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학종 도식화에 제동.. '자신만의 독서 바람직'

[베리타스알파=이우희 기자] 서울대가 최근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베스트20’을 공개했다. 베스트셀러 권장도서목록 위주의 트렌드에 강한 아쉬움을 드러내고 서울대 학종을 도식화하려는 일각의 시도에 제동을 걸었다. 서울대는 4일 입학본부 웹진 아로리 4호를 발간하면서 서울대 지원자들이 자기소개서 4번항목에서 작성한 도서목록을 전체/계열/단과대학 별로 나눠 상세하게 공개했다. 베스트20은 근래 언론매체를 통해 크게 주목 받았거나, 서울대 권장도서목록에 포함된 ‘잘 알려진 책’ 일색. 서울대는 “모두 명저이며 꼭 읽어야 할 책들이지만 왜 더 나아가지 못하는가”라며 안타깝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반대로 지원자들 중 오로지 자신만 읽은 책이 매년 늘어 지난해 9500권에 육박했다는 점을 들어 독서의 지평이 넓어지고 있다며 반가워했다. 결국 서울대의 도서목록 공개는 ‘남들이 다 읽는 뻔한 책’에 머무르지 말고 ‘자신만의 독서’로 진일보한 학생을 원한다는 의도로 읽힌다. 서울대 지원자 최다도서 목록은 답습하기보다는 피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이라는 소리다.

서울대 지원자 도서목록 공개시점은 서울대 학종을 도식화하려는 일부 사교육업체의 시도에 대한 반격으로 읽힌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끈다. 지난달 27일자 중앙일보 강남통신은 종로학원하늘교육이 제공한 서울대 수시합격자 82명의 데이터 분석을 인용한 ‘[커버스토리] 서울대 합격의 조건…교내상 48개, 4.5개 동아리, 책은 35권 읽어’ 기사를 냈다. 정성평가로 이뤄지는 학생부종합전형을 무리하게 도식화해 일각의 ‘금수저전형’ 비판에 편승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학종 도식화 시도에는 ‘서울대 합격자가 가장 많이 읽은 도서목록’도 포함돼 있었다. 일부 발빠른 온라인서점은 해당 서적에 ‘2016 서울대 합격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이라고 소개하며 마케팅에 이용하고 있다. 서울대는 학종을 도식화하는 사교육업체의 틈새마케팅이 자칫 다양한 독서를 권장하는 서울대의 진의를 왜곡하고 특정 도서를 선호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한 것으로 보인다.

 

▲ 서울대는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베스트20’을 아로리에 공개하면서 좀 더 다양한 독서를 에둘러 주문했다. 사진은 독서에 열중하는 포산고 학생들./사진=베리타스알프DB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20>
서울대에 따르면, 2016학년 수시모집에 원서를 접수하면서 처음부터 자기소개서를 제출한 학생들은 모두 1만8950명이었다. 여기에 미대와 음대 등 실기전형이 포함된 일부 모집단위에서 2단계 면접을 앞두고 제출한 자기소개서까지 통계에 합산했다.

결과적으로 한 명이 최대 3권을 작성할 수 있는 자기소개서 항목 4번에 적힌 내용은 총 4만4048건으로 이 중 ▲서로 다른 제목을 지닌 책의 종류는 1만4041권 ▲미제출한 건수는 52건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지원자 중 오로지 자신만 읽은 책의 제목은 9471권에 달했다. 서울대는 “세상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책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라고 반색하면서 “특히 중복되지 않은 9500권에 가까운 책은 2015학년 9011건, 2014학년 8700건 정도였음을 감안할 때 각각의 지원자들이 지닌 독서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2016학년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1위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쟝 지글러)’로 427명이 자기소개서 독서활동에 수록했다. 2위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와는 100명 차이가 날 정도로 압도적으로 인기였다. 3위는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가 차지했다. 책 ‘왜 세계의…’는 232쪽 분량으로 틈틈이 읽어도 하루 이틀 정도면 완독할 수 있는 베스트셀러. 2위와 3위 조금 묵직한 주제를 다루는 책이지만 수년간 인문학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킨 책들이다. 이어 ▲4위 213명 데미안(헤르만 헤세) ▲5위204명 엔트로피(제레미 리프킨) ▲6위 200명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 ▲7위 197명 미움 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8위 191명 연금술사(파울로 코엘료) ▲9위 179명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사이먼 싱) ▲10위 171명 1984(조지 오웰) 순이었다.

11~20위는 ▲11위 159명 죽은 시인의 사회(N. H. 클라인바움) ▲12위 150명 이중나선(제임스 왓슨) ▲13위 144명 변신(프란츠 카프카) ▲14위 142명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 ▲15위 141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마이클 샌델) ▲16위 140명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17위 134명 총균쇠(제레드 다이아몬드) ▲18위 132명 학문의 즐거움(히로나카 헤이스케) ▲19위 130명 수레바퀴 아래서(헤르만 헤세) ▲20위 123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혜민)이 순서대로 자리했다.

서울대는 “모두 널리 잘 알려진 제목의 책들이다. 분야도 인문,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학문적인 배경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책들은 물론 에세이, 소설 등 문학 작품까지 다양하며 긴 시간을 공들여 읽어야 할 책들과 짬을 내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분량의 책들까지 다양하게 목록을 채우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물론 책의 분량이 독서 시간과 절대적인 상관관계를 지니지 않는 점을 고려할 때 단순히 가벼운 분량의 책이라고 해서 그 속에 담긴 내용들의 깊이와 무게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책상 앞에 꼽아두고 몇 번씩 다시 읽을 만한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이 목록 안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조금 안타깝게 느껴진다”고 언급했다.

<최근 3년간 목록 변화없어 "지배적인 책 존재하는 느낌">
나아가 최근 3년 동안 10위 안에 드는 도서목록을 공개하면서 서울대는 “매년 서울대에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지배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책이 정해져 있는 느낌”이라며 비교적 강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실제 2014~2016학년도 3년간 서울대 지원자 최다도서 목록 상단에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이기적 유전자’, ‘정의란 무엇인가’가 단골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왜 세계의…’는 3년 연속 1위를 지켰다.

다만 2014학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꿈꾸는 다락방’, ‘오래된 미래’와 2015학년 ‘죽은 시인의 사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2016학년 ‘미움 받을 용기’, ‘1984’는 최근 3년 동안 단 한번만 등장하는 책들의 목록이자, 모두 7위권 이하에 순위를 올린 도서들이다.

<계열별/단과대학별 톱10>
계열별/단과대학별로 나누어 순위를 냈을 때는 인문/사회계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연계열 서적이 적다는 점에 주목했다. 앞서 전체 순위에서도 “자연계열 학생 지원자가 1500명 이상 많았던 점을 감안할 때 자연과학 분야 도서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느낌이다”이라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서울대는 학부모집이 많은 자연계열 모집단위가 선택의 폭이 넓기 때문에 지원자들의 다양한 독서를 이끌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계열별 순위의 경우 ▲인문계 톱10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정의란 무엇인가', '데미안', '1984',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죽은 시인의 사회', '수레바퀴 아래서', '오래된 미래', '나쁜 사마리아인들', '에밀' 순이었다. ▲자연계 톱10은 '이기적 유전자',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엔트로피',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이중나선', '멋진 신세계', '침묵의 봄', '화학에서 인생을 배우다', '공학이란 무엇인가', '화학으로 이루어진 세상' ▲예체능계 톱10은 '연금술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데미안', '아프니까 청춘이다', '꿈꾸는 다락방', '달과 6펜스', '미움받을 용기',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모모',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자율전공 톱10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데미안', '정의란 무엇인가', '1984', '이기적 유전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앵무새 죽이기',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총균쇠', '엔트로피' 순이었다.

인문계열은 자연과학 서적이 순위에 없는 데 반해 자연계열은 사회과학 서적이 상당수 포함됐다. 이는 전체 순위에서 자연과학 서적이 상대적으로 적은 원인이기도 하다. 서울대는 “인문대와 사회대가 학과로 선발하는 것에 반해 자연대와 공대, 농생대의 모집단위 가운데엔 학부로 선발하고 있는 곳이 많다”며 “(자연계열 학생들은)엄밀한 의미에서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더욱 넓어, 그만큼 다양한 관심사가 고르게 나뉜다”고 분석했다

단과대학별 순위는 전공적합성과의 관련성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간호대학은 ‘간호사가 말하는 간호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사랑의 돌봄은 기적을 만든다’가, 수의과대학은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 ‘이기적 유전자’, ‘동물원에서 프렌치 키스하기’가 나란히 1~3위를 차지하는 식이다. 서울대는 “단과대학별로 가장 많이 읽은 책의 목록을 보면 해당 학문 분야와 매우 밀접한 도서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책의 제목만 보아도 충분히 목록에 오를 만한 이유를 유추할 수 있을 정도”라고 밝혔다.

<서울대는 책을 좋아하는 단계를 원해>
총평에서 서울대는 변함없는 상위권 목록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면서 정답을 제시했다. 시간이 없고 힘들어도 여러권의 책을 읽다보면 책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다. 필독서는 기본으로, 호기심의 지평을 확대하는 더 깊고 다양한 독서를 기대한다는 권유도 잊지 않았다.

서울대는 우선 자기소개서에서 독서활동을 요구하는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으로 고교 현장에 독서활동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일선 고교에서도 독서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최근 더욱 활성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학교생활기록부에 독서활동은 과거보다 더 풍성해 졌으며 글자 수 제한으로 학생이 읽은 책을 제대로 기재하는데 부족하다는 일선 교사들의 의견도 자주 들린다. 수업과 연계한 독서활동을 통해 교사와 학생이 함께 꾸준히 책을 읽어야 하는 수업 방법과 독서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도 있으며 교실 단위에서도 도서실을 운영하여 서로의 책을 공유하는 학급도 있다. 친구들에게 책을 추천하는 시간을 내어 같은 눈높이에서 책을 읽고 토론하는 동아리 활동부터, 전문가의 독서 강좌 프로그램 참여, 체험활동으로서 문학 기행, 저자와의 대화 등 학교생활기록부에는 학생의 독서활동을 장려하고 올바른 독서 습관을 키워주는 사례들이 넘쳐난다. 책 한 권을 바르게 읽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현재 학교 현장에서는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왜 서울대학교 지원자들이 읽은 책의 상위권 목록은 변함이 없을까”는 의문을 던진 뒤, 서울대는 독서의 단계를 언급했다. “처음부터 모든 책을 능숙하게 읽을 수는 없다. 읽기에 부담이 없는 수준의 책을 충분히 읽는 단계가 있어야 그 다음 수준의 책을 능숙하게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따라서 무엇보다 많은 책을 접하고 충분한 읽기 능력을 쌓는 일이 중요하다. 충분히 많은 책을 접하기 위해 또한 필요한 것이 시간이다.” 독서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충분한 독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한 개그맨 출신 작가 가장 마타요시 나오키가 ‘100권의 책을 읽으면 무조건 책을 좋아하게 된다.’라는 말을 했는데 여러분에게 이 말을 정답처럼 사용하고 싶다.”

<자소서에 쓰는 책은 ‘명저’ 다음수준 책 돼야>
서울대는 다시 한번 책을 많이 읽는 인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드러냈다. 학문의 메카인 상아탑의 출발점은 독서라는 것이다. 아로리는 “책은 필요해서 읽는다. 알고 싶어서, 느끼고 싶어서, 생각하고 싶어서. 앎에 대한 만족감을 얻고,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며, 생각의 강물이 바다가 된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책을 좋아하게 되고 다시 책을 읽게 된다. 자연스럽게 독서의 폭이 넓어지고 책이 말하는 깊은 이야기를 충분히 녹여낼 수 있는 역량을 지니게 된다. 이렇게 쌓은 역량은 ‘창의적 지식공동체’를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 서울대가 선발하고자 하는 인재상의 밑바탕이 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서울대가 자소서에서 기대하는 도서목록에 대해선 “지원자들 다수가 읽은 책들은 앞서도 거론하였지만 명저들이 다수이며 꼭 읽어야 할 책들이기는 하다. 그러나 몇 권의 책들은 책을 좋아하는 학생들이라면 이미 그 다음 수준의 책들을 통해 자기소개서에 풀어내고 싶은 말들을 적고 있지 않을까 한다. ‘절반이 왜 굶주리는지’를 알고 싶어한 학생이라면 ‘어떻게 모두를 굶주리지 않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기 위해 읽어야 할 책들은 더욱 많기 때문이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도서목록을 학종 도식화에 이용하려는 시도에 '경종'>
서울대는 수시를 100%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선발하며 학종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정성평가인 학생부종합전형은 수능 중심의 정시처럼 지원자들의 성적과 합격선을 도식화하기 어렵다. 수능보다 사교육이 끼여들 여지가 적은 것이다. 문제는 일부 사교육업체가 도서목록과 교내수상 등 자기소개서나 학생부에 포함되는 내용 일부는 정량화해 마치 합격의 기준이 되는 것처럼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27일자 중앙일보 강남통신은 종로학원하늘교육이 제공한 서울대 수시합격자 82명의 데이터 분석을 인용한 ‘[커버스토리] 서울대 합격의 조건…교내상 48개, 4.5개 동아리, 책은 35권 읽어’ 기사를 냈다. 전문가들은 종로하늘이 단순히 몇 권 읽었는지를 갖고 독서활동을 정량화한 점이 현장혼란을 가중시킬 우려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몇 권 읽었다는 것만으로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게 당연히 아니기 때문이다. 진동섭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이사는 “학생들이 5학기 동안 35권의 책을 읽었다는 것이 많은 양인가 생각해 볼 필요 있다. 학기당 7권의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독서 역량이 전반적으로 미흡하다는 반증일 것”이라 밝혔다.

종로하늘이 ‘합격생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이라며 목록을 공개한 데 대해서도 이미 진 이사는 우려를 표명했다. “학생들이 많이 읽은 책이 합격 요인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목록에 있는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정재승)에 수록된 ‘머피의 법칙’ 관련 글은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 실린 것이다. 이것을 읽었다고 선발할 대학이 있을까 정도는 판단할 줄 알아야 사고가 대학생 수준이 될 것이다. 도서목록을 왜 냈을까, 읽지 말아야 할 책을 안내하겠다는 것인가?”

서울대의 도서목록 공개 시점은 학종을 둘러싼 현장혼란이 증폭되는 가운데 오해를 바로잡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지원자나 합격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을 선정해 이를 홍보하는 것 자체가 서울대가 강조하는 독서역량과는 관련이 없다는 소리다. 남들이 다 읽는 책은 기본으로 읽되, 독서를 좋아하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나만의 도서목록’에 서울대는 더욱 주목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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