읽었습니다”고 말했다. 어설픈 생각 아는 척 모두 버리고 새로운 자세로 학문에 임하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자전학부을 쓰면서 했던 스스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느꼈다. 자전을 쓰지 않은 이유 중에는 “고교생이 그 전공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까”라는 의문이 컸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 저서에서 “경제학을 배우고 싶다면, 어설프게 알려고 하지 말고 차라리 교양서를 더 읽고 대학에 오라”고 지적한 일이 있다. 만약 어떤 학생이 면접에서 경제학부 교수를 앞에 앉혀두고 조금 안다고 해서 ‘추격경제학’을 언급하고 설명하려 든다면 교수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느껴질까. 아마 우습게 생각할 것이다.”

실제 신군의 호기심은 다양한 갈래로 뻗쳐, 상당히 깊이 나아가는 편이다. 한 번은 경상남도에 진주사투리가 세부방언으로 분류돼 있다는 것을 알고 관심을 가졌다. ‘진주사투리’라는 사전류의 책부터 ‘방언의 미학’까지 찾아 읽고, 인터넷으로 자료도 조사해 논문을 2편 작성했다. 교내대회에 출전한 것도 아니고 어느 단체나 기관에 제출한 것도 아니다. 그저 혼자만의 호기심을 쫓아 논문까지 정리하게 된 것이다.

<학급회장/멘토활동 통해 리더십도>
신군은 학급회장과 멘토활동을 통해 리더십과 헌신의 의미를 깨우쳤다. 자소서를 통해 신군은 “2학년 초 아슬아슬하게 학급회장에 선출됐다. 처음 해보는 리더의 자리였기에 의욕적으로 나섰다. 긴장감 탓인지 친구들과 사소한 충돌이 잦았고 조그마한 일에도 점점 민감해졌다. 한 친구는 제가 반장이라는 역할에 몰두할 때면 권위적으로 변한다고 까지 할 정도였다”고 고백했다. 친구의 지적을 듣고 신군은 자세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우선 귀를 열었다. 이전에는 친구가 무엇을 물어보면 마치 제가 친구보다 우월한 위치에라도 있는 양 하고 싶은 말만 했었다면, 그 후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말을 습관화해 듣기 위해 노력했다. 나중에는 진지하게 상담을 청하는 친구들마저 생겼다.”

수학 스트레스에 고민하는 친구들을 보고 멘토 활동에도 참여했다. “정기고사를 앞두고 선생님들의 허락을 받고 내신 수학 기출문제를 단원별로 모아 한 권의 문제집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멘토-멘티 활동이 공식적으로 시작하기 전인 1학기부터 토요일 오후에 친구들과 모여 공부 질문을 받기도 했다. 멘토활동을 통해 수학을 새롭게 시작한 친구를 보며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신뢰를 얻어 학년 말에는 적대적이었던 친구들이 먼저 학생회 부회장 출마를 권유했다. 비록 떨어졌지만 반 전체가 함께 추운 새벽부터 목소리 높였던 따뜻한 기억이다.”

<학교를 믿어라>
신군은 학교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드러냈다. 선생님들의 노력과 열정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고2 담인 조창래 선생님은 늘 10시까지 학교에 남아 수학질문을 1대 1로 받아주셨다. 고3 담임 박용주 선생님은 자소서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다. 3학년 부장을 맡아 학생들의 성장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고, 늘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기록했다. 대학시절 철학을 부전공하셨다는 국어 선생님은 신군에게 문학과 철학의 재미를 알려줬다. 대아고는 진주 소재 평준화 일반고로 2016학년 서울대 등록자 8명(수시7/정시1)명을 기록 전국 76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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