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기준 공정한 것은 아니다"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형평성 확보를 위한 교육정책 수립을 위해서는 다양한 구성원들의 상호 작용에 초점을 두는 접근방식도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의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구성원들의 행동양식과 상호영향방식이 설계한 시스템 기대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것인지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진 대입시스템이라고 하더라도 학생과 학부모들의 적응 방식을 감안하지 않고 설계할 경우 시스템 설계자가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와 임수진 광주여대 교수가 연구/집필한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연구보고서 ‘교육형평성 정책 동향 및 방향탐색’에 의하면 분배를 통해 지향하는 것은 “교육 대상자(학생)가 기대한 교육 성취 목표에 도달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교육 형평성 확보를 위해 교육이라는 시혜적/복지적 재화를 단순히 형평성의 기준과 절차에 맞게 분배하면 된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교육 재화를 형평성의 원칙에 맞게 분배하는 것 자체가 교육 형평성 확보의 궁극적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세밀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교육 형평성 확보는 재화를 분배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기대한 성취 목표에 도달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교육 형평성 확보는 재화를 분배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기대한 성취 목표에 도달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교육정책 수립.. “학생/학부모, 새로운 시스템 하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 얻을 수 있도록 적응”
형평성 확보를 위한 교육정책 수립을 위한 기본 전략도 다양하게 제시했다. 체제공학적 접근, 복잡계 접근, 교육관련대책과 교육적 대책 병행, 밝은 점 찾기 전략, 우리교육 강점 찾기, 린 스타트업 모델 등이다.

교육체제 내의 다양한 구성원들의 상호 작용에 초점을 둔 ‘복잡계’ 개념도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교육관련 개혁을 할 때는 관련 구성원의 행동양식과 상호영향방식이 설계한 시스템 기대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체가 환경의 변화에 응답하듯이 조직과 조직구성원도 환경의 변화 즉 정책 변화에 응답, 즉 적응한다”고 설명한다.

대입제도를 예로 들면, 대입제도를 바꿀 때마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새로운 시스템 하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가능한 빠르게 적응한다. 이들의 적응은 새로운 시스템이 지향하는 목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진 대입시스템이라고 하더라도 학생과 학부모들의 적응 방식을 감안하지 않고 설계할 경우 시스템 설계자가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시스템 공학적인 접근에 의하면 교육개혁안처럼 복잡한 시스템을 설계할 때에는 단번에 하기보다 반복적/점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봤다. 교육개혁은 교육이라는 복잡한 시스템의 특성상 단번에 이뤄내려고 하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분야의 개혁이라 하더라도 명확한 목적과 개념 설계, 큰 얼개 마련, 이러한 내용에 대한 지속적인 검토를 거친 후 상세한 설계안을 마련하는 절차를 거처야 한다고 봤다.

전체 최적화도 염두에 둬야 한다. 좁은 의미에서의 해당 정책 목표 달성에만 초점을 두면 교육부 내의 다른 정책과 상충하는 경우가 발생해 결국 해당 정책의 목표마저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상황에 맞지 않는 개혁 강행하면 실행자들은 잠시 시늉만 낼 뿐”>
‘린 스타트업’ 모델을 교육개혁안에 대입해 설명하기도 했다. 린 스타트업 모델은 아이디어를 빠르게 시제품으로 제조한 뒤 시장의 반응을 통해 다음 제품 개선에 반영하는 전략이다. 다만 “엉성한 시제품을 만든 후 대외적으로는 이것이 ‘시제품’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대내적으로는 전혀 고칠 계획이 없는 완제품으로 간주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시범학교 운영, 공청회 등을 거치지만 결국은 별로 수정하지 않은 채 원래의 안을 강행했던 예가 많다는 것이다. “개혁 주도자들이 상황에 맞지 않음을 알면서도, 여건을 갖추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개혁을 강행하면 이를 실천에 옮겨야 하는 사람들은 잠시 시늉만 내면서 그들이 물러나기를 기다리게 된다”고도 꼬집었다.

연구진은 ‘한국형 교육발전 모형’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강점을 살려가며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솝우화 ‘통나무 다리 위의 개’에 빗대어 기본 틀을 깨는 방향으로 교육혁신을 추진한다면 더 많은 것을 읽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교육의 강점은 부모와 학생의 높은 교육열, 우수한 교원, 국가공무원 지위 유지를 통한 전국 교원 급여 동일화, 교원 순환근무제, 상대적으로 낮은 불평등도, 광역단위의 학교 배정제, 부모의 배경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각급 학교의 입학제도 등을 꼽았다. 

<“실력 기준으로 하는 것이 꼭 공정하지만은 않아”>
연구진은 형평성에 대한 논의에 앞서 현 정부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공정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형평성의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공정성의 의미도 함께 파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형평성이라는 용어는 한자어로 번역이 되어 학계에서 차츰 널리 쓰이고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잘 사용되지 않”는다면서 “현 정부에는 유사 용어이면서 뜻이 다른 공정성이라는 용어를 화두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형평성과 공정성은 바람직한 재화배분의 기준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형평성이 주로 시혜적/복지적 재화를 분배하는 기준의 의미로 사용되는 반면, 공정성은 어떤 노력이 수반된 재화를 분배하는 바람직한 기준과 절차의 의미로 사용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교육 형평성이라고 하면 세금으로 만들어진 교육이라는 재화를 사람들에게 분배할 때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관한 것이라면, 대입 공정성이란 대학 입학이라는 재화를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관한 것이라는 것이다.

‘공정성’과 관련해, 사람들이 공정하다고 느끼게 하는 분배 방법으로는 ‘운’과 ‘실력’이 있다고 봤다. 예를 들어 추첨을 통해 선발하는 아파트 청약 당첨자, 교대 부설초 신입생 선발 등을 두고 불공정하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특정 재화를 향한 경쟁이 치열하고 전문가나 권력자에 대한 불신이 커서 그들의 판단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경우에도 사람들은 운에 맡기는 추첨을 선호한다고 봤다. 대부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바람직하고 합리적이며 공정한 기준을 찾기 어려울 때도 운을 기준으로 삼는다.

실력은 사람들이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하며 받아들이는 분배 기준이다. “운은 미약한 인간이 어쩔 수 없어서 포기하며 수용하는” 기준이라면, 실력에 따라 재화를 분배한다고 생각할 때에는 사람들이 불합리한 분배도 수긍할 정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입을 예로 들어, 실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꼭 공정하지만은 않다고 봤다. “어떤 학생이 소년소녀가장으로서 병든 할아버지와 동생들을 돌봐야 하고, 알바를 하면서 생활비도 벌어야 해서 공부할 시간을 충분히 갖기 어려운 고등학생이라고 한다면 실력만을 기준으로 대학신입생을 선발하는 것이 공정하게 느껴질까?”라는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처럼 애초부터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면 학종이든 수능기준이든 학생이 쌓은 실력만을 기준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것에 분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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