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론] 이승섭 KAIST 입학처장

새학기가 시작됐다. 합격한 학생들은 설레임 속에서 캠퍼스의 봄을 만끽하고 있고, 떨어진 학생들은 실패의 충격에서 벗어나 다시 출발하고 있으며, 원하지 않았던 학교 혹은 학과에 진학한 학생들은 안정과 새로운 도전 속에서 고민하는가 하면 고3 학생들은 불안감과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새학기를 열고 있다. 과연 우리사회에서 ‘대학’은 무엇이고,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30여 년 전 필자도 (1980년 대학 입학) 힘들었던 고3 생활을 거쳐,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가끔씩 돌이켜보면 주위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후 석, 박사 과정을 거쳐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 ‘대학’을 바라보는 시각은 빠르게 변화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은 성인 사회로 들어가는 관문이고, 더 나아가 사회 생활의 성공과 실패의 시작점으로 인식되다 보니, ‘언제 공부를 가장 열심히 했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어른들의 답은 ‘고3’이다. 아마도 ‘고3’ 때 공부를 열심히 해야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고, 좋은 대학을 나와야 사회에서 잘 살 수 있다는 경험과 논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과연 그럴까?

▲ KAIST 이승섭 입학처장
과거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질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었고,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대학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에서, 대학은 ‘교육기관’보다는 ‘선발’의 의미가 더 중요했다. 즉, 대학에서 새롭고 중요한 무언가를 배운다기보다 오히려 대학에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가 더욱 비중있게 간주됐다. 하지만 30년이 흐른 지금의 시점에서 돌이켜보면서 그마저도 맞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 때로 당혹감을 느끼곤 한다. 과거 좋은 대학에 들어갔던 많은 친구들이 오늘날에는 뒤처져있는 데 반해, 뒤처지는 대학에 들어갔던 친구들이 사회적으로 잘 나가고 있는 모습들을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흔히 학교 성적과 사회에서의 성공 여부와는 관련이 없다는 말로, 혹은 팔자소관이라는 말로, 이 모든 것들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 경우 앞에서 이야기한 ‘공부 열심히 해야 하는 고3’ 논리와 모순이 되는 현상에 부딪히게 된다.

‘대학은 왜 가야 하나?’라는 주제로 돌아갈 때, 답변은 당연히 ‘사회에서의 직업을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진리 탐구’라는 거창한 말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 경우에도 수학과생은 수학에서, 법대생은 법학에서, 공대생은 공학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의 진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대학 졸업 후에 30년(은퇴 시기를 60세로 가정할 때 물론 수명연장을 고려하면 50년이 될 수도 있다.) 동안, 자신이 생활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는 모든 과정에서 필요한 자신의 직업, 혹은 자신의 꿈과 일을 성공적으로 준비하기 위해서 대학에 가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이 이야기를 새삼 장황하게 기술한 까닭은 ‘언제 공부를 가장 열심히 해야 하나?’라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함이다. 아직도 ‘고3’이 바른 답변이 될까? 30여 년 전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은 ‘좋은 대학 가면 성공한다’였지만, 오늘날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대학 가서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한다’이다. 그 대학이 물론 좋은 대학이면 더욱 좋겠지만, 좋지 않은 대학일지라도 중요한 것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다. 혹자는 일류 대학과 이류 대학 간의 교육수준 차이를 언급하고자 하겠지만, 그마저도 우리나라의 전체대학 수준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엄청나게 발전하였고, 학부 교육의 경우 대학간의 수준 차이는 일반 사회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참고로 KAIST 대학원생 출신 대학교를 보면 일류, 이류, 혹은 삼류라고 일컫어지는 대학 출신 학생들도 있지만, 대학원 과정에서의 실력은 전혀 차이가 없으며, 다만 각자의 대학에서 최고의 성적을 낸 학생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공부를 가장 열심히 해야 할 때’는 ‘고3’이 아니라 ‘대학’ 시절이고, 그래야 한다. 우리가 사회에 나가 자신의 직업을 통해 써먹을 모든 전문 지식들을 ‘대학’에서 배우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다음, 고3까지 열심히 공부했던 많은 내용들이 사회 생활, 심지어 대학에서까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았을 때 당혹감을 느꼈다. 더 이상 우리사회가 ‘대학을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사회’가 아니고, ‘대학 가서 열심히 공부하는 사회’로 변했으면 하는 소망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대학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게 될까?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공부를 대학에서 하는 것이다. 즉, 올바른 ‘전공선택’이다. 과거에는 점수가 나오면 그 점수에 맞는 학교를 정하고, 그 다음에 전공을 정하는 것이 통례였다. 이로 인해 특정 학교에 가기 위해, 자신이 원하지 않는 학과를 선택하거나 심지어 그런 방향으로 입시 지도를 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들어간 학과에 무슨 애정이 있을 수 있고, 그 곳에서 배우는 공부가 과연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안타까움 마음뿐이다. ‘전공 선택’은 자신의 꿈을 위한 첫걸음이다. 20년, 30년 후 자신의 미래 모습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장면은 양 팔을 걷어부치고, 늦은 밤에 무언가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 대학 공부는 재미가 있다. ‘수학 정석’ 문제를 풀면서 희열을 느끼는 고등학생을 찾기는 힘들겠지만, 대학에서는 자신의 전공 과목을 들으면서 재미를 느끼는 학생들이 많다. 영화 감독을 꿈꾸는 학생이 새로운 촬영 기법을 배우고 영화 이론을 배울 때, 자동차에 푹 빠진 학생이 엔진을 직접 뜯어보고 구조 설계와 연소 이론을 배울 때, 노벨 화학상을 꿈꾸는 학생이 강의실에서 전년도 노벨상 이론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 때로는 어렵고 힘들지만 그 속에서 자라고 있는 자신의 꿈 속에서 큰 기쁨을 느끼게 된다.

KAIST 입시는 ‘전공 선택’과 관련해 다른 대학교들과 달리 ‘무학과’라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다른 대학들이 학과 별로 선발하고, 전공 혹은 학과 간의 벽이 존재하는 데 반해, KAIST는 신입생 모두를 한 묶음으로 선발하고, 전공 학과는 1학년2학기에 정한다. 전공선택에는 아무런 조건 없이 학생의 희망만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2학기가 되면 학교는 각 학과들의 학과설명회로 축제 분위기에 싸이게 된다. 교수들은 보다 많은 1학년 학생들이 자기학과를 선택하게 하려고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학과의 우수성과 미래 전망을 이야기하고, 선배들은 학과가 얼마나 재미있고 학생 친화적인지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통계에 따르면 신입생의 50% 정도가 입학할 때 생각했던 전공과 다른 학과를 선택하는데, 1학년 동안 배움과 많은 경험을 자신의 전공을 보다 확실하게 정해나가는 것 같다. 전공이 정해진 후에도 본인의 희망에 따라 ‘전과’는 물론 ‘복수전공’ ‘전공 및 부전공’ 제도가 매우 다양하고 쉽게 되어 있어 진정한 ‘융합 교육’을 가능케하는 것이 KAIST의 전공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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