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가 전형개선하는 근본대책 필요'

[베리타스알파=강태연 기자] 영재학교인 서울과고가 진로진학교육 강화, 교육비/장학금 환수, 교내대회 시상 제한 등을 통해 의학계열 진학을 억제할 계획이다. 서울교육청은 서울과고와 협의해 ‘신입생 선발제도 개선 방안’과 ‘재학생의 이공계 진학지도 강화 방안’을 마련했다고 2일 밝혔다. 의학계열 희망자는 일반학교로 전학을 권고하고, 서울과고 재학 이후 의학계열 대학 진학 시 교육비와 장학금을 환수, 교내대회 수상 실적 취소 등의 조치가 내려질 예정이다. 의학계열 진학 시 1인당 1500만원 내외의 교육비를 반환해야 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졸업 후 재수 등을 통해 의대에 지원 시 교육비 반환 대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고, 교내대회 시상실적을 취소하거나 일반고 전학을 권고하는 사항은 이미 다른 학생들의 입학/수상 기회를 박탈했다는 점에서 문제해결책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제한적인 학교별 조치보다는 의대 입학제도 자체의 개선이 필요한 배경이다.

2017년 교육부가 칼을 빼들어 의대 진학 시 추천서 작성 거부, 영재학교에서 지원받은 장학금/지원금 회수 등을 대책으로 내놨지만, 전문가들은 이미 대책이 나올 당시부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전문가들은 고교에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다며, 의대 입학제도와 이공계특성화대학에 대한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추천서 없이 갈 수 있는 의대가 많을뿐더러 정부정책인 학종간소화조치 방안으로 추천서 폐지가 추진되고 있어 의대진학의 길이 오히려 넓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공계열 인식 개선은, ‘과학인재 양성’이라는 목표로 운영하는 과고/영재학교에 입학해 좋은 혜택을 받은 뒤, 진로선택 시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여겨지는 의대로 방향을 트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안이라는 것이다. 학생/학부모의 인식도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선발제도 개선과 관련해서는 ‘지역인재 우선선발 제도의 확대’, 사교육 영향 최소화를 위한 열린 문항 출제와 평가 문항 공개 등의 내용이 담겼다. 지역인재 우선선발은 41개 단위지역별(16개 시도/서울 25개 자치구)에서 1명 이내로 선발하던 범위가, 2021학년부터는 2명까지 우선 선발하도록 확대됐다. 10월10일 국회 교육위 소속 신경민(더불어민주)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걱세)이 영재학교 입학생의 70.1%가 수도권 출신으로 쏠림현상이 심각하다고 밝힌 바 있다.

평가 문항 공개와 관련해서는 2일 서울과고 홈페이지에는 2020학년 입학전형 2,3단계 기출 문항이 게시됐다. 입시개편과 관련해 사걱세의 분석에서는, 영재학교 대학수학과 올림피아드나 경시대회로 나오는 문제 유형이 있어 중학교 교육과정을 벗어났다고 밝혔었다. 다만 사걱세는 당시 지난해 치러진 지필고사 문항만 분석해 교육과정 위반여부를 판정한 것으로 나타나, 복기한 기출문제를 반복하는 유형학습 위주인 사교육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매년 유형 출제위원/문항수/활용교과목 등을 유동적으로 바꾸는 영재학교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재학교의 사교육 배제 노력으로, 출제문항 공개는 올해를 기점으로 매년 공개될 예정이다.

서울과고가 진로진학교육 강화, 교육비 환수, 장학금 환수, 교내대회 시상 제한 등을 통해 의학계열 진학을 억제할 계획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졸업 후 재수 등을 통해 의대에 지원 시 교육비 반환 대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고, 제한적인 학교별 조치보다는 의대 입학제도 자체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서울과고가 진로진학교육 강화, 교육비 환수, 장학금 환수, 교내대회 시상 제한 등을 통해 의학계열 진학을 억제할 계획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졸업 후 재수 등을 통해 의대에 지원 시 교육비 반환 대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고, 제한적인 학교별 조치보다는 의대 입학제도 자체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의학계열 진학 억제 방안.. 실효성 있을까>
기존 서울과고는 의대에 진학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반납하도록 하고, 교사 추천서를 써주지 않는 방식으로 의대진학을 억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과고 자료에 의하면, 2019학년 의학계열 진학자는 30명으로 2012학년 이후 최대 수치였다. 2012학년 21명, 2013학년 27명, 2014학년 18명, 2015학년 25명, 2016학년 24명, 2017학년 28명, 2018학년 26명의 추이다. 2019학년 의학계열 진학자 최대수치는, 2019학년이 의대 모집인원이 역대 최대였던 시기인 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서울과학고 관계자는 "신입생 모집요강에 '의학계열 대학에 지원하면 불이익이 있다'고 명시했다"며 "학생들 모두 의대 지원 시 불이익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입학했다"고 전했다.

의학계열 진학을 억제하기 위해 나온 4가지 방안에는 ▲진로진학교육 강화 ▲교육비 환수 ▲장학금 환수 ▲교내대회 시상 제한이 있다. 진로진학교육의 경우 진로상담을 강화하고 의학계열로의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에게 일반고로의 전학을 권고하는 내용이다. 교육비 환수와 교내대회 시상 제한은 2020학년 신입생부터 적용하고, 외의 내용은 2020학년부터 전학년을 대상으로 시행한다. 현재 의학계열 지원 시 교육비를 환수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곳은 한국영재로 2014학년 이후 의학계열 진학자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의대 진학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치를 통해 1500만원 내외의 교육비와 추가적인 장학금을 반환 받더라도 의대로 진학하는 경우를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로 경찰대학에서도 의무복무를 마치지 않는 경우 5000여 만원의 반환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매년 의무복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례가 나와 문제가 지속되는 실정이다. 일반고로 전학을 권고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입학과정에서 이공계열 진학을 원하던 학생들의 기회를 박탈한 사실에는 변함없다. 교내대회 시상 제한도 결국 이미 시상이 끝난 다음 진학 시 시상실적을 취소하는 것으로, 이미 다른 학생의 기회를 뺏어간 사실을 되돌릴 수없다는 점에서 문제해결책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기존 운영하던 ‘추천서 작성 거부’ 항목도 사실상 큰 효과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의대 정시는 물론 논술, 학생부교과 등의 전형에서는 사실상 추천서를 요구하는 대학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학종/특기자에서 추천서를 요구하는 대학들이 있지만, 많지 않다. 추천서가 없이도 갈 수 있는 의대는 많기 때문에 과고/영재학교 졸업생들이 의대로 진학하는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게다가 학종간소화조치 방안으로 추천서 폐지가 추진되면서 추천서 없이 의대에 진학할 수 있는 통로가 넓어져 의대진학을 부추길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기적인' 영재학교 의대진학, 근본적 문제해결, '의대 입학제도 개선'>
영재학교는 전국 8개교가 모두 국공립으로 운영되며 이공계인재 육성을 위한 국가지원을 받는 학교들이다. 영재학교는 이공계열 인재육성이라는 목표아래 주어지는 특혜가 상당하다. 다른 고교 유형보다 재정지원이 풍부한 데다 교육과정 편성권한도 주어진다. 선발권 측면에서도 영재학교는 ‘특차’ 성격으로 교육부 제재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전형을 설계할 수 있다. 영재학교에서 의대행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이유다. 영재학교뿐 아니라 과고도 동일한 이유로 의대진학을 막고 있다.

의대에 진학하더라도 생명과학 등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의대진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선도 있지만, 기초의학을 선택하는 인원은 ‘천연기념물’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수가 적다. 한 교육전문가는 “의대에 진학하더라도 과학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말은 궤변에 불과하다. 2013년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의 이진석 교수팀이 전국 의대/의전원 학생 1만270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초의학 선택 희망자는 겨우 2%에 불과했다. 기초의학 학과 중 병리과는 0.8%, 기초의학계열은 0.7%, 예방의학은 0.4%로 매우 낮았다. 대부분 임상의를 희망하는 상황에서 과학발전 기여를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의학계열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학부모 입장에서는 학생들이 성장하면서 진로를 변경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의대진학이 문제가 되지 않고,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주장하지만,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진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과학인재 양성’이라는 목적을 위해 국가에서 지원하는 영재학교를 진학한 것이 문제이기도 하고, 이공계열 진학 이후 의학계열 진학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의전원의 수가 최초 도입 시보다는 확연히 줄었지만, 강원대 건국대(글로컬캠) 차의과대는 아직 의전원 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애초에 과학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과고/영재학교에 진로가 뚜렷하지 않은 상태로 진학해 대입 시 의대로 지원서를 넣는다는 것은, 진정으로 이공계열 진학을 꿈꾸는 다른 학생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고교에서의 해결방법은 제한적이라는 점을 봤을 때, 교육 전문가들은 의대가 문제 해결에 동참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실효성이 높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교육부의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으로 어학특기자 전형이 대폭 축소되면서 외고 선호도가 떨어진 선례처럼, 영재학교의 조치만으로 역부족이 드러난 상황이라면 의대의 전형에서 수학/과학특기자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손보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는 것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영재학교는 제대로 정시 준비를 할 수 없는 교과전형을 운영하고 있는데, 의대로 진학하는 경우 대부분 수시 전형의 수학/과학 특기자를 통해 진학한다. 대학들이 영재학교 학생이 쉽게 의대로 진학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비난받는 이유다. 결국 고교에서의 해결방법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봤을 때, 대학별 수학/과학 특기자 전형을 축소하거나 영재학교 학생들이 지원할 수 없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지역인재 선발제도 '확대'.. 열린 문항 출제 '확대', 전형별 기출문제 '공개'>
지역인재 선발제도 확대완 관련해서는 신 의원과 사걱세가 10월10일 공개한 '2019학년 영재학교 입학생 70.1%가 수도권 출신'이라는 쏠림현상에 대한 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내용에는 전국의 8개영재학교 중 7곳에서 절반이상의 입학생이 서울/경기 소재 중학교 출신으로, 특히 서울과고는 서울/경기 출신 신입생 비율이 89.1%로 1위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과고/영재학교 입시를 대비한 사교육 성행이 의대진학문제까지 연결된다며 사교육을 털어낼 입시개편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학계열 진학과도 연결돼 문제해결이 시급한 사안이었다.

한 교육전문가는 "무엇보다도 사교육의 영향력을 걷어내야 한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의 영재교육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선 이른 시기부터 학생들의 행동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것을 토대로 영재성을 판별하고 있다. 그렇지만 국내에선 영재학교 출범초기부터 많은 학교를 세우다 보니 모든 고교유형 가운데서도 사교육 과열이 가장 극심한 상황이다. 결국 사교육으로 훈련된 학생들로 영재학교가 채워진다면 창의성이 중요한 이공계 진학자들이 밀려나게 된다.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이공계 연구인력의 질적 하락까지 이어질 수 있다. 과고 영재학교의 선발방식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논의가 시작되어야할 때”라고 지적했다.

2,3단계 전형별 기출문제는 중학교 교육과정에서 벗어난 출제로 인한 논란에 대한 답변으로 보인다. 실제 영재학교 입시에서는 3단계의 전반적인 틀 이외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별로 공개돼지 않는 편이었다. 출제문항에 대한 논란은 사걱세가 영재학교 대학수학과 올림피아드나 경시대회로 나오는 문제 유형이 있어 중학교 교육과정을 벗어났다고 밝혔었다. 다만 사걱세의 경우 3단계로 다방면으로 평가가 이뤄지는 영재학교 입시과정에서 지필문항만을 분석한 것으로, 기출문제를 반복하는 유형학습 위주인 사교육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한 영재학교의 노력을 배제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 영재학교들은 선행학습 사교육이 과열된 상황을 인식하고 매년 지필문항 출제에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이제부터는 기출문제까지 공개할 계획이다. 

서울과고 측은 선행학습 효과를 배제하고 입시 사교육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열린 문항 출제를 확대하는 등 평가 내용과 방법을 개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올해 신입생 선발절차가 모두 종료된 서울과고는 이날 학교 홈페이지 '입학관련공지'를 통해 처음으로 2020학년 전형별 기출문제를 공개했다. 올해를 기점으로 매년 전형별 기출문제를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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