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명 장학금 1억2650만원 회수.. ‘선발 주체’ 의대 쪽 제재 불가피

[베리타스알파=유다원 기자] 경기과고가 올해 처음으로 의대에 지원한 졸업생들의 장학금을 전액 환수했다. 2021학년 졸업생 126명 중 의대에 지원한 학생은 총 23명으로, 실제 의대 진학 여부와 상관없이 3년간 받았던 장학금 1인당 약 550만원이 전액 회수됐다. 총액은 약 1억2650만원이다. 김경근 의원(더불어민주)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경기과고 영재학교 진학현황’ 자료를 15일 공개했다.

장학금 환수조치에도 졸업생들의 의대 진학률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의대에 지원한 23명 중 13명은 최종합격 후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9학년 8명, 2020학년 11명, 2021학년 13명이다. 치대나 한의대, 수의대 등은 제외한 수치다. 한 교육전문가는 “의대 진학을 목표로 영재학교에 진학 후 재수를 결정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물어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에겐 당장의 불이익을 감안하고서라도 의대에 진학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이라며 “고교 차원의 제재 방안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영재학교와 과고는 과학 분야의 우수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학교임에도 불구, 매년 의약학계열 대학 진학 실적을 보유해 학교 설립취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선발 주체인 의대 차원에서 제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한 영재학교 관계자 역시 “선발 주체인 의대의 해결의지와 학부모, 수험생들의 인식 개선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직업선택의 자유를 주장하며 의대 진학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런 경우 처음부터 영재학교로 진학하지 않았어야 한다. 의대 준비는 국비지원이 따로 없는 자사고 외고 일반고 등에서 충분히 가능하다. 굳이 국가적 차원에서 이공계인재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영재학교에서 의대 준비를 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상황인 것이다. 이공계 대학을 진학한다고 해서 의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원천 차단되는 것도 아니다. 아직 의전원 진학도 가능하고 일반고 자사고 진학을 통해 의대 진학의 길은 열려 있다. 수험생/학부모들은 영재학교의 의대 진학자들이 과학에 확고한 뜻이 있는 인재들의 교육기회를 박탈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과고(사진)가 의대 지원자들의 장학금을 처음으로 전액 회수했다. 총액은 약 1억2650만원이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경기과고(사진)가 의대 지원자들의 장학금을 처음으로 전액 회수했다. 총액은 약 1억2650만원이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대부분 ‘재학생만 해당’.. 강화된 제재 방안 ‘실효성 의문’>
경기과고가 의대 지원자들의 장학금을 전액 회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존까지는 한국영재가 매년 의약학계열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장학금은 물론, 등록금/입학금 등 학업에 사용된 모든 금액을 환수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해왔다. 그 외에도 영재학교 8개교 모두 의대 진학 시 교사 추천서를 발급하지 않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의대가 추천서 없이도 지원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대 지원 자체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실제 영재학교 8개교의 의학계열 진학률은 매년 증가세를 보여왔다. 강득구 의원(더불어민주)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걱세)가 7월 발표했던 ‘전국 영재학교 졸업생 의학계열 진학 실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영재학교 7개교(3년간 의약학계열에 지원한 학생이 전무한 한국영재 제외, 서울과고 경기과고 대구과고 광주과고 대전과고 세종영재 인천영재) 졸업생 2097명 가운데 12.9%에 해당하는 270명이 의약학계열(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수의대 제외)에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의약학계열 대학에 진학한 학생도 178명(8.5%)이나 된다.

내년부터는 졸업생들의 의약학계열 진학을 막기 위해 영재학교 8개교가 학교마다 자율적으로 행해지던 기존 제재들을 통합해 보다 면밀한 조치를 취하게 된다. 8개교 모두 영재교육을 위해 투입한 교육비를 전액 환수하며, 재학 중 의약학계열 진학을 희망할 경우 일반고 등으로의 전출이 권고된다. 정규 수업시간 외에는 기숙사와 독서실 등 학교 시설을 이용하는 것도 금지된다.

다만 이미 선행되고 있던 제재 방안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실효성에 의문이 드는 상황. 특히 제재 방안 중 일반고 전출, 기숙사/독서실 사용 금지 등의 방안은 재학생들에게만 해당된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더욱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고등 교육과정과 상이한 영재학교 교육 특성상 영재학교 출신 학생들은 대부분 재수를 통해 의대 진학을 꾀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고교 차원의 제재 방안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영재학교 관계자는 “선발과정에서 의대 진학에 대한 불리함을 충분히 설명하고 각서 작성, 추천서 거부 등 학교 차원의 조치를 최대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의대가 추천서 없이 지원 가능할 뿐만 아니라, 특기자전형을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재 유출을 완전히 막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선발 주체인 의대 차원에서의 해결책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시 확대/통합형 수능 맞물리며 재수 증가 ‘현실화’>
2022학년부터 달라지는 교육정책 역시 영재학교 출신의 의대행을 더욱 부추긴다. 정부의 정시 확대 기조와 맞물려 영재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통해 정시를 준비하는 인원은 갈수록 증가할 전망이다. 일반적인 교육과정 대신 수학/과학 영재교육이 이뤄지는 영재학교 특성상, 재학 중 입시 준비가 어려워 재수를 통해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최근인 2021 서울대 정시에서 영재학교 출신 N수생 비중이 증가했다는 사실 역시 영재학교의 재수 증가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영재학교 N수생 출신 서울대 정시 합격자는 2020학년 2.3%(20명)에서 2021학년 3.1%(25명)로 확대됐다.

올해 도입되는 통합형 수능이 자연계 학생들에게 훨씬 유리하다는 점도 영재학교 학생들의 의대 지원을 부추긴다. 종로학원이 분석한 ‘9월모평 선택과목 간 차지비율 분석’ 자료에 따르면, 9월모평에서 수학 1등급 학생 중 미적분 응시자가 75.6%, 기하 응시자가 7.6%로, 자연계 학생이 83.2%를 차지했다. 인문계 학생들이 주로 응시하는 확률과통계(이하 확통) 응시자는 16.8%의 학생이 1등급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합형 수능에 적용되는 점수보정체계는 수학에서 상대적으로 어려운 미적분이나 기하를 응시한 학생들에게 공통과목 역시 더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연계 최상위권인 영재학교 학생들의 정시 유입이 더욱 수월해졌음을 의미한다.

<사교육 조장하는 깜깜이 입시.. 한국영재 2022경쟁률 ‘비공개’>
전문가들은 영재학교의 입시 정보 비공개 정책이 수요자들을 사교육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2단계 전형 기출문제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아 수요자들이 불확실한 정보를 토대로 입시를 준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교육을 통해 영재학교 입시를 준비했던 학생들이 진학 후에도 사교육을 통해 의대 진학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한 교육전문가는 “수요자들은 매년 전년도 요강을 통해 영재학교 입시를 준비한다. 하지만 당해 입시에서 어떻게 변경될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정보를 토대로 입시를 준비할 수밖에 없다”며 “수요자들이 사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미리 공지하고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예측이 어려워진다면 작은 변화에도 입시를 준비했던 수험생들에게 피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입 실적 비공개 방침도 수요자들의 알 권리를 묵인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영재학교 8개교는 졸업생들의 의대 진학 논란이 계속되자 2020학년부터 의약학계열을 포함한 모든 대입실적을 비공개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한 전문가는 “영재학교 출신 서울대 정시 합격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에서 어느 학교에서 정시 진학 인원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지, 의대 진학 인원은 몇 명인지 등 정보를 제공해야 영재교육을 통해 이공계 인재로 성장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7학년부터 영재학교 출신 서울대 정시최초 합격자 비율은 2017학년 0.3%, 2018학년 1.2%, 2019학년 2.0%, 2020학년 2.3%, 2021학년 3.1%로 매년 증가했다. 문제는 영재학교에서 정시를 통한 진학은 영재학교 교육과정 특성상 재수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3.1%의 인원이 영재학교 출신의 재수/N수생이라고 추정되는 이유다. 한 교육전문가는 “영재학교 출신자들이 어느 학과로 진학했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앞으로 정시 확대, 정시 비율이 높은 의대 정원 확대가 맞물리면서 더욱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설상가상 한국영재의 경우 올해 원서접수 경쟁률까지 비공개한다고 밝힌 상황. 한국영재 관계자는 “올해 경쟁률은 비공개 방침이다”라며 비공개 결정 이유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한 교육전문가는 “매년 원서접수가 끝나면 발표해온 경쟁률을 ‘특별히’ 올해부터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은 경쟁률이 크게 하락한 이유로 비춰질 수밖에 없어 오해를 사기 충분하다”고 말했다. 영재학교 ‘중복지원 금지’ 이후 ‘첫’ 발표하는 경쟁률은 앞서 중복지원으로 파악이 어려웠던 실제 경쟁률을 그대로 드러내는 잣대로 의미가 있다. 올해 경쟁률은 중복지원 금지, 지역인재 확대, 의대 진학 제재 방안 강화 등 입시전형 손질에 나선 영재학교들의 첫 성적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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