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리족 신화와 현실의 시적인 만남

우리에게 단군 신화가 있듯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에는 대부분 신화가 있습니다. 유럽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 오딘 신화, 켈트 신화 등이 있고, 동양에는 중국이나 일본, 필리핀 등지의 여러 종족 설화나 신화가 존재합니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인간의 심리를 규정하는 요소 중 하나로 집단 무의식을 듭니다. 이 집단 무의식은 주로 민족 특유의 종교 의례나 민담, 신화의 형태로 그 구성원의 심리와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줍니다. 단군 신화에 등장하는 곰의 끈기나 홍익인간 정신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내면화되었을 수 있습니다.

『웨일 라이더(the Whale Rider)』는 뉴질랜드 연안 마오리족의 신화를 다룬 소설입니다. 마오리족 신화에 따르면 마오리족은 약 천 년 전 위치가 분명하지 않은 하와이키(Hawaiki)라는 섬에서 카누를 타고 뉴질랜드로 이주했습니다. 그중에 고래를 타고 뉴질랜드의 왕가라 마을(Wangara)에 정착한 파이키아(Paikea)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고래 타는 사람’이라는 뜻의 『웨일 라이더』는 이 파이키아 신화에서 출발하는 소설입니다.

왕가라 마을 마오리 부족장인 코로 아피라나(Koro Apirana)에게 어여쁜 증손녀가 태어납니다. 아피라나의 장손인 포루랑기의 딸입니다. 아피라나는 남자 아기가 아닌 것에 매우 실망하지만, 부모는 아피라나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기의 이름을 최초의 웨일 라이더이자 부족의 선조와 같은 이름인 카후티아 테 랑기라고 짓고, 아기의 탯줄을 왕가라 마을 중심부에 묻습니다. 남자만이 웨일 라이더가 될 수 있다는 전통을 고수하는 부족장 코로 아피라나와 웨일 라이더가 될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소녀 카후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한 축입니다.

다른 축은 먼 옛날 최초의 웨일 라이더였던 카후티아 테 랑기가 타고 온 고래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고래 무리를 이끌며 태평양 바다를 헤엄치는 영감 고래(ancient bull whale)는 먼 옛날 웨일 라이더와 즐거웠던 시절을 그리워합니다. 이 영감 고래와 소녀 웨일 라이더 카후의 만남이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웨일 라이더』 원서 표지와 한국어판 표지. 한국어판은 현재 절판된 상태다.
『웨일 라이더』 원서 표지와 한국어판 표지. 한국어판은 현재 절판된 상태다.

마오리족 출신 작가 위티 이히마에라(Witi Ihimaera)는 이 소설에서 웨일 라이더 신화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하나됨(oneness)”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래와 인간이 서로 소통하던 시기는 생명이 탄생하던 신화적 시기였습니다. 고래 등을 타고 온 웨일 라이더는 인간의 땅에 생명의 창을 던져 갖가지 생명체를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웨일 라이더가 왕가라 마을에 정착하면서 고래와 결별하고, 고래는 오랜 세월 슬픔에 잠긴 채 바다를 떠돌았습니다. 고래가 그렇게 견뎌오는 동안 세상은 원자폭탄이 터지고 방사능물질이 바다를 오염시키는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웨일 라이더의 후손 카후와 고래가 재결합하는 설정으로 작가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에 대한 희망을 담아냅니다.

『웨일 라이더』에는 신화와 현실이 공존합니다. 소설은 프롤로그, 봄/여름/가을/겨울로 구성된 중간 부분, 에필로그로 구성됩니다. 프롤로그에서는 뉴질랜드에 사람이 정착하기 전 바다와 땅이 인간을 간절히 기다리던 신화적 세계에 마침내 카후티아 테 랑기가 고래를 타고 나타나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신화적 세계를 묘사합니다. 중간 부분 사계절은 최초의 웨일 라이더를 등에 태워 온 고래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해 소녀 카후의 삼촌인 라위리의 서술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신화/자연의 세계와 현재/현실의 세계가 공존합니다. 에필로그는 현재의 웨일 라이더인 소녀 카후와 고래가 만나는 부분으로 고래와 라위리, 자연과 인간의 서술이 뒤섞여 등장합니다.

이런 이야기 구조에 맞추어 소설의 언어도 달라집니다. 신화의 세계인 프롤로그는 시적 언어와 음악성, 의인화가 두드러져 보입니다. 인간의 출현을 기다리는 희망과 기다림의 언어입니다. 중간 부분에서 고래의 서술은 기억과 슬픔의 언어입니다. 영어가 아닌 마오리족 언어가 많이 쓰입니다. 라위리를 이야기하면서 마오리 신화를 설명하고 소녀 카후를 관찰하며 현실에서 벌어지는 자연 파괴와 인종차별 등을 묘사합니다. 에필로그에서는 카후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하나됨”에 대한 기원을 그려냈습니다.

프롤로그: 신화의 언어 

신화는 상상의 세계를 그리기 때문에 흔한 일상 언어가 아니라 산문이지만 마치 시를 읽는 듯한 음악성이 있습니다. 자연물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생각과 감정을 가진 존재들로 의인화됩니다. 프롤로그의 신화적 언어는 첫 문단의 시적 운율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납니다. 첫 문단을 시처럼 배열하여 이탤릭체에 강세를 두어 천천히 읽다 보면 마치 노래하는 듯한 느낌을 느낄 수 있습니다.

In the old days, in the years that have gone before us, 
오랜 옛날, 우리가 있기 전,
the land and sea felt a great emptiness, a yearning. 
육지와 바다는 느꼈다, 거대한 공허, 갈망을. 
The mountains were like a stairway to heaven, and the lush 
산들은 천국으로 가는 계단 같았고, 우거진
green rainforest was a tippling cloak of many colors. 
푸르른 열대우림은 여러 색깔의 망토로 물결쳤다.
The sky was iridescent, swirling with the patterns of wind and clouds;
바람과 구름의 갖가지 무늬와 빛으로 소용돌이치는 하늘;
sometimes it reflected the prisms of rainbow or southern aurora. 
때때로 그것은 무지개나 남쪽 오로라를 비추었다. 
The sea was ever-changing, shimmering and seamless to the sky
끊임없이 변하는 바다는 희미한 빛으로 일렁이며 하늘로 매끄럽게 닿아 있었다. 
This was the well at the bottom of the world,
이것은 세상 밑바닥에 있는 우물,
and when you looked into it you felt you could see to the end of forever. 
만일 들여다본다면, 영원의 끝을 보는 듯할 것이다.

시 한 줄에 다섯 개의 강세가 있는 운율을 펜타미터라고 합니다. 현대시는 운율과 라임을 엄격히 지킨 전통시와는 달라졌지만 그렇더라도 시적인 운율을 느슨한 형태로 지닌 경우가 많습니다. 인용한 이 소설의 첫 문단은 대체로 펜타미터 운율을 보여줍니다.

시적 언어의 또 다른 특징은 음의 반복입니다. 이 소설의 프롤로그는 이러한 음의 반복이 많은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The forests were loud with the clatter of tree bark, chatter of cicada, and the murmur of fish-laden streams.
숲은 나무껍질의 딸그락거림, 매미의 재잘거림, 그리고 물고기로 가득 찬 개울의 웅성거림으로 소란스러웠다.

clatter와 chatter에서 –atter를 반복하고, clatter, chatter, murmur에서 er을 반복합니다. 같은 음을 매우 자주 되풀이하는 문장도 있습니다. 

Waiting, Waiting for the seeding, Waiting for the gifting, Waiting for the blessing to come.
기다리고 기다렸다. 생명의 씨앗을, 선물을, 다가올 축복을. 

오랜 옛날 주술사들이 마법을 부리기 위해 외웠던 주문을 ‘incantation’이라고 합니다. 주문은 음의 반복을 통해 마법적 힘을 발휘합니다.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나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등장하는 세 마녀의 주문 같은 경우입니다.

Double, double, toil and trouble;
Fire, burn; and, cauldron, bubble. 

초자연적인 주제를 다루는 신화는 이런 주문처럼 반복음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소설은 또한 전반에 걸쳐 마오리족 주문 “하우미 에, 후이 에, 타이키 에(Haumi e, hui e, taiki e)”가 등장해 더 신화적인 느낌을 풍깁니다.

신화적 언어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자연의 의인화입니다. 자연을 단지 물질로 보는 근대 과학의 관점과 달리 신화의 세계에서 자연은 느끼고 행위하고 인간과 소통합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에, 대지와 바다는 결핍의 날카로운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갈망이 어서 끝나기를. 숲은 달콤한 향기를 동쪽 바람에 실어 보냈고, 포후투카와 화관을 동쪽 조류에 흘려보냈다.

In that waiting time, earth and sea began to feel the sharp pangs of need, for an end to the yearning. The forests sent sweet perfumes upon the eastern winds and garlands of pohutukawa upon the eastern tides. 

『웨일 라이더』에서 프롤로그의 특징인 자연의 의인화는 ‘기다림’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합니다. 대지와 바다는 그들에게 생명의 씨앗을 뿌려줄 존재인 웨일 라이더를 기다립니다. 고래를 타고 온 웨일 라이더는 그들의 바람대로 생명의 창을 던져 생명체를 만들어 내기 시작합니다. 카후티아 테 랑기가 던진 많은 생명의 창 가운데 그의 손에 있던 맨 마지막 창은 그의 손을 떠나기를 거부합니다. 카후티아 테 랑기가 “사람들이 고통받고 이 생명체가 가장 필요로 할 때 꽃피게 하라”라고 약속하고 나서야 마지막 창은 그의 손을 떠나 수천 년을 날아 왕가라 마을에 꽂히고도 150년을 기다립니다. 그 마지막 창이 바로 부족장 코로 아피라나의 증손녀 카후입니다. 

고래의 여행: 기억과 슬픔

『웨일 라이더』의 중간 부분인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각 장은 고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고래에 관한 서술은 현실 세계를 그리는 라위리 부분과 구별해 이탤릭체로 표시합니다. 무리를 이끌고 태평양을 유영하는 영감 고래는 소녀 카후처럼 어려서 엄마를 잃고 슬퍼하던 시절 카후티아 테 랑기를 주인으로 만나 ‘하나됨’을 이룹니다. 영감 고래에겐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시간입니다.

그 사람[카후티아 테 랑기]은 어린 고래의 고통을 들었고, 플룻을 불며 바다로 왔다. 어린 고래의 슬픔과 하나임을 전달하려는 그의 플룻 소리는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그는 알지 못했으나, 그의 플룻 멜로디는 고래에게 위안을 주는 노래와 닮아 있었다.
The human had heard the young whale’s distress and had come into the sea, playing a flute. The sound was plangent and sad as he tried to communicate his oneness with the young whale’s mourning. Quite without the musician knowing it, the melodic patterns of the flute’s phrases imitated the whale song of comfort. 

고래는 황금빛 주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주인이 와랑가 마을에 정착하면서 이별하고 맙니다. 고래는 주인과 행복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와 슬픔에 빠져 지냅니다.

이렇게 과거를 회상하며, 영감 고래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휩싸여 비탄의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할멈 고래들도 그의 슬픔을 막지 못했다. 젊은 수컷 고래들이 지평선에 인간이 나타났다고 보고했을 때, 그 위험의 근원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가려는 영감 고래를 막느라 그들은 온 힘을 써야 했다.

Reminiscing like this, the ancient bull whale began to cry his grief in sound ribbons of overwhelming sorrow. Nothing that the elderly females could do would stop his sadness. When the younger males reported a man-sighting on the horizon, it took all their strength of reasoning to prevent their leader from arrowing out toward the source of danger. 

이제 고래에게 인간은 함께 바다를 헤엄치는 존재가 아니라 “위험의 근원(source of danger)”입니다. 인간은 원자폭탄과 방사능 누출로 생명을 오염시켰고, 영감 고래는 후손의 유전자가 변할까 두려워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이렇게 변했는데도 웨일 라이더 카후티아 테 랑기를 그리워하는 영감 고래의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영감 고래와 왕가라 마을의 부족장이자 카후의 증조할아버지인 코로 아피라나는 닮았습니다.

우리 코로 할아버지는 낯선 현재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된 늙은 고래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되어야 했다. 왜냐하면 사물의 이치와 미래의 풍랑 속에서 그 역시 자신의 역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Our Koro was like an old whale stranded in an alien present, but that was how it was supposed to be, because he also had his role in the pattern of things, in the tides of the future.

영감 고래와 아피라나는 둘 다 무리를 이끄는 수장입니다. 영감 고래가 과거에 대한 향수에 빠져 있듯이 아피라나는 전통을 고집합니다. 웨일 라이더는 남자여야 한다는 전통을 고집하며 증손녀를 배척합니다.

라위리가 본 세상

한편으로 영감 고래와 아피라나에게는 인간이 자연을 마구 파괴하는 시대,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현재가 낯설기만 합니다. 그 낯선 세계를 그려내는 인물이 바로 카후의 삼촌 라위리(Rawiri)입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인 인물인 라위리는 마치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의 닉 캐러웨이(Nick Carraway)처럼 객관적 관찰자 시점에서 카후와 아피라나를 묘사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고래와 소통하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카후, 아피라나의 전통에 대한 고집과 그로 인한 고통을 설득력 있게 묘사합니다.

라위리는 또한 왕가라 마을을 떠나 시드니와 파푸아뉴기니로 이동하면서 좀 더 넓은 시야로 현실 사회의 문제를 경험합니다. 시드니에서 돈이 중심인 세상을 경험하고,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인종차별을 뼈저리게 겪습니다. 라위리는 자본주의 사회 시드니에서 인종차별 없이 백인 제프와 친구로 지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프의 가족 농장 일을 돕기 위해 간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제프의 가족에게서 차별과 멸시를 받습니다. 무엇보다도 인종적 편견이 없을 거라 믿었던 백인 친구 제프에게서마저 이런 모습을 발견한 것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라위리와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제프는 원주민 친구인 버나드를 차로 칩니다. 차 안에는 제프의 부모님도 있었습니다. 그때 라위리는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던 제프 가족의 원주민에 대한 공포를 알게 됩니다. 자신들이 백인이어서 원주민의 공격을 받을 거라는 두려움에 그들은 친구 버나드를 병원으로 옮기지도 않고 라위리를 남겨두고 도망치고 맙니다. 

나는 그들의 공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제프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꼼짝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부서진 몸이 경련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훌쩍거리더니, 차에 시동을 걸었다.
“난 내릴 거야,” 나는 소리쳤다. “난 내릴 거야. 저기 있는 건 그냥 원주민이 아니야. 저 사람은 버나드라구.” 형제는 형제다.
나는 자동차 문을 밀치고 나갔다. 클라라는 제프에게 소리쳤다. “맙소사, 그들이 오고 있어.” 길 위에 그림자들이 비쳤다. “걔는 그냥 내버려둬. 내버려둬.” 그녀는 공포에 질려 소리 질렀다. 
그들의 차가 나를 빠르게 지나쳐갔다. 나는 겁에 질린 제프의 창백한 얼굴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I couldn’t comprehend their fear. I looked at Jeff, but he was just sitting there, stunned, staring at that broken body moving fitfully in the headlight. Then, suddenly, Jeff began to whimper. He started the motor. 
“Let me out,” I hissed. “Let me out. That’s no native out there. That’s Bernard.” A cous is a cous. 
I yanked the door open. Clara yelled out to Jeff. “Oh, I can see them.” Shadows on the road. “Leave him here. Leave him.” Her words were high-peached, frenzied. “Oh, Oh, Oh.”
The station wagon careered past me. I will never forget Jeff’s white face, so pallied, so fearful. 

급박한 순간에 친구 버나드를 원주민으로만 인식한 제프를 라위리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버나드를 ‘개인’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라위리가 같은 원주민 출신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 차이는 백인이 원주민의 나라를 침략하여 수탈했던 역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백인-농장주와 원주민-일꾼이라는 관계에서 백인과 원주민을 ‘개인’으로 떼내어 평등하게 바라보기는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친구 사이도 가능하겠지만 이 사건에서 보듯 급박한 순간에 튀어나오는 무의식 앞에서 그런 관계는 쉽사리 무너집니다. 이 일을 계기로 라위리와 제프는 서로 결코 형제처럼 지낼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채 라위리는 결국 고향 왕가라 마을로 돌아가지만 마우리족으로서의 정체성은 더욱 강해집니다.

카후: 새로운 세계의 희망

작가는 뉴욕에 머물 때 고래 한 마리가 허드슨강에 떠오른 사건에서 이 소설을 착안했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고래 떼가 해변으로 밀려와 죽는 일은 드물지만 세계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소설에서는 왕가라 마을 근처 와이누이 해변에 고래 떼들이 몰려와 죽는 일이 벌어지지요. 이마에 소용돌이무늬를 지닌 거대 고래, 즉 영감 고래가 해변에 떠오릅니다. 소설은 이 사건을 파이키아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혀 영감 고래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상황으로 묘사합니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황금빛 주인에 대한 환상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의 족보와 설화의 오랜 부분에서 황금빛 주인에 대한 기억은 한시도 그를 떠난 적이 없었다.
마지막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Their leader was totally ensnared in the rhapsody of his dreams of the golden rider. So long part of their own genealogy an legend, the golden rider could not be dislodged from their leader’s thoughts. 
The last journey had begun, and at the end of it Death was waiting. 

해변에 떠오른 고래를 되돌려 보내기 위해 부족장 아피라나가 고래와 소통하려 노력하지만 고래는 거부합니다. 카후가 이상한 짐승 소리를 내며 다가갔을 때 카후와 고래의 소통이 시작됩니다. 이 소통은 죽음을 결심하고서야 비로소 가능한 소통입니다. 고래가 죽음의 여행으로 와이누이 해변에 왔듯이 고래 등에 올라탄 카후 역시 “죽음이 어떤지를 몰랐기 때문에 울었(Kahu also wept because she didn’t know what dying was like.)”습니다. 고래와 카후의 상징적 죽음을 통해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도와주세요.” 카후가 소리쳤다. “저는 카후티아 테 랑기, 파이키아입니다.”
고래는 그 말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네가 카후티아 테 랑기라고? 네가 파이키아냐? 

카후는 고래의 앞지느러미를 느끼고는 재빨리 그것을 움켜쥐었다. 
카후가 등에 오르자, 고래는 기쁨이 복받쳐 올라 점점 더 큰 희열을 느꼈다. 그는 기쁨을 자신의 온몸에 전달하기 시작했다. 방파제 너머에 있던 고래 무리도 갑작스런 그 변화를 감지했다. 솟아오르는 희망으로, 그들은 영감 고래를 향해 격려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Help me,” [Kahu] cried. “Ko Kahutia Te Rangi, au, Ko Paikea.”
The whale shuddered at the words. 

Ko Kahutia Te Rangi? Ko Paikea?

By chance, Kahu felt the whale’s forward fin. Her fingers rightened quickly around it. She held on for dear life. 
And the whale felt a surge of gladness that as it mounted became ripples of ecstasy, ever increasing. He began to communicate his joy to all parts of his body. Out beyond the breakwater, the herd suddenly became alert. With hope rising, they began to sing their encouragement to their leader. 

영감 고래와 카후는 함께 바다로 갑니다. 그러나 희망의 세계를 열기 위해서는 한 가지 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자신의 옛 주인 카후티아 테 랑기와 재회했다는 생각에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던 영감 고래는 “나는 내 주인 파이키아를 태우고 있다(I am carrying my lord, Paikea.)”고 합니다. 과거의 환상에 멈추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할멈 고래 덕분에 영감 고래는 과거에 대한 환상과 집착에서 벗어나 자신이 태우고 있는 사람이 파이키아의 후손, 그의 손을 떠난 마지막 생명의 창임을 깨닫고 카후를 왕가라 마을에 되돌려 보내줍니다. 소설은 웨일 라이더로서 자신의 운명을 완성할 카후와 이제는 아름다운 노래를 다시 부를 고래들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약속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들의 소리가 안 들려요?” 카후가 물었다. 

카후는 바다에 떨어졌다. 떠나가는 고래의 천둥 같은 소리가 카후의 귀에 크게 울렸다. 카후는 눈을 뜨고 아래를 보았다. 부서지는 포말 사이로 작별인사를 하는 거대한 꼬리가 보였다.
그러자 시간의 역류로부터 할멈 고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야, 너의 종족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인간의 왕국으로 가서 네 운명을 완성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갑자기 어두운 형상으로부터 들리는 찬란한 음악소리로 바다는 다시 한번 가득 찼다. 

카후는 눈을 빛내며 코로 아피라나를 쳐다봤다. 
“할아버지, 저 소리가 들리지 않으세요?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듣고 있었어요. 아, 고래들이 노래하고 있어요.”
하우미 에, 후이 에, 타이키 에. 
다 이루어지게 하라.

“Can’t you hear them?” Kahu asked. 

She fell into the sea. The thunder of the whales departing was loud in her ears. She opened her eyes and looked downward. Through the foaming water she could see huge talil fins waving farewell.
Then from the backwash of Time came the voice of the old mother whale. “Child, your people await you. Return to the Kingdom of Tane and fulfill your destiny.” And suddenly the sea was drenched again with a glorious echoing music from the dark shapes sounding. 

Kahu looked at Koro Apirana, her eyes shining. 
“Oh, Paka, can’t you hear them? I’ve been listening to them for ages now. Oh, Paka, and the whales are still singing,” she said. 
Haumi e, hui e, taiki e. 
Let it be done.

소설은 내내 반복했던 주문 “하우미 에, 후이 에, 타이키 에”, 즉 “모두 함께하라, 한데 묶어라, 다 이루어지게 하라”는 하나됨의 염원으로 끝을 맺습니다. 『웨일 라이더』는 지구의 70퍼센트를 차지한 드넓은 바다, 그 바다의 신비로운 생명체 고래가 등장하는 마오리족 신화를 시적인 영어 문장과 함께 만나볼 수 있는 영감 넘치는 작품입니다.

파이키아 조각상
파이키아 조각상

함종선 mysstar@naver.com
연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미 에모리(Emory)대 박사후 연구과정을 수료한 후 서울대, 방송통신대 강사를 거쳐 민사고와 하나고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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