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거 드세요” 2023년 전문대학 정시 박람회 상담실에 있던 내게 한 어머니가 음료수 한 캔을 내밀었다. “선생님이 상담을 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입학 상담을 하러 왔다가 인생 상담을 받게 되어 아들이 힘을 얻었어요.” 그 어머니는 조금 전 나와 상담하고 갔던 어머니다. 많은 어머니가 그렇듯이, 이분도 아들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아들은 여러가지 사정 등으로 인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이후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대학에 진학하려고 2023 대입 수능시험을 보았다.

이분이 상담실을 찾아왔을 때, 아들은 주눅이 들었는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머니도 내 눈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면서 한숨 섞인 어조로 “선생님, 어디로 가야 잘 살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이제까지 상담하면서 들어보지 못한 형태의 질문이었다. 아들이 잘 살기를 바라는 엄마의 간절함이 담긴 질문이었다. 그때까지도 아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의자 끝에 엉덩이를 살짝 걸치고 앉아있었다. 자신의 현 상황에 고민이 많은 아들의 모습이었다.

아들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으며 고개를 들게 했다. 성적표를 확인하면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물었다. 홈스쿨링하면서 많이 힘들었을 텐데 잘 견뎌 왔다고 말했다. 어머니께는 집에 있는 아들이 수능시험까지 치르도록 한 것은 정말 큰일을 하신 거라 위로했다. 아들은 영상 편집에 관심이 많아 독학하고 있으며, 어머니는 그런 아들에게 좋은 길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입시 상담으로 유명하다는 곳에서 상담했는데, 아들은 더 주눅이 들었고, 어머니는 크게 좌절했다고 한다. 

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관
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관

아들의 검정고시 점수로 산출한 내신성적은 신통하지 않았고, 수능시험 성적도 좋지 못했다. 그러나 영상을 편집하는 기술을 더 배워 사회에 진출하고자 하는 마음은 여전히 컸다. 그래서 대학에 가고자 하는 소망이 강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들을 상담한 전문가는 아들이 대학에 갈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했다. 가능성 있는 전문대학을 알려달라고 하였지만, 전문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힘드니까 재수를 해서라도 일반대학(4년제)에 가야 한다고 재수를 추천했다. 어렵게 검정고시를 통과해 수능시험을 본 아들에게 너무 가혹한 평가라 어머니는 화도 나고 절망스러웠다. 그렇게 상처받은 마음으로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나는 두 모자에게, 사람의 삶에는 정답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영상편집을 배우고자 하는 소망을 꺾지 말라고 당부했다. 영상을 편집하는 일은 출신 학교보다 실력을 더 중시하는 사회가 오고 있다. 교육기관에서 배우든지 오픈 소스로 독학하든지 실력만 기를 수 있다면 방법에는 제한이 없다. 과거 방송 직원 모집 광고에서, 기술 관련 직종 지원 자격이 전문대학 졸업자 이상이었다. 그러니 지원하고 싶은 전문대학에 마음껏 지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전문대학에 가서 충분한 실력을 키우고, 더 공부하고 싶다면 학사학위를 받는 과정을 이수하면 된다. 다만 고려해야 할 하나의 문제는 ‘사회나 기업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능력을 갖추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제야 두 모자는 밝은 모습을 보였고, 아들은 인사를 하고 떠났다.

청소년이 어떤 길을 선택하여 가더라도 고용주에게 임금을 지불받고 고용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면 된다. 그런 실력은 출신대학으로 증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아들처럼 대학에 진학하기 전에는 성적이 좋지 못하지만, 전문대학에 진학해서 배움에 눈을 뜨고 흥미를 느껴서 더욱 노력하여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의 배움의 슬로우 스타터(Slow Starter)들이다. 

젊은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미래의 길은 다양하다. 일부 대학 입시 전문가들이 말하는 길만이 사회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모르는 길이 더 많다. 성적이 좋고, 공부에 흥미가 있다면 좋은 대학에 진학하라고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 지친 청소년에게, 혹은 빨리 기술을 배워 사회로 진출하고 싶은 청소년에게, 재수하면서 우수한 학생과 어깨를 나란히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미래의 생존에 대한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길을 안내하는 것이 옳다. 그 길은 일반대학 또는 전문대학이냐의 구분도 필요가 없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닥치는 문제는 비슷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정답은 없다. 세상에 사는 사람 수만큼의 답이 있을 뿐이다. 그 답은 자신이 찾을 수밖에 없다. 어디로 가야 잘 살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자신이 재정적으로 자립하여 살아갈 가능성을 높여주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곳은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시대가 바뀌었다. 기술적인 측면은 사회와 기업의 현장에서 실무로 배우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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