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상 UNIST 교수, 인간의 위치와 움직임 신호 통합 기제 규명

[베리타스알파=최현종 기자] 투수가 회전을 준 공은 이동하면서 경로가 구부러진다. 타자는 눈으로 이 경로를 쫓지만 공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치기는 어렵다. 뇌가 공의 궤적을 실제와 다르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커브볼 착시(curveball illusion)’다.

단순한 착시로 여겨지던 이 현상의 원인을 권오상 UNIST(총장 조무제) 교수가 포함된 연구진이 밝혀냈다. 우리가 야구공처럼 움직이는 대상을 볼 때 뇌에서 ‘정교한 추론’이 진행된다는 내용이다. 이 추론에는 대상의 위치와 움직임이 통합적으로 활용된다.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움직이는 물체’를 시야의 어느 부분에 두느냐에 따라 뇌가 위치 해석을 바꾼다. 가령 움직이는 물체를 시야 중심에 두면 실제 위치를 그대로 파악한다. 그런데 움직이는 대상이 시야 주변에 있으면 뇌가 움직임 신호에 의존해 위치를 계산한다. 초점에서 멀어져 부정확해진 위치 정보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 권오상 UNIST 교수(사진)가 커브볼 착시에 숨은 과학적 원리를 밝혀냈다. /사진=UNIST 제공

커브볼 착시는 뇌의 이런 최적화된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다. 빠르게 회전하는 커브볼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이때 야구공에 있는 실밥은 회전에 따른 움직임 신호를 만든다. 만약 야구공을 보던 타자가 시선을 돌리면 움직임 신호가 위치 해석에 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 때문에 야구공의 궤적이 실제와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권오상 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교수는 “어떤 물체가 우리의 시야 중심에 있을 때는 그 위치를 매우 정확하게 보지만, 물체가 시야 주변부에 있으면 위치를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며 “우리 뇌는 이 부분을 보정하기 위해 물체의 움직임에 강조점을 두고 눈으로 들어온 정보를 해석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GPS 신호를 해석하는 원리와 동일하다. GPS 신호는 늘 정확하지 않다. 자동차가 터널을 지나면 신호가 없어지기도 하고, 지역에 따라 신호 수신이 어려울 때도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내비게이션은 자동차가 지나온 경로와 최신 GPS 신호를 통계적으로 조합해 현재 위치를 파악한다. 만약 GPS 신호가 부정확하면 지나온 경로에 더 많이 의존한다.

우리 뇌에서 움직임과 위치 정보를 파악할 때도 마찬가지다. 눈으로 들어온 감각 신호도 GPS 신호처럼 부정확할 때가 많다. 이 때문에 뇌는 물체의 궤적과 현재 눈에 들어오는 신호를 통계적으로 해석해 현재 위치를 추론한다.

권 교수는 “뇌의 움직임과 위치 지각에 관한 다양한 착시는 뇌의 착각이 아니라 오히려 뇌가 똑똑하다는 증거”라며 “이번 연구는 우리 뇌가 공학자들이 고안한 최적화된 알고리즘을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힌 의미 있는 성과”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권오상 교수가 미국 로체스터대에 재직할 당시 진행했다. 관련 논문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15일자 온라인 판에 게재됐다. 교신저자는 두예 타딘(Duje Tadin) 로체스터대 뇌인지과학과 교수다.

연구진은 다양한 착시 현상에 관한 동영상을 제작하고, 실험참가자를 통해 뇌가 움직임과 위치를 인식하는 체계를 검증했다. 참고로 내비게이션의 위치 인식과 인간의 시지각 체계에 동일하게 활용되는 알고리즘은 ‘칼만 필터(Kalman Filter)’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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