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천재가 아닐까. 최소한 영재일거야. 많은 부모가 자신의 어린 아이를 바라보며 하는  고민이다. 어떻게 하면 천재인, 영재인 내 아이가 재능을 맘껏 펼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까. 오늘도 우리 부모들은 더 많은 정보를 찾아 교육전문지 베리타스 알파, 학원가 정보지, 입시전문가 블로그, 교육전문 인터넷 카페 등을 들락날락하며 고민한다. 제발 영재교육 정책이 내 아이에게만은 불리하게 바뀌지 않기를 바라면서 마음을 졸인다. 하지만 내 아이가 대학교에 진학하면 영재교육은 관심사에서 급격하게 멀어진다. 카페는 탈퇴하고 구독은 취소된다.

우리 법은 과학영재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과학영재에 대한 최초의 입법은 1984년 한국과학기술원법이 개정되면서 학사과정을 신설하게 되고 1985년 대통령령으로 학사과정 교육을 위한 대학, 즉 한국과학기술대학(과기대 혹은 KIT)의 조직과 학사운영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면서 도입됐다. 대통령령 제19조에 과기대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정의하면서 “과학고등학교 재학생 중 과학영재선발위원회에서 과학기술분야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인정하는 자”를 포함함으로써 우리 법 체계 안에 “과학영재”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다. 즉 1985년 시각으로 과학영재라 함은 1983년부터 설립돼 운영되고 있던 과고 재학생 중 과학기술분야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학생으로 한정됐다. 

김용현 KAIST 입학처장(물리학과 교수)
김용현 KAIST 입학처장(물리학과 교수)

이 조항은 1987년 개정돼 “고교 2학년 수료예정자로서 과학기술분야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과학영재선발위원회가 인정하는 자”로 변경됐다. 과고를 넘어서서 과학기술분야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전국의 많은 과학영재들이 과기대에 조기진학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과기대와 이를 이어받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1985년부터 2022년 오늘 현재까지 총리령 (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령) 과학영재선발위원회 규칙에 따라 전국의 고교 2학년 수료예정자를 대상으로 과학영재를 선발해 학사과정 입시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초창기 과기대 및 한국과학기술원 학사과정이 과학영재들의 요람으로 놀랍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국의 우수한 과학영재들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었던 대통령령 제19조(현 한국과학기술원 학사규정 제16조) 덕분이었다. 과학영재와 조기진학은 처음부터 함께 설계되었으며, 수많은 과학영재들이 고교 3년이라는 교육 틀에서 벗어나 과기대에 조기진학해 과학기술 분야에서 자신만의 꿈을 쫓아 과학기술 인재, 전문가, 리더로 성장했다. KAIST 정재승 교수, 크래프톤 장병규 의장, 우아한형제들 김범준 CEO, 미국 뉴욕대 조경현 교수가 그렇게 성장한 조기진학 과학영재 출신 리더들이다.

세상은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결국 어른들의 욕심 때문인데, 그렇게 잘 성장하고 있던 대한민국 과학영재 교육은 과학고의 큰 성공과 함께 위기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소수 과학영재를 위한 교육에서 벗어나 지역자치단체마다 하나씩 과학고가 설치됐다. 교육법에서 분리된 초중등교육법이 1998년 제정되면서 제27조에 “재능이 우수한 학생”에 대한 조기진급 및 조기졸업 제도가 전격적으로 도입됐다. 과학고의 재능이 우수한 영재학생들은 조기진급 및 조기졸업을 통해 모든 대학에 대한 진학 권리를 얻게 됐다. 결국 한국과학기술원법에 적용되어 있던 과학영재에 대한 독점적 권한은 무력화됐다.

과학고는 많아지고 제도는 흐트러지고 내 아이 영재라고 믿는 학부모의 욕심은 의대로, 서울대로, 외국대학으로 폭주했다. 과학영재들은 우왕좌왕하게 됐고 자퇴 파동, 조기졸업 재수생의 폭발적 증가 등 부작용도 발생했다. 아뿔싸.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어른들은 2002년 영재교육진흥법을 제정하여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으려 했다. 과학고의 폐해가 있으니 새로운 영재학교를 지정해 “진정한” 영재교육을 시행하겠다는 것이었다. 영재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으로서 타고난 잠재력을 계발하기 위해 특별한 교육이 필요한 사람”으로 새로 정의됐고, 영재교육은 “영재를 대상으로 각 개인의 능력과 소질에 맞는 내용과 방법으로 실시하는 교육”으로 고교과정 이하의 교육을 의미함을 명확히 규정했다.

2003년 부산과학고가 한국과학영재학교로 전환돼 전국단위로 과학영재를 선발할 수 있게 됐고 대학 교과목을 포함한 파격적인 영재교육 시스템을 도입해 성공의 길로 접어드는 듯했다. 하지만 2009년 서울과학고가 영재학교로 전환된 것을 시작으로 전국에 권역별로 총 8개의 영재학교가 전환되거나 설치되면서 원래의 과학고 문제로 회귀했다. 더 큰 문제는 여전히 전국의 20개 과학고가 기존의 과학영재 교육을 지속하고 있으며, 옥상옥으로서 영재학교는 전국단위로 과학영재를 선발하느라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도권 출신들이 점령한 영재학교 입시는 사교육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고 있고, 어려운 대학 교과목을 선행하며 적자생존해야 하는 영재들은 대치동 사교육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 또한, 각 개인의 능력과 소질에 맞게 영재교육을 실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높은 졸업학점을 일률적으로 요구하는 영재학교 학칙으로 인해 영재들은 더이상 조기진학을 통해 대학으로 탈출할 수 없다. 영재교육진흥법 시행령 제24조 2항에 명시된 “재능이 우수한 학생을 조기진급 또는 조기졸업 시킬 수 있다”는 조항은 사문화된 지 오래다.

필자는 초창기 과학고 “과학영재” 출신으로서 현재 영재학교에 3년 동안 갇혀 있어야 하는 과학영재들이 측은하다. 법에 명시된 대로 재능이 우수한 학생에게는 조기진학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 영재학교에서 대학교육을 선행하는 것이 왜 영재교육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영재는 충분히 똑똑하기 때문에 고교 교과과정을 단기간에 습득할 수 있다. 따라서 고교 교과과정을 충분히 심화학습하고 적당한 연구활동 경험을 쌓은 후 대학교에 조기 진학해 과학기술 인재로 성장하게 해야 한다. 과학영재의 속진교육이 우수한 과학기술 인재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영재교육 학계의 정설이고 많은 사례가 증명하고 있다. 쿠오 바디스(Quo Vadis), 과학영재. 2022년 대한민국 과학영재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과학영재 교육은 어디로 가야 할까. 복잡하게 꼬인 과학영재 교육 실타래를 풀기 위해 모두의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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