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박자’ 대입개편부터 시행해야

[베리타스알파=조혜연 기자] 전면 도입을 2년 앞둔 고교학점제가 소규모 학교와 내신 성적 하위권인 학생에게 더욱 어려움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맞춤형 교육’이라는 고교학점제의 취지와는 어긋나는 대목이다. 대입제도가 고교학점제와 상충되는 정시 확대 방향으로 유지되면서 엇박자를 이루는 데다, 고교학점제로 인한 또 다른 불평등이 예상되면서 고교 현장에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서울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교육정책연구소(이하 서교연)가 19일 발표한 ‘서울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을 위한 안착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대규모 학교보다 소중규모 학교가 고교학점제를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소규모나 중규모 학교는 교사 수 자체가 적어 다양한 교과목을 개설하는 데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수업을 희망하는 학생이 적다면 과목이 개설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해 지역과 학교 여건에 따라 수업의 다양성에서 격차가 나게 되는 셈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최근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학교의 규모가 전반적으로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은 물론 서울에서도 폐교되는 고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학교’여야 유리한 교육 체제가 과연 현실적으로 적합한지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내신 성적 하위권 학생이 수업에 대한 압박을 더 크게 받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학생들은 공통과목 이외의 선택과목을 스스로 정해서 수강해야 하는데 아직 진로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학생이라면 교육의 첫 단계부터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다. 특히 내신 성적 하위권인 학생 중에는 자신의 적성을 파악하지 못했거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 고교학점제에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도 더욱 높게 점쳐지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상위권 학생이 고교학점제를 취지에 맞게 이수하는 것도 아니다. 대입이 정시 체제로 돌아선 상황에서 상위권 학생은 자신의 진로가 아닌 수능에 도움이 되는 과목 위주로 선택하는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다면 사실상 ‘우열반’ 형태가 나타나 학생 간 교육불평등으로 귀결될 것이란 의견이 대다수다. 

전문가들은 애초 대입제도의 개선 없이 고교학점제를 강행하는 것부터 무리라는 입장이다. 고교학점제는 대입전형의 정시와는 어긋나는 성격을 갖는다. 수능 비중이 높아지면 학생들이 진로/적성을 위한 과목이 아닌 수능 과목을 위주로 선택하게 되면서 고교학점제의 ‘다양한 과목 선택’이라는 취지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대입체제개편 없이 정시 비율을 40%로 강제한 상황에선 고교학점제가 정상적으로 교육 현장에 안착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 역시 “현재 대학입시가 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교 교육과정만 고교학점제로 변화한다면 결국 학생과 학부모는 입시에 유리한 방향으로만 활용해 본 취지에 부합하지 않게 시행될 것”이라며 “대학입시도 장기적 측면에서는 변화한 고교 교육과정에 발맞춰 함께 변화해야 한다”고 교사들의 입장을 전했다.

전면 도입을 2년 앞둔 고교학점제가 소규모 학교와 내신 성적 하위권인 학생에게 더욱 어려움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전면 도입을 2년 앞둔 고교학점제가 소규모 학교와 내신 성적 하위권인 학생에게 더욱 어려움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방향성 잃은 고교학점제.. 성공적 안착 가능할까>
2025학년부터 전면 도입되는 고교학점제는 이수기준에 도달한 과목에 대해 학점을 취득/누적해 졸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 대학 제도와 흡사하다. 고교 학사 운영이 기존 ‘단위’에서 ‘학점’으로 변경되며, 졸업 기준 역시 204단위에서 192학점으로 달라진다. 현 고등교육 체계에서는 각 학년 수업일수의 3분의2 이상을 출석하면 진급과 졸업이 가능했지만,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면 과목 출석률 충족은 물론 3년간 누적 학점이 192학점 이상이어야 졸업이 가능하다. 1학년 때 공통과목을 통해 기초소양을 함양한 후, 2~3학년 때는 학생 각자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 

고교학점제는 문 정부의 정시 확대 기조와 함께 미궁으로 빠져버렸단 평가다. 수능의 영향력을 낮추고 교과목의 다양화를 통해 학종 체제를 더욱 견고히 한다는 게 고교학점제의 초기 목적이었다. 문 정부 초기만 해도 고교학점제와 함께 수능 절대평가를 시행, 학종을 보완하는 대입 형태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2019년 ‘조국 사태’ 수습 차원의 문 정부가 돌연 상위대들에 ‘정시 확대’를 지시하며 180도 반전됐다. 대통령의 정시 확대 발언은 이전까지만 해도 비율 조정이 없을 것이라 못박았던 교육부 입장과도 충돌하는 내용이었다. 교육부 방침을 뒤엎었을 뿐만 아니라, 대선공약까지 뒤엎었다는 점에서 교육철학의 부재를 증명한 셈이 됐다. 

전문가들은 정시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학생들의 과목 선택 자율권을 보장한다는 점 자체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정시 확대가 지속될 경우 수능 절대평가 추진이 절대 불가능해진다는 이유다. 한 교육전문가는 “학종 중심의 수시가 확대되는 상황이라면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이 희망하는 진로에 맞춰 다양한 과목을 도전해보게끔 하는 게 좋은 흐름일 것이다. 설령 도전해 본 과목에서 생각보다 낮은 성적을 받을지언정, 자신의 흥미나 도전정신 등을 학생부와 자소서를 통해 잘 정리하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시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고교학점제를 강행할 경우 결국 수능과 연관된 과목을 선택해야 유리하다는 말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상위대 정시 확대를 강제하면서 고교학점제의 방향성이 모호해졌고, 일각에선 정권교체와 함께 고교학점제가 무효화될 것이란 의견이 우세했다. 다만 이주호 교육부 장관 역시 고교학점제의 2025년 전면 도입을 강행하겠다고 밝혀 고교 현장에는 또 다시 혼란이 덮쳤다. 문제는 정시 확대 기조마저 철폐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고교학점제는 대입 정시 수능전형과는 상충되는 성격을 갖는다. 수능 비중이 높아지면 학생들이 수강하는 과목은 진로/적성을 위한 선택과목이 아닌 수능 과목을 위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고교학점제 취지인 ‘다양한 과목 선택’의 취지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현장에서는 서로 다른 두 사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다는 반응이다. 

<‘소규모 학교’ 선택과목 개설 ‘불리’.. 지역 격차 커지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교학점제 체계마저 완성되지 않아 고교 현장의 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서교연이 발표한 ‘서울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을 위한 안착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학교 현장에서는 고교학점제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강사수급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 봤다. 학생의 교육을 위해 다양한 교과목이 개설되는 고교학점제의 취지는 교사들도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인력 부족을 개별학교에 모두 전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학교별로 강사 섭외에 대한 예산이 불충분한 곳도 있었고, 예산이 있어도 소인수 과목은 강사 섭외가 쉽지 않다는 한계도 있었다. 

규모에 경제에 따라 특히 소규모 학교에서 어려움을 더 크게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규모에 따라 교사 수도 비례하기 때문에, 소규모나 중규모는 다양한 교과목을 개설해야 할 경우 더 많은 강사를 섭외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 수가 많을 경우 같은 과목을 여러 학급 개설할 수 있으나 소규모나 중규모 학교는 학생 수 자체가 적어 과목당 한 학급으로 개설될 여지가 많은 점도 지적했다. 대규모 학교는 다양한 과목이 개설될 수 있는 반면, 소규모 학교는 선택과목 개설에 있어서 구조적 한계에 부딪히는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소규모 학교의 경우 1명의 교사가 다과목을 담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우려된다. 한 고교학점제 담당교사는 “예를 들어 영어 독해와 심화 영어 두 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미권 문화과목이 추가적으로 생겨난다면 한 명의 영어 교사가 세 과목을 가르쳐야 될 수도 있다. 과목 수는 정해져 있는데 교사 수는 적으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다교과 지도로 인해 교사의 전문성 개발에 어려움이 있다’에 대해 교사들은 5점 만점 중 평균 4.09점을 나타냈다. 전체 응답 경향을 살펴보면, 다교과 지도로 인해 교사의 전문성 개발이 어렵다고 응답한 교사의 비율이 77.48%(485명)로 과반이었다. 학교 규모를 따져보면 소중규모 학교(4.11점)가 대규모 학교(3.90점)보다 더 어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소재지의 경우 남부 지역(4.57점)이 강남서초 지역(3.71점)보다 전문성 개발의 어려움을 체감하고 있었다. 

<내신 성적 하위권 학생 부적응 가능성 높아.. 교육불평등 확대되나>
내신 성적이 하위권인 학생일수록 고교학점제에 대해 압박감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서교연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스스로 흥미나 적성 파악의 어려움으로 과목 선택 문제가 있나’는 질문에 내신등급 ‘하’인 학생(5점 만점에 2.94점)이 ‘상’인 학생(2.68점)보다 어려움을 더 느낀다고 답했다. 고교학점제의 선택과목은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분화된 교실에서 각자 수업을 듣기 때문에 친구를 사귀기 어렵다는 호소도 있었는데, 이 역시 내신 ‘하’ 집단(2.6점)이 ‘상’(2.29점)보다 더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아직까지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학생에게 고교학점제가 선택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교사는 “한 학급 20명 중 5~6명은 이과를 선택할 건지, 문과를 선택할 건지 물어봤을 때 대답을 못한다. 이런 학생들한테 다양한 과목 중 진로에 맞게끔 선택해서 이수하면 된다고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 고교학점제가 진로에는 도움이 되는 것은 맞다. 다만 정작 본인이 진로를 모르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적응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교사는 “고교학점제 체제에서는 진로 선택의 시기가 굉장히 앞당겨졌다. 이전에 대학이 학부제를 운영했을 때는 고3 때까지 진로를 확실하게 정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자연과학대학으로 진학해서 생각해보자고 얘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고2로 올라갈 때 자연과학 중 물리인지, 생명인지 등 세부적으로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게 선택과목을 골라야 하고, 학생부에 기록해야 하고, 이를 통해 대학에 가야 한다고 강요하는 분위기가 돼 아쉽다”고 밝혔다. 

교육 현장에서는 성급한 고교학점제 도입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학생 간 교육불평등이 초래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과목 선택권이 확대되면서 사실상 한 학교 내에서 ‘우열반’ 형태가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교육관계자는 “평등을 앞세운 정책을 토대로 또다른 불평등을 야기하는 모순”이라며 “수월성 교육을 억압하겠다는 취지로 자사고를 폐지하겠다던 문 정부가 강행한 고교학점제의 실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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