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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리더] 한성 손재한 장학회 이사장최초 노벨상 겨냥한 이공계 영재들의 ‘대부'

-노벨상 꿈나무 매년 200명 지원
-‘의치한’ 지원자 배제.. 매년 11월 학교 통해 선발공고

[베리타스알파=김경 기자] ‘한성 손재한 장학회’의 손재한(94) 이사장은 이미 이공계 인재들에게 대부로 통한다. 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살아낸 망백의 ‘덕수’가 평생 쌓아온 재산을 내놓고 최초의 한국인 노벨상이라는 꿈에 여생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미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를 지원하기 위해 전국 최상위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생 선발에 나섰다. ‘한성 노벨 영/수재 장학생’이다. 장학생 규모는 매년 200명 이내다. 1기 179명에 이어 올해 2기를 선발했다. 자연계열 학생에게 1인당 연간 500만원, 인문계열 학생에게 1인당 연간 300만원의 장학금으로 학업을 장려한다. 노벨과학상 최초와 두 번째 수상자에게는 각 13억5000만원의 포상을 걸었다. 노벨상 상금과 동일한 금액의 포상금이다. 한 해 장학금 예산만도 18억4000만원, 이외 목적사업과 운영경비까지 한 해 30억원이 우리나라 이공계의 미래를 위해 투입된다. 손 이사장이 장학회에 출연한 재산은 현재 총 704억2000만원. 물론 손 이사장이 영/수재들에게 ‘대부’로 떠오른 배경은 단순히 장학규모에 있지 않다. 최근 영화 <국제시장>으로 겨우 후대들이 공감하기 시작한 ‘덕수’처럼 치열했던 삶의 궤적, 그리고 아흔이 넘은 나이에 여생을 모두 던지는 진정성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강성할 때는 하나같이 과학기술이 융성했고, 우리 국토가 침탈당하고 치욕을 당할 때는 과학을 등한시하고 과학자를 홀대한 시기였다.” 형형한 눈빛의 어르신은 당신의 선택이 추호도 틀림없다고 믿고 있다. “매년 200명씩 향후 50년 간 1만 과학자를 만들어 주변 4대 강국이 우리나라를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고, 1만 과학자 군단이 10만 과학자 군단이 되도록 나와 내 자손들이 대를 이어 계속하면 그것으로 내가 대한민국과 우리국민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보답하는 길이다.”

평생 쌓아온 전 재산을 내놓고 최초의 한국인 노벨상이라는 꿈에 여생을 건 손재한 이사장은 이미 이공계 인재들에게 대부로 통한다. 최근 영화 <국제시장>으로 겨우 후대들이 공감하기 시작한 ‘덕수’처럼 치열했던 삶의 궤적, 그리고 아흔이 넘은 나이에 여생을 모두 던지는 진정성 때문이다. /사진=신승희 기자 pablo@veritasnews.kr

<고난의 현대사 관통.. 우러난 애국심>
한성 손재한 이사장은 과학도들에게 이미 유명인사다. 장학회가 2013년 3월 설립인가를 받은 후 그 해 11월에 전국적으로 선발을 시작한 장학생 1기는 179명. 지난해 11월 2기 선발을 시작했다. 손 이사장의 장학사업은 애국심에서 출발한다. “나는 우리민족이 저 위대한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후손이고 5000년 역사의 단군의 자손인데도 주변 강대국들에게서 끊임 없이 침략 받아 오랫동안 고초를 겪고 저 광활한 만주 땅을 빼앗긴 이유가 국가의 과학기술력이 약해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강성할 때는 하나같이 과학기술이 융성하였고, 우리국토가 침탈 당하고 치욕을 당할 때는 과학을 등한시하고 과학자를 홀대한 시기였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과학기술력이 세계일류가 되기를 바란다. 향후 50년 동안 1만 과학자를 만들기 위해 매년 200명씩 될성부른 떡잎부터 발굴하여 나라의 동량지재로 키워 1만 과학자 군단을 만들어 놓으면 주변 4대 강국이 우리나라를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 1만 과학자 군단이 10만 과학자 군단이 되도록 나와 내 자손들이 대를 이어 계속하면 그것으로 내가 대한민국과 우리국민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보답하는 것이 될 테다.”

손 이사장의 인생,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고난의 한국현대사와 맞닿아있다. 일제 강점기에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손 이사장의 청년기는 강제징용과 포로생활, 조선민족청년단의 청년운동과 피난으로 점철됐다. “내 나이 약관에 대동아전쟁이 터졌다. 일본군 징병 1기생으로 관동군에 끌려가 만주 땅에서 소련군과 대치하며 전쟁터를 전전하다 해방을 맞았다. 무장해제되었어도 바로 귀국하지 못하고 소련군 포로로 잡혀 시베리아 하바로프스크로 끌려갔다가 블라디보스톡으로, 그리고 목단강시, 해림, 하얼빈 등지를 전전하다 소련 극동군 사령관의 여행증을 천신만고 끝에 발부 받아 구사일생으로 고향으로 왔다. 귀국하니 국내 상황은 혼란스러웠다. 나라는 가난하였으며, 하루하루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철기 이범석 장군(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이 이끌던 조선민족청년단의 일원으로 청년운동을 하며 그 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38선이 그어지고 북녘이 김일성과 소련군에게 점령되어 급속히 공산화되고 6.25전쟁이 발발하자 나는 주저 없이 피난길을 떠났다. 배를 타고 교동도로, 영종도로, 영흥도로 피난을 다니는 것이었다. 배를 타고 피난을 다니다가 식량이 떨어지면 육지로 들어갔다가 나오길 반복했다. 들려오는 전황은 불리하게만 전개되는 상황에서 유일한 희망은 UN군이 6.25전쟁에 참여하느냐였다. 안전보장이사회에 소련이 불참하면서 UN군의 참여가 확정된 날, 다 같이 ‘이제 살았다’면서 만세를 불렀다. 결국은 정전이 될 수 있었고, 참전해준 16개국에 매우 고맙게 여기는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다.”

<60년간 일군 텃밭>
정전은 됐지만 나라는 온통 폐허였다. 손 이사장 역시 맨손이나 다름없었다. 누구나 헐벗던 당시 상황에서 700억원이 넘는 돈을 장학사업에 투자할 정도로 큰 재산을 일군 얘기는 사실 궁금하다. “6.25전쟁이 정전된 후 먹고 살기 위해 참으로 열심히 일했다. 폐허의 잿더미 속에서도 새싹이 돋듯이 나는 맨손으로 내 첫 회사인 ‘대륙사’를 만들어 재건사업을 펼치면서, 그 당시 누구나 그랬듯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했다. 다들 헐벗고 집도 없던 시기였다. ‘대륙사’ 운영 당시 공장을 만들어 나일론 실로 스웨터 등을 만들어 팔았다.”

당시 초현대식 건물이었던 ‘세운상가’와 ‘파고다 아케이드’가 손 이사장의 손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의류제조에서 건축사업으로 사업의 방향을 전환하면서 손 이사장은 큰 재산을 일구게 된다. “10년 정도 대륙사를 운영하다 건축으로 눈을 돌리면서 사업이 커졌다. 당시 불량지구에 속했던 종로3가 지역에 ‘세운상가’ 주주 48명 중 대표로서 세운상가 건축을 주도했다. 이후엔 역시 불량지구에 속했던 파고다 공원 주변을 정돈하자는 취지로 서편에 상가 ‘파고다 아케이드’를 지었다. ‘광야개발주식회사’를 세운 후 같은 실향민 처지인 아산 정주영 선생과 내가 공유수면 매립작업을 하면서 고생했던 기억도 난다. 정주영 선생은 압구정동 일대를 매입했고 나는 양화동 일대를 매입했다. 양화대교가 있는 양천향교 아래가 그 시절엔 강바닥이었다.”

손 이사장이 장학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어쩌면 실향민의 아픔에서 출발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이북에서 피난 올 때 집안족보도 못 챙겨왔다. 사람들이 보통 나이 들면 집안에 투자하고 조상을 돌보는 일에 돈을 들이고 때로는 자기 고향에 돈을 쓰는 것을 보면, 이북이 고향인 나는 그렇지 못한 것에 안타까운 점은 있으나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자극제가 되었다. 대를 이어 번성할 나의 후손들에게 정신적인 교훈을 주고 ‘한성 손재한 장학회’라는 영구적인 터전을 바탕으로 사회적 책무를 다하도록 하는 것이 나와 내 자식들, 후손들이 더 잘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장학회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과라고 나온 것은 하나도 없는데, 인터뷰까지 하는 게 사실은 부끄럽다.”

장학생들을 자랑하는 대목에선 어린 아이처럼 신을 낸다. “장학생들로부터 감사편지가 오고 크리스마스 카드가 오고 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주 뿌듯하다. 참 잘했다는 생각이다. 정월 초하룻날 아침 일찍 찾아온 녀석들도 있었다. 서울대에 합격했다고 먹을 것 사 들고 세배를 오더라. 이제 열일곱, 열여덟 살 된 녀석들이 세배할 줄은 어찌 알고… 전라도에 사는 여학생도 서울대에 합격했다고 전화가 오고, 자취하게 될 텐데 자주 인사 오겠다 하더라. 또 한 녀석은 고려대에 합격했다 해서 불러서 함께 식사를 했다. 기특한 아이들이다. 장학생들끼리 교류하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작년 여름엔 1기 장학생들을 데리고 여름캠프를 하면서 한 조에 다양한 특성의 열두 명으로 조직해 어려울 때 서로 도우라고 했다. 한성장학회 50기까지는 너희들이 챙기라 했다. 50기를 선발할 때는 너희들이 70세를 바라보는 나이로 바쁘지 않을 터이니 후배들에게 성공담이든 실패담이든 강의도 하고 대화의 광장도 만들라 했다. 노벨상 13억여 원에 우리한테도 13억여 원을 받아서 자신도 장학사업을 하겠다는 아이들도 있다.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왜 노벨상인가>
‘한성 손재한 장학회’는 2013년 3월 설립인가를 받았다. 구상은 12~13년 전 시작했고 준비에 본격 착수한 건 8년 전부터였지만, 쉽지 않았다. “스스로 대한민국과 우리국민으로부터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자 장학사업을 하겠다고 하니,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재산은닉과 같은 못난 행동쯤으로 오해하는 공무원이 있었다. 한때 송파구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냈던 사람으로서 모든 것을 제3자 세무사나 회계사에게 계리하게 하는 등 재산관리를 투명하게 했음에도 8년 전 장학재단 설립을 준비하던 당시 설립인가의 문턱도 넘지 못한 배경이다. 나에게 다섯 가지 인생철학이 있다. 애국애족의 삶, 백절불굴의 삶, 기업보국의 삶, 효와 나눔의 삶, 인재양성의 삶이다. 인재양성의 삶을 시작하겠다 했더니 도와주신 교육계 분들이 많았다. 그 분들께 감사 드린다.”

손 이사장은 장학회 설립인가를 받은 2013년 봄, 장학회에 기본재산 664억2000만원을 무상출연하고, 전국의 과학도들에게 사실을 알려 장학생 1기 179명을 선발했다. 그 해 겨울 노벨과학상 수상자 특별포상금으로 30억원을 무상출연한 이후 인문계열에서의 바람을 받아들여 작년 10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특별포상금으로 10억원을 무상출연했다.

손 이사장은 왜 노벨상, 특히 노벨과학상에 주목했을까. “오늘날 과학자에게 있어 세계적인 상 하면 노벨과학상이다. 노벨과학상이 선정한 과학기술들로 인해 인류는 크나큰 발전을 해왔다. 노벨과학상의 선정기준이 인류공영을 위한 과학기술 발전에 독창적인 기여를 한 것이라 한다. 한국인이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인정하는 독창적인 연구결과로 노벨과학상을 수상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의 과학기술력이 그 분야에서 세계일류가 되었다는 것을 입증한 셈일 게다. 내 목표는 1만 과학자 군단을 만들어 세계일류의 대한민국으로 우뚝 서는 것이지만, 중간 점검의 수단으로 노벨과학상과 경제학상을 지목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봤다. 장학생 이름을 ‘한성 노벨 영/수재 장학생’이라 지은 이유다.”

<포부 더 키우는 ‘여전한 열정’>
손 이사장에겐 더 할 일이 있다. 6.25전쟁의 UN참전국으로 우리에게 감사한 나라이지만 아직은 가난한 에티오피아에 기술학교를 짓는 일과, 노벨상을 넘어서는 ‘한성과학기술상’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구상한 건 우선 에티오피아 아이들을 돕는 일이다. 나는 6.25전쟁을 겪는 동안 16개 참전국에 대한 감사함을 늘상 마음 속에 간직해왔다. 공산주의가 어떤 것인지 잘 아는 나로서는 한국이 공산화되는 것을 막아준 16개국이 고맙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정도 사업기반이 잡히고 나서는 뭔가 행동으로 감사함을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매달 정액의 UN세계아동복지기금을 후원하는 일이었다. 그게 40여 년 된 것 같다. 두 번째가 에티오피아를 돕는 일이다. 에티오피아 군인 121명이 6.25전쟁 참전 중에 전사했다. 에티오피아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를 지녔다. 한 번 공산화되었다가 민주국가로 되돌아온 여파로 지금은 너무 가난하다. 얼마 전 에티오피아 대사 디바바 아브데타씨를 만났다. 그들이 가난을 벗어나게끔 돕기 위해서다. 16개 참전국 중 가난한 에티오피아에서 우리나라로 유학 온 대학생 4명에게 더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에서 생활비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는 게 최근 시작한 일이다. 향후 이들과 비슷한 경우의 6.25 UN참전국 국가 장학생을 더 선발, 12명 내외로 확대해 제1기로 하고, 내년에는 2기, 내후년에는 3기, 그 이후에도 계속 선발하려 한다. 이들과 한성 노벨 영/수재 장학생들이 서로 교류하여 함께 세계화한다면,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겠는가. 그리고 에티오피아에 가전제품 수리나 차량운전, 정비 또는 봉제기술 등을 가르치는 기술학교를 신축 설립하려 한다. 우리재단과 협력할 파트너와 함께 기술교육을 실시하고, 나아가 그들이 직장에 취직하거나 소규모 사업자가 되도록 도우려 한다.”

노벨상을 넘어서는 ‘한성과학기술상’에 대한 기대는 손 이사장을 달뜨게까지 한다. 손 이사장은 아예 전 재산을 한성과학기술상에 걸 작정이다. “10년 안에는 노벨상을 수상하는 영웅들이 탄생될 것이라고 본다. 여기에 내가 더 하려 하는 건 ‘한성과학기술상’을 만드는 것이다. 노벨상을 앞지르는 상이다. 노벨상이 1901년에 출발해서 1세기 조금 지났다. 우리는 1세기 늦었지만 노벨상을 추월하는 상을 만들고자 한다. 노벨상은 수상자 1인당 100만불을 상금으로 주지만, 우리는 200만불을 상금으로 주려 한다. 두 배다. 세계석학들이 노벨상보다 한성과학기술상을 주목하게 되리라 본다. 망상 같기도 하지만, 10년을 더 살면 내가 해낼 것이다.”

<일반고 환영.. 열심히 배운 후 많이 생각하라>
손 이사장은 “재단 운영원칙 1호는 공익”이라고 강조한다. “설립취지에 따라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것이다. 향후 우리재단은 설립자인 나의 뜻에 가장 부합하고 설립취지를 충실히 이어갈 인재가 재단을 운영하게 될 것이다. 또한 지금보다는 재단규모나 사업규모가 훨씬 커져 있을 것이다. 남은 나의 재산을 추가로 출연하여 인재양성의 삶을 더욱 성대하게 보내려 한다.”

대한민국을 이끌 영/수재들,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따뜻한 조언을 전했다. “나는 우리재단의 장학생 선발에 과학영재학교 과학고 일반고 상관 없이 과학과 경제학에 관심 있고 열정적인 학생들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도록 여러 조치를 했다. 더 많은 학생들에게 우리재단이 알려져서 많은 학생들이 장학금을 수령하여 부모님께 효도하고, 여름캠프에 참가하여 나와 같지만 다른 전국의 영/수재들과 어울리길 바란다. 우리재단의 장학생 선발에 도전하라. 어려운 선발과정에 참여해 보는 것도 여러분의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고, 지금까지 열심히 해온 것들이 정당하게 평가 받는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재단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진정한 ‘과학 인문 영/수재’를 찾는다. 한성장학생이 되어 만나는 날을 고대하고 있겠다. 덧붙이자면,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다. 논어 위정편 공자님 말씀에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학이불사칙망 사이불학칙태)’라 했다. 배웠으되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뜻이다. 열심히 배운 후 많이 생각하여 깊은 지혜를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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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 기자  inca@veritas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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