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가 문제은행 수집 데이터화 문제' ..수험생 직접 피해 우려

[베리타스알파=김하연 기자] 미국판 ‘수능’으로 불리는 대학입학자격시험인 ACT가 사전 문제유출 의혹으로 시험 당일 전면 취소됐다. 미국 대입에서 활용되는 또 다른 대입시험인 SAT가 전면 취소된 적은 있지만, ACT가 국가단위로 전면 취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각에서는 연이은 미 대입시험의 문제유출 사태는 정량평가에 익숙하다보니 정성평가 중심의 미국 대입을 잘못 이해해 '고득점'에만 목을 매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AP(Associated Press), 영국의 로이터(Reuters) 등 해외 통신사들에 따르면, 11일 오전 한국/홍콩의 56개 고사장에서 실시 예정이던 ACT시험이 전면 취소됐다. 시험 시작이 예정돼있던 오전8시로부터 불과 2시간 이전인 오전6시 벌어진 일이다. ACT를 주관하는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ACT사는 11일 오전7시경 시험 취소를 알리는 이메일을 보냈지만, 미처 확인하지 못한 채 시험장에 도착한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미처 해당 사실을 알지 못한 수험생들은 시험장을 찾아서야 취소 사실을 인지하는 등 혼선이 곳곳에서 빚어졌다. 시험이 취소된 한국과 홍콩의 시험응시 예정인원은 5500여 명에 달한다.

ACT를 주관하는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ACT사에 따르면, 시험취소의 원인은 시험문제의 사전 유출인 것으로 알려졌다. ACT사 관계자는 “시험문제 사전 유출 증거를 확보해 시험 취소를 결정했다. 응시생 전원에게 응시료를 환불할 예정이다. 시험문제를 유출하는 행위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해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ACT사는 시험문제 유출의 직접적인 원인 국가, 유출정황 등의 구체적인 내용은 함구했다.

▲ 미국판 ‘수능’으로 불리는 대학입학자격시험인 ACT가 사전 문제유출 의혹으로 시험 당일 전면 취소됐다. ACT가 국가 단위로 취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사진=베리타스알파DB

ACT와 SAT 등 미국판 대입자격시험들은 수능과 달리 기출문제가 유출되기 쉬운 구조다. 문제은행 형식을 띄기 때문에 기출문제를 수집해 데이터화하는 것조차도 금지된다는 차이도 있다. 다만, 이번 사태는 단순 기출문제의 수집 수준이 아닌 실제 유출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추측이다. ACT는 아니지만 비슷한 류의 시험인 SAT에서 그간 자행돼온 문제유출 전례도 이를 뒷받침한다. 해외유학의 메카인 강남 압구정동 학원가에서 수천만원의 비용을 받고 SAT 문제를 유출해 물의를 빚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그간 SAT와 ACT의 문제유출과 관련해 숱한 논란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유출 통로가 남아있다는 점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SAT나 ACT는 시험지가 이르면 일주일 전에 국내로 들어오고, 관리도 국가시험인 수능에 비해 상대적으로 허술하기 때문에 시험 시행 며칠 전 문제를 입수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문제유출도 다소 허술한 관리실태를 틈타 문제를 빼낸 브로커가 주도했다는 추측이 나돌고 있다.

이번 ACT시험이 취소되며, 올해 미국 소재 대학진학을 준비하던 수험생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6월 시험이 취소되며, 올해 11월에 있을 Early Decision을 준비하던 학생들은 9월시험 점수로 점수가 좌우될 전망인 때문이다. 미국의 Early Decision은 우리나라로 치면 수시 개념과 유사하다. 본래 미 대입의 주된 시험은 SAT였지만, 올해 3월을 기점으로 SAT의 문제형식이 개편되고 난이도 상승전망을 보이자 기존 SAT를 준비하던 수험생들까지 ACT로 대거 이동해 피해는 더욱 클 것으로 추정된다. 2013년 문제유출 사건으로 취소된 전례가 있으며, 2014년에도 문제유출 파장으로 성적 공개가 보류되는 등 국내에서 숱한 문제가 발생해 온 SAT점수를 미국 대학들이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도 수험생들이 ACT 응시로 이동하게 된 배경이다.

일각에서는 미국 대학입시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연이은 유출 사태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 대입의 경우 정량평가가 아닌 입학사정관제를 축으로 한 정성평가가 대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SAT/ACT 점수는 인성 리더십 학교성적 봉사활동 기타활동 등등 수많은 평가지표 중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국내교육의 정량평가에 익숙한 학부모/수험생들이 대입구조를 오독해 정량평가인 ACT/SAT 점수에 목을 매다보니 불안심리를 틈타 문제유출 브로커 등이 기승을 부린다는 이야기다.

국내 ‘최강’외고로 해외대학진학준비 프로그램인 GLP(Global Leadership Program)를 1988년부터 운영, 민사고와 더불어 해외대학 진학의 ‘개척자’ 역할을 해온 대원외고를 봐도 SAT/ACT점수가 당락을 좌우하는 요소는 아니다. GLP는 방과후 과정 개념으로 필수과목인 English Com position, English Literature와 AP(대학과목 선이수제도) 준비를 위한 선택과목인 US/World History, Calculus, Economics, Biol ogy, Chemistry, Physics 등을 개설해 운영하며, SAT, TOEPL 대비는 물론 College Essay 교육도 병행한다. 진로에 대한 확실한 신념과 독서 및 토론활동을 통한 사고력과 의사소통능력, 다양한 비교과활동을 통한 리더십도 배양한다. SAT, ACT, AP와 같은 시험에 대비하는 수업만 3년 내내 실시하지 않는다. 2학년을 마칠 때까지 오로지 Literature(영미문학)와 Composition(작문) 프로그램 등 미국 현지의 문학/작문 수업과 동일한 형태의 인문학 교육에 집중한다는 특징이다. 기본적으로 다양한 토론활동과 자료조사활동, 글쓰기 등의 수업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해외대학에 진학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핵심기초 역량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그 결과 2015학년에는 아이비리그에 10명, 스탠퍼드대 MIT 칼텍 조지아텍 시카고대 듀크대 존스홉킨스대 UC버클리 등 유수의 대학에 35명이 합격했으며, 2016학년에는 32명의 GLP 학생 가운데 절반인 15명이 아이비리그에 합격하고 나머지 학생들도 최근의 희망전공에 따른 대학지원경향에 맞춰 지원한 결과 중복합격 포함 68개교에 합격하는 실적을 냈다.

한 업계 전문가는 “국가주도 시험인 수능과 달리 ACT/SAT의 문제 유출은 종종 일어난다. 국내에서도 최근 수능과 비교하면 엉성한 보안체계를 지닌 6월모평의 문제유출 파문이 일어난 것처럼 다소 느슨한 경계 속에서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2010년대 이전에는 신분증 확인 등의 절차마저 없기도 했다. 특히 미국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국가들이 많으며, 국가 간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문제유출이 일어나기 쉬운 구조다. 국가별 동시 진행이 아니라 다른 일정으로 치러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해당 국가 시험을 치른 후 문제를 타 국가에 알려주는 형태로도 문제유출은 일어날 수 있다”라며, “미국 대입의 입학사정관은 물경 100년 가까이 자리잡아 온 제도다. SAT/ACT는 국내로 치면 수능최저와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학업능력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수단일 뿐 당락을 좌우하는 평가요소로 보기 힘들다. 대학에서는 점수 구간을 정해 일정 점수만 넘으면 같은 능력을 지녔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때문에 비교과를 중시하는 입학사정관제의 특성에 맞춰 다양한 활동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고득점을 받는다 하더라도 합격과는 거리가 멀다. 미국 대입은 단순히 학업성적만 높은 인재를 뽑는 데 중점을 두고 있지 않다. 학업외활동 잠재력 여부, 교사추천서, 면접결과 등 정량평가가 불가능한 영역들을 정성평가해 인재선발을 실시하는 것이 미국 대입의 입학사정관제다. 자기소개서로 볼 수 있는 에세이와 추천서의 비중도 매우 크다. 국내 대입에서 확대 추세인 학종이 학생부를 중심으로 교과능력에 중점을 둔 평가를 실시하는 것과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라고 설명했다.

<ACT/SAT는?>
ACT는 미국의 비영리기관인 ACT(the American College Testing program)이 주관하는 대학입학자격시험이다. 또다른 대입자격시험으로 미국의 칼리지보드(College Board)가 주관하는 SAT가 일반적인 학업적성(수학능력)을 측정한다면, ACT는 학업성취도를 측정한다는 차이가 있다.

ACT는 영어(문법 중심) 수학 읽기 과학의 4과목으로 구성된다. 2015년까지 SAT가 쓰기를 필수과목으로 둔 것과 달리 ACT는 쓰기를 선택사항으로 설정한다. 다만 SAT도 2016년부터 쓰기를 응시생의 선택에 따라 응시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읽기의 경우 ACT는 긴 지문을 읽고 요약하는 능력을 측정한다면, SAT는 문장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데 중점을 둔다. 수학의 수준이 높고, 과학이 있기 때문에 문과보다는 이과 학생들에게 유리한 시험으로 평가된다.

성적은 36점 만점 구조의 평균점수로 산출한다. 점수 합계를 내는 SAT와 차이점이다. 본래 SAT가 더 많은 응시생을 자랑했으나, 1926년 SAT가 도입된지 85년 만인 2011년 처음으로 ACT가 2000명 이상 더 많은 응시생이 몰리며 대입시험의 주도권이 역전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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