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 안면기형 소년 어기의 삶.. '친절함에 대한 세밀한 고찰'

한 아이가 태어납니다. 안면기형으로 태어난 아이는 어찌나 얼굴이 일그러졌던지 출산을 돕던 의사는 기절하고, 간호사는 산모가 볼까 봐 아기를 안고 병실을 뛰쳐나갑니다. 출산 장면을 촬영하다 당황한 아빠는 카메라를 떨어뜨려 카메라는 산산조각이 납니다. 아이는 대수술만 스물일곱 번을 받지만, 밖을 나서면 여전히 충격과 혐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시선을 받습니다. 다행인 것은 이 아이를 우주의 중심인 양 보호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열 살이 되고, 이제 가족의 품에만 머물 수 없다는 걸,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에 가야 한다는 걸, 아이와 부모 모두 알고 있습니다.

 

'원더'의 영어 원서와 한국어 번역본 표지
'원더'의 영어 원서와 한국어 번역본 표지

R. J. 팔라시오의『원더』는 선천적 안면기형으로 태어난 소년 어거스트, 어기(Auggie)가 가족을 벗어나 학교라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에는 자신이 “평범한 열 살 소년이 아님”을 잘 아는 어기와 그의 가족, 그리고 친구들의 경험과 깨달음, 감정들이 촘촘히 새겨져 있습니다.

찬사 속에 큰 성공을 거두고 영화화되기도 한 이 소설은 작가의 실제 경험이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소설 속 잭의 보모 베로니카처럼, 작가는 두 아들을 데리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다가 안면기형인 아이와 마주칩니다. 아이들은 놀라서 울고, 팔라시오는 안면기형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아이들과 서둘러 그곳을 떠납니다. 그러고는 이내 후회합니다. 허둥지둥 떠나는 대신 아이에게 다가가 말을 붙여 보았다면, 그래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그렇게 울며 무서워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더라면 좋았을걸, 하고 말이죠. 한편으론 온 세상 사람들에게서 외면받는 안면기형 아이에게 세상은 어떤 것일지 생각해 봅니다. 작가는 이 경험으로 인간관계의 기본인 ‘친절’이라는 주제에 다가가게 됩니다. 쉬워 보여도 ‘친절’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꼭 나쁜 마음을 먹어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게 아닌”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원더'는 ‘친절’이라는 주제에 담긴 다양한 차원의 의미들을 독특한 문체에 담아 세밀하게 그려냅니다.

영화 '원더' 포스터
영화 '원더' 포스터

 

다중시점: 다양한 스타일

『원더』는 주인공 어기뿐 아니라, 잭, 서머, 비아, 미란다, 저스틴도 서술자로 등장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갑니다. 이 ‘다중시점(multiple points of view)’ 서술 덕분에 독자는 다양한 시각으로 인물이나 사건을 들여다보고 이야기에 더 공감하며 몰입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원더』의 다중시점 서술이 인물의 성숙도와 사고의 깊이, 개성에 따라 다양한 문체로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이제 갓 열 살이 된 어기와 잭, 서머가 쓰는 언어는 그 또래답게 단순합니다. 반면에 십 대 중반, 이제 고등학생이 된 비아와 미란다, 저스틴의 서술은 단어 수준부터 비유적 표현과 암시, 상황 이해까지 열 살 아이가 쓰는 것과는 다릅니다.

어기의 누나 비아는 안면기형으로 태어난 동생을 철벽같이 보호합니다. 비아에게 동생을 보호하는 행위는 판단이나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본능처럼 몸에 배었습니다. 하지만 어기가 큰 수술을 받게 되고 그 때문에 한 달간 할머니 댁에 머물다 돌아온 비아의 마음에 균열이 가기 시작합니다. 비아는 이렇게 회상합니다.

 

어거스트는 온 마음을 다해 내게 입을 맞추는데, 나는 어거스트의 턱 밑으로 줄줄 흘러내리는 침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빤히 쳐다보거나 얼굴을 돌려버리는 그런 사람들처럼, 나도 그곳에 그렇게 서 있었다. 끔찍스러워하며, 역겨워하며, 겁에 질린 채.
다행히 그런 감정은 잠시였다. 어거스트가 끽끽 웃는 소리를 듣는 순간, 그 감정은 사라졌다. 모든 것이 예전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그 일은 나에게 문을 하나 열어놓았다. 몰래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구멍. 그 구멍 반대편에는 두 어거스트가 있었다. 내가 맹목적으로 보던 어거스트와 다른 사람들이 보던 어거스트.

But as he was kissing me with all his heart, all I could see was the drool coming down his chin. And suddenly there I was, like all those people who would stare or look away. Horrified, Sickened, Scared.
Thankfully, that only lasted for a second; the moment I heard August laugh his raspy little laugh, it was over. Everything was back the way it had been before. But it had opened a door for me. A little peephole. And on the other side of the peephole there were two Augusts; the one I saw blindly, and the one other people saw.

 

이전에는 동생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뿐, 동생의 얼굴이 흉측하다고 여긴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떨어져 지내는 기간은 동생을 ‘객관적’ 거리를 두고 보는 계기가 됩니다. 무조건 받아들이고 “맹목적으로(blindly)” 사랑하던 어린 비아의 내면에 “몰래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구멍”, 즉 균열이 생깁니다. 비아는 이제 타인의 시선이 어떠한지 이해하게 됩니다.

저스틴의 서술 스타일은 소설에서 가장 독특합니다. 저스틴은 음악에 깊이 빠져 있고, 내성적이며, 생각이 많은 인물입니다. 저스틴의 서술은 대문자 없이 소문자로만 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저스틴의 생각을 글로 표현한다면 낮은 음표로만 이루어진 악보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합니다. 작고 낮은 소문자들이 수줍고 내성적인 저스틴을 드러내는 데 적합하다고 본 것이죠.

 

올리비아의 부모님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분들이다. 만나자마자 나를 편하게 대해준다. 웨이터가 메뉴를 가져오고, 어거스트에게 눈길이 닿는 순간 웨이터의 표정이 확 바뀐다. 하지만 모르는 척한다. 오늘 밤은 모두 모르는 척하는 분위기다. 나의 틱도 어거스트가 나초를 우적우적 씹어 먹고, 부스러기를 숟가락에 떠서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도. 올리비아를 바라보니 나를 보고 싱긋 웃어준다. 올리비아는 안다. 올리비아는 웨이터의 얼굴을 본다. 내 틱을 본다. 올리비아는 뭐든 보는 소녀다.

her parents couldn’t be nicer. put me at ease right away. the waiter brings over the menus and i notice his expression the moment he lays eyes on august. but i pretend not to notice, i guess we’re all pretending not to notice things tonight. the waiter. my tics. the way august crushes the tortilla chips on the table and spoons the crumbs into his mouth. i look at olivia and she smiles at me. she knows. she sees the waiter’s face. she sees my tics. olivia is a girl who sees everything.

 

이 서술을 읽다 보면, 낮은 음계의 음악처럼 낮은음으로 소곤소곤 말하는 저스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웨이터의 표정, 저스틴의 틱, 어기가 먹는 모습,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보며 미소 짓는 올리비아의 모습은 비록 짤막하게 묘사되지만, 식탁의 분위기가 어떨지 독자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소설에는 교장 선생님과 줄리안 어머니의 정중한 형식을 갖춘 문자메시지나 편지가 있고, 실제 십 대들이 쓰는 형식과 문법을 무시한 문자메시지도 나옵니다. 다양한 문체와 만나는 건, 이 소설을 원서로 읽을 때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경험입니다.

 

친절: “사람의 모습을 한 신의 얼굴”

“[신의 얼굴은] 사람들이 베푸는 친절 속에서 어렴풋이 빛났고,” 교장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며 되풀이했다. “정말 간단한 일이죠, 친절이란. 참으로 간단한 일, 누군가 필요로 할 때 건네는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 우정어린 행동. 지나가며 한 번 웃어주기.”

“[The face of God] glimmered in their kindness to him,” he repeated smiling, “Such a simple thing, kindness. Such a simple thing. A nice word of encouragement given when needed. An act of friendship. A passing smile.”

 
『원더』의 졸업식 장면에서 터시먼 교장 선생님은 ‘친절’을 주제로 연설합니다. 교장 선생님은 일상의 작은 행동인 친절은 타고나는 성품이 아니라 개인이 결심하고 노력해야 하는 ‘선택’임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잭은 어기의 ‘환영 친구’가 되어주라는 교장 선생님의 부탁을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자신의 동생마저 어기를 보고 도망쳤다는 말을 듣고는 환영 친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모든 이의 외면을 받는 어기를 자기라도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겁니다. 서머 또한 아이들에게서 전염병처럼 따돌림당하는 어기의 옆자리에 앉아 같이 점심을 먹는 친구가 되어주기를 ‘선택’합니다.

이때 ‘선택’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내 편이냐 네 편이냐처럼 양자택일이 아닙니다. 『원더』의 아이들은 각자가 낼 수 있는 만큼 용기를 내어 친절을 선택합니다. 잭은 어기와 수업 교실에 같이 가거나 옆자리에 앉지만, 식당에서만큼은 같이 앉아 밥을 먹지 않습니다. 어기의 친구가 되느라 이전 친구들을 모두 잃고 싶지는 않았던 겁니다. 모범생이고 인기 많은 샬롯도 자신이 낼 수 있는 만큼 용기 내어 친절을 선택합니다. 어기를 괴롭히는 줄리안 무리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적극 어기의 편을 들어 친구를 잃고 싶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줄리안 무리였던 헨리, 아모스, 마일스도 캠프에서 위험에 처한 어기를 보호합니다. 처음엔 어기를 따돌렸던 다른 아이들도 자꾸 바라보고 익숙해지면서 어기가 괴물이 아니라, 자신들과 같은 평범한 아이라는 것을 깨달아갑니다. 이런 깨달음을 얻으며 아이들은 조금씩 변하고, 더 많은 친절을 선택해 나갑니다.

“만약 옳음과 친절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을 택하라”

브라운 선생님은 어기의 첫 수업에서 “만약 옳음과 친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을 택하라(WHEN GIVEN THE CHOICE BETWEEN BEING RIGHT OR BEING KIND, CHOOSE KIND)”라는 금언을 내놓습니다. 옳음과 친절, 둘 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덕목이지만, 이 둘은 종종 충돌하고 대립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레미제라블』은 은식기를 훔친 장발장의 범죄를 끝까지 밝혀내려는 자베르 경감의 ‘옮음’과 은식기에 더해 은촛대까지 내준 미리엘 신부의 자비와 ‘친절’을 두고 인간을 구원하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소설입니다. 『원더』도 몇몇 장면으로 독자에게 이 질문을 던집니다.

가장 분명한 예로, 어기를 학교에 받아들인 교장 선생님에게 던지는 줄리안 어머니의 문제 제기입니다. 줄리안 어머니는 통합교육 학교가 아님에도 심각한 안면기형인 아이를 들인 점, 입학 절차가 다른 아이들과 달랐던 점, 학부모들의 동의 없이 진행된 점 등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안면기형인 아이에 대한 교장 선생님의 ‘친절’이 입학 행정 절차와 학부모 동의라는 ‘옳음’을 지켰느냐 하는 질문인 거죠. 교장 선생님은 편파적인 요소는 없었으며, 어기와 같이 공부하는 건 오히려 공감과 우정, 의리 등의 가치에 대해 배울 훌륭한 기회가 된다고 말합니다. “옮음”과 “친절”, 토론해 볼 좋은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우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우주의 가장 연약한 창조물들을 보살펴 준다.”

미란다의 말이 자꾸 생각난다: 우주는 어기 풀먼에게 친절하지 않아. (…)
우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우주의 가장 연약한 창조물들을 보살펴 준다. 맹목적으로 사랑을 주는 너의 부모님, 너를 두고 평범한 사람이 된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누나. 너의 일로 왕따를 당하는 걸걸한 목소리의 그 녀석. 그리고 심지어 네 사진을 지갑 속에 지니고 다니는 분홍 머리 여자애까지. 설령 우주가 복권 뽑기라도, 우주는 결국 모든 것을 공평하게 만들어준다. 우주는 모든 새를 돌보아 준다.

miranda’s words keep coming back: the universe was not kind to auggie pullman. (…)
it takes care of its most fragile creations in ways we can’t see. like with parents who adore you blindly. and a big sister who feels guilty for being human over you. and a little gravelly-voiced kid whose friends have left him over you. and even a pink-haired girl who carries your picture in her wallet. maybe it is a lottery, but the universe makes it all even out in the end. the universe takes care of all its birds. 

미란다는 말합니다. “이 우주는 어기 풀먼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아.” 아무런 잘못도 없이 안면기형으로 태어나 스물일곱 번이나 고통스러운 수술을 하고, 마치 전염병처럼 사람들에게서 혐오의 눈길만을 받는 어기에게 이 우주는 결코 친절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용기 내어 세상에 나왔을 때, 어기는 친절을 베풀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친구가 되어준 잭과 서머가 있고, 어기를 학교에 기꺼이 받아주고 편견 없이 대해 준 학교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어기를 우주의 중심처럼 보호하고 사랑하는 가족이야말로 “연약한 창조물”인 어기를 보살펴 주는 우주의 자비라 할 수 있습니다. 어기의 가족은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합니다. 또 미란다나 저스틴처럼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을 품어주고, 노숙자가 기르던 개 데이지를 얼떨결에 사서 가족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어기를 보호하고 지켜준 건 바로 어기 자신이었습니다. 모두가 수군대고 전염병 취급해도, 자신의 못난 얼굴을 친절하게 받아들여 준 어기 자신이야말로 어기를 지켜준 힘이었습니다. 어기도 나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생각하며 서러워 울기도 합니다. 하지만 용기 내 세상을 향해 발을 옮김으로써, 똑똑하고 유머러스하며 용감한 아이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어기가 “원더(wonder)”, 즉 기적이 된 이유일 겁니다. 가족과 이웃에게 보내는 작지만 따듯한 미소와 격려, 그리고 자신의 못난 부분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용기, 이것이 우주의 보살핌이자 기적이 아닐까요?

 

- 다음 편 예정

다음에 다룰 원서는 E. B. 화이트의 『샬롯의 거미줄(Charlotte’s Web)』입니다. 이 작품은 국내 독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E. B. 화이트는 그의 글쓰기 책이 미국 대학생과 작가들에게 교과서로 사용될 만큼 아름다운 영어를 쓰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생명의 소중함을 주제로 『샬롯의 거미줄』을 살펴보겠습니다.

 

함종선 mysstar@naver.com
연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미 에모리(Emory)대 박사후 연구과정을 수료한 후 서울대, 방송통신대 강사를 거쳐 민사고와 하나고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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