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포화상태에 사교육조장 의대진학 골머리'.. '오히려 개편대상"

[베리타스알파=조혜연 기자] 현재 전국 8개 체제로 운영되는 영재학교가 10개 체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윤석열 정부의 지역공약 국정과제였던 AI영재고 설립과 관련해, 충북은 KAIST 부설 AI바이오영재고를, 광주는 지스트 부설 AI영재고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정부가 결국 두 지역의 손을 모두 들어준 셈이다. 충북과 광주는 각 10억원의 사업계획 용역비를 편성받았고, 2025년~2026년 개교를 목표로 실행과제들을 수행해나갈 예정이다. 

교육계에서는 영재학교가 더 늘어나는데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영재학교 8개교에서 매년 800명 가량의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고, 전국 지역별로 자리잡은 20개 과고에서도 이공계우수인재 약 1640명을 매년 모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재’의 의미가 퇴색될 정도로 이미 많은 수의 학교들이 영재교육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의대열풍과 정시확대 통합형수능체제의 대입에서 영재학교와 과고가 과연 제대로 이공계 우수인재를 양성해내고 있는지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영재학교와 과고는 당초 설립취지와 어긋나는 의대진학 문제로 여전히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고난도 입학전형으로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문제 역시 해결하지 못했다. 한 교육전문가는 "영재학교는 현재 이공계인재양성의 관점에서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의대진학과 사교육 조장 등의 부작용을 초래하면서 오히려 교육체제를 완전히 개편해야할 시점에 다다랐다. 이 상황에서 AI역량을 가진 우수 인재 양성을 위해 영재학교를 늘리겠다는 방향은 보여주기식 정책으로 간주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충북과 광주가 '지역 내 과고와 영재학교 중 하나밖에 없다'는 이유로 영재고 설립을 추진한다는 점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지나친 지역이기주의적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충북에는 이미 과고인 충북과고가 있고, 광주에는 심지어 영재학교인 광주과고가 있다. 설립근거가 각기 다른 법의 적용을 받고 있어 세부 운영 방식은 차이가 날 수 있으나 과고와 영재학교 설립목표가 과학인재양성으로 모아져 있고, 전반적인 수학/과학 수업의 내용이나 수준, 교재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실정이다. 한 학부모는 "이미 설립된 과고와 영재학교부터 제대로 관리하고 교육해야 한다"며 "AI역량과 바이오융합역량이 필요하다면 현재 운영하고 있는 과고와 영재학교에서 해당 과목의 시수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는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정치적인 이유로 불필요하게 예산이 낭비되는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지역공약 국정과제였던 AI영재고 설립과 관련해 충북은 KAIST 부설 AI바이오영재고를, 광주는 지스트 부설 AI영재고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사진=광주교육청 제공
충북은 KAIST 부설 AI바이오영재고를, 광주는 지스트 부설 AI영재고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지만 교육계에서는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사진=광주교육청 제공

<충북 AI바이오영재고, 광주 AI영재고 유치.. 정부 예산 각 10억원 반영>
내년 정부 예산에 충북 AI바이오영재고, 광주 AI영재고 설립 계획 용역비가 각 10억원씩 반영됐다. 현 정부의 지역공약 국정과제였던 AI영재고 설립에 대해 충북과 광주의 유치 경쟁이 과열되자 정부는 충북에 KAIST(한국과학기술원) 부설 영재고를, 광주에 GIST(광주과학기술원) 부설 영재고를 따로 설립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 지역의 구상대로라면 충청북도는 2026년까지 학급당 학생수 10명, 학년별 9학급 총 270명 규모의 영재학교를 설립할 계획이다. 건축비 580억원, 부지비 200억원 총 78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며, 도내 입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광주광역시도 설립 절차가 순조로울 경우 2025~2026년 개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학년별 정원 50명 규모로 지스트 내부 또는 인접한 첨단 3지구에 AI영재고를 설립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충청북도는 AI활용 산업인 반도체, 바이오, 이차전지 등을 중점 육성하고 있으나 AI 인력이 부족하다고 줄곧 호소해왔다.  AI 영재교육의 중간단계(고교) 단절로 인해 ‘국가 경쟁력’을 선도하는 인재 육성에 한계에 달했다는 주장이다. 윤 정부의 지역공약 국정과제에 AI영재고 설립이 반영된 곳은 충북과 광주 두 곳으로, 광주는 이미 영재학교가 있어 영재학교가 없는 충북에 반드시 설립돼야 한다고도 밝혔다.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용산 대통령실을 찾아가 직접 충북 AI영재고 설립을 건의했고 김대기 비서실장이 바이오영재고를 제안해 방향을 변경했다고 알려졌다. 

광주는 지스트, 인공지능사관학교 등에서 AI 전문 인력을 배출하고 있지만 초중등 과정이 없어 이른바 인재 양성 사다리가 단절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상당수 지역에서 과고, 영재고가 별도로 운영 중인데 광주에서는 과학고가 영재학교 기능도 함께 하고 있다"며 "AI 분야에서는 특히 조기교육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영재고 설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AI영재고를 장기 로드맵 으로 추진하면서 지역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단기 정책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정치적으로 퇴색되는 '영재' 교육.. '지역간 나눠먹기' 논란>
전국에 골고루 설립되는 영재학교는 진정 '영재' 학교로 의미를 다 할 수 있을까. 영재교육진흥법에 의해 근거해 설립된 영재학교는 현재 전국8개 체제다. 부산(한국영재) 서울(서울과고) 경기(경기과고) 대구(대구과고) 대전(대전과고) 광주(광주과고) 세종(세종영재) 인천(인천영재) 등 광역단위로 하나씩 자리한다. 영재학교의 광역단위 설립이 자리 잡게 된 것은 2003년 한국영재가 국내최초 과학영재학교로 출범한 뒤 지역별 균형을 이유로 지역과고들이 ‘나눠먹기식 전환’을 해왔기 때문이다. 교육계는 현재 8개 체제만으로도 ‘많다’는 의견이다. 2022학년 기준 8개 영재학교 학생 수는 2300여명에 이른다. 이미 80년대 초반부터 영재교육의 일환으로 운영해오고 있던 과고는 전국 20개이며, 전체 학생 수는 4900여명에 달한다. 상위 극소수 우수 인재를 의미하는 ‘영재’의 의미가 퇴색될 정도로 많은 수의 학교들이 영재교육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충북과 광주의 AI영재고가 합류하면 영재학교는 총 10개교가 된다. 특히 국내 학령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미 포화상태에 접어든 영재교육을 확장하는 건 무리라는 시선이 많다. 충북과 광주에서 AI영재고 설립을 요구했던 배경 중 공통된 사항은 '우리 지역 내 과고와 영재학교 중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상당수 지역에서 과고와 영재학교를 별도로 두고 있지만 충북에는 과고만, 광주는 영재학교만 있어 AI영재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대목에 대해서는 교육계는 '지역 이기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같은 논리라면 특별/광역시 가운데 유일하게 영재학교가 없는 울산에도, 광주와 마찬가지로 과고가 없는 세종에도 영재학교가 설립돼야 타당하기 때문이다. 교육기회의 평등을 위해 영재학교의 설립이 필요하다면 충북(2022년 기준 중3 학생 수 1만4898명)과 광주(1만5505명) 보다 진학예정자가 많은 전북(1만7282명)이나 전남(1만6406명)이 오히려 우선순위에 올라야 한다. 

‘영재학교’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는 만큼 과고의 차별성에 대해서도 일각에선 문제를 제기한다. 영재학교는 영재교육법에 의거, 특정 분야에서의 특수한 능력의 심화를 중시한다. 반면 과고는 상대적으로 보편적인 재능을 중시한다. 영재학교는 자율적인 학교 운영이 가능하다. 교육과정 운영이 자유로워 무학년제 졸업학점제, 대학 학점선이수제(AP) 등을 시행하면서 수학/과학 특정 분야의 연구와 실험 중심의 교육에 중점을 두는 편이다. 과고는 국가교육과정에 따라 전문교과와 기본교과의 이수단위가 정해져 있으며 수학/과학 속진 심화교육을 실시해 조기졸업도 가능하다. 설립근거가 각기 다른 법의 적용을 받고 있어 세부 운영 방식은 차이가 날 수 있으나 두 학교 설립목표가 과학인재양성으로 모아져 있고, 전반적인 수학/과학 수업의 내용이나 수준, 교재는 차이가 없는 실정이다. 굳이 영재학교와 과고가 각 한 개씩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충북과 광주가 AI영재고 설립에 과한 열기를 띄는 것은 '국가지원'을 대폭 끌어오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두 지역이 추진하고 있는 영재고는 모두 국립 영재학교로 현재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이하 한국영재)와 운영방식이 동일하다. 한국영재는 해당 시도교육청 소속인 여타 7개 과학영재학교와는 달리 유일한 과기부 소속이다. 과기부 관할의 한국영재는 연간 150억원 가량의 넉넉한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7개 영재학교가 20억에서 50억원 사이의 예산을 지원받는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사교육조장, 의대진학 '골머리'.. 현 과고/영재학교 교육개편 '먼저'>
교육계는 미래 산업을 선도한 우수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이미 설립된 영재학교와 과고의 체제부터 개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이공계우수인재 양성 체계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무리하게 몸집만 늘려선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최대 현안은 '의대진학' 문제다. 강득구(더불어민주)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2022학년 대입에서 총 257명의 과고 학생들이 의약계열에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고, 김병욱(국민의힘) 의원실이 서울대와 지방거점국립대(지거국) 9개교의 의학계열/의대 합격자 자료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상당수의 영재학교 인원이 서울대 의대 등 의학계열에 합격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현재 의대 진학을 준비하는 건 영재학교 출신 재수/N수생이 대부분이지만, 이대로라면 의대 진학 기조가 재학생 사이에서도 적극적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영재학교의 경우 폐쇄적인 입시행태로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거세다. 그 중에서도 국립 영재학교로 분류되는 한국영재의 행태가 가장 심각하다. 교육부 과기부 교육청의 관리 사각지대에 있는 전국모집 8개 영재학교 모두 2020학년 이후 수요자의 학교선택 잣대로 가장 중요한 입시실적 비공개를 고수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한국영재가 원서마감 직후 경쟁률까지 비공개했다. 시도교육청이 매년 3월 말 발표하는 ‘고입 전형 기본계획’에서도 빠진 채 공고되고 있고, 과고 외고 국제고 등이 수요자를 배려해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학교별 당해 연도 전형 기본계획도 공지하지 않는다. 원서접수 한 달 전 이뤄지는 모집요강 공개 전까지 수요자들이 오로지 사교육에만 의존해 입시를 준비하도록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의 과고 영재학교 입시는 자율성을 방패로 수요자 무시가 지속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게다가 영재학교의 입시는 지필고사와 창의력 캠프전형까지 포함해 ‘최대 사교육 유발 전형’으로 꼽힌다. 실제 2021년 10월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더불어민주) 의원이 공개한 ‘전국 영재학교 2022학년 합격예정자 출신중학교 분석’에 따르면 전국 8개 영재학교 합격자 838명 중 서울/경기 학생이 507명(60.5%)이나 됐다. 특히 507명 중 329명(64.9%)은 사교육의 영향력이 막강한 교육특구 출신이었다. 2021학년 영재학교 응시생의 78%가 사교육으로 입시를 준비했다는 설문 결과도 있다. KAIST 김용현 입학처장 역시 본지 교육시론을 통해 “수도권 출신들이 점령한 영재학교 입시는 사교육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고 있고, 어려운 대학 교과목을 선행하며 적자생존해야 하는 영재들은 대치동 사교육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교육 수요자들 마저 영재학교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을 보이고 있다. '보여주기식 운영'이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한 학부모는 "영재학교를 또 만드는 것보단 이미 있는 영재학교부터 제대로 관리하고 교육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AI, 바이오융합 역량이 필요하다면 관련 과목을 심화 수업으로 반영하는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교육계 전문가는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영재학교와 과고의 역할은 지대하다. 특정 과학 분야에 우수한 역량을 보유한 인재와 보편적인 과학 분야에 우수한 인재 모두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 과고와 영재학교는 근본적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 수요자들에게 혼란만 야기하고 있다. 무작정 인재양성기관 숫자만 늘린다고 우수 인재가 배출되는 것이 아닌데 '과고만 있고 영재학교가 없기 때문에', '영재학교만 있고 과고가 없기 때문에' 영재고를 설립한다는 행보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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