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치혁의 건강 클리닉]

조교 앞에 서는 순간 머리 속이 하얗게 되었다. 1백 시간도 넘게 외운 맹자(孟子)의 글귀가 다 지워진 듯했다. 조교는 도와주는 의미로 “孟子見 梁惠王하신데 王曰...”이라고 운을 띄워 주었지만 백지가 된 머리 속은 어쩔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더 외우고 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이 나는 의학한문 구술시험 때의 난감했던 상황이다. 30대 중반 뒤늦게 한의대에 들어가서 본 첫 학기의 의학한문 구술시험은 사서삼경중의 하나인 맹자를 통째로 외워서 조교가 어디부터라고 하면 그곳부터 원문을 외우면 되는 시험이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외우고 들어갔지만 긴장을 많이 해서 첫 시험이 아닌 재시험을 봐서 통과했다. “긴장을 하면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을 수 있겠구나”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해 보지 못한 분들은 시험불안증을 이해하지 못한다. 학교성적도 좋고, 평소엔 모의고사도 잘보던 아이가 막상 수능에선 형편없는 성적을 받아왔을 때, 이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때 ‘우리 아이가 시험불안증이 있구나’라고 느끼고 대책을 세우면 다행이지만 ‘운이 없었다’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는 생각에 무작정 재수를 시키면 거의 같은 결과가 나온다. 공부를 열심히 했고, 모의고사도 잘 보았지만 막상 수능에선 자기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 한뜸한의원 황치혁 원장
이 때 사람들은 ‘큰 시험에 약하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한 진단은 아니다. 시험불안증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다. 고3 1년 아니 중고등학교 6년의 공부를 측정하는 시험에서 떨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수능 1교시 국어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잔잔한 호수물처럼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학생은 거의 없다. 잔잔한 마음이 아니라 세찬 바람이 부는, 거친 물결이 치는 호수와 같다. 시험 종이 울리고 국어 45문제 중 5번 즈음을 풀 때 즈음 평온을 찾으면 성정이 담대한 학생이다. 대개는 10번이 넘어서야 마음이 진정된다. 80분 시험시간 중 20분 정도는 지난 시점이다.

시험불안증을 가진 학생들은 좀 다르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 마음은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와 같다. 마음만 그런 게 아니라 손에 땀이 나고, 떨기도 한다. 심호흡이 될 리가 없다. 1백미터를 뛰고 난 사람처럼 숨쉬기가 힘들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시험 종이 울리고 시험지를 보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심호흡도 해보지만 머리 속은 하얗기만 하다. 재수가 나빠 어려운 내용의 지문이 20번 이내에 배치되면 더 당황하게 된다. 이 때 ‘좀 어렵네. 다른 아이들도 고생하겠네’라는 생각이 든다면 다행이지만 ‘망했다’라는 생각이 들면 정말로 수능을 망치게 된다.

시험불안증을 가진 학생들은 소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심한 학생이 1교시 시험에서 낭패를 보고, 2교시를 잘 보기는 힘들다. 결국 평소의 자기점수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받게 된다.

1교시를 잘 넘긴 학생들이 다른 과목에서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특정과목이 약한 학생들이다. 수학이 약한 학생들은 수학시간에 긴장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수학을 잘 봐야 하는 데...’ ‘수학만 잘 보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데...’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데 막상 시험지를 받고 보니 못 봤던 문제들이 너무 많다. 당혹스럽다. 모의고사에선 10번 문제까지는 10분 이내에 풀었는데 10번 이내의 쉬워 보이는 문제에서 시간을 많이 소비하고 풀지 못하게 되면 당황하게 된다. 조바심이 나고, 불안감이 심해진다. 머리가 녹슨 기어처럼 뻑뻑해지고 계속 시간에 쫒기며 결국 수학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2교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학을 망쳤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면 다른 과목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큰 시험을 망치는 학생도 있지만 중간, 기말고사를 망치는 학생들도 많다. 그런데 이 학생들은 중학교 이후에 계속 그래왔기 때문에 학생이나 학부모 모두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성적이 좋지 않는 학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시험 전날 숙면을 취하지 못하거나 손발에 땀이 많은 학생이 공부는 열심히 하는데 성적이 나쁘다면 시험불안증을 의심해 볼 수 있다.

그럼 시험불안증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가장 큰 문제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시험불안증이란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공부는 열심히 하는데 성적은 좋지 않은 경우 머리가 좋지 않다고 쉽게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수능과 같이 큰 시험에서 망치는 경우는 두 번쯤 경험해야 시험불안증을 의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험불안증을 겪는 학생들은 소심하거나,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잘 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소에 가슴이 답답하거나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학생들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심리치료도 도움이 되지만 시간에 쫒기는 수험생이 심리치료를 받는 것을 본적이 없다. 한방치료가 가장 좋은 해답이다.

한의학적으로 볼 때에 시험불안증을 가장 많이 일으키는 장부는 바로 심장이다. 심허(心虛)나 심열(心熱)의 문제를 가진 학생들이 많다. 물론 심장의 증상에 비장(脾臟)이 약하거나 담(膽)이 허한 증상을 겸하는 경우도 많다.

심장에 문제가 있을 때에 가장 많이 쓸 수 있는 처방이 바로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총명탕이다. 총명탕의 약재인 원지, 석창포, 백복신 등은 심장을 도와주는 약재들이다. 천왕보심단이나 정기천향탕, 귀비탕 등의 여러 처방도 시험불안증에 사용할 수 있는 처방들이다.

 
본 기사는 교육신문 베리타스알파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일부 게재 시 출처를 밝히거나 링크를 달아주시고 사진 도표 기사전문 게재 시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저작권자 © 베리타스알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