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탄생' 출간 10년, 개정증보판 출간

[베리타스알파=나동욱 기자] 20세기의 젊은이들은 비틀스를 영국 그룹이 아닌, 자신들의 시대를 함께하는 그룹으로 여기고 음악을 즐겼다. 가사의 이해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음악에 반했고, 또 언어 자체에 반했다. 영어라는 언어는 결과적으로 매우 자연스럽게 그 음악과 함께 전해졌다. 마찬가지로 21세기인 오늘날, 소년소녀들은 BTS(블랙핑크, NCT 등 일일이 거론하기엔 그 수가 너무 많다)를 한국 그룹이 아닌 자신들의 시대에 일상 속에서 함께 숨 쉬는 그룹으로서 그들의 음악을 듣고 춤을 춘다. 한국어도 한글도 결과적으로 매우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그리고 그 소년소녀들은 생각한다. 한국어로 대화하고, 한글 텍스트를 읽고 싶다고.

'한글의 탄생―<문자>라는 기적' 초판이 2011년 10월 9일에 출간되고 10여 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일본에서 한국어와 한글에 대한 위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 책 '한글의 탄생―인간에게 문자란 무엇인가'는 그 변화의 모습을 담았다.

2010년대부터 일본어권에서는 동시대의 한국문학작품들이 잇따라 번역돼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대표적인 책으로 2011년에 일본어로 번역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들 수 있다. 이때부터 한국문학, 특히 여성 작가의 작품군이 일본어권에서 매우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시대가 됐다. 일본어권에서는 1993년 이래 재일(在日) 한글능력검정협회 주최로 한글능력검정시험이 실시되고 있다. 지금까지 55회, 누적 인원 46만 명이 응시했다고 한다. 2019년 일본 문부과학성 조사에 의하면, 조사 대상인 677개 일본 대학 중 342개 교에서 누적 인원 1만 1,265명이 한국어 과목을 이수했다. K-POP 혹은 한국 드라마 등을 통한 독학 인원까지 포함하면 매년 수만 명의 일본인이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고 있는 셈이다.

20세기에는 한국어 학습자들에 대해 '왜 한국어를 배우지?' 하며 기이한 사람 취급을 했다. 하지만 21세기 현재, 이른바 '네트우익'(ネット右翼: '천황 절대주의'를 근간으로 주로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던 전통 우익과 달리, 2000년대부터 온라인상에서 준동한 우익 세력)과 같은 부류라면 모를까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일본어권에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됐고, 그 흐름은 틀림없이 거세지고 있다. 민족배외주의가 아무리 극성을 부려도 사람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것이다.

동아시아 문화 역사의 혁명, 한글의 탄생!

이 책은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 문화 속에 자리 잡은 한글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살펴본 책이다. 언어학자인 노마 히데키는 '인간에게 문자란 무엇인가'라는 보편적인 질문을 통해 한글에 대해서 통찰하며, 한글 창제 이전의 문자 생활, 한글의 창제 과정, 마침내 한글이 한반도에서 '지'(知)의 판도를 뒤흔들어 놓은 과정, 나아가 미적 형태의 발전에 이르기까지 한글이라는 존재를 입체적으로 살펴본다.

이 책은 단지 '한글'만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한글 창제 이전부터 있어 왔던 수천 년 동안의 문자 생활 및 환경을 꼼꼼히 짚으며, 조선의 임금 세종과 학자들이 얼마나 깊은 이해력과 날카로운 분석력, 창조력을 통해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내고야 말았는지를 밝히고 있다.

한자문화권의 반대편에는 서방에서 동쪽을 향해 흘러 들어온 '알파벳로드'가 있었고, 세종 또한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아랍문자, 로마자, 몽골문자 등으로 가지를 치며 이어지는 이 '알파벳로드'에서 한글은 어떠한 영향을 받았고 통찰을 얻었을까, 그리고 어떤 모자람을 발견했을까? 이 광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아시아의 동쪽 끝 한반도에서 태어난 한글이 세계문자사적으로 어떠한 위치에 서 있는 존재인지를 넓고 보편적인 시야에서 바라볼 수가 있다.

극적으로 펼쳐지는 한글의 창제 원리 

저자는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이뤄진 '한글의 탄생' 과정을 언어학적으로 재현한다. 귓가에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로부터 '음'의 단위를 추출해 내고, 이들을 각각 '자모'로서 형상화해 설계해 내는 과정을 설명한다.

한글은 문자체계로서 훌륭하게 창제됐으나,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한글의 진정한 완성은 그 문자가 실제로 사람들에 의해 문장이 되고, 글이 되고, 책이 되고, 글씨가 돼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세종이 가장 먼저 부딪힌 최만리의 유명한 상소가 담고 있는 진정한 의도를 풀어 내고 이에 대한 세종의 반론을 서술한 부분은 이 책의 압권이다.

이 책에서는 한글이 사람들의 손에서 문장이 되고 텍스트가 됨으로써, 단지 하나의 문자체계가 아니라 기존에 있던 지(知)를 뒤흔들어 놓은 존재로서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니르고져 홇배 이셔도 마참내 제 뜨들 시러 펴디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붓을 거부한 훈민정음의 글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또 붓으로 새롭게 예술작품으로 창조되는 한글의 서예법, 컴퓨터에서 구현되는 다양한 글꼴 등 물질적인 차원에서도 한글을 보며, 훈민정음이라는 독특한 문자의 미적 발전과 성취까지도 다룬다.

저자는 한글이 불러일으킨 이 모든 것이 '지(知)의 혁명'이었으며, 한글은 그것을 가능케 한 '지(知)의 원자(原子)'였다고 말하고 있다.

한글을 바라보는 일본인 학자의 열정 어린 통찰력 

이 책의 원서는 한국어와 한글을 거의 모르는 일본어 화자를 대상으로 쓴 것이다. 한글에 대한 기초적인 소개에서부터 언어와 문자에 관한 전제까지 차근차근 풀어가는 내용은 일본의 독자에게는 '일본어의 세계를 다시 보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반대로 한국어권의 독자에게 이 책은 한국어와 한글을 다시 보게 한다. 한국에서는 흔히 한글이 자랑스럽고 우수한 문자라 말하지만, 저자는 이를 한반도 내의 민족주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더욱 더 크고 넓은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그려 낸다. 이 책은 그리해 독자가 한글이라는 존재의 맥락을 더욱 보편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고 조망할 수 있게 한다. (노마 히데키 지음 | 153*225 무선 | 506쪽 | 22,000원 | 2022년 10월 9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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