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론] 이승섭 KAIST 입학처장

간혹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바라보면, 우리 교육은 아직도 식민지 교육에 머물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암울한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만일 100년 전 과거로 돌아가 우리나라가 일본을 식민지로 점령한 후, 필자가 제국주의의 왜곡된 시각으로 일본의 근대 교육의 방향을 기획 했다면 아마도 아래와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1. 학교에서는 가급적 많이 생각하고 질문하게 하기보다, 많은 지식을 주입하고 반복적으로 외우게 하는 방식을 통해 식민지 백성에 맞는 ‘낮은 단계의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육성하도록 한다. 점령국 국민은 미래를 상상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혁신을 통해 사회를 도약시키는 임무를 맡고, 식민지 백성들은 많은 양의 업무를 성실하고 빠르게, 그리고 실수 없이 수행하는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 이승섭 KAIST 입학처장

#2. 어른이 되어서도 지배하기 좋게 학생들을 촘촘한 규칙 속에서 엄하게 지도하도록 노력한다. 식민지 학생에게는 올바른 규칙에 대한 이해와 공감, 혹은 규칙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배우는 사회적 책임감보다는, 스스로 책임지지 않는 복종심만을 심어주는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랑과 존중함이 없는 엄정함만을 못 견뎌 방종으로 흐르게 하는 방법도 용인될 수 있다. 식민지 백성은 사회를 함께 책임지고 구성하는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3. 개인만을 생각하는 똑똑한 엘리트 양성을 목표로 선발을 통한 경쟁 교육 중심으로 ‘솎아내어 버리는 교육 시스템’을 확립한다. 식민지 교육은 위대한 지도자 혹은 훌륭한 시민 양성을 위한 교육이 아니고, 효율적인 식민지 지배를 위한 소수의 똑똑한 중간 관리자 양성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4. 책임감, 사명감, 협동심보다는 경쟁에서의 우월성, 성실함, 개인주의를 강조한다. 식민지 중간 관리자들은 까다로운 선발 과정을 통해 대학에서 선발하고, 대학을 단순 서열화시켜 선발된 학생들에게는 다른 식민 백성에 대한 우월의식을 심어주고, 탈락한 학생들에게는 패배감을 안겨주어, 식민지 엘리트를 이용한 식민지배를 용이하게 한다. 황당한 상상의 날개를 더욱 펼치면서 좀더 구체적인 교과목 설계까지 생각해 본다.

▲국어; 교육의 핵심은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가 근본이지만, 식민지 백성에게 창의적인 글쓰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타인과 토론하는 말하기와 듣기, 자신의 인격과 지식의 깊이를 더하는 다양하고 많은 양의 책 읽기는 중요하지 않다. 점령국 학생들은 창의적인 작가, 토론과 연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정치가, 깊은 철학적 소양을 가진 지성인, 올바른 인격의 시민으로의 육성을 목표로 하지만 식민지 학생들은 앞으로 명령문을 잘 이해하고 올바르게 실행하는 능력 개발에 초점을 맞춰, 짧은 지문에 대한 정확한 주제 파악과 이해력만을 학습시킨다.

▲체육; 몸과 마음을 강건하게 만드는 체육 교육은 가급적 최소화한다. 다양한 운동 경기를 직접 경험하게하거나, 팀 경기를 통해 팀워크를 배우고, 스포츠맨십을 익히는 기회는 없앤다. 특히 몸과 마음이 부쩍 자라는 청소년 시기의 체육활동은 더욱 줄여 어른이 되어서도 가급적 체육 활동에 대한 흥미를 잃도록 유도한다. 체육 경기에서는 상호 경쟁을 강조해, 학생들이 운동을 스스로 즐기기 보다는 이기는 데 집착하도록 이끈다. 일부 운동 신경이 뛰어난 학생들을 선수로 육성하기도 하지만, 그 경우 학업의 기회를 최소화해, 어떤 경우라도 지식과 체육 교육을 골고루 잘 갖춘 학생들이 양성될 수 없도록 한다.

▲수학; 식민지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부려먹기 위해 수학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수학의 개념을 이해하고, 그를 바탕으로 과학기술과 사회현상에 수학적 이론을 적용시키는 능력 혹은 새로운 해결방법을 찾아내는 능력보다는, 주어진 많은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반복학습과 기계적 문제풀이식 교육, 나아가 암기식 수학 교육이 제시될 수 있고, 많은 양의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수학 기능인 양성이 최고의 목적이 된다.

▲영어; 국어 교육과 마찬가지로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가운데, 외국에서 전해지는 명령문을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짧은 지문 혹은 어려운 지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 그를 위한 암기 교육에 중점을 둔다. 식민지 백성은 감히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거나, 자유로운 토론을 하도록 허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덕 혹은 철학; 점령국 학생들에게는 참된 인성을 가진 올바른 시민 육성이 가장 중요한 교육 목적이 될 수 있겠지만, 식민지 학생들에겐 반드시 그렇지 않는 게 사실이며, 혹 도덕 혹은 철학이 필요한 경우, 탁상공론 혹은 구름 잡는 이론 중심의 수업을 진행시키도록 한다. 청소년 시기에 가장 필요한 바른 인생관, 가치관 확립을 위한 토론 혹은 논술식 교육은 가급적 지양하고, 암기식 교육과 사지선다형의 시험 방법을 도입한다.

황당한 상상이 이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앞이 아찔해진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교육 현실이 상상 속 내용과 비슷한 게 아닌가 하는 매우 불편한 마음 때문이다. 중고등학생 두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 대학교수, 더 나아가 우리나라 과학영재들의 선발을 책임지고 있는 KAIST 입학처장으로 자괴감과 함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느끼게 한다.

 
본 기사는 교육신문 베리타스알파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일부 게재 시 출처를 밝히거나 링크를 달아주시고 사진 도표 기사전문 게재 시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저작권자 © 베리타스알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