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우리나라만큼 영어교육 열풍이 뜨거운 나라도 드물 것입니다. 시대에 따라 영어교육도 변해 성적 위주의 학습이 중심에서 이제는 영어 능력 자체를 키우기 위한 학습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영어 능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공부는 원서 읽기입니다. 영어 원서는 문법이나 교과서 중심의 좀 재미없고 딱딱한 영어가 아닌, 살아있는 생생한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수단입니다.하지만 영어 원서 읽기가 단지 단어나 숙어, 혹은 부담 없는 다독을 통해 쌓이는 영어 친화성을 얻는 활동에 그치는 건 안타까운 측면이 있습니다. 원서에는 번역으로는 표현해내지 못하는 영어 고유의 상징적이고 문화적인 의미가 풍부하게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보물들을 건드려 보지도 못한 채, 겉핥기식 읽기로만 그친다는 건 아쉬운 일이죠. 이번 연재를 통해 이런 ‘겉핥기 읽기’를 벗어나 ‘깊게 읽기’로 가는 길을 열어보려고 합니다. 원서에 담긴 다양한 의미에 접근하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힘을 얻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1984년 1월 24일, IT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캘리포니아의 디엔자 대학 플린트 센터에 모인 수천 명 청중 앞에서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 시대를 열어젖혔다고 평가받는 매킨토시가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 행사의 주인공은 ‘매킨토시의 아버지’ 스티브 잡스였습니다. 그는 Apple Ⅱ와 IBM으로 대표되는 개인용 컴퓨터 1, 2세대를 이은 3세대인 매킨토시의 각종 사양과 용량, 새로운 기능을 설명한 다음, 가방에서 스크린이 내장된 매킨토시 실물을 꺼내 선보입니다. 그러고는 윗옷 안주머니에서 플로피 디스크를 꺼내 매킨토시에 끼우자, 영화 <불의 전차> 주제가가 흘러나오고, ‘MACINTOSH, insanely great!(매킨토시, 진짜 대단해!)’라고 한 자 한 자 컴퓨터 스크린에 새겨집니다. 뒤이어 매킨토시의 아름다운 폰트와 다양한 아이콘, 그림들의 근사한 그래픽 디스플레이가 펼쳐지자, 청중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보냅니다. 매킨토시가 최초로 말하는 기능을 선보이자 청중의 환호는 최고조에 달합니다. 스타워즈에 등장할 법한 로봇의 목소리로 매킨토시는 유머러스하게 자신을 소개하고는, 스티브 잡스를 자신의 아버지라 말합니다. 

매킨토시 발표날, 화면에 ‘MACINTOSH, insanely great!’라고 새겨지는 모습 /유튜브 캡처
매킨토시 발표날, 화면에 ‘MACINTOSH, insanely great!’라고 새겨지는 모습 /유튜브 캡처

개인용 컴퓨터 역사에 일대 혁명으로 평가받는 매킨토시의 혁신은 무엇보다도 아이콘을 클릭하여 프로그램에 접속하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를 채택했다는 점입니다. 이제 컴퓨터에 복잡한 도스 명령어를 입력하는 대신, 아이콘을 클릭하여 손쉽게 프로그램에 접속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매킨토시는 GUI 이외에도, 스크린과 스피커가 본체에 내장되고 마우스로 조작하는 등, 이전에 보지 못한 최초의 기능들을 담은 개인용 컴퓨터였습니다. 이런 기능들은 지금 우리에게는 익숙하고 당연한 기술이지만, 당시에는 이전에 본 적 없는 전혀 새로운 컴퓨터의 출현을 알리는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를 우리 시대 창의와 혁신의 대명사로 칭하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는 평범한 노동자 집안의 입양아로 자라 스무 살에 아버지 집 차고에서 친구 워즈니악과 단둘이 애플을 창업합니다. 애플은 10년 만에 직원 4천 명을 둔 20억 달러 자산의 회사로 성장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기술 혁신과 빼어난 광고전략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매킨토시를 상업적으로 성공시키지만, 이듬해에 애플에서 해고됩니다. 창업 후 10년을 전력투구한 회사에서 해고된 아픔은 작지 않았을 테지만 잡스는 멈추지 않습니다. 애플에서 해고된 후, 픽사를 설립하여 최초의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인 <토이 스토리(Toy Story)>와 <벅스 라이프(Bug’s Life)>를 선보인 것이죠. 픽사의 CG 애니메이션 등장으로 기존 애니메이션 시장은 판도가 바뀌고, 디즈니로 대표되는 기존 애니메이션이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2000년, 애플 CEO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과 아이튠을 출시하여 디지털 대중음악 시장의 판도까지 바꾸어 놓았고, 이후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스마트기기 혁명을 이끌며,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디지털 모바일의 생태계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때로는 실패도 하면서, 혁신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 갔습니다. 2020년대 현재, IT 기술은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을 당시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화하고 있지만, 우리가 생활하고 일하고 문화를 즐기는 방식의 바탕은 스티브 잡스가 이루어 놓은 기술입니다. 그는 단지 수익을 좇는 사업가(businessman)가 아니라, 기술 혁신으로 새로운 길과 가치를 추구하는 모험적인 기업가(entrepreneur)의 표상을 보여줍니다.

스티브 잡스의 창의와 혁신 정신은 그의 수많은 프레젠테이션, 슬로건, 어록 속에 남아있습니다. 그중에서도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설은 평생을 창의적 혁신가로 살아온, 그리고 죽음의 위협까지 직면해 본 잡스의 단단하고 깊은 성찰과 철학이 담긴 명연설문으로 꼽힙니다. 이 연설에서 그는 태어나자마자 입양돼 자란 유년 시절부터 대학 시절, 애플을 세우고 해고당하고 또 그것을 극복해 나간 시간, 죽음과 마주한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나온 날들을 담담하면서 유머러스하게, 또 강력하고도 풍부한 울림을 주는 이미지와 어구로 풀어내 청중을 사로잡습니다. 이 연설에 잡스가 전 생애를 통해 구현해 온 창의와 혁신의 정신이 집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함이 궁극의 정교함이다(Simp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

1976년 컴퓨터 단순조립 회사로 출발한 애플은 이듬해인 1977년 개인용 컴퓨터 Apple II를 본격 출시합니다. “단순함이 궁극의 정교함이다”라는 문구는 Apple Ⅱ를 출시하면서 내놓은 홍보책자에 쓰인 슬로건입니다. 이후 ‘단순함’과 ‘정교함’이라는 키워드는 제품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회사의 운영방식과 홍보 등, 애플의 모든 것을 방향 짓는 정신이 됩니다. 월터 아이작슨 말대로 “단순함이란 복잡성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크린과 스피커를 컴퓨터 안에 내장하고, 복잡한 케이블 선들을 하나로 정리하며, 제품의 복잡한 모양들을 부드럽고 단순한 선으로 통일시키는 단순함입니다. 하지만 그 부드러운 단순함은 치열한 노력과 수많은 시도, 그리고 보이지 않는 부분에까지 최선을 다하는 완벽주의의 결과물입니다.

단순함 속에 정교함을 담은 애플의 디자인처럼,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설문은 단순하지만 잘 짜인 구조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우아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간결하고 우아한 문체를 배경으로 드러나는 강렬한 이미지와 명료한 메시지는 청중들을 매료합니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은 이 연설문의 특징을 애플의 디자인에 비유하여 “기교적인 미니멀리즘(artful minimalism)”이라 규정했습니다. 스탠퍼드 연설문의 기교적인 미니멀리즘의 특징은 우선 짜임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연설 서두에서 단지 세 이야기를 하겠다고 밝힙니다. 그 세 이야기는 그의 인생의 세 시기와 일치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세 시기로 개괄하면서 삶의 조언을 주는 구조를 가진 이 연설은 마치 잘 지어진 건축물을 보는 듯합니다.

첫 번째는 잡스가 태어나자마자 입양되고, 자라서 대학을 가지만 곧바로 휴학했던 시기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잡스는 대학 졸업과 성공적인 사회생활이라는 일반 공식을 따르지 않고 방황한 젊은 시절의 경험이 지금 성공한 기업가로서의 자신의 모습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말합니다.

두 번째는 애플을 창업하여 성공 가도를 달리다 해고로 좌절을 맞닥뜨린 후, 애플에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시기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잡스는 자신이 위대하다고 여기는 일,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찾으라고 역설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실패와 좌절을 이기는 힘이라고 말이죠.

마지막 세 번째는 췌장암을 진단받고 죽음과 마주 선 최근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죽음 앞에서 비로소 자신의 삶과 온전히 마주했다고 말하며,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보여줍니다.

기교적 미니멀리즘의 또 다른 예는 간결한 문장,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와 정교한 언어 선택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잡스의 연설문 전체가 사실 이러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한 예로 그가 대학을 중퇴하고 젊은 시절 방황했던 부분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잡스는 대학을 휴학한 후에도 캠퍼스에 남아 이리저리 관심 가는 강의를 기웃거리며 일 년이 넘는 시간을 보냅니다. 그는 당시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것은 사실 낭만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기숙사 방이 없어서 친구들 방의 바닥에서 잠을 잤고, 콜라병을 모아서 5센트씩을 받아 음식을 사기도 했으며, 하레 크리슈나 사원에서 주는 무료식사를 먹기 위해 매주 일요일 밤이면 7마일을 걸어가기도 했습니다. 좋았습니다. 내가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간 많은 것들은 나중에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것들이 되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친구 집을 전전하며 바닥에서 새우잠을 잤으면,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노숙을 했을 수 있습니다. 콜라병을 주고 5센트씩 모아 음식을 사거나 무료급식을 위해 7마일을 걸어갔으면, 굶는 때도 있었을 겁니다. 사실 고생스럽고 비참했을 수도 있는 상황을 스티브 잡스는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라고 표현합니다. 이 ‘낭만적(romantic)’이라는 단어는 당시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마무리 짓는 말, “좋았습니다(I loved it)”와 조응합니다. “I loved it”은 직접적으로는 사원에서 주는 무료식사가 맛있었다는 뜻이겠지만, 그 일차적 의미를 넘어서서 당시 방황하던 생활을 사랑했다는 의미를 포괄합니다. “It wasn’t all romantic”에서 시작해서 “I loved it”으로 끝나는 부분은 젊은 시절의 방황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정서와 사랑을 표현합니다. “I loved it”을 저는 “좋았습니다”로 번역했는데요, 번역이 담아내지 못하는 중층적 의미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위 인용문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단어는 ‘stumble’이라는 동사입니다. ‘stumble’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비틀거리며 걷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문장을 읽다 보면,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비틀거리기도 하면서 자유롭게 배회하는, 마치 히피 같은 잡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실제로 잡스는 젊은 시절 히피 문화에 심취했습니다. 잡스는 ‘stumble’이라는 단어를 통해, 젊은 시절 심장을 뛰게 할 그 무언가를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고 다니던 모습을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연설문에는 걷고 달리는 이미지가 강렬한데요, 예를 들어, 잡스가 애플에서 해고된 것을 “나에게 전달되고 있는 바통을 떨어뜨렸다(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on me)”라고 표현한 부분입니다. 대학 시절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며 할 일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천천히 자유롭게 ‘stumble’ 했다면, 잡스는 애플을 창업한 후 10년간 사업가로서 열심히 일해 온 것을 달리기 질주로 비유합니다. 이 달리기는 혼자 달리기가 아니라, 릴레이 달리기입니다. 데이비드 패커드, 밥 노이스 등 선배들이 달려온 경주를 이제는 자신이 바통을 이어받아 달리고 있는 시점에 그만 넘어지고 바통을 놓쳐버린 것입니다. 이를 통해 잡스는 자신의 사업을 IT 혁신적 기업가 전통 속에서 바라보고 있으며, 이윤추구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혁신적 가치와 사회적 책임을 중요하게 여기는 기업가 정신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인상적으로 표현합니다.

다른 것을 생각하라(Think different)

애플에서 쫓겨난 지 12년 만인 1997년에 임시 CEO로 돌아온 스티브 잡스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광고 슬로건은 “다른 것을 생각하라”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이맥을 성공시킴으로써 기울어가던 애플을 되살려 놓습니다. 아이맥은 플로피와 CD 디스크를 과감히 없애고, 반투명 케이스로 기존에 보이지 않던 컴퓨터 내부를 볼 수 있게 했습니다. 복잡한 케이블 더미를 제거해서, 사용자는 선 하나만 코드에 연결하면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기능이 덧붙여질수록 합체되고 단순화된 디자인에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듯” 퓨처리즘적인 외형을 갖춘 아이맥 컴퓨터는 애플의 창의와 혁신을 그리워하던 대중들을 다시 열광케 했습니다.

“Think different”의 의미는 이 광고의 전체 문구를 보면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미친 자들을 위해 축배를. 부적응자들. 반항아들. 사고뭉치들. 네모난 구멍에 박힌 둥근 말뚝 같은 이들.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사람들. 그들은 규칙을 싫어하고, 현실 안주를 원치 않습니다. 당신은 그들의 말을 인용할 수도 있고,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그들을 찬양하거나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할 수 없는 한 가지는 그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을 보고 미쳤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천재로 봅니다.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미친 자들, 바로 그들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Here’s to the crazy ones. The misfits. The rebels. The troublemakers. The round pegs in the square holes. The ones who see things differently. They’re not fond of rules. And they have no respect for the status quo. You can quote them, disagree with them, glorify or vilify them. About the only thing you can’t do is ignore them. Because they change things. They push the human race forward. While some may see them as the crazy ones, we see genius. Because the people who are crazy enough to think they can change the world, are the ones who do.

다른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규칙이나 통념의 틀에 매이지 않으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세상은 흔히 미친 사람이나 부적응자, 실패자로 간주하곤 합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고 인류를 진보시키는 이들은 바로 이런 다른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잡스는 말합니다.

스탠퍼드 연설문에서 스티브 잡스가 주는 역설적 조언들은 바로 “Think different”의 예시들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설계하거나 계산하지 말고 그냥 자신의 심장과 직관이 이끄는 대로 따르라고 조언하는가 하면, 성공과 실패에 대해 기존의 통념과 매우 다른 생각을 내놓습니다. 그는 애플에서 해고당한 자신이 “모든 이들에게 알려진 실패자(I was a very public failure)”였다며, 창피함에 실리콘 밸리를 떠날 생각까지 했었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애플에서 했던 일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새 출발을 합니다. 넥스트와 픽사를 설립하여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고, 애니메이션 업계의 판도를 바꾸어 놓습니다. 잡스는 당시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 당시는 알지 못했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내 인생에서 일어난 최고의 사건으로 드러났습니다. 성공의 무거움은 모든 것이 불확실한, 다시 시작하는 이의 가벼움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나는 자유로워졌고, 나는 인생에서 가장 창조적인 시기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여기서 성공과 실패는 무거움과 가벼움으로 비유됩니다. 성공의 무거움은 성공한 사람이 차려야 하는 사회적 체면이나 기대 등, 사람을 옭아매는 사회적 힘을 말할 것입니다. 마치 중력이 물체를 땅으로 잡아끌듯이, 성공한 사람은 사회의 중력에 끌려 땅으로 내려앉습니다. 이에 비해 새로 시작하는 이는 사회적 중력이라는 부담에서 해방되어 가볍고 자유롭게 날 수 있습니다. 가벼움과 불확실함이야말로 창조성의 조건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연설문을 읽지 않았어도, 누구든지 들어 봤을 그 유명한 문구, “항상 갈망하고, 항상 어리석어라(Stay hungry, stay foolish)”도 현실에 만족하지 말고 실패를 무릅쓰고라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추구하라는 조언입니다.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설문의 마지막 문장인 “stay hungry, stay foolish”.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설문의 마지막 문장인 “stay hungry, stay foolish”.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Technology married with humanities) 

애플의 정식 CEO가 된 2011년 스티브 잡스는 IT 역사에 기록되는 또 하나의 제품, iPad 2를 출시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깁니다.

애플의 유전자에는 기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교양 예술과 결합한 기술, 인문학과 결합한 기술이 우리의 심장을 노래하게 만드는 결과를 내놓지요.

It is in Apple’s DNA that technology alone is not enough—it’s technology married with liberal arts, married with the humanities, that yields us the results that make our heart sing.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이란 일차적으로 기술이 예술적인 디자인과 결합하여 실용적이고도 아름다운 제품을 내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겠지만, 한편으로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이해하여, 그들이 원하는 제품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모든 제품을 사용자가 쓰기 편하도록 단순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익을 계산하기보다는 좋은 제품을 내놓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누누이 밝히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오후를 보낼 수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기술을 내놓겠습니다(I would trade all my technology for an afternoon with Socrates).” 스티브 잡스가 2001년 뉴스위크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때, 기술은 우리의 심장을 노래하게 만들 결과를 내놓을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인간 중심은 연설문 내내 반복되는 메시지입니다. 연설문에서 그는 모든 외적인 요소는 중요하지 않으니, 너의 심장을 따르라, 네가 사랑하는 일을 하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이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되는 실존적인 조건인 죽음을 주제로 한 메시지에서 스티브 잡스의 인간 중심은 가장 강력하게 전달됩니다. 잡스에 의하면, 죽음이야말로 모든 외적인 압력에도 개의치 않고 인간을 자기 자신에게 진실할 수 있게 만드는 계기입니다.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은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도운 도구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것, 외부의 기대, 자만심, 망신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진실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무언가 잃을 것이 있다는 생각의 덫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이미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습니다. 가슴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all external expectation,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죽음 앞에서 모든 외적인 것들이 부서져 나가고 남는 “진실로 중요한 것(what is truly important)”은 바로 나 자신이겠지요. 죽음이야말로 바로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 스티브 잡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도그마의 덫에 빠지지 마십시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소란스러운 의견으로 인해, 당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가 잠기지 않게 하십시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당신의 심장과 직관을 따를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당신의 심장과 직관은 이미 당신이 정말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 이외의 것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Don’t be trapped by dogma—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도그마는 교리, 위대한 성현의 가르침을 말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성현의 말씀이라도 그것은 단지 “다른 사람의 생각”이며 “의견”의 하나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내면에 침잠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장과 직관을 따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잡스는 말합니다. 나의 내면의 진실한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갖는 기대, 자만심,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등에 쉽게 잠길 수 있기 때문이죠.

스티브 잡스는 현재 우리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IT 환경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고 이끈 인물입니다. 일할 때도 여가를 즐길 때도 우리는 잡스가 이룬 IT 혁명이라는 유산의 그늘에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진보만큼이나 소중한 유산이 또 있습니다. 열정적으로 일과 삶을 사랑할 것, 외부의 온갖 ‘잡음’을 막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 그리고 그 목소리를 따를 용기를 낼 것. 진실하고도 보편적인 이 삶의 가치를 자신의 인생으로 보여준 것이죠. 이를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장들로 깊이 있게 전하는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을 한 번쯤 생생하게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

- 다음 편 예정

다음에 다룰 원서는 R. J. 팔라치오의 소설 『원더(Wonder)』입니다. 선천적 기형을 가지고 태어난 소년 어거스트가 냉대와 편견을 딛고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이야기입니다. 독자의 마음을 두드리는 따뜻한 이야기로 성공을 거둔 이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돼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두려움을 이기고 학교에 간 어거스트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을 ‘친절함’을 주제로 다루어 보겠습니다.

 

함종선 mysstar@naver.com
연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미 에모리(Emory)대 박사후 연구과정을 수료한 후 서울대, 방송통신대 강사를 거쳐 민사고와 하나고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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