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교육기여 아니라 사교육기여'

[베리타스알파=조혜연 기자] 고교 공교육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교육부의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이 이제 완전히 방향성을 잃었다. 고교교육을 활성화 할 수 있는 방향이 아니라 정시확대에 통합형 수능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나버린 대입정책의 부작용을 뒷수습하는 도구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고교교육에 기여하겠다는 사업의 취지는 퇴색됐다.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에 의존하는 정시전형을 확대하는데다, 충분한 검토 없이 도입된 통합형 수능의 부작용을 해결하라며 예산을 빌미로 대학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온갖 정책수단의 뒷수습을 떠맡으며 사업은 누더기가 돼 버린 셈이다. 취지와 본질에 맞는 운영을 위해 전반적 사업개편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특히 올해 대학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해 이과침공을 해소하겠다는 내용은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미/기하 과탐 등 필수 지정한 과목을 폐지하다보면 쉬운 과목으로 쏠리는 또 다른 유불리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이과 유불리 문제를 해결하려면 통합수능 자체를 없애는 것 말고는 사실상 방법이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근본적 해결 없이는 통합수능을 개선할 뾰족한 방법이 없어 개편안을 마련한다고 해도 미세조정에 그칠 것이라는 얘기다. 교육계에서는 "예산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부터 잘못됐다"며 "정책 자체를 바로잡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은 본래 고교교육 기여 전형인 학종의 지원을 위해 시작됐다. 사업이 변질되기 시작한 건 정시확대 기조를 펼치고부터다. 지난해부터 수도권대학은 수능위주전형으로 30% 이상 선발하는 ‘정시30%’ 룰을 따라야 했고, 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광운대 동국대 서강대 서울시립대 서울대 서울여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숭실대 연세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 등 서울 소재 16개 대학은 40%까지 확대된 정시선발 비중을 유지해야 한다. 정시 확대와 국고 지원을 연계한 점을 두고 ‘고교교육 기여’가 아닌, ‘사교육 기여’ 사업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수능 위주의 정시 전형 자체가 사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에 더해, 정시확대 이후 N수생 증가와 사교육/교육특구 강화, 의대열풍 등이 거세지면서 '고교교육기여'라는 사업의 이름이 무색해진 결과를 초래했다.  

더군다나 사업은 고교학점제를 입시에 반영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고교학점제와 정시 확대가 상충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모순된 방향을 동시에 추구하는 자가당착에 빠져버린 것이다. 정시에 실리는 비중이 커질수록 수능을 치르는 과목의 중요도가 높아져, 고교학점제가 추구하는 ‘다양한 과목 선택’의 취지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올해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이하 기여대학사업)에서는 이과침공을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한 대학에 인센티브를 지원한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 91개교 575억원>
‘2023년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은 지난해 선정된 전국 91개 대학에 총 575억을 지원한다. 올해는 3년 단위(2022년~2024년, 2년+1년) 사업의 2차 연도로 탈락 없이 연차평가를 통해 작년 사업의 성과와 향후 계획을 점검할 계획이다. 

연차평가는 대학, 고교, 시도교육청 등 대입전형 전문성을 갖춘 현장 관계자로 연차평가위원회를 구성해 서면과 영상으로 실시한다. 대학별 2022년 사업운영 결과와 2024~2025학년 대학입학전형시행계획을 살펴본다. 평가 결과에 따라 우수(20%), 보통(60%), 미흡(20%)으로 구분해  올해 사업비를 차등 지원하고 추가 컨설팅을 제공한다. 인센티브는 ‘미흡’ 대학의 사업비를 20% 내외로 감액해 ‘우수’ 대학에 지원하는 형식으로 배분한다. 

지난해 사업에 선정된 대학은 수도권 39개교와 비수도권 52개교다. 유형1에는 수도권 35개교, 비수도권 42개교로 총 77개교가 선정됐다. 유형1은 수도권/비수도권으로 분류한 뒤 3000명 이상 규모는 대형 대학, 미만은 중소형 대학으로 구분한다. 수도권은 가톨릭대 강남대 건국대 경기대 경인교대 경희대 고려대 광운대 국민대 단국대 대진대 덕성여대 동국대 명지대 상명대 서강대 서울과기대 서울대 서울시립대 서울여대 성균관대 성신여대 세종대 숙명여대 숭실대 아주대 연세대 이화여대 인천대 인하대 중앙대 차의과대 한국외대 한양대 한양대ERICA 등이다. 비수도권은 가톨릭관동대 강릉원주대 강원대 건국대 경북대 경상국립대 계명대 공주대 광주교육대 군산대 금오공대 대구가톨릭대 대구교대 대구대 대구한의대 동아대 동의대 목포대 부경대 부산가톨릭대 부산교대 부산대 선문대 순천향대 안동대 영남대 원광대 전남대 전북대 전주대 제주대 조선대 청주교육대 충남대 충북대 한국교원대 한국교통대 한남대 한동대 한림대 한밭대 호서대 등이다. 

유형2에는 수도권 4개교, 비수도권 10개교로 총 14개교가 선정됐다. 유형2는 수도권과 지역으로 구분한다. 유형2는 2018년 이후 이 사업에 선정된 적이 없는 신규 대학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유형이다. 새로 선정된 14개교는 수도권은 삼육대 한국공학대 한성대 홍익대, 비수도권은 고신대 남서울대 대전대 동명대 배재대 상지대 신라대 울산대 중원대 한라대다.

<올해 ‘이과침공’ 해소 대학 인센티브.. 수능 필수과목 폐지 ‘권장’>
올해 연차평가는 각 대학에서 문이과 통합 등 2015 개정 교육과정 취지에 맞게 전형을 운영할 수 있도록 관련 지표를 일부 조정하고 배점을 추가했다. 사업 기본계획에 명시된 개선안은 필수 응시과목 폐지, 탐구 영역 변환표준점수 통합 산출 등이다. 사실상 최근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이과침공’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전형을 개선한 대학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과생들의 문과 교차지원이 확대되면서 수능의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제기돼 왔다. 올해 서울대 인문/사회계열 합격자 가운데 이과생이 절반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인문계 지원을 위해서는 제2외국어/한문 응시가 필수임을 감안하면 충격적인 수준이다. 간호와 자전은 이과생 비율이 100%였고 문과 최고 학부인 경제 74%, 경영 67%에 달해 충격을 더했다. 9일 서울대가 정경희 의원(국민의힘)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과생이 인문계 학과로 지원하는 이른바 ‘이과 침공’(이과생의 문과 침공) 비율은 인문/사회/예체능 합격자 640명의 51.6%(330명)였다. 지난해 44.4%보다 7.2%p 더 늘었다. 2023수능은 국어가 상대적으로 쉽게 출제되면서 수학에서 변별력이 판가름난 가운데, 수학에 강점을 가진 이과생의 교차지원이 지난해보다 수월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2027학년까지 유지되는 통합수능 폐해가 갈수록 커져가는 상황에서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지난달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입학처장 간담회를 열고 통합수능 부작용인 ‘문과 침공’과 대학별 보완책 마련 상황, 문이과 통합 취지에 맞는 대입전형의 필요성 등을 논의했다. “고교 수업에서는 이미 문이과가 사라졌지만 대입에선 문이과를 구분하는 현상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며 “수능 과목으로 인해 입시에서 불리함이 발생하지 않도록 수능 난이도를 적절하게 조절하고 대학과 소통해 개선 방향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공감하고 있었다. 

이과침공을 해소한 대학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는 이번 사업 역시 같은 맥락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 통합형 수능 체제를 유지하는 한 대학들이 이과침공에 대한 개선안을 내놓더라도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크다. 문이과 유불리 문제를 해결하려면 통합수능 자체를 없애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뾰족한 방법없이 전형방법의 미세조정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다. 

<정시 확대/고교학점제 ‘엇박자’.. “현장 혼선 불가피”>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은 2014년부터 추진하는 사업으로 전형운영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해 대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고교교육과정과 대입전형 간 연계성을 제고해 수험생의 대입 준비 부담을 완화하는 목적으로 시행 중인 사업이다. 하지만 도입 초기 학종 중심의 수시 확대를 장려하던 데서,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2020년부터는 돌연 정시 확대와 연계하면서 사업 방향이 정반대로 바뀌어 논란을 불러왔다. 수요자를 비롯한 교육현장은 혼란을 겪었고, 서울대를 비롯해 학종을 주도하던 대학들은 정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2022~2024 기여대학사업의 평가방식을 살펴보면 정시 확대와 정면충돌하는 고교학점제 운영 신설 항목이 포함돼 있어 우려가 커져가는 상황이다. 올해 평가지표에는 ‘고교교육 연계성’ 영역을 신설해 고교학점제를 반영한 대입전형을 도입한 대학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한 특징이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고교학점제와는 정반대의 성격인 정시 확대 기조도 이어간다. 사업 지원자격에 수능위주전형 또는 교과전형 비중을 30% 이상으로 높여야 신청이 가능해 이에 따라 수도권 대학은 ‘수능위주전형 30% 이상’을 담은 2023, 2024학년 대입전형 조정계획을 제출했다. 교육부가 수능위주전형 추가 확대를 권고한 서울 16개 대학은 ‘수능위주전형 40% 이상’이 사업 신청 조건이었다. 비수도권 대학에 한해 수능위주전형이나 내신 성적을 중심으로 선발하는 교과전형을 30% 이상 충족하면 신청할 수 있게 했다.

전문가들은 기여대학사업 참여 조건에는 ‘정시 확대’를, 평가지표에는 ‘고교학점제 추진 계획’을 넣은 방향성 자체부터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2025학년부터 전면 도입되는 고교학점제는 대입 전형의 정시와는 상충되는 성격을 갖는다. 수능 비중이 높아지면 학생들이 수강하는 과목은 진로/적성을 위한 선택과목이 아닌 수능 과목을 위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고교학점제 취지인 ‘다양한 과목 선택’의 취지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현장에서는 서로 다른 두 사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한 상태다. 게다가 사교육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꼽히는 수능위주의 정시를 확대하는 대학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논리도 ‘고교교육 기여 사업’이 아니라 ‘사교육 기여 사업’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유형별 평가항목 ‘확인’.. 고교학점제 반영>
올해 연차평가 지표는 유형별로 평가항목과 배점을 다르게 설정했다. 유형1에선 기본적인 대입전형 운영 역량을 바탕으로 추가적인 내실화/고도화 계획을 평가한다. 평가항목은 ▲대입 공정성/책무성(35점) ▲수험생 부담 완화(20점) ▲학생선발 기능강화/전문성 제고(20점) ▲고교교육 연계성(20점) ▲예산(5점)으로 나뉜다. 

세부적으로 ▲대입 공정성/책무성 영역에서는 평가자 1인당 평가건수 등 평가운영 내실화를 15점, 사회통합전형의 합리적 운영을 20점으로 반영한다. 사회통합전형과 지역균형발전 관련 전형을 그 취지와 목적에 알맞게 합리적으로 운영하고 법령상 의무/권고사항을 준수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배점을 가장 크게 설정했다. 대입 전형/평가의 공정성 확보는 15점 범위에서 감점 반영한다. 

▲수험생 부담 완화 영역에서는 대입전형 단순화/합리성 제고 15점, 전형 관련 정보 제공 강화를 5점 반영한다. 대학별고사/특기자전형 운영/개선은 10점 범위에서 감점 반영한다. 수능최저 완화 등도 수험생 부담 완화 영역에서 반영한다. 

▲학생선발 기능강화/전문성 제고 영역에서는 입학사정관 확보/신분 안정화 10점, 입학관계자 전문성 강화 노력을 10점 반영한다. 세부적으로는 모집규모 대비 적정 입학사정관 확보 5점, 입학사정관 신분안정화 현황/계획 5점, 입학사정관 교육/훈련 운영 실적 8점, 대학 입학부서 직원의 대입제도/정책 이해도 제고 노력 2점이다. 

▲고교교육 연계성 영역에서는 고교/시도교육청 협력 프로그램 운영을 8점, 고교교육 반영 전형연구/평가체계 개선을 12점 반영한다. 세부적으로는 고교-시도교육청-대학 협력 네트워크 구축/상호 이해도 제고를 위한 프로그램 기획운영 실적 4점, 고교학점제 운영 지원(선택교과 개설 지원 등) 4점, 2015 개정 교육과정 취지에 맞는 전형(학생부/수능) 운영 10점, 대입전형 관련 연구 추진/연구결과 활용 2점이다. 대학별고사 고교 교육과정 범위 내 출제 여부를 15점 범위에서 감점 반영한다.

유형2의 경우 대입전형의 공정성과 안정성 확보를 위한 기초적인 기반 구축 계획을 중심으로 평가한다. 평가항목은 △대입 공정성/책무성(35점) △수험생 부담 완화(25점) △학생선발 여건(15점) △고교교육 연계성(20점) △예산계획(5점)이다. 유형1과 비교해 수험생 부담 완화 항목이 5점 더 높고, 학생선발 여건은 5점 더 낮다.

세부적으로 △대입 공정성/책무성 영역에서는 대입전형 공정성 기반 구축 등 15점, 사회통합전형의 합리적 운영을 20점으로 반영한다. △수험생 부담 완화 영역에서는 대입전형 단순화/합리성 제고 15점, 전형 관련 정보 제공 강화를 10점 반영한다. 대학별고사/특기자전형 운영/개선은 10점 범위에서 감점 반영한다. △학생선발 여건 영역에서는 입학사정관 확보 현황을 15점 반영한다. △고교교육 연계성 영역에서는 고교연계 프로그램 운영을 8점, 고교교육 반영 전형연구/평가체계 개선을 12점 반영한다. 대학별고사 고교 교육과정 범위 내 출제 여부는 15점 범위에서 감점 반영한다. 이외에도 부정/비리대학으로 제재를 받은 대학은 총괄위 별도 심의를 거쳐 감점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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