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적 가치보다 포퓰리즘 빌미'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이 “(정시 수능위주전형 비중을) 장기적으로 개선해 나가면서 4년에 한 번 정도는 조정해야 한다”고 10일 밝혔다. 김 의장은 이날 세종 정부세종청사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 교육이 가야 할 길은’이라는 주제로 열린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4년에 한 번은 공론화를 통해 정리하는 것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비율이) 흔들리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2018년 공론화 과정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데다 공정성 논란까지 불거졌던 점을 상기하면 4년에 한번 공론화를 실시한다는 것은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 의장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리는 것을 막는 방법이라고 봤지만 오히려 공론화 당시 장기적인 교육적 가치를 고려하기보다는 정치적 부담을 약화시키기 위한 선택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진보 교육운동단체 44개가 연대한 ‘새로운 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사회적 교육위원회’는 “언뜻 민주적 절차로 보이는 이와 같은 공론화 절차는 모든 결정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겨 정부와 교육부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정치적 계산의 산물이다. 교육을 정치의 수단으로 삼으려 했던 박근혜 정권과 교육을 오로지 정치적 계산으로 접근하는 문재인 정부가 과연 얼마나 다를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이 4년에 한번 수능위주전형 비중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정책 브리핑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이 4년에 한번 수능위주전형 비중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정책 브리핑

 

<찬반 가르기 힘든 교육사안.. 이해관계 맞물려>
찬반을 가르기 힘든 교육 사안을 공론화 과정으로 결정한다는 자체가 혼란을 예고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교육 현안을 두고 여론 수렴의 과정을 거치기에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우리나라 교육열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높다는 점이 가장 큰 맹점이다. 개인에 선택을 맡길 경우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에 따라 선택하는 경향이 짙은데, 교육 사안에서 이 같은 현상이 발휘되면 교육적 가치를 구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눈앞의 갈등을 봉합하자고 장기적인 교육 가치를 훼손할 우려도 있다”며 “공론화 방식보다는 현장 교육전문가들의 장기간 치열한 토론이 더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입장 차가 크다보니 애초 공론화를 통해 국민합의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많다. 2018년 공론화에서도 압도적인 다수안이 없었다. 네 가지 공론화 의제에 대한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의제1, 2간 유의미한 차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1안은 정시를 45%이상 확대하고, 2안은 대학 자율에 맡긴다는 내용이다. 의제별 선호도는 의제1이 가장 높았으나 의제2가 오차범위 내 2위였다.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긴 했지만 유의미한 차이로 보긴 어려웠다. 공론화위관계자는 “의제1과 의제2가 각각 1, 2위였으나 양자간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없으며, 사지선다가 아닌 의제별로 독립된 평가임에도 절대 다수가 지지한 안은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당시 결과를 두고 교육 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무책임하고 불공정한 운영으로 결국 시간만 낭비한 셈”이라며 “정부는 시민들에게 책임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미래교육비전관점에서 대입설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복잡한 대입개편을 일반 시민에 맡긴 것부터 무리였다는 분석도 있었다. 교총 관계자는 “대입개편에 대해 현장성과 전문성이 충분하지 못한 시민참여단이 이해를 바탕으로 전문적인 판단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며 “대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가장 높고, 수능확대를 둘러싸고 각진영 단체간 치열하게 대립하고 갈등이 거세져 온 점도 시민참여단이 특정 의제에 많은 표를 주는데 주저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교육열이 강한 한국에서 공론화 방식으로 교육정책을 결정할 경우 장기적인 교육적 가치를 고려한 선택이 가능하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개인에게 선택을 맡길 경우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에 따라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정시에 유리한 학생을 둔 부모라면 정시를 지지할 것이고, 정시에 자신이 없는 아이 학부모라면 수시를 지지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그렇다고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시민은 교육정책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2018년 진행한 공론화 과정에서도 교육적 가치에 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등한시됐다. 궁극적인 교육 지향점에 대한 논의 없이는 결국 지난 정권에서 되풀이 된 입시 뜯어고치기와 다를 바 없어진다는 지적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미래 인재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오지선다형’ 객관식 문제 풀이로는 기를 수 없다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학종이 도입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당초 학종 도입 시 논의됐던 ‘미래 교육’에 대한 논의는 사라지고, 단순히 전형 비율이라는 단순한 도식으로 논의가 치환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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