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적 공정보다 타당한 사회정의' ..'열린 마음으로 전문가 의견 수렴해야'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인수위가 구성돼 국정 방향을 새롭게 설계하는 중이다.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가야 하는 국정과제들이 산적해 있겠지만 교육 문제도 그 중의 하나라 본다. 교육은 우리 사회의 기본 가치를 유지시켜주고 후속 세대들에게 세상을 살아갈 힘과 경쟁력을 길러준다는 점에서 국정과제의 후순위에 둘 수 없다. 미래를 준비하는 정책과 비전을 국가가 앞장 서서 설계하고 이를 정권을 초월하여 일관되게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육 문제 가운데 가장 풀기 어려운 분야 중의 하나가 대입제도이다.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진로를 찾아 성취해 갈 기회를 제공하는 대학입시는 그 과정과 결과가 항상 사회적 공공선에 부합해야 한다. 특히 병목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나라에 있어 대학입시는 사회적 지위 경쟁에 깊이 관여하기에 국민들의 관심이 아주 높다. 그렇다고 교육수요자의 요구에 편승하는 지점을 찾아 이를 정책화하는 길만 추구한다면, 대학입시는 미래를 준비하는 디딤돌이 아니라 게임과 같은 차가운 승부의 장으로 변질될 것이다.

그리하여 차기 정부의 대입제도 논의에서는 전형요소나 평가방법을 입시공학적으로 고침으로써 이상적 모형을 만들겠다는 생각부터 버리기를 바란다. 사회적으로 제시된 의견들을 반영해 지금까지 여러 번 대입제도를 개편했지만 도입된 제도가 우리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금방 오답이 되는 일이 빈번했다. 원인은 대학입시가 지닌 교육본연적 특성을 간과한 채 기술적으로 제도를 바꾸면 무언가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 잘못된 기대에 있다. 입시는 성형수술처럼 구성요소를 개선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국가가 적절한 교육정책적 자양분을 곁에서 제공하며 입시제도가 시대에 맞게 서서히 진화하도록 도와주는 방식이 더욱 타당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새로운 정부는 국가교육의 성장 잠재력을 키워주기 위해서 우리 사회의 문화적 토양과 기본 프레임을 미래 지향적으로 바꾸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주요 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학교교육은 계층사다리를 오르는 수단이라는 인식을 극복해야 한다. 최근 언론보도와 정치권의 발언을 통해 우리는 이런 논의 구조에 익숙해 있다. 교육에서 계층사다리 관점은 서열 위주의 실력주의(meritocracy)를 표방하던 산업사회의 사고방식일 뿐이며, 오늘날 교육은 계층사다리에 기반을 둔 서열 상승이 아니라 학생 각자가 적성과 능력에 맞게 자신의 ‘행복 루트’를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OECD는 교육의 목표를 개인의 웰빙(well-being)에 두었으며 우리의 학교교육도 학생들이 자신에 맞는 진로와 삶을 개별적으로 디자인해 가도록 교육과정을 개편해 왔다. 이제 계층사다리 논의는 교육을 대상으로 진행할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 전체에서 계층사다리 작동을 막는 요소를 찾아 개선하고, 학교는 최대한 교육의 본연에 충실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둘째, 입시정책 논의에서 절차적 공정성보다는 참다운 ‘사회 정의’ 실현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당연히 공정성은 인간 활동의 신뢰를 지키는 보루로서 정책적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러나 공정성 논의가 절차적 과정에만 주목하고 사회 정의(가치, 타당함, 형평성 등)를 대변하지 못하면 공허하기 짝이 없다. 우리가 믿는 정량적 수치에 의한 서열화는 절차적 공정함의 결과이지 사회적 타당함이라 할 수 없다. 이제는 학교교육이나 대학입시 논의에서 미래사회를 대비하는 데 가치 있고 타당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정하고 그 다음에 이를 구현하는 공정한 방안을 찾는 논의 절차를 채택해야 한다.

셋째, 수능같은 국가 수준 표준화 시험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교육에 대한 열정과 시간투자는 세계 정상이지만 산출물은 그에 따르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이는 교육의 본연에 충실한 사고력 기반 성장보다는 정답 기반 결과만을 추구하는 풍토에서 기인하며 이 문제의 중심에 수능이 있다. 문제풀이식 암기 교육은 소위 “성능 없는 성과”만을 조장함으로써 성취도는 높은데 적합성은 뒤떨어지는 인물을 키울 위험성을 지닌다. 또한 대입에서 국가 표준화시험은 부모 경제력에 의한 교육격차를 확대하고 재수생과 반수생을 양산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따라서 교육적 관점에서 보면, 수능은 미래의 교육환경에 맞게 절대평가로 전환해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는 방안이 더욱 타당하다.

넷째, 대학입시는 학교교육을 출발점으로 존재한다는 인식 속에서 학교교육과 대학교육의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 이제 대학입시는 국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학교와 대학이 협력적으로 양성하는 경로, 즉 학교교육과 대학교육이 연계되는 지점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사실 한국에서 인재 양성의 비효율성은 학교, 대학, 직업세계 사이에 역할 분담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데 기인하는 바 크다. 초-중-고-대학과 사회가 연계 관점에서 적절한 기간 동안 상호 정보를 공유하며 필요한 역량을 협력적으로 육성하면, 우리 교육의 사회적 신뢰성은 크게 증대할 것이다.

▲권오현 서울대 사범대 교수
▲권오현 서울대 사범대 교수

정리하면, 향후 대학입시는 학교교육과 더불어 초지식 및 초연결 시대를 살아갈 힘을 길러주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오늘날은 능력을 많이 갖춘 사람보다는 그 능력을 사회적 맥락에 맞게 실행해 자신과 사회공동체에 쓸모 있는 모습으로 구현하는 ‘역량’을 갖춘 사람이 필요한 시대이다. 10대와 20대 때 배운 결과로 평생을 살아가는 세상은 끝났으며 누구나 그 시대에 맞는 자신만의 사고 및 활동 공간을 새롭게 충전해 가지 않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세계적으로 능력을 평가하는 점수보다는 적합성을 진단하는 인적 판단이 차츰 비중을 늘려가는 추세이다. 적합도 판단에 포함되는 종합적 사고력과 내적 근육들은 장기적 관찰이 필요하기 때문에 2000년대 들어 대학입시는 일회성 집필고사 중심에서 나아가 다면적 내용이 기록된 학생부를 활용하는 형태로 점차 바뀌어갔다.

따라서 차기 정부도 대입제도를 설계할 때 학교교육을 받으면 대학입시가 자연스럽게 준비되도록 하는 ‘학교교육과 대학입시의 일체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기 바란다. 학교에서 학생이 통상적으로 참여하는 수업 등 다양한 활동이 자연스럽게 입시 준비로 이어지는 형태가 바람직하다. 입시가 거대한 댐처럼 군림하며 국가나 대학이 설치해 놓은 결승점으로 학생들이 힘겹게 헤엄쳐 올라오도록 하는 방식으로는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역량을 키워주기 어렵다. 이 복잡한 대입제도를 논의함에서 있어서 차기 정부는 가급적 많은 교육전문가의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수렴하기 바란다. 차기 정부의 입시정책을 통해 이제 ‘대입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교육을 통한 대입’이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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