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윈 브룩스 화이트(E. B. White)

『샬롯의 거미줄』은 미국의 권위 있는 아동문학상인 뉴베리 아너상을 수상하고, BBC가 선정한 인기 아동문학 1위에 오르는 등 1952년 출간된 이래 영어권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아온 작품 중 하나로 꼽힙니다.

작가 엘윈 브룩스 화이트(E. B. White)는 영어권에서 작가를 희망하는 이들의 교과서로 불리는 『글쓰기의 법칙(The Elements of Style)』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스토리텔링의 기적”이자, “글쓰기를 원하는 사람은 모두 읽어야 할” 책으로 인정받으며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샬롯의 거미줄』은 작가의 아름답고 풍부하면서도 간결하고 명료한 글쓰기 스타일이 잘 드러난 대표작입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다양한 생명에 대한 존중과 긍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술적인 환경에서 늘 글을 읽고 자연을 탐험하며 자란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이 그림이나 영화를 보듯 생생하게 묘사된 자연 풍경과 계절의 변화에 드러나고, 인간과 동물, 자연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관조가 어우러지며 생명의 소중함과 성장의 가치를 돌아보게 합니다.

'샬롯의 거미줄' 원서와 번역본.
'샬롯의 거미줄' 원서와 번역본.

“그건 불공평해요(It’s unfair)”: 모든 생명이 소중해

『샬롯의 거미줄』은 아빠 애러블씨(Mr. Arable)와 딸 펀(Fern)의 실랑이로 시작합니다. 애러블씨는 집에서 기르는 돼지가 낳은 약한 새끼를 죽이려 하고, 펀은 아빠의 도끼를 부여잡고 새끼 돼지를 죽이지 말라며 떼를 쓰지요. 아빠는 결국 딸의 간청대로 아기 돼지를 내어줍니다. 펀은 이 돼지를 윌버(Wilber)라고 부르며 정성껏 돌봅니다.

소설의 첫 장면인 실랑이는 아빠와 딸 사이의 흔한 옥신각신처럼 재미있고 귀엽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약한 새끼를 죽이려는 아빠의 행동을 “불공평”하다고 주장하는 펀의 항변입니다. 단지 작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아무 잘못 없이 죽임을 당한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라면 그럴 일 없을 것을 동물이기에 당한다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펀은 주장합니다. 이에 반해 아빠는 약한 동물은 골칫덩이일 뿐이며, 인간 아기와 새끼 돼지는 결코 같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엄마도 아빠 편입니다. 약하게 태어난 새끼 돼지는 결국 죽게 될 테니, 차라리 일찍 죽이는 편이 고통을 덜 받는 길이라고 생각하죠.

애러블씨와 펀의 실랑이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을 보여줍니다. 애러블씨가 자연, 혹은 생명에 대해 현실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 반해 펀은 모든 생명을 소중하고 평등하게 바라봅니다. 펀에게 동물의 목숨은 인간의 목숨만큼 소중합니다. 작고 약하게 태어난 것, 동물로 태어난 것이 아기 돼지의 잘못이 아님에도 단지 인간에게 골칫덩이가 된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죠.

우리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당연한 듯 자연을 희생시키며 살아왔습니다. 오랜 옛날부터 잡아먹거나 일을 시키기 위해 동물을 키웠고, 큰 건물을 짓기 위해 나무를 베고 땅을 파헤쳤습니다. 수천 년간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인간 중심의 현실주의는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펀의 부모도 그렇습니다. 오히려 인간과 동물의 목숨을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는 펀의 주장이 부모의 눈에는 비현실적이고 앞뒤가 맞지 않아 보입니다.

사실 “공평”이라는 단어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공평함, 혹은 정의를 주제로 많은 철학자가 두툼한 책들을 펴냈지요. 이 글에서 공평을 주제로 논의하기는 어렵지만 펀이라는 순수한 어린아이의 관점은 그간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을 돌아보게 합니다.

영화 '샬롯의 거미줄'(2006)의 포스터.
영화 '샬롯의 거미줄'(2006)의 포스터.

“그게 내 천성인걸(it’s the way I’m made)”: 다양성을 존중해 줘

펀의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던 아기 돼지 윌버는 5주가 되었을 때 펀의 삼촌인 주커만씨 농장으로 팔려 갑니다. 펀의 보살핌을 받으며 다섯 주 동안 성장한 윌버는 이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키워나가는 돼지로 성장합니다. 친구가 그리워 우는 윌버에게 거미 샬롯이 친구가 되어 줍니다. 샬롯 A. 카바티카. 사탕 크기의 아름다운 회색 거미가 공중에 매달려 손을 흔들며 윌버에게 자신을 소개합니다. 윌버는 친구가 생겼다며 기뻐하지만, 곧 충격을 받습니다. 샬롯이 사냥하는 모습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거든요.

샬롯은 거미줄을 쳐놓고 파리가 걸리기를 기다렸다가, 걸려든 파리를 잽싸게 낚아채서 꽁무니에서 거미줄을 뽑아 둘둘 말고 굴리고 기절시켜 피를 빨아 먹습니다. 이런 샬롯을 지켜보던 윌버는 경악합니다. 하지만 샬롯이 말하듯이, 거미들이 잔인한 것이 아니라 단지 먹이를 구하는 방식이 돼지와 다를 뿐입니다. 돼지는 인간이 매 끼니를 제공해주지만 거미들은 스스로 거미줄을 쳐서 덫을 놓고 기다렸다가 걸려든 먹이를 먹고 살아갑니다. 거미줄을 짜는 기술은 생존을 위해 조상 대대로 내려온 것입니다. 거미는 날 때부터 사냥 방식에 적합한 신체 조건을 갖고 태어납니다. 이 특징들은 유전적으로 정해진 것으로, 싫다고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돼지인 윌버가 제아무리 노력해도 거미줄을 짜지는 못하는 것처럼요.

다양한 생명체들은 각기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에서 생존합니다. 무섭고 끔찍해 보이는 거미의 사냥법도 자연의 다양한 생명체들이 생존하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존재들이 친구가 되려면 각자의 존재 방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간이 먹이를 주는 집돼지인 윌버는 매 끼니 사냥을 해서 먹고살아야 하는 샬롯을 이해해야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서로 다른 이 생명체들의 개성과 능력이 모여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샬롯의 무시무시한 사냥은 근사한 거미줄 짜기 솜씨와 부지런함, 그리고 사냥 기술로 단련된 지혜가 결합해 이루어집니다. 바로 이런 샬롯의 능력이야말로 윌버를 살린 힘이었지요. 샬롯은 자신의 거미줄 짜기 능력에 지혜를 더해 근사한 글자들을 부지런히 짜내어 윌버를 구합니다. 그리고 샬롯의 말대로, 만약에 거미가 그렇게나 많은 벌레를 잡아먹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벌레들로 가득 차게 될지 모릅니다.

자연 안의 생명체들은 서로 다른 특성, 서로 다른 장단점을 가지고 공존합니다. 이 생명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생존하는 길이겠지요. 윌버가 너무도 끔찍하고 무섭게 여겼던 거미 샬롯을 이해하고 친구로 받아들임으로써 생존할 수 있었던 것처럼요.

“쥐한테는 친절한 말이라고는 한마디도 없다고(Never a kind word for a rat)”: 다를 뿐이야

윌버는 주커만씨 농장에서 여러 동물을 만납니다. 암거위, 수거위, 수탉, 젖소, 양, 그리고 쥐. 템플턴은 오로지 먹을 것에만 관심이 있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쥐입니다. 템플턴을 움직이는 건 오로지 먹을 것입니다. 템플턴은 늘 거래로 자기 이익을 얻고 나서야 남의 부탁을 들어줍니다. 그리고 이런 성격은 소설 내내 변하지 않지요. 품평회장에서 샬롯이 알을 낳고 죽어가는 슬픈 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템플턴은 앞으로 평생 음식을 먼저 먹게 해주겠다는 윌버의 약속을 받아내고서야 비로소 천정에 있는 샬롯의 알주머니를 내려옵니다.

템플턴은 문학 작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코믹 릴리프(comic relief)’입니다. 코믹 릴리프란 심각하거나 비극적인 요소를 가진 희곡에 삽입하여 긴장을 일시적으로 풀기 위한 희극적 장면, 사건, 혹은 인물을 말합니다. 세련되고 유식하며 친구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위대한 면모를 지닌 샬롯과 대비되는 코믹 릴리프가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템플턴입니다.

하지만 템플턴은 긴장을 잠시 풀어주는 코믹 릴리프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을 주어 문제를 해결하곤 하죠. 펀의 말썽꾸러기 오빠 에이브리가 주커만씨 헛간에서 샬롯을 잡으려 했을 때, 템플턴이 숨겨놓은 곯은 거위알이 없었다면 샬롯은 에이브리에게 잡혀 죽었을 것입니다. 샬롯에게 잡지를 가져다주어 멋진 글자들을 거미줄에 새기도록 도와준 것도 템플턴입니다. 또 품평회 시상식에서 윌버가 기절했을 때 템플턴이 윌버의 꼬리를 깨물어 깨우지 않았다면 윌버는 특별상을 타지 못했을 것입니다. 샬롯이 필생의 역작으로 짜놓은 알바구니를 꺼낸 것도 바로 템플턴입니다.

무엇보다 템플턴이 없었다면 윌버를 살리려는 샬롯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윌버를 살린 샬롯의 거미줄에는 템플턴의 공도 적지 않게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템플턴이 불평하듯이, 그는 늘 경멸의 대상입니다. 빨리 샬롯의 알주머니를 꺼내 달라는 윌버의 간청에 템플턴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빨리, 템플턴’이라고? 허허, 웃기는군. 내가 이렇게 봉사하면 어떤 감사를 받을지 궁금한데? 만만한 템플턴한테는 친절한 말이라곤 한마디도 없고, 돌아오는 거라곤 그저 모욕과 비꼬는 말과 옆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뿐이지. 쥐한테는 친절한 말이라곤 한 마디도 없다고.

“So, it’s ‘Hurry up, Tmepleton,’ is it?” he said, “Ho, ho. And what thanks do I ever get for these services, I would like to know? Never a kind word for old Templeton, only abuse and wisecracks and side remarks. Never a kind word for a rat.”

작가는 왜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고 뻔뻔한 템플턴에게 문제가 있을 때마다 이를 해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부여했을까요? 템플턴의 불평처럼 우리는 템플턴을 혐오스럽고 경멸스러운 존재로만 인식할 뿐, 그가 해낸 중요한 역할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의 탐욕과 이기심은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그는 탐욕스럽지만 사악하지 않습니다. 거래를 하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꼭 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지도 않죠. 화이트는 탐욕까지도 세계의 한 부분으로 포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우리는 탐욕과 이기심을 배척하고 배제해야 할 것으로 여기지만 탐욕이 없이는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음식을 먹어야 생존할 수 있는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탐욕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귀여운 새끼 동물들이 한배에서 태어난 형제들과 다투며 어미젖을 빨고 먹이를 먹는 걸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서, 그리고 어린 아기가 아닌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면서, 우리는 탐욕과 이기심을 누르고 다른 생명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때로는 손해 보거나 희생하면서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안에 있는 탐욕과 이기심을 나쁜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보다는, 그것의 가치, 즉 생명체의 기본적인 생존을 가능케 하는 그 가치를 인정하면서 더 큰 사랑으로 나아갈 길을 찾는 게 옳다고 작가는 말하는 듯합니다. 탐욕스럽지만 정말 위급할 때 친구를 돕던 템플턴처럼 말이죠.

“내가 눈부시게 느껴져(I feel radiant)”: 아름다운 말로 너를 규정해 봐 

윌버를 구하기 위해 샬롯이 생각해 낸 방법은 거미줄에 윌버를 가리키는 아름다운 단어를 새겨 넣는 것이었습니다. 샬롯은 주커만씨의 헛간에 “대단한 돼지(SOME PIG)”, “근사해(TERRIFIC)”, “눈부신(RADIANT)”이라는 글자를 거미줄에 새겨 넣었고, 품평회에서는 “겸손한(HUMBLE)”이라는 단어를 새겨 넣습니다. 샬롯이 예측한 대로, 문자로 된 건 뭐든 믿는 사람들은 몹시 놀라며 윌버를 신이 내린 불가사의한 계시이며 감히 햄으로 만들어 먹을 수 없는 돼지로 여기게 됩니다.
윌버를 살리기 위한 샬롯의 노력은 단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샬롯의 거미줄은 윌버를 변화시킵니다. 윌버는 샬롯의 거미줄에 새겨진 글자처럼 그렇게 멋진 돼지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샬롯의 거미줄에 ‘대단한 돼지’라고 씌었을 때는 대단한 돼지처럼 보이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샬롯의 거미줄에 ‘근사해’라고 씌었을 때는 근사하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이제 그 거미줄에 ‘눈부신’이라고 씌어 있으므로 윌버는 눈부시게 보이려고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눈부시게 보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윌버는 의지를 가지고 거기에 몰두했다. 윌버는 고개를 약간 돌리고 기다란 속눈썹을 깜박였다. 그런 다음 깊게 숨을 쉬곤 했다. 그리고 구경꾼들이 지루해하면 공중으로 껑충 뛰어올라 몸통을 반쯤 비틀면서 뒤로 공중제비를 넘었다. 이쯤에서 사람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보내곤 했다.

When Charlotte’s web said SOME PIG, Wilbur had tried hard to look like some pig. When Charlotte’s web said TERRIFIC, Wilbur had tried to look terrific. And now that the web said RADIANT, he did everything possible to make himself glow.

It is not easy to look radiant, but Wilbur threw himself into it with a will. He would not turn his head slightly and blink his long eye-lashes. Then he would breathe deeply. And when the audience grew bored, he would spring intothe air and do a back flip with a half twist. At this the crowd would yell and cheer. 

공중제비를 넘는 윌버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샬롯이 거미줄 안에 단어들을 짜놓은 것도 놀랍지만, 사람들을 정말 감탄시킨 것은 그 단어들대로 근사하고 눈부시게 보이려 속눈썹을 깜박이고 멋지게 공중제비를 넘는 돼지 윌버의 모습입니다. 윌버는 샬롯이 거미줄로 짜놓은 단어들처럼 대단하고 근사하고 눈부신 돼지가 되려 노력합니다. 샬롯의 거미줄이 특별한 이유는 이렇게 평범한 돼지 윌버를 특별한 돼지가 되도록 노력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또 샬롯의 거미줄 덕에 사람들은 윌버를 특별한 돼지로 보게 됩니다. 주커만씨는 일꾼 러비에게 돼지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윌버를 품평회에 싣고 갈 초록 수레를 금장으로 장식하기도 합니다. 주커만 부인은 윌버에게 버터우유 목욕을 시키며 소중히 여깁니다. 이렇듯 샬롯이 거미줄에 새긴 단어들은 윌버를 변화시키고,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마침내 윌버를 구해냅니다.

언어에는 마술적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물을 어떤 말로 형용하느냐는 그 사물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아름다운 언어로 윌버를 규정한 샬롯은 윌버의 “진정한 친구이자 좋은 작가(both a true friend and a good writer)”였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가요? 가족, 혹은 친구들은 어떤 단어들로 표현하고 싶은가요? 여러분 자신에게 멋진 형용사를 붙여 보세요. 그리고 가족, 친구들에게도 멋진 단어를 붙여 보세요. 샬롯이 윌버에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언제 햄이 될지 몰라 두려움에 떨던 돼지가 공중제비를 넘는 멋진 돼지가 된 것처럼, 멋지고 근사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게 될지 모릅니다.

- 다음 편 예정

다음에 다룰 원서는 루이스 쌔커의 『구덩이(Holes)』입니다. 이 작품은 지독한 불운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믿는 소심한 소년 스탠리가 자기 삶의 주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줍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독특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 독자는 ‘나는 누구인가’,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함종선 mysstar@naver.com
연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미 에모리(Emory)대 박사후 연구과정을 수료한 후 서울대, 방송통신대 강사를 거쳐 민사고와 하나고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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