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섭 KAIST 입학처장(기계공학과 교수)

30~40년 전 선생님들은 우리나라는 천연자원이 없는 나라여서 인적 자원이 중요하고, 그래서 우리 모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는 열심히 ‘수학의 정석’을 풀었고, ‘성문종합영어’를 외웠다. 어느 날 우연히 접한 미국 고교 수학책의 낮은 수준에 놀랐고, 수학정석이 대학에 가면 많은 도움이 되리란 생각과 함께 종합영어를 열심히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몇 년 뒤 미국 유학시절 미국 대학교의 높은 학문 수준과 엄청난 학구열을 지켜보게 됐다. 새벽까지 공부와 연구를 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밤 12시에 커피잔을 들고 연구실에 들어가는 교수들의 뒷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미국 교육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필자가 한국에서 중고교 시절 열심히 쏟았던 그 많은 노력들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 시점도 아마도 그 즈음이 아니었나 싶다.
 

▲ KAIST 이승섭 입학처장

귀국 후 교수가 되고 보니 그 사이 우리나라 대학은 많은 발전이 있었고, 강의와 연구가 매우 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대부분 교수들이 늦게까지 연구에 몰두했고, 밤 12시에 커피잔을 들고 학생들과 연구 미팅을 하는 사람은 이제 필자가 되었다. 그러면서 과연 어떤 학생들이 대학에서 자신의 진정한 능력을 발휘하고, 나중에 성공하는지를 교수의 관점에서 지켜보게 됐다. 하지만, 학생들과의 만남을 통해 아직도 수학정석을 풀고, 영어 참고서를 외우는 모습 속에서 중고교 교육은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어쩌면, 영재고, 과학고, 자사고, 일반고 등으로 세분화된 입시 속에 더욱 지친 상태로 대학에 들어오는 학생들의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몇 년 후 다시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안식년을 떠나 1년을 보내게 되었다. 어느 날 아이들은 파자마 차림으로 학교에 갔고, 학교에서 자고 오는 날도 있었다. 짝 안 맞는 양말을 신고 가고, 아이들이 운동장을 한 바퀴 돌 때마다 학부모들은 얼마씩 기부하는 날도 있었다. 공립학교여서 학비 부담은 전혀 없었지만, 귀국하는 날에 너무 고마운 마음에 교장 선생님께 작은 성의를 드렸더니, 학교 뒤편에 작은 꽃밭을 만들겠다고 했다. 아이들 이름이 새겨진 명패와 함께. 중고등학생들에게는 많은 책을 읽게 하고, 운동시간은 정말 많았다. 청소년기의 모든 스트레스들을 땀과 함께 날려버리는 것 같았다. 밤 늦게까지 운동하는 중고등학생들의 모습은 밤을 새면서 연구하는 미국 대학생들과 자연스레 오버랩되곤 하였다. 당시 방문했던 MIT 대학 연구실을 필자의 연구실과 비교했을 때는 해볼만하다는 자신감이 들었지만, 밤 늦게까지 운동하는 미국 청소년들과 학원에서 지쳐있는 우리 청소년들을 비교할 때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세월이 흘러 KAIST 입학처장이 되어, 소위 우리나라 최고의 학생들을 선발하게 되면서, 오랫동안 불만을 갖고 남 탓을 해 왔던 우리나라의 교육/입시의 최전선에 서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좋은 입시에 대해 다양한 정책을 고민하면서, 기본 방향은 ‘잘하는 학생보다 잘할 학생을 선발하자’는 것으로 바꾸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중고교 교육도 ‘잘할 학생으로 키우는 교육’으로 변했으면 하는 희망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나쁜 입시 가운데 하나는 어려운 문제를 많이 내는 것이다. 이 경우, 대학은 변별력을 높일 수 있으나, 학생들은 쓸데없이 어려운 문제를 빨리 푸는 방법으로 공부하게 된다. (대학 입장에서도 이와 같은 변별력이 과연 맞는가에 대해 필자 스스로 의구심이 크다.) 그로 인해, 새로운 개념을 이해하고, 생각하고, 응용하게 하는 교육이 아니고, 암기와 문제풀이식 교육으로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모 영재학교 교장선생님께서 ‘우리 학교의 우수한 학생들을 왜 더 많이 뽑아주지 않느냐’는 불만에 이런 답변을 드린 기억이 있다. 그 학생들이 중3 때 가장 우수한 학생이었다는 사실은 맞지만 고3, 대학교 3학년, 그리고 30대에 최고의 인재가 될 것인지는 조심스러운 마음이라고.

대학교 3학년 때 전공 수업에 폭 빠져 밤을 새우는 학생, 자신이 연구한 결과로 30대에 벤처로 성공할 사람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이런 사람으로 교육하기 위해서 우리는 중고교 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이를 위해 대학입시는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나? 2016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 우리나라 교육이 조금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를 위해 KAIST 입시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문제는 다시 필자에게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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