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한 최초’에서 진화하는 DGIST 교육과정

[베리타스알파=김경 기자] 국양 DGIST(Daegu Gyeongbuk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총장은 대한민국 이공계 발전을 이끌어온 대표적 리더로 손꼽힌다.

국 총장은 경기고-서울대 물리학과-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박사과정 이후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벨 연구소’에서 10년간 재직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91년부터 2018년까지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로서 연구하고 가르쳤다. 그동안 영국물리학회의 ‘나노테크놀로지’ 편집위원,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나노전문위원회 위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회원 등 세계적 과학자로 눈부신 이력이 많지만, 스스로 의미를 두는 것은 의외로 5년간(2014~2019년)의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의 이사장직이다. “나 스스로는 연구로 직접적인 기여를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누군가 제대로 된 연구를 긴 호흡을 가지고 매진할 수 있도록 선발해준다면 이 역시 우리나라 과학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연구하고 교육하는 일에서 세계석학의 반열에 오른 국 총장이 연구비지원을 위한 평가에 두는 남다른 의미 때문인지 미래사회를 고민하는 국 총장의 시각에 더욱 믿음이 간다. 국 총장이 작년 4월 DGIST 제4대 총장에 자리한 이후 DGIST의 교육과정도 국 총장의 남다른 시각에 따라 한층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국양 DGIST 총장/사진=최병준 기자
국양 DGIST 총장/사진=최병준 기자

 

<한 발 앞선 시각>
국 총장은 ‘한 발 앞선 시각’을 가진 인물이다. 늘 현재 상황을 넘어선 그 다음을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수업 때 드는 비유 중 하나가 ‘나 같으면 삼성전자에 투자하지 않겠다. 삼성전자 주가가 오를 거라 생각하면 나는 한 발짝 더 나아가 반도체장비에 투자하겠다. 삼성전자가 사업이 잘 되면 시설을 늘릴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거다. 마찬가지로 자동차회사가 잘 될 때는 부품회사 설계회사에 투자하겠다. 이런 걸 선행지수라 하는데 어떤 게 있으면 그 다음 것, 그리고 또 그 다음 것을 생각하는 능력이다. 다른 얘기로, 이번에는 치사율이 2~4%인 팬데믹이었지만, 치사율 50%짜리 팬데믹이 올 수도 있다. 어떻게 할까? 재택근무는 누구나 생각하는 거다. 빨리 백신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누구나 생각하는 거다. 한 발 더 나아가 생각해보자. 인류가 돔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만 6개월 1년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거형태가 완전히 바뀌어야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마스크 재택근무 백신을 생각하기보다 달라질 주거문화를 생각하는 게 한 발 더 나아간 아이디어라 할 수 있다.”

국 총장의 ‘선제적’ 시각은 과학기술계의 교육과 연구에도 맥을 이어간다. “게임시장은 포화되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게임이 인생의 절반인 사람이 40세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지금 실리콘밸리에 뜨고 있는 산업 중 하나가 게임중계다. 지난 번 슈퍼볼 경기가 게임중계와 같은 날 열렸는데, 게임중계 본 사람이 슈퍼볼 본 사람보다 많았다. 게임을 만들거나 게임을 하는 것보다 게임을 중계하는 게 한 발 더 나아간 아이디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조금 늦다. 게임을 딱 보는 순간 게임중계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예측이 새 분야를 여는 거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식이다. 우리나라에 없던 스토리를, 상상하기 힘든 스토리를 썼다. 과학기술도 똑같다. 머릿속에 없던 시나리오를 자꾸 써야 한다. 상상할 수 없던 시나리오를 자꾸 써야 한다. 그런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이 과학기술계에서 눈에 띄는 사람이 되는 거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가르쳐야 하는 게 힘든 일이겠지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다.”

<과학계도 선행지수>
국 총장이 이제껏 이력에 가장 의미를 둔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으로서의 5년 경험 역시 선행지수가 바탕에 깔려있다.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 10년간 1조5000억원을 출연해 당장 업적이 나오지 않아도 좋으니 세계적으로 경쟁력 가질 수 있는 실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해보라며 세운 민간 연구비지원재단이다. 국 총장은 “정부의 연구비지원을 향한 시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목적지향성일 수밖에 없다. 국민세금으로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000억원을 지원했다면 그에 해당하는 논문수가 나와야 하고, 매년 국회 예산결산 시기에 답을 줘야 하는 식이어서 숏텀의 결과에 매몰될 수 있다. 물론 숏텀의 결과가 의미 없는 건 아니다. 압박을 가하면서 하는 연구도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다만 단순흥미에서 벗어나 10년 15년 단위의 롱텀의 연구가 사실 필요하다. 그런 긴 숨의 연구를 해야 우리나라의 미래, 또는 인류 전체에 대한 미래를 볼 수 있는 연구들도 나올 수 있다. 물론 롱텀에서만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롱텀의 연구를 했을 때 또 다른, 인류가 지금껏 생각하지 못했던 연구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해외엔 민간지원의 사례가 많은데 특히 하워드 휴즈 재단이 성공한 사례다. 연구비지원사업으로 생리학에서만 노벨상 수상자를 30명가량 배출한 곳”이라며 삼성재단의 선발 가치를 설명했다. “정말 실력 있는 분을 선발해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인데 선발과정을 굉장히 어렵게 만들었다. 해당 분야의 세계적 명망이 있는 분들을 찾아 미국까지 가서 평가를 받기도 했다. 선발하고 보니 정말 좋은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학문분야를 리딩하는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민간 연구비지원은 우리나라에선 삼성이 처음 시도한 것이고, 연구비는 지원하되 간섭은 일체 하지 않는 특징을 갖는다. 한 사람한테 연간 5억~10억을 10년 정도는 지원해줘야 노벨상도 나온다. 논문 내라 귀찮게 하지 말고 그냥 두면 그 사람은 긴 숨으로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이 과학자로서 연구를 한다는 인생의 가치를 느낀다. 빠른 결과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 소재나 ICT의 경우 논문을 안 써도 좋으니 정말 실용적인 결과물을 내라는 것, 이게 정말 실력을 한 번 보자는 것이고 그런 식의 연구를 재단을 통해 시도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10~15년 안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단에서 선발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다.”

국 총장은 비단 노벨상 수상에만 주목하는 게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데 대해 가치를 둔다. “우리사회의 잘못된 풍조 또는 경향으로, 많이 알려진 아이디어를 빨리 잘하는 게 보답하는 것이라 여기는 걸 들 수 있다. 그런데 앞으로의 세상은 AI 등 컴퓨터가 인간이 하던 걸 맡아주는 세상이 된다. 어떤 일을 빨리 잘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게 더 보답하는 길이 될 것이다. 그게 창의적이라는 것이다. 4차산업시대도 마찬가지다. 지금에 와서 드론을 굉장히 잘해서 성공하겠다 한다면 이미 늦은 것이다. 5G는 대기업끼리 경쟁하고 있는 것이니 5G관련해 이제 누군가 시도해야 할 일이라 한다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다. 특정 주파수를 쓰지 않고 뭔가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식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발전한다. 현재 우리나라를 끌고 가는 큰 산업들로 반도체 자동차 선박 통신 석유화학 관련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들 분야의 노하우를 중국 등 다른 나라가 쉽게 알아낸다. 이 같은 상황에 해당 산업들의 5년 뒤 10년 뒤가 보장이 안 되어 큰 걱정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안에서 빌 게이츠, 저커버그 같은 인물이 나와야 한다. 노벨상은 지금껏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에 아이디어를 낸 데 가치를 둔다. 아는 걸 잘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걸 잘하는 게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빌 게이츠, 저커버그는 노벨상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세계적 명망을 갖고 있다. 소프트웨어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나올 수 있다. 그 한 명이 천만 명을 또는 인류전체를 먹여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사회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10%의 사람이 리드하고, 나머지 90%의 사람은 그저 안락하게 사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런 형태의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사회가 될 거라 생각한다. 요즘 부상한 AI의 경우 이미 20~30년 전에 나온 생물정보학에서 등장한 얘기다. 이미 갖고 있는 생물학에 관한 정보만 잘 다뤄도 병을 치료하고 인류를 훨씬 오래 살게 하고 행복하게 할 것이라 했는데, 그게 시작할 때 이미 AI에 관한 미래가 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갖고 있는 정보만 잘 소화해도 에너지문제 해결하고 주거환경 좋게 하고 환경문제 해결하는 식이다. 이게 AI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지금 역발상을 할 수 있다. 현재 AI는 경쟁이 너무 심하니, 나는 그 정보를 모아서 처리하는 컴퓨터로 사업을 하겠다 또는 나는 그 정보를 저장해주는 일로 클러스터 또는 세상에 있는 모든 정보를 핸들링하는 센서를 개발하겠다 식으로 새로운 분야를 여는 게 길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버즈워드’(유행어)에 얽매인 경향이 있다. 지금 유행하는 거 말고 사실 필요한 건 새로운 아이디어다. 그저 4차산업혁명 또는 AI 식의 세상에 통용되는 버즈워드에 매이지 말고 새로운 걸 찾아야 한다.”

물리학을 공부하고, 학생들 가르치고 연구하고, 과학자 연구비를 지원하는 일에 책임까지 져왔으니, 이 분야 제일 ‘어르신’인 듯한 국 총장에 또 궁금한 게 있다. 현재의 ‘의대쏠림현상’이다. 약대가 학부과정으로 내려오고, 의대정원을 500명가량 늘릴 것이란 얘기까지 돌고 있다. 수능선발이 중심이 된 의대입시는 자연계열 최상위권의 관심을 받으며 부상하고 있는 상태다. 많은 자연계열 학생들이 있지만 그 중 최상위권이 과학기술계가 아닌 의료계로 선택지를 돌린다는 건 이쪽에서 봐선 문제다. 관련, 국 총장은 “부모부터 미래사회를 공부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우리나라의 17~18세 젊은이들의 인생설계는 부모가 해주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자신이 살아온 사회를 기준으로 자식의 인생설계를 해준다. 40~50세 부모가 되어서 보니 의사라는 직업이 좋아 보인다. 안정적이고 편하고 쫓겨나지도 않는다. 그 분들 입장에선 자식이 할 수만 있다면 의대를 가는 게 당연할 수 있다. 다만, 그 분들이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현재의 대학생 고교생이 어른으로서 살아야 할 인생이라 할 수 있는 15~20년 뒤의 사회는 정말 많은 것이 바뀔 거라는 걸 모르고 계신 거다. 의사만 하더라도, 의사선생님은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인데, 대부분 책에 나와 있거나 자기 기억에 의존하는 거다. 그런데 앞으로는 판단 자체를 책이나 인간의 기억보다 더 나은 게 나오기 시작할 거다. AI가 대표적이다. IBM이 컴퓨터를 의대에 보냈더니 방사선진단 분야 등에서 사람이 진단하는 것보다 컴퓨터가 진단하는 게 더 정확하다는 말이 벌써 나오기 시작한다. 내과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올 수 있다. 자격증이라는 걸로 국가가 보호하는 직업이 AI등장으로 인해 위험해질 것이라 본다. 물론 미래사회에 대한 예측이라는 게 15년 뒤가 실제로는 30년 뒤로 늦춰질 수도 있겠지만, AI가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는 사회가 올 거라는 건 명확하다. 자격증을 취득하면 향후 20년은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을 거다. 그러니 지금 의대에 진학하는 것도 괜찮을 텐데, 지금 같은 추세라면 40~50세에 위기가 올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사회를 리드하고 싶은 사람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도전적인 직업을 택할 수밖에 없다. 현 상황으로 봤을 때 과학기술을 연구해 선두에 서서 세상을 바꿔가는 게 더 현명한 일일 수 있다. 자녀교육도 한 발 앞서 보시길 권한다.”

<진화하는 DGIST 교육>
DGIST는 고급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고 첨단 과학기술 연구를 통해 국가와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설립되었다. 2004년에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 출발한 후, 2011년에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원 과정을 설립, 2014년에 한 학년 정원 200명내외의 학부 과정을 설립했고, 2018년 첫 학부 졸업생을 배출했다. 국가지원은 연간 800억원, 연구비를 포함하면 연간 1500억원 예산규모다. 1인당연구비는 서울대와 비슷하고, 1인당교육비(학생을 교육하면서 드는 비용)는 일반 종합대학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대학원에 7개 전공이, 학부는 단일학부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학부에서는 자율적으로 이수과목을 설계하는 ‘융복합 교육’을 도입해 혁신적 이공학 교육체계를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국내외 연구실 또는 기업체의 연구인턴 및 실무인턴제 도입, 도전 연구과제 수행 등을 통해 ‘문제해결형’ 인재교육을 정착시켰다.

국내 최고수준의 최첨단 교육연구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지금도 규모를 키워가고 있지만, 이미 120여 명의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교수, 30여 명의 석좌교수 초빙교수, 130여 명의 연구원들과 1500여 명의 학부와 대학원생들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으며, 세계적 연구평가기관에서도 DGIST를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교육연구기관 중 하나로 지목하고 있다.

학생 수가 적긴 하지만 오히려 기회의 측면에서 유리하다. 국 총장은 “대규모 대학보다 규모가 적어 사회를 이루는 데서는 미안하지만, 반대로 학생 한 명 한 명에 더 집중하는 강점이 있다”고 소개한다. 등록금이 모두 국비로, DGIST 입학생들은 국비장학생으로 입학하는 셈이 된다. 매달 생활비까지 지원한다. 국 총장은 “우리학생들이 제일 자랑스러워하는 게 부모님의 도움을 안 받는 것이다. 이 부분은 학생들에게 굉장한 자부심을 줄 수 있는 일”이라 말한다.

DGIST는 2021년에 입학하는 학생들을 위한 새로운 교육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변화의 출발점은 작년 4월 국 총장의 취임이다. 국 총장은 “이미 많은 것이 DGIST에 실현되어 있어 크게 바꿀 게 없었지만 기존 교과과정에 내재된 문제점은 없는지 점검하고 보완해보자는 취지로 교육위원회를 구성해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DGIST 기존 교과과정은 1,2학년생에게 기초과학과 기초공학, 인문사회 분야 기본 교육을 충실하게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3,4학년 학생이 기초학부에서 개설하는 교과목이나 대학원에서 개설하는 교과목을 자유롭게 수강하면서 자기 전공을 만들어가는 구조였다. 국 총장은 “새로운 교과과정에서도 이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모든 학생이 들어야 하는 공통필수 교과목이 다른 대학에 비해 조금 많았기 때문에 학생이 자기주도적인 문제 해결 역량을 키우는 데 충분한 시간을 주지 못했다는 반성은 있었다”며 “그래서 기초 필수교과목을 10학점 정도 줄였다. 3,4학년 학생은 예전처럼 자유롭게 전공을 설계할 수 있는데, 다만 좀 더 잘 짜인 커리큘럼을 제공해서 전공 지식을 더 깊이 습득하도록 도움을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DGIST는 이를 위해 자연과학과 공학의 핵심 8개 분야를 ‘트랙’이라는 이름으로 설치해서 트랙의 교과목을 충실히 이수하면 졸업 후 어떤 분야에 진출하더라도 문제가 없게끔 설계했다. 국 총장은 “다른 과학기술원이나 일반 대학이 보통 전공을 40학점 이상 이수하도록 요구하는 것과 달리 우리는 27학점 이상만 이수하면 되도록 낮춰 놓았다. 특정 전공에서 익혀야 할 지식의 핵심만 충실하게 갖추면 학생 스스로 얼마든지 더 공부를 진행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또 트랙에서 6개 교과목, 즉 18학점만 이수하면 부전공으로 인정해주기도 한다. 전체 130학점 가운데 학생이 전공 학점 이수에 쓸 수 있는 학점이 66학점이므로 학생은 두 개 이상 학문 분야에 전공 지식을 갖추거나 최소한 부전공 수준의 지식을 갖출 수 있게 된 것이다. 국 총장은 “실제로 모든 학생이 두 개 정도의 트랙을 이수하도록 강력하게 권고할 예정”이라며 “이렇게 되면 DGIST가 표방해온 융복합 교육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학생이 핵심적인 전공지식도 습득할 수 있게 될 것”이라 기대했다.

또 한 가지 달라지는 점은 졸업학위에 전공표기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다만 다른 과기원과 달리 학생은 전공을 미리 선언하지 않고, 자기 진로 계획에 따라 자유롭게 교과목을 수강하고 이 기록을 바탕으로 졸업할 때 전공 표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준다. 전공 설계의 자유를 최대한 살리는 방안이라 하겠다.

DGIST 교육과정의 특징인 ‘학부전담교수제’에도 변화가 있다. 학부전담교수제는 융복합대학 아래 기초학부를 두고, 기초학부에 근무하는 전임/비전임교원 40여 명이 학부교육을 담당하는 구조로, DGIST 개교 이후 7년간 운영해온 제도다. 국 총장은 “본래 이 제도는 이공계 분야 교수님들께서 연구에 몰두하시느라 자칫 학부교육을 조금 소홀히 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한 것이다. 또한 학부생의 생활과 진로 설계 과정도 더 체계적으로 지도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겨 있었다. 다만 기존에 우리가 잘 하고 있던 일을 개선해서 학생에게 더 폭넓으면서도 세심한 지도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변화를 줬다. 열띤 논의 끝에 기초학부와 대학원에 재직하고 있는 모든 교원이 학부교육에 참여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에 따라 학부 교육 조직을 전공 8개 트랙과 인문사회, 기술경영/디자인, 수학 전공으로 나눠 모든 교원을 트랙과 전공에 배치했다. 각 트랙과 전공의 대표들이 위원회를 구성하고 거기서 학생에게 제공할 교과목을 정하고 담당교원을 배치하게 된다. 아울러 모든 교원이 학생을 1대 1로 지도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학생들이 관심사를 넓힐 수 있도록 멘토리얼이라는 세미나를 제공하도록 했다. 그 결과, 학생에게 제공되는 교과목이 더 다양하고 체계적으로 바뀌었을 뿐 아니라 멘토링 역시 학생의 관심사에 따라 더 전문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재편되었다. 다시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제 DGIST 소속 교원은 모두 학부교육에 참여하는 학부교원이 된 셈이다. 과거에 학부생이 주로 기초학부 소속 교원과 대화를 나눴다면, 이제는 다양한 분야에서 최첨단 연구를 실제로 수행하고 있는 교원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조언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국 총장의 깊은 고민 중 또 하나는 ‘문제해결형’ 인재 양성 교육을 정착시키는 일이다. DGIST 구성원의 깊은 고민인 ‘어떻게 학생의 이론적인 지식과 현장 경험을 연결해줄 것인가’와 맥이 닿는 것으로, 주로 수업으로 진행되는 이론 교육 이외에 학생이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크게 확장한다는 것으로 결론났다. 이미 DGIST의 기존 교육과정에서 이 역할은 3,4학년에 진행하는 UGRP(Undergraduate Group Research Program)가 맡았다고 볼 수 있다. 이번 개편으로 연구와 현장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된다. UGRP는 이제 주로 3학년 학생들이 참여하되,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해낸 도전적인 과제로 구성하게 된다. 이전에는 세 명에서 다섯 명 정도로 구성되던 인원 구성도 바꿔서 인원 제한을 없앴고, 연구비도 대폭 늘려주었으며, 참여 교원 숫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교원은 학생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조언을 제공하는 역할만 담당하게 된다. DGIST는 이를 ‘도전과제’라 명명했다. 2학년 학생과 4학년 학생에게는 선택과목으로 URP(Undergraduate Research Program)를 제공한다. UGRP와 달리 URP는 개인 자격으로 대학원 연구실에 가서 연구 현장을 실제로 경험하는 기회라는 차이가 있다. 이를 통해 학생은 자기 관심사를 넓혀가고 대학원의 연구란 것이 무엇인가를 체험할 수 있게 된다. 동시에 현장 경험을 제고하기 위해 인턴십도 강화한다. 1학년 학생은 FGLP(Freshmen Global Leadership Program)에 참여해서 해외 대학에서 여름학기를 수강하게 될 것이라 제외하고, 2학년부터 4학년 학생은 반드시 한 번 이상 국내외 대학과 연구소, 기업에서 인턴십을 수행해야 한다. 국 총장은 “이전에도 DGIST 학생들 가운데는 칼텍의 여름 연구인턴십 프로그램인 SURF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앞으로 이런 경험을 더욱 확대하고, 구글이나 인텔 삼성 네이버 같은 국내외 굴지의 기업에서 인턴십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며 “학생들의 인턴십을 장려하기 위해 인턴십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부서를 두어 정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이론학습과 현장, 연구 경험을 동시에 쌓을 수 있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했으므로 우리 학생들이 문제해결 역량을 키워가고 동시에 글로벌 마인드도 함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계획을 밝혔다.

<곁에 책 두는 삶>
국 총장은 학생들에 “책 읽는 삶”을 강조한다. “다양성”을 위해서다. “DGIST는 글쓰기교육을 매우 열심히 시킨다. 앞으로의 세상에서 듣기 쓰기 읽기 말하기 능력은 더욱 필요할 것 같다. 디지털화한 세상에서 더욱 필요한 능력이고, 리더가 되는 길에서 이 네 가지 능력을 못하면 절대 리더가 될 수 없다”는 단언이다.

“여담”으로 서양친구들의 집 풍경과 우리나라 집 풍경도 대조해 설명한다. “친구들 집에 가 보면 거실에 지금 읽고 있는 책이 꼭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 집에 가보면 TV만 있다. 조금 당황스러운 지점이다. 사람들이 TV에 의해서 점점 단순화되어 간다.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로 바뀐다. 사회발전을 위해선 정말 좋지 않은 현상이다. 다양성으로 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학생들은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균질화되지 않았으면 한다. 훨씬 더 다양화했으면 한다. 균질화되어 버즈워드를 쫓아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관련 학자들이 봤을 때, 정말 잘생기고 정말 똑똑한 사람만 이 세상에 존재했다면 인류는 멸망했을 것이라 한다. 그런 사람들은 감기에 다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쪽으로 몰리면 죽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인류가 살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무기는 ‘다양성’이다. 생각의 폭이 넓고, 여러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사회가 강해진다. 과학기술영역에서 넓은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사회가 훌륭한 사회로 갈 것이다. 학생들 개개인이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훨씬 더 미래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일이라 생각한다. DGIST에서 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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