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론] 조준호 포스텍 입학학생처장

입학학생처장이 된 덕분에 ‘우수 고교생 초청 이공계 대탐험’ 프로그램이나 ‘잠재력 개발과정’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등을 통해 특강기회를 많이 가졌습니다. 이공계 인재들을 시험해 보기 위해 문제를 한 번씩 내어 보다가 어느새 제 특강은 몇 가지 문제들로 인재들을 괴롭히는 시간이 되곤 했습니다. 이 시간이 참 즐겁습니다. 별 이상한 악취미이지요? 최근 가장 좋아하는 문제 두 개를 한 번 꺼내 볼까요. 과학고, 영재학교 학생 300명쯤 초청해 놓고 문제를 낸 적도 있었는데 두 문제 모두 정답을 말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사실 첫 번째 문제의 정답을 맞힌 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두 번째 문제를 푼 학생은 한 명도 없었지요. 한 번 도전해 보시겠어요?

문제 1. 주어진 임의의 길이를 갖는 두 선분이 있다. 이 때 이 두 선분의 길이의 곱과 같은 길이를 갖는 선분을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작도하시오.

▲ 포스텍 조준호 입학학생처장
여러분은 아마도 자와 컴퍼스만을 사용해서는 작도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적어도 중학교 시절부터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임의의 각을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3등분할 수 없다’는 것이고, 그에 못지 않게 유명한 것이 ‘주어진 임의의 원과 같은 면적을 갖는 정사각형을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작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가능하다는 것들을 증명하기는 너무 어려워 보이니 조금 간단히 접근해 보는게 좋을 것 같네요. 즉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작도할 수 있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며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래서 나온 문제가 이것입니다.

단순화 1-1. 주어진 임의의 길이를 갖는 두 선분이 있다. 이 때 이 두 선분의 길이의 합과 같은 길이를 갖는 선분을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작도하시오.

너무 쉬운가요? 그럼 다음 문제는 어떤가요?

단순화 1-2. 주어진 임의의 길이를 갖는 두 선분이 있다. 이 때 이 두 선분의 길이의 차와 같은 길이를 갖는 선분을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작도하시오.

‘너무 쉽잖아요’라는 불평이 여기까지 들리네요. 단순화 1-1이 합, 단순화 1-2가 차를 물었으면, 그 다음은 당연히 ‘곱’이겠죠? 그래서 나온 것이 위의 문제 1입니다. 자, 이제 한 번 문제 1을 풀어 보세요. 포스텍 전자전기공학과 2학년 전공필수 과목인 ‘신호 및 시스템’을 가르치면서 이 문제를 낸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구름같이 몰려와 해법을 내밀었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도 맞힌 사람은 없었습니다.
자, 한 15분 생각해 보셨나요? 15분도 생각해 보지 않으셨으면 그냥 포기하지 마세요. 정답은, ‘작도할 수 없다’입니다. 너무 놀랍지 않나요? 이 단순한 문제에 답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두 선분의 길이가 다른 일반적인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짧은 선분의 길이를 단위 길이로 놓으면 긴 선분이 바로 답이 되고, 긴 선분의 길이를 단위 길이로 놓으면 짧은 쪽이 바로 답이 되겠지요. 하지만, 단위 길이를 이와 또 다르게 놓으면 답은 또 달라지겠지요. 사실,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작도할 수 없는 것은?’이라는 문제들에서 주어진 자는 눈금이 없는 자입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만났던 학생들 중에 우리가 이들 문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가 눈금이 없는 자라는 것을 알고 있던 학생이 거의 없더군요. 즉, 학생들 대부분이 그저 문제와 답을 암기하여 알고 있었지 문제를 제대로 이해해 보려고는 시도를 안 했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가정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럼 두 번째 문제를 볼까요?

문제 2. 주어진 임의의 각을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3등분 하시오.

‘이 문제는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는 문제잖아요’라는 불평이 또 메아리 치네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다음 문제를 풀어 보세요.

단순화 2-1. 주어진 임의의 각을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2등분 하시오.

너무 쉬운가요? 그럼 다음 문제는 어떤가요?

단순화 2-2. 주어진 임의의 각을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4등분, 16등분, 64등분 하시오.

역시 너무 쉬운가요? 그럼 다음 문제는 어떤가요?

단순화 2-3. 주어진 임의의 각의 크기의 5/16의 크기를 갖는 각을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작도하시오.

언뜻 보면 어려워 보일 수 있겠지만 ‘5/16=1/4+1/16’이라는 생각만 해낼 수 있다면, 단순화 2-2의 결과를 써서 4등분 한 각과 16등분한 각을 각각 구하고, 이들 각을 사잇각으로 갖는 이등변 삼각형을 각각 구한 후 삼각형 하나를 이동하여 다른 삼각형에 붙이면 두 각의 합의 크기를 갖는 각을 구할 수가 있겠지요. 이제 그러면 다시 문제 2로 돌아가 볼까요? 이제는 임의의 각을 3등분할 수 있겠어요? 역시 답은 ‘못한다’인가요? 그럼 한 번 더 힌트를 줘 볼게요.

단순화 2-4. 1/4+1/16+1/64+…인 무한등비급수의 합은 무엇일까요?

등비급수의 합의 공식을 아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1/4)/(1-1/4)=1/3 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답은 1/3입니다. 그럼 이제는 문제 2에 답할 수 있나요? 임의의 각을 3등분할 수 있나요? 그렇습니다. 정답은 ‘할 수 있다’입니다. 임의의 각에 대해 1/4^n, n=1,2,3,…, 의 크기를 갖는 각을 작도하고 이들을 계속 더하면 되지요. 하지만, 문제 2는 작도가 불가능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매우 유명한 문제잖아요?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사실,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작도할 수 없는 것은?’이라는 문제들의 답은, 주어진 자와 컴퍼스를 ‘유한번’만 사용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서 나온 답입니다. 무한번 사용할 수 있다면 임의의 각의 3등분처럼 답이 완전히 달라지지요. 역시 안타깝게도 제가 만났던 학생들 중에 우리가 이들 문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와 컴퍼스는 유한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학생이 전혀 없더군요. 즉, 모두가 그저 문제와 답을 암기하여 알고 있었지만 문제를 제대로 이해해 보려고는 시도를 안 했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또 다른 가정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 두 문제로 많은 이공계 인재들을 ‘성공적으로’ 괴롭혀 왔습니다. 앞으로도 이 글을 읽지 않은 많은 학생들은 제 질문에 당황하겠지요. 사실 이건 교수의 악취미는 아닙니다. 문제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게 있어서입니다. 미래를 짊어지고 갈 이공계의 인재들은, 다른 사람이 그렇다고 하여도 그것을 사실인 것으로 그저 받아 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거기에는 숨어있는 디테일이 있으며 그 작은 디테일이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오늘 무엇인가 한 가지는 배우셨나요? 그렇다면 적어도 내일부터는 이렇게 말해 주세요. “눈금이 없는 자와 컴퍼스를 유한번 사용하여 임의의 각을 3등분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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