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론] 문제일 DGIST 교무처장(전 입학처장)

IMF로 너무나 힘들었던 90년대, 메이저리그 중계방송에서 박찬호 선수가 강속구를 뿌려 육중한 미국의 강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무더위에 마시는 청량음료 같은 위로를 얻곤 했습니다. 여전히 힘든 올해 강정호 선수가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받아 쳐서 담장을 훌쩍 넘기는 모습을 보면서 같은 위로를 받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강선수가 소속된 피츠버그 파이리츠팀의 좋은 성적의 비결은 선수를 영입할 때 선수의 실력이 아니라 선수단의 화합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성을 우선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 파이리츠팀에는 포지션별로 한 명씩의 대표자로 구성된 ‘리더 위원회(Leadership Council)’를 구성해 감독과 함께 팀에 대해 고민하는 정기미팅을 갖는다고 합니다. 바로 이러한 작은 노력이 다른 팀과의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내는 듯합니다. 다져진 ‘케미’와 ‘협동심’이 결국 뉴욕 양키스나 LA 다저스 같은 부자구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도 이들과 대등한 경쟁력을 가져오는 셈입니다. 즉 피츠버그 파이리츠팀은 나 홀로 이기는 팀이 아니라 가족 같은 케미로 함께 즐기는 팀인 것이죠.

 

 

▲ 문제일 DGIST 입학처장

과학계 역시 뛰어난 한 과학자가 모든 것을 다 이루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21C는 사회와 과학기술이 다양하고 복잡해져 과거처럼 혼자서 한 가지만 잘하는 사람이 큰 업적을 낼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합심해야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고 비로소 인류에 기여하는 중요한 업적을 성취할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최근, 다양한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란 새로운 협력형태의 혁신이 일어납니다. 집단지성은 1910년대 하버드 대학 윌리엄 모턴 휠러 교수가 개미의 사회적 행동을 관찰하면서 처음 제시한 개념입니다. 개미 한 마리로 보면 한 손가락으로도 눌러버릴 수 있는 지극히 미약한 존재지만 이들이 힘을 합치면 수 톤이 되는 물건도 옮기는, 숨은 능력을 발휘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C에는 이미 소수 전문가의 능력보다 다양성과 독립성을 가진 다수의 통합된 지성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곤 합니다.

효율적인 집단지성 결과 도출을 위한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소통입니다. 최근 미국 듀크대학교의 미겔 니코렐리스 교수 연구팀은 원숭이조차 난제를 풀려면 협업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원숭이 세 마리의 뇌를 연결해, 세 마리 원숭이가 합심해서 로봇 팔을 움직여야만 3차원 공간의 물체를 잡을 수 있도록 특수하게 제작된 장비에서 실험을 수행하였는데, 흥미롭게도 이들 원숭이들의 반응은 우리네 인간과 참 유사합니다. 처음에는 제대로 물체를 잡기가 힘들어 자포자기하는 원숭이, 로봇 팔의 운전을 남에게 미루는 원숭이가 나타났지만, 7주 정도 함께 훈련하면서 합심해 목표를 달성해야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배운 원숭이들은 로봇 팔을 움직여 원하는 위치의 물건을 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런 일은 대학에서도 흔히 일어납니다. 학생들에게 팀리포트 숙제를 내면 리포트 주제에 겁을 먹고 아무 것도 안 하는 학생, 처음부터 끝까지 남이 다 해주길 기대하면서 노는 학생들이 가장 먼저 나타납니다. 그러나 팀멤버 모두 같은 학점을 받게 된다는 팀리포트의 현실은 협력을 유도하고, 결국 누군가 팀을 이끄는 학생이 나와 서로 소통하고 협력해 훌륭한 리포트를 완성하게 되죠. 학생들은 모두 함께 성취감을 만끽합니다. 자고로 기쁨과 행복은 나눌수록 증폭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세대 우리 부모님들은 자신들을 희생하고 자신의 자식들의 성공만을 기원하였습니다. 학생들도 자신의 성적만을 올리는 데 급급해하며 옆 사람은 그저 경쟁의 상대로만 여기는 세상을 살았습니다. 함께 공존하는 법을 배우기에는 우리 부모님 세대는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하루하루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내 자식에게는 그런 힘든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으실 것입니다. 늘 혹시나 내 자식이 힘들게 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너무 커서, 자녀들의 진로를 결정할 때 자녀들의 꿈보다는 현실을 강요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부모님 세대에 겪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터득한 진리는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남을 배려하기보다는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이고, 이런 마음은 자녀들의 교육에서도 온전히 드러나 내 자식만큼은 남에게 뒤처지지 않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온갖 선행학습과 교외활동을 자녀들에게 강요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자녀들이 사는 세상은 혼자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이제 옆 친구가 ‘경쟁 상대’가 아닌 ‘협력 대상’이라는 혁신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고, ‘함께 가는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최근 많은 대학과 기업의 리더십교육에서 ‘Servant Leadership(섬기는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시대변화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즉 과거의 리더는 이기는 사람이고 세상은 이긴 자가 독식하는 세상이었지만, 현대의 리더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이끄는 사람이고 세상은 성과를 함께 즐기는 세상입니다. 인디언의 속담 가운데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인생, 여러분의 자녀들이 ‘남을 이기기’ 위해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십니까, 아니면 길에서 만나는 모두를 품고 ‘남을 이끄는 리더’가 되길 바라십니까? 당장 오늘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자녀들의 꿈을 후원하는 용기’로 바꿔보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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