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알파=김경 기자] 고1 조카가 있습니다. 학원경험 없는 이 아이의 어린시절, 초등학교 첫 시험에서 대부분 틀린 시험지를 받아왔습니다. ‘다음 숫자를 한글로 쓰세요’라는 문제에 정말 ‘다음 숫자’를 한글로 쓴 아이였습니다. 1을 일로, 2를 이로 써야 하는데, 1을 이로, 2를 삼으로 쓴 거죠. 학습지경험도 없는 아이라 당연했습니다. 이제 고1 되었다고, 학원다니기 시작하는데 애 엄마가 학원선생님께 이런 문자를 보냅니다. “선생님, 오늘 바람이 많이 불어서, 제가 안정이 안 되어, 아들이 필요합니다. 오늘 수업은 숙제로 대체해줄 수 있으실까요?” 저는 이 아이가 행복한 생을 살 거라 믿습니다. 춘추복 맞춰놓고 한 번도 못입은 교복 옷장에 고이 모셔두고 하복 맞추면서 “나도 학창시절을 만끽할래”하며 목공동아리 가입해놓고 두근거리며 등교개학 기다리는 이 아이요.

‘국내 평균소득 1위인 직업은 기업고위임원, 2위 국회의원, 3위 외과의사, 4위 항공기조종사, 5위 피부과의사’. 올봄 연합에 이런 기사가 뜬 걸 과기원 인문학 교수님께서 링크보내주셨습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18한국직업정보’ 보고서에 의하면, 2018년 기준, 기업고위임원 연봉이 1억5367만원으로 최고였습니다. 국회의원 1억4052만원, 외과의사 1억2307만원, 항공기조종사 1억1920만원, 피부과의사 1억1317만원 순입니다. 물론 많은 액수의 연봉이고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직업이긴 하지만, 고위임원 임기가 얼마나 갈 것이며 그간의 피나는 노력이 어떠했을 것이며 그래서 그 연봉으로 행복할 것인가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외과의사 피부과의사는 의대입시에 학창시절 얼마나 피가 났을 것이며, 10년에 달하는 의대공부가 얼마나 처절했을지, 그래서 1억 조금 넘는 수준의 연봉으로 지금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회의원, 임기 끝나면 백수입니다. 항공기조종사는 좀 부럽습니다. 매번 목숨은 걸어야 하겠지요.

연봉톱5에 드는 직종에 사명감 갖고 일하면 연봉이 얼마이든 거기까지 가며 흘린 피가 얼마이든 행복할 겁니다. 다만 정말 행복할까 하는 지점엔 대다수 해당자에 의문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제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톱5는 제가 자식 키우면 피하고 싶은 직군입니다. 죄송합니다. 베리타스알파를 정기구독하실 정도로 교육과 입시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기사를 좀더 잘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서울대만 바라보는, 의대만 바라보는 시각은 지우셨으면 합니다. 저희가 서울대 입시기사를 많이 쓰고 의대 입시기사를 많이 쓰고 그것도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쓴다 노력하고 있지만, 모두가 서울대 의대 가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각자의 잇속에 의해 고급정보가 되어버린 그 정보들을 그저 일반에 널리 알려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게 어쩌면 저희 목표일 수도 있습니다. 사세가 좀더 커지면, 입시뿐 아니라 ‘교육’에 방점을 더 찍고 싶은 심정입니다. 새 시대가 이미 열렸다는데, 우리는 이제 이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할까, 그게 이 아이들의 행복한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결과로 나올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가 잘 죽었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지점 말입니다. 물론 영재는 잘 키워서 인류발전에 이바지하게 해야 하겠지만, 내 자식이 그럴 재목인지는 냉정하게 판단해 봅시다.

이번 코로나사태에서 봤듯, 사실 죽음은 늘 가까이에 있습니다. 깨끗하게 임종에 다다라 자식들 손 부여잡고 유언을 남긴 후 순간에 숨을 거두는 우아한 죽음이 얼마나 있을까 싶습니다. 젊은 시절 몸 아끼지 않고 자식들 키우느라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고, 나이가 들면서 관절이 상해 여행다니기 힘들어지고, 위궤양으로 김치 한 조각 못 먹고, 부실한 치아에 뭐 하나 제대로 씹을 수 없어 삐쩍 말라 가벼워진 몸으로 치매에 걸려 세상 모르고 죽는 상황이 더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정도면 예상이라도 하고 준비라도 하니 다행입니다. 뇌졸중이나 심장마비로 한순간에 의식을 잃을 수도, 교통사고로 단번에 저세상으로 갈 수도, 말도 안 되는 묻지마폭행의 피해자가 될 수도, 코로나 같은 역병에 걸려 자식들과 단절된 채 비닐에 둘둘 말려 화장터로 직행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젊으시겠지만 언젠가는 자식보다 먼저 떠나는 게 행복입니다. 나 떠나고 자식 혼자 남았을 때 그 자식이 잘 살다 잘 죽을지까지는 못 봅니다. 어쩌면 지금 부모가 행복한 길이 미래 자식도 행복한 길일 수 있습니다. 그저 자식이 뭘 좋아하고 뭘 잘하고 그걸로 생계 이어가며 삶의 기쁨도 누릴 수 있을지에 관심을 더 둬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서울대 갈지 못갈지 의대 갈지 못갈지 학원 상위권반에 들어갈지 못들어갈지로 괴롭히지 말고요. 자식 없는 제가 무책임한 조언 따위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와중에 사교육판도를 진단하는 기사도 쓰고 있습니다. 학종확대로 바람직하게도 학교생활이 입시준비가 된 시절임에도, 수능확대 운운으로 사교육이 커지고, 여기에 코로나까지 발발해 기회의 차원에서 반수시장이 활짝 열려있는 상황에 학원끼리도 순위다툼이 치열한가 봅니다. 의대에 누가 더 많이 보냈는지를 가지고 저 밑에 서 있던 학원이 치고 올라온다는 소문으로 저 위에 군림해 있던 학원이 좀 짜증스러우신 것 같은데요, 걱정 마세요. 하시던 대로 사명감 갖고 임하시면 잠깐 누가 찔러도 암시롱도 안 하실 겁니다. 물론 이미 그러하시다 생각합니다. 존경합니다. 다만 판도는 알려야 해서 썼습니다. 베리타스알파 독자들께서도 판단하시는 데 힌트를 얻으셨으면 합니다. 소문에 일희일비하지 마시고 부모부터 줏대 갖고 생을 이어가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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