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철 DGIST 총장 인터뷰

[베리타스알파=김경 기자] 학부원년을 맞아 다크호스로 떠오른 이공계특성화대학 DGIST의 오늘엔 신성철(64) 총장의 번득이는 발상과 자신만만함, 과감한 추진력 등 평생의 역량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비슬산 산자락에서 주춧돌을 놓은 신생 과기원은 허허벌판이었던 현풍벌을 빼곡히 메운 기업들을 굽어보며 산학협력으로 지역을 키우는 구심점으로, 유행으로만 떠도는 융합의 실체를 현실에 구현한 과기원 학부모델로 떠올랐다. 설립부터 학부원년까지 다양한 혁신을 설계하고 구현한 신 총장의 평생 그림이 펼쳐진 셈이다.

KAIST에서 22년간 지내며 부총장까지 역임한 신 총장은 윤종용 DGIST 이사장(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오랜 설득을 통해 DGIST 총장으로 오게 됐다. DGIST는 신 총장에게는 제2의 인생을 여는 기회였다. KAIST에서 교육, 연구, 행정까지 아울렀던 신 총장은 굳이 터를 옮길 상황이 아니었다. 대구가 연고지도 아니었다. 다만 윤 이사장의 “하얀 도화지를 드릴 테니 여기에 21세기에 가야 할 대학의 모습을 마음껏 그려보라”는 제안이 신 총장의 마음을 움직였다. 변혁이 굉장히 힘든 기존 대학의 틀에서 벗어나, 그간 그려왔던 이공계 교육의 꿈을 초대총장으로서 교육의 밑그림부터 다시 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DGIST는 평생을 이공계 교육에 몸 담아온 거장의 꿈이 현실화되면서 제2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DGIST의 미래는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새로운 시도들은 세계를 겨냥하고 있다.

▲ DGIST의 오늘은 설립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혁신을 통해 융합의 과기원을 구현해온 신성철 총장의 평생 그림을 담고 있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신 총장의 혁신은 학부원년을 맞아 세계를 향한 제2의 도약을 겨냥하고 있다. /사진=DGIST 제공

- 혁신 DGIST의 출발이 궁금하다
“physical university보다 virtual university, 생존을 위한 차별화가 세계적 트렌드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대학도 위기에 놓여 있다. 반드시 건물을 갖춰 교육해야 한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시공간 제약을 받지 않는 교육에 관심이 높다. 물리적 제약에서 벗어난 차별화된 대학을 만들고자 한다. 차별화를 통해 다른 대학을 선도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기존 대학이라면 명성과 역사 때문에 변혁하고 싶어도 굉장히 힘들지만, DGIST는 새로 출발하는 장점이 있다. DGIST라면 우리가 시작해서 선도해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차별성’ ‘선도성’ ‘수월성’을 경영의 잣대로 놓고, 모든 프로그램을 만들며 학교를 디자인해 왔다. 학교의 철학을 융복합으로 잡았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은 융복합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대학원은 물리, 화학 등 기존의 전통적인 학과가 아닌 신물질(Meterials), 정보통신융합(IT), 의료로봇(Robot), 그린에너지융합(Energy), 뇌인지과학(Brain), 뉴바이올로지(New Biology)의 일명 미래브레인(MIREBraiN)이라는 6개 융복합 전공으로 설계했다. 21세기가 요구하는 융복합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선 기초를 튼튼히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 기업들이 재교육 없이 바로 실무에 투입시키기 위해 ‘맞춤형 인재’를 선호했다면, 현재 기업들은 급변하는 기술에 대응하기 위해 기초가 튼튼한 인재를 희망한다. DGIST가 기초과학과 기초공학을 특히 강조하여 교육시키는 이유다. 한편으론 인문사회 교육도 강화한다. 우뇌교육을 통해 창의력을 키운다는 입장이다. 인문사회 분야도 통섭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한국사와 세계사를 따로 가르치는 대신 같은 주제를 가지고 비교역사학으로 접근한다. 동서양 철학을 통합적으로 접근하며, 예술사도 가르친다. 21세기 또 다른 변화는 기업가정신 교육이다. 대학에 기업가정신을 도입한 대표적 대학인 스탠포드대학은 기업가정신 교육을 통해 연간 540만의 일자리, 2조7000억달러의 연매출을 창출하며 실리콘밸리 태동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MIT, 칼텍 등도 기업가정신 교육을 도입하여 변화를 꾀하고 있다. DGIST 역시 기업가정신을 교육해 과학기술의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고, 첨단과학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도록 기초연구에서 응용/상용화 연구에 이르는 일련의 교육과정을 거친다. 융복합 교육, 기업가정신 교육, 리더십 교육이라는 3개 축의 학부 교육철학 아래 정서순화를 위해 1인1악기와 태권도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 교육들을 모두 하려다 보니 학과체제로 갈 수 없어 무학과 단일학부를 선택하게 됐다. 2012년 칼텍 총장에게 무학과 단일학부에 대한 비전을 설명하니 ‘연구는 DGIST가 칼텍을 벤치마킹하겠지만, 학부체제는 칼텍이 DGIST를 벤치마킹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해 5월 권오준 포스코 회장도 ‘21세기 교육은 특정 전공을 갖기보다 DGIST처럼 기초과학을 튼튼히 하기 위해 무학과로 가야 한다’며 무학과 단일학부 체제에 공감한 바 있다.

교육과정 차별화 이후엔, 제대로 가동시켜야 한다. 원동력인 학부전담 교수제는 총장으로선 이례적 결심이다. 대학은 평가를 교수들의 논문 등 연구실적으로 받는데, 연구인력을 분산시키면 대학 입장에선 그만큼 손해라 할 수도 있다. 다만 우리는 전임교수 전체의 10%를 학부교육 전담교수로 배정, 학부교육을 강조했다. 교수 만나기가 어려운 타 대학의 현실을 직시하며 우리가 처음 시도하는 길이라 하겠다. 교육에 다소 힘겨운 학생들은 일대일 교육을 통해 학습능력을 신장시킨다. 학부생들의 강의만족도는 5.0 만점에 평균 4.5 정도로 높다. 학부교육 전담교수들은 학생들과 멘토-멘티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학업뿐만 아니라 진로와 생활 전반에 대한 조언과 상담을 하며 인격을 전수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학생만족도가 높은 배경이다.

전자교재의 도입은 시대변화에 대응한 것이다. 급변하는 지식을 종이책으로는 따라잡긴 힘들다. 많은 경우 옛날 책을 리버전한 채 대학교재로 쓰는 현실이다. 시대의 지식변화를 시의적절하게 탑재하려면 전자교재로 나아가야 한다. 학부는 전 교재를 전자교재로 활용한다. 국내 첫 시도라 초반엔 완성도면에서 부족하였지만, 최근 완성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여러 기능 가운데 특히 크로스오버 기능의 효용이 크다. 물리를 공부하다 벡터가 나오면 해당 아이콘을 클릭해 수학으로 넘어가서 수학교수가 강의하는 걸 볼 수 있다. 진화하는 교재다. 학생들의 토론내용도 모두 탑재, 후배들이 선배들의 토론내용을 보고 동기부여도 되고 영감도 얻는다. 완성도를 더욱 높여 어느 시점에선 대외적으로 공개, 해외판매도 생각한다. 학부교육의 철학으로 담고 있는 차별성, 선도성, 수월성을 포함하는 사례다.”

- 남이 가지 않은 그 힘든 길을 왜 택했나
“2011년 DGIST로 오면서 교육계, 과학계 분들께 이 같은 내 비전과 혁신적 방안을 말씀 드렸더니 너무 이상적이라는 회의적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비전과 혁신이 현장을 설득시켰다는 확신이 든 첫 번째 성공지표는 DGIST 입학을 희망한 학생들에게서 봤다. 2014년 학부 1기 입학을 앞두고 1년 반 동안 직접 전국 고교 80개교 가량을 다녔다. 당시 DGIST는 대학건물을 짓고 있는 통에 터만 있는 허허벌판이라 할만했다. DGIST를 찾는 분들께 ‘현풍 할매곰탕 옆집’이라 안내할 정도였다. 정원의 3배수만 지원해도 좋겠다 싶었는데, 첫해 200명 모집에 1953명이 지원했다. 대외적으로도 첫 모집부터 성공적이란 평가였다.
두 번째 성공지표는 실제 교육역량이다. 총장 주도 하에 학생, 교수 간 상호소통을 위한 강의연습을 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양해를 구하고 강의실에도 들어가 내 경험을 토대로 교수들에 코멘트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제는 학생들이 모교를 찾아 후배들에게 ‘제대로 공부하고 싶으면 DGIST로 오라’는 얘기를 하고 다닌다 하니, 두 번째 성공지표도 따라왔다 하겠다.

마지막으로 졸업 후 우리학생들을 채용한 기업인들 혹은 다른 대학원의 교수들이 DGIST 학생들은 ‘다르다’며 좋게 평가한다면 성공의 방점을 찍는 것이다. 졸업생들로 검증되면 다른 대학들도 우리교육의 커리큘럼이나 여러 혁신방안을 수용할 것이라 생각한다. 차별화는 이미 시작했고 앞으로 선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게 DGIST의 시대적 사명감이고, 초대총장으로서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의미 있는 걸 하자는 생각이다. 물론 KAIST 3회 졸업생으로서 모교에 애착이 있다. 나름 연구분야를 개척해 교수로서의 역할도 하고 보직도 하면서 행정까지 해봤다. 다만 DGIST에 와서 전에 없던 교육시스템을 만들어 낸다는 건 내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깊지만 국가적으로도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 기대한다. 어렵더라도 남들이 안 가는 길을 가고자 한다.”

- 학부원년 이후 무게를 두는 행보는
“세 가지 혁신을 이루고 싶다. DGIST에서 일구고 있는 이공계 교육 혁신에 이어 융복합 연구의 혁신, 기술사업화의 혁신이다.

이제껏 연구는 단일연구 중심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경쟁상대국에 비해 리소스, 즉 연구비나 연구인력 규모도 뒤처져있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도 연구비가 우리의 4배는 된다. 연구인력은 10배다.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현실적으로 협업이 굉장히 중요해진 것이다. 융복합 연구를 통해 새로운 과학기술 연구의 협력을 이뤄야 한다. DGIST는 협업시스템을 이미 가동하고 있다. 2개 연구부와 9개 연구센터의 융합연구원을 구축해 연구원들과 교수들, 그리고 학생들이 함께 연구하도록 했다. 대학원 교수들은 학생을 지도하면서 기초원천 분야에 관심이 많고, 연구원은 응용상용화 분야에 관심이 많다. 융복합 연구의 혁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기초원천과 응용상용화를 한꺼번에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나로선 엄청난 도전이다. 그간 우리 연구의 맹점이 임팩트가 없다는 것이다. 즉 연구의 결과가 상용화까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학연이 잘 협업하면 굉장히 빠르게 연구의 아웃풋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또한 한정된 연구 재원을 뛰어 넘으려면 대학과 연구소가 상생해야 한다. 출연연구소의 전문지식에 대학원생들의 창의적 맨파워와 교수들의 아이디어가 합쳐져 서로 상생할 수 있다. 감정적인 장벽, 사회적 위상에 의한 장벽 등도 자리하겠지만, DGIST에서 학연상생 협업을 실현시킨다면 다른 대학과 연구소에서도 이를 벤치마킹하리라 기대한다.

기술사업화에 대한 혁신은 기술출자(연구소) 기업을 통해 이루고자 한다. 연구원이나 교수가 개발한 기술을 가치평가해서 현물투자하는 방식으로 자본가가 자금을 투자, 경영을 맡고, 연구자는 연구개발 능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연구자의 연구능력에 자본가의 경영능력이 합쳐진, 상생할 수 있는 길이다. 교수, 연구원에겐 독자적 창업에 따른 실패 확률을 줄이고 기술사업화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으며, 기업엔 우수기술 확보와 세제혜택, R&D 자금지원 등 정부의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예전에는 연구자가 직접 창업하는 걸 장려했지만, 현재 대부분 지리멸렬하다 볼 수 있다. 2500~2600개 기업 중 성공한 건은 극히 소수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연구자나 교수들에 경영적 재능을 찾긴 어렵다. 2014년 자문위원으로 대통령께 보고 드리면서 기술출자기업의 활용을 제안, 현재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DGIST에선 지난 3년 사이 11개의 기술출자(연구소) 기업이 출범했다.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규모다. 12년 된 연구부의 축적된 노하우와 연구원 및 교수들의 활발한 연구 결과다. 기술출자기업의 활성화를 위해 가족회사제도, 1인1사 멘토링제도, 지역산업 기술교류회를 실시했다. 총장이 CEO들과 직접 만나 애로사항을 해결하며 다각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전기이륜차를 제작하는 업체인 그린모빌리티는 전기이륜차와 삼륜차 시제품 제작을 완료해 국내 대기업에 판매하는 등 업계에서 기술력을 인정 받았고 본격적인 양산 체제에 돌입할 예정이다.

초창기 DGIST에 온 학생 가운데 DGIST로의 진학을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해서 온 경우가 많다. 서울대, KAIST에 모두 합격했는데 잘 알려지지 않은 DGIST를 선택한 자녀를 부모님들께선 이해 못하셨겠지만, 나로선 반갑고 기특하다. DGIST가 강조하는 3C에 매료되어 온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기여와 배려의 덕목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우리 학생들에게서 조국의 희망을 본다. 우리 학생들 전부가 그렇다고는 보장 못하지만 최소한 3분의 1만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 앞으로 굉장한 임팩트가 있을 것이다. 70년대 나라가 암울할 때 서울대 학생이 졸업식 때 쓴 시가 있다.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관악산을 보게 하라’고. 나는 전 직원 앞에서 말한다. ‘누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묻거든 비슬산을 보게 하라’고.”

*신성철 DGIST 총장은
신 총장은 경기고, 서울대 응용물리학과(학사), KAIST 대학원 고체물리학과(석사), 미국 노스웨스턴대 재료물리학(박사)을 거쳐 KAIST 물리학과 교수로 교직에 들어섰다. KAIST에서 석좌교수, 학생부처장, 국제협력실장, 기획처장, 고등과학원 설립추진단장, 나노과학기술연구소 초대 소장, 부총장을 역임하는 등 KAIST의 ‘자리 잡기와 다지기’에 역할을 다해왔다. 2011년 DGIST 초대총장으로 자리한 신 총장은 지난해 연임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으로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미래를 개척하고 있다. 그간 미래부 연구개발사업 종합심의위원회 위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미래전략분과의장, 국방과학연구소 비상임이사 등 정부 관련 경력 이외에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이자 한국인으로는 유일한 자성학 분야의 미국물리학회 석학회원으로 학자로서의 국제적 위상도 뚜렷하다.

가장 최근인 올 8월엔 한국인 최초로 AUMS상을 수상한다. AUMS상은 아시아 자성연합회가 주관, 아시아 국가에서 세계적 업적을 이룬 학자에게 2년에 한 번 수여되는 상이다. 신 총장은 나노자성체의 스핀동역학을 연구하는 ‘나노스핀닉스’ 분야의 개척자로, 오랜 난제인 2차원 나노 자성박막의 잡음 현상을 처음 규명한 업적을 인정받았다. 학술지 논문게재 310여 편, 국내외 특허등록/출원 37건, ICM2012 AUMS2010 등 국제학술대회 조직위원장, MRS IEEE 등 다수의 국제학술지 편집장(위원)을 역임하는 등 국제활동도 왕성하다. 수많은 상훈 중 과학기술최고훈장 창조장(2007)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2012)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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