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추진동력 상실’.. 교육정상화 통합수능개편 교육위출범 등 산적한 현안

[베리타스알파=김하연 기자]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8일 사퇴 의사를 표명하면서, 교육계에서는 우려의 시선이 가득하다. 시급한 교육현안이 산더미인 상황에서 개인적 흠결에 비전문가로 비난받던 박 장관이 업무보고의 후폭풍으로 물러났다는 사실 자체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권 초 정책동력을 상실하면서 향후 정책공백이 불가피해졌고 추진을 앞두고 있던 새 정부의 교육정책들은 상당기간 오리무중 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업무보고를 통해 돌출한 학제 개편이나 외고 폐지 논란처럼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교육현안 과제를 논의하고 10년 단위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을 수립해 나갈 국가교육위 역시 아직 위원 선임도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다. 교육부는 당장 연말까지 고시해야 할 2022개정 교육과정, 연말까지 시안을 마련하기로 한 고교 체제 개편은 물론 디지털 인재양성 종합방안 교부금 개편 등 새 정부가 추진 중인 교육 과제들 역시 수장공백으로 가닥도 잡지 못한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임 교육부장관 임명을 조속히 추진해야 하지만, 새 정부의 초대 교육부장관 후보자였던 김인철 전 한국외대 총장이 ‘온 가족 장학금 혜택’ 논란으로 낙마한 뒤 박 장관까지 논란 끝에 사퇴하자 후임 인선에 대한 부담은 더욱 커졌다. 게다가 아직까지 박 장관의 후임자로 거론되는 인물은 전무한 상태라고 알려져 교육수장 공백은 기약 없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교육계에서는 이와 같은 사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교육계 인사들을 비전문가가 아닌 전문가들로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교총은 “대통령실을 비롯해 교육부 장차관까지 국가교육 컨트롤 라인에 유초중등 전문가가 부재하다는 문제가 지적된다”며 “교육현장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을 갖춘 인사가 조속히 후임으로 임명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특목자사고 폐지, 통합수능 개편, 고입 개편 등 개편을 기다리고 있는 굵직한 교육현안들은 모두 교육제도의 충분한 이해 없이 섣불리 정책을 발표하게 되면 지금과 같은 혼란이 반복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현재 교육계에 시급한 현안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가장 시급한 사안을 꼽자면 통합수능 개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후임 교육부장관 임명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올해 수험생들의 피해는 커져만 가고 있다. 지난해 첫 시행한 통합수능은 같은 만점을 받아도 선택과목에 따라 유불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올해도 개편 없는 2년 차 통합수능을 시행한다고 밝히면서 지난해 학습효과로 인해 대입이 ‘수학 한 줄 세우기’ 구조로 왜곡되며 고교뿐 아니라 초등학교까지 미적분 사교육 열풍에 휩싸인 결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고교학점제와 엇박자를 내는 정시 확대 등 지난 문 정부가 집권하는 동안 교육현장을 흔든 정책들을 조속히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수능’ 등 산적한 교육현안 어쩌나> 
교육계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과 새 정부의 정책이 ‘전 정권 지우기’에 방점이 찍힌 만큼 전 문재인 정부에서 뒤흔들어 놓은 교육정책 전반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먼저 이번 박 장관 사퇴에 결정적인 이유가 된 외고 폐지는 자사고 존치와 같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2017년 3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11월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도입, 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를 발표했지만 이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린 셈이다. 

이외에도 주요 교육 현안들은 새로운 교육부장관 임명까지 줄줄이 밀릴 가능성이 커져 우려를 낳는다. 가장 시급한 건 올해 2년 차 시행되는 통합수능 개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작년 첫 시행된 통합수능은 역대급 최악의 ‘깜깜이’ 수능으로 꼽힐 만큼 고교 현장의 혼란이 가득했다. 게다가 지난해 첫 통합수능의 문이과 유불리에 대한 학습효과가 번지며, 올해도 문과 침공, 수능최저 미충족, 재수/반수 증가 등 ‘수학 한 줄 세우기’ 부작용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우려가 커져가고 있다. 한 전문가는 “통합수능에 대한 개선 요구가 지난해 3월학평부터 불거졌지만, 올해도 개편 없는 통합수능을 진행한다고 밝히면서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정시 확대 역시 2025년부터 예정대로 추진한다고 밝힌 고교학점제와 충돌을 빚는다. 학교현장에서는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면 시행되면 큰 혼란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당시 친 정부 성향이던 전교조까지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 확대를 중단하고 고교학점제를 재검토하라”고 반대입장을 밝힌 데 이어 교총도 “전면 도입을 2025년으로 못 박은 고교 학점제의 시기와 방법을 재고해야 한다”고 우려와 비판을 내놨다. 

윤석열 정부의 첨단학과 인재양성 교육공약도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수도권 대학들의 첨단 분야 학부 정원을 늘려 효율적으로 인재를 확충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비수도권 대학들의 강한 반발이 이어지면서 이 같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상당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비수도권 대학을 달래기 위해 초중등 교육 예산으로 쓰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일부를 떼어내 고등/평생교육 지원 특별회계(가칭)를 신설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두고 ‘동생 돈 빼앗아 형 누나 준다’는 비판과 함께 유초중등뿐 아니라 시도교육감들이 모두 반발하고,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인데 국회 설득 작업도 여의치 않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하고 이후 교육부와 역할을 분담하는 작업 역시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국가교육위는 국가교육과정 개정을 비롯해 대학 입시, 교원 수급 정책 등 교육부가 그동안 담당해온 주요 업무들을 가져가게 된다. 대학입시 업무의 경우 교육부와 국가교육위가 업무를 나눠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교육부의 담당 업무가 달라지는 만큼 조직개편과 후속 인사 역시 불가피하지만 교육부장관 사퇴라는 돌발 변수를 맞게 된 것이다. 

<외고 폐지, 초등 5세 입학 하향 등 박순애표 정책 ‘폐기’>
이번 박 장관 사퇴는 형식상 자진 사퇴일 뿐 사실상 경질된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상당수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퇴가 지난달 31일 윤 대통령에게 보고한 업무보고에서 비롯됐다고 해석한다. 문재인 정부가 비틀어 둔 교육정책을 정상화하는 교육개혁의 청사진이나 대선을 통해 제시된 공약의 실현 과정을 담은 게 아니라 돌출된 사안들로 채워져 사회적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가장 논란이 컸던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만 5세로 하향한다는 학제 개편은 학부모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공론화를 진행한다고 밝히며 사실상 4일 만에 철회됐다. 장상윤 교육부차관도 박순애 교육부장관 사퇴 다음 날인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업무보고에 참석해 ‘만 5세 초등 입학’ 정책 추진에 대해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이어 만 5세 초등 입학 정책이 폐기된 것인지 묻자 “지금 이 자리에서 폐기한다, 이제는 더 이상 추진하지 않겠다는 말은 드리지 못한다”며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워졌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 5세 초등 입학 정책의 폐기를 공식화한 셈이다.

외고 폐지 방침 역시 학제 개편과 같이 철회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장 차관은 “대통령 업무보고에는 외고 폐지라는 말은 들어가 있지 않았고 브리핑 과정에서 기자 질의에 응답하다가 나온 내용”이라고 외고 폐지 발언을 무효화하는 가능성을 내비쳤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달 29일 외고 폐지 발표 이후 학교 학부모의 반발이 거세지는 후폭풍에 시달리자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며 교육계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사퇴 결정에 발단이 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달 29일 박 장관은 자사고 존치, 외고 폐지 등의 내용을 담은 ‘새 정부 업무계획’을 윤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날 교육부는 “자사고는 존치하되 외고는 폐지 또는 전환해서 다양한 분야의 교육과정을 통해 특수한 목적을 갖도록 하는 형식으로 전환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사고 존치 방침과 함께 발표한 일반고 교육역량 제고 방안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교과 특성화 학교 운영’을 포함시킨 만큼 외고가 폐지되면 교과 특성화 학교로 전환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가 기존 공약을 뒤집는 외고 폐지 방침을 밝히면서 학교와 학부모 재학생 동문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1일 전국 30개 외고 교장들로 구성된 전국외국어고등학교장협의회가 입장문을 내고 “시대착오적/반교육적”이라며 폐지 방침 철회를 강하게 요구했다. “교육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특수목적고인 외고를 폐지 검토하겠다는 발표를 접하고 시대착오적이고 반교육적인 정책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외고 존치 정책을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백년지대계인 교육정책을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토론이나 공청회 한 번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교육부는 외고 폐지 검토 계획을 즉시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의회는 이어 “당장 외고 폐지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법률적 행위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날인 1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는 자신이 외고 1학년 재학생이라 밝힌 청원인이 올린 “외고 폐지를 멈춰 달라”는 청원글도 게시됐다. 청원인은 “외고 설립취지와 결과가 맞지 않아 폐지해야 한다고 했는데 왜 꼭 어문계열을 가야 하는가 의문”이라며 “우리는 각종 언어들을 구사하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리, 세계가 지켜보는 무대에 서 있는 스스로를 꿈꾸며 공부한다. 우리의 꿈을 지켜 달라”고 밝혔다.

5일 전국외고학부모연합회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토론회나 공청회를 거치지 않은 교육부장관의 일방적인 발표는 졸속 행정”이라고 비판하며 외고 폐지 방침 철회를 요구했다. 연합회는 “교육의 영역 안에서 숙의해야 할 중차대한 사안을 정치적인 논리를 앞세워 이분법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 드는 행태는 현 정부가 이 문제를 교육이 아닌 정치적 관점에서 다루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외고 폐지 정책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명백히 침해한다”며 "과고 영재학교 자사고 유지의 명분이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 자율성과 다양성 충족에 있다면 정책의 일관성 유지를 위해서라도 외고 국제고 존치 역시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전문가 콘트롤 타워’.. ‘예고된 참사’>
박 장관은 8일 오후 5시30분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저는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직을 사퇴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제가 받은 교육의 혜택을 국민께 되돌려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달려왔지만 많이 부족했다”며 “학제 개편 등 모든 논란 책임은 저에게 있으며 제 불찰”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의 재임 기간은 36일로 역대 교육부장관 가운데 5번째로 짧다. 또 지난달 29일 학제 개편안 등을 포함한 새 정부 업무계획을 발표한 이후로는 불과 열흘 만이다.

교육계에서는 박 장관의 사퇴는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는 견해다. 박 장관이 행정전문가로 교육 관련 정책을 한 번도 다뤄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 두 달이 다 되도록 교육수장 자리가 공석으로 이어지며, 윤 대통령은 당시 박 후보를 인사청문회 없이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 임명하면서 교육계의 반발이 거셌다. 교육부수장 자리는 다른 부처에 비해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적용되는 만큼 당시 진보 성향인 전교조와, 보수 성향인 교총까지 교육부장관 임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교육계에 가득했다. 박 장관은 2001년 12월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에 적발돼 벌금 250만원 형의 선고유예 처분을 받은 만취운전 전과 외에도 제자 논문 가로채기, 논문 중복 게재, 연구비 유용, 조교 갑질 등 여러 의혹이 불거졌다. 게다가 최근에는 자녀 불법 입시컨설팅 논란 의혹으로 국회에서 자녀의 생기부 제출을 요구했지만 이를 사실상 거절해 의혹은 일파만파 커지기도 했다. 

교육부장관만의 문제도 아니다. 교육부장관을 둘러싼 정책 결정권자들이 모두 교육 비전문가로 구성돼 있다는 점 역시 예견된 참사의 한 축을 이룬다. 박 장관은 공공부문 구조조정이나 조직개편을 겨냥한 행정학자 출신으로 교육정책 경험이 전무하다. 장상윤 차관도 국무조정실 출신, 이상원 차관보는 기획재정부 출신이다. 대통령실 교육정책을 맡고 있는 안상훈 사회수석도 복지 전문가다. 교육계에서는 시급한 현안이 산더미인데, 엉뚱한 외고 폐지, 초등학교 만 5세 입학연령 하향 등의 의견수렴도 되지 않은 섣부른 방향을 제시한 것부터 교육라인을 구성하는 비전문가들로 인한 예견된 사고라는 반응이다. 

교육부장관 정책보좌관의 자질 논란도 불거진다. 박 장관은 앞서 5일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보좌관 출신의 권통일씨를 교육부장관 정책보좌관으로 임명했다. 교육부장관 정책보좌관은 관계부처나 국회 등과의 업무 협조와 정책 의견수렴 등 법령으로 정해진 특정한 업무를 수행하는 별정직 공무원이지만 문재인 정부 이후 청와대와 정책의 가교 역할을 하는 주요 보직으로 부상했다. 김해시장에 출마했다 낙마한 권씨의 정책보좌관 임명은 교육 쪽에서 뚜렷한 접점이 없어 ‘낙하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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