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 캠퍼스에는 높은 기둥에 한 쌍의 펜던트처럼 매달린 가로등들이 키 큰 나무들과 높이를 견주며 어우러져 있다. 가로등의 조명기구는 유럽의 여느 거리에서 볼 법한 모습으로 26면체의 주철 구조물이다. 나트륨 등이 들어있는 가로등은 그 특유의 노란색 빛으로 은은하게 밤길을 비춘다.

하루의 피로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듯한 이 빛 덕분에 밤길을 걸어 퇴근하는 시간 동안 작은 행복을 누리고 있다. 좀 더 흰색의 고압력 나트륨등, 수은등, 그리고 이제는 LED등이 캠퍼스를 점령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막연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미리 느낄 정도다.

나트륨등이 쏟아내는 589nm 파장의 빛깔에 매료돼 나트륨등의 역사와 원리에 대해 공부했고 여러 계제에서 강의와 대화의 소재로 활용하기까지 했다. 나트륨등으로 나의 전공분야인 플라즈마 상태 물질의 전기적 특성을 잘 보여줄 수도 있어서 교육용 저압력 나트륨등 장치를 제작해 실험실에 비치해두기까지 했다.

윤건수 포스텍 입학학생처장(물리학과/첨단원자력공학부 교수)
윤건수 포스텍 입학학생처장(물리학과/첨단원자력공학부 교수)

암흑과도 같은 공교육 현실에서 대학 입학정책과 대학 교육의 변화의 방향을 고민하는 요즘, 나트륨등과의 인연을 통해 교육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됐다. 나트륨등의 실용적인 기능만을 따진다면 589nm 파장의 가로등으로 여기면 그만이지만, 필자에게는 감동적인 빛깔로 날마다 플라즈마에 대한 신기함을 유지시켜주는 비타민이며, 램프 개발과 관련된 흥미진진한 과학자들의 스토리를 떠올리게 하는 기억장치이며, 조명기구의 모양 하나까지 세심하게 고려하신 분(고 박태준 명예회장)의 안목에 감탄하게 하는 예술품이기도 하다. 그렇다, 딱딱한 과학기술품도 적절한 장소에 쓰이고 사람의 스토리와 만나면 예술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으며, 그럴 때 미래의 과학기술을 향한 희망과 순수한 연구 열정도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나트륨등을 소재로 강의할 때 무의식적으로 교육이란 과거의 이야기들을 모아 미래와 ‘연결’하는 활동이어야 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사교육 시장에 압도당한 우리 사회의 교육 현실에서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는 반응은 불가능하거나 거의 일어나지 못할 것 같다. 특정 지식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니 학생들의 머릿속에는 ‘맥락과 연결’이 누락돼 흩어지고 단편적인 지식들만 쌓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교육에도 나름대로 순기능이 있겠지만 이 점이 사교육이 조장하고 있는 가장 큰 부작용이라고 생각한다. 엉성한 지식 무더기에서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자라날 뿐, 창의적인 발상이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운이 좋게도 고교와 대학교에서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키는 교육을 베푸신 은사와 선배를 많이 만났던 것 같다. 90년대 초 서울과고의 음악수업 시간에는 교향곡 스코어(악보)를 받아든 학생들이 재생되는 연주의 흐름에 맞게 악보를 따라가느라 진땀을 흘리곤 했다. 그때는 전혀 몰랐지만 나중에 클래식 음악의 세계를 제자들에게 연결시키려 노력하신 선생님의 열정을 이해하게 됐다. 그런 노력 덕분에 음악 속에서 깊이 휴식하며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아인슈타인처럼 음악으로 생각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90년대 중반에는 포스텍에서 후배들의 공부를 도와주는 멋진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종종 토요일 아침에 강의실로 호출돼 선배들의 강의와 문제 풀이와 유명한 물리학자들의 스토리를 들으면서 물리학자를 꿈꾸는 사람들의 열정에 연결됐고 공부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마지막 학년에는 응용광학 분야의 연구 참여 기회를 갖고 실험실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수 nm 수준의 변위를 측정하는 간섭계를 완성하는 경험을 하였는데, 그것은 수업에서 배운 광학 지식을 각 광학 부품에 연결시키며 쓸모있는 모습으로 통합시키는 과정이었다. 그때 배운 레이저와 광학 부품을 다루는 노하우를 현재의 연구에도 잘 활용하고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이와 같은 ‘연결’의 전통들은 현재 포스텍 학부 교육 체계로 내재화돼 멘토링, 튜터링, 그리고 연구참여 프로그램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현재 포스텍 캠퍼스 안팎에서는 융합연구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각 분야의 ‘고인물’들이 서로의 지식을 연결하며 흥미진진한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연구실에서도 플라즈마가 촉매 기술에, 인공지능이 플라즈마 제어 기술에 융합되며 미래를 위한 지식들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약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개발된 나트륨등의 각 요소와 전체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때에도 플라즈마 물리학, 재료공학, 전기공학자들이 모여서 당시 최고 수준의 융합 연구 활동을 이룬 것이 분명하다. 

연결이 없거나 약한 지식체계는 마치 모래성 같아서 높이 쌓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대학에서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각 지식의 알갱이가 많은 것들과 연결되는 과정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지식 알갱이들이 연결되는 경우의 수는 거의 무한할 것이므로, 그러한 교육은 마법과 같이 매력이 있고 흥미진진하여 학생들을 설레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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