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론] 조준호 포스텍 전 입학학생처장(전자전기공학과 교수)

1월 모 과학영재학교의 계절수업에서 ‘무선통신/전자전기공학에 쓰이는 수학과 물리’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일주일 간 진행했다. 입학학생처장직을 물러나 평교수로 돌아온 지는 반 년쯤 되었지만 임기 중에 포항을 방문해 주신 교장선생님을 통해 특강을 하고 싶다고 드린 부탁으로 얻게 된 소중한 기회였다. 특강의 가장 큰 이유는, 학생들이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에 어떤 내용이 적절한지를 판단할 때 매우 난감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고교생 누구나 수학, 물리, 화학, 생명 관련 학과를 지원할 때는 크게 어렵게 생각하지는 않는 듯하다. 교과목에서 이미 오랫동안 관련 과목들을 접해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과목으로 배우지 않은 전공의 경우 대체 어떤 노력이 적절한 것일까. 아마도 초중고 시절에 배우는 수학, 물리, 화학, 생물 등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기껏해야 간단한 원리 정도 배운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넓게는 공과대학 지원자들에게 공통된 문제이긴 하지만 특히 필자의 전공인 전자전기공학 관련 학과의 지원자들의 어려움이 큰 것 같아 전자전기공학을 예로 들어보겠다. 어떤 내용이 자소서에 적절한지 잘 모를 때는 어떤 내용이 적절하지 않은지부터 생각해 보는 게 한 가지 방법이다. 아래와 같은 물음에 답해 보면서 함께 생각해 보자.

 

 

▲ 포스텍 조준호 전 입학학생처장

Q. 전자전기공학관련 학과 지원시 자소서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앞으로 세상에 없던 수학적 이론을 발견해 이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그래서 수학 및 이의 응용과 관련된 많은 활동을 했고 (중략) 이번에 전자전기공학과에 지원한다. 언젠가 제 이름을 딴 상이 만들어지기를 꿈꾼다.
② 앞으로 세상에 없던 물리학적 현상을 발견해 인류가 살아가는 모습을 변화시키고 싶다. 그래서 물리학과 관련된 많은 탐구 활동을 했고 (중략) 이번에 전자전기공학과에 지원한다. 그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고 싶다.
③ 화학을 좋아해 화학 동아리에 들어가 다양한 실험을 했다. 특히 분석화학 분야에 관심이 커서 (중략) 큰 업적을 세워 언젠가 노벨 화학상을 받고 싶다. 전자전기공학과에 지원하고자 한다.
④ 진단 의학에 관심이 많아 관련 동아리를 만들어 친구들과 많은 탐구활동을 했다. (중략) 그래서 전자전기공학과에 지원하고자 한다. 앞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고 싶다.

정답은, ‘적절하지 않은 것 없음’이다. 사실 네 가지 모두 전자전기공학 관련 학과 지원 시 자소서에 매우 적절한 내용이다. ①의 대표적인 인물은 ‘정보이론의 아버지’라 불리는 클로드 섀넌이다. 섀넌은 미시건 대학에서 전기공학 및 수학 학사 학위를 받고, 메사추세츠 공대(MIT)에서 전기공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보의 압축, 전송, 보안에 관한 수학적 이론을 발견해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정보 혁명의 시대를 여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심우주 탐사선들이 혜성과 행성, 소행성을 촬영한 후 수 천문거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 영상을 지구로 전송해 우리가 깨끗하게 복원해 받아볼 수 있는 것도, 섀넌의 이론이 예측한 수학적 최고 성능에 가까운 오류정정부호를 개발하려 노력해 온 엔지니어들 덕분이다. 그의 업적을 기려 제정된 섀년상은 매년 정보이론 분야에 크게 기여한 연구자에게 시상되고 있다.

②의 대표적인 인물은 나카무라 슈지 박사다. 나카무라 박사는 전자공학으로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친 뒤 니치아화학에 입사해 청색 발광 다이오드(blue LED)를 개발해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녹색과 적색 발광 다이오드는 이미 발명돼 상용화되어 있었지만, 청색 발광 다이오드가 없던 시절 나카무라 박사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사용하지 않던 반도체 재료를 이용하여 연구를 성공시킨다. 박사학위는 그 후에 취득했다. 청색 LED의 상용화에 따라 훨씬 적은 전력을 사용해 같은 밝기의 전등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우리는 백열 전구와 형광등이 LED전구에 대체되어 사라져가는 역사적인 시대를 살게 됐다.

③의 대표적인 인물로 다나카 고이치 펠로우가 있다. 여기서 ‘펠로우’는 회사들이 연구원 중 업적이 뛰어난 사람에게 주는 직함이다. 다나카 펠로우는 박사는커녕 석사학위마저 없었기 때문에, 노벨상 수상 당시 소속 회사가 서둘러 직함을 달아 준 경우다. ‘다나카 사원’이라고 부르면 어색할 것 같아 취해진 조치다. 전기공학 학사로 중소기업에 취직한 다나카 펠로우는 입사 4년 후 고분자 물질을 레이저를 이용해 분석하는 방법을 획기적으로 개량하는 데 성공한다. 그 후 이러한 분석장치의 정밀도가 더욱 높아졌고 이 장치들을 사용한 화학 연구자들에 의해 새로운 연구 업적들이 쏟아져 나왔던 게 노벨상 수상의 이유였다고 한다.

④의 대표적인 인물로 갓프리 하운스필드가 있다. 그는 런던의 패러데이 하우스 전기공학대학을 졸업한 전기공학자였다. 기존 엑스레이 사진은 피사체의 단면을 볼 수 없었는데, 그는 엑스레이 튜브와 검출기를 피사체를 중심으로 맞은 편에서 회전시키면서 얻은 영상들을 신호처리해 마치 단면으로 잘라 촬영한 것과 같은 영상을 합성해내는 데 성공했다. 엑스레이 CT 진단장치를 개발한 공로로 197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 후 이와 같은 단층 촬영 결과를 얻는 비 엑스선 방법들이 발명되었는데 MRI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네 사람은 전자전기공학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각각 전자전기공학과 관련된 수학, 물리, 화학, 생리의학 분야에서 큰 기여를 했다. 결국 이들을 롤 모델로 하는 자소서가 적절하지 않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특강의 질문에 ‘정답 없음’이라고 답한 학생의 수는 많지 않았다. 이어 포스텍의 ‘잠재력 개발과정’에 선발돼 겨울방학 동안 포항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고교생을 대상으로 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안타깝게도, ‘정답 없음’이라고 제대로 답한 학생의 수는 역시 기대 이하였다. 특강 내용에 이런 문제를 포함시킨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독자들은 이제, 수시를 위한 자소서 작성에서, 초중고 생활 동안 수학, 물리, 화학, 생물 과목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이들 주제에 대해 폭넓게 탐구했다고 기술하는 자체가 학과를 지원할 때 전혀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매우 적절하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것이라고 본다.

 

 

 
본 기사는 교육신문 베리타스알파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일부 게재 시 출처를 밝히거나 링크를 달아주시고 사진 도표 기사전문 게재 시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저작권자 © 베리타스알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