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정안면 논밭 한가운데서 일군 공교육 저력

[베리타스알파=김경 기자] 한일고(공주)는 매년 서울대 등록실적 일반고 정상권을 호령하는 전국구 고교다. 한 학년 학생수가 150명 남짓한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 베리타스알파의 조사에 의하면, 2018대입에서는 수시8명 정시9명으로 17명, 2017대입에서는 수시14명 정시7명으로 21명, 2016대입에서는 수시12명 정시4명으로 16명의 한일고 학생이 서울대에 진학했다. 서울대가 고교별 등록실적을 밝히지 않은 2019학년엔 19명이 서울대에 진학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대뿐 아니다. 2019학년 기준, 고려대 18명, 연세대 10명, 경찰대학 11명, KAIST 6명, 사관학교 16명, 포스텍과 지스트대학에 15명이 진학했다. 의학계열엔 무려 53명이 진학했다. 상위권 남학생들이 특목자사고를 마다하고 한일고를 선택, 그 어느 학교보다 충성도가 높은 이유다. 한일고가 언론에 거론되기 시작한 건 국내최초 자율학교로 전환된 2002년과 자율학교 1기를 맞은 2003학년 이후다. 진학실적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었지만, 그보다는 설립자의 창학정신을 이어받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뜨거운 연대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해 지면 학교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 낼 만큼 어두워지는 시골 학교가 빛나는 실적의 주인공이 된 데는 입시교육 중심이 아닌 설립자 창학정신을 올곧게 지켜온 학교구성원의 결집력에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2025학년 전국단위 자율학교의 전국모집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전국모집을 폐지하면 충남공주 정안면 논밭 한가운데 자리한 한일고는 문닫을 위기에 처한다. 향후 정책결정과정에서 탁상공론을 벗어난 현실적 조정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학교의 창학과정과 정신에 집중해 ‘시골’ 일반고가 어떻게 교육경쟁력을 스스로 갖춰왔는지 한일고를 조명하는 이유다. 

<사람을 하늘과 같이 섬기는 창학정신>
한일고는 충남 공주시 정안면에 터를 잡은 ‘농어촌 자율학교’다. 전국단위 모집의 자율학교로 교장임용 교육과정운영 교과서사용 학생선발 등 자율성은 자사고와 유사한 반면, 자사고 대비 훨씬 저렴한 일반고 수준의 등록금을 받는다는 장점이 있다. 실적으로 유명해지면서 정부지원을 받는 일반고이면서 전국모집을 하는 농어촌 자율학교인 한일고에 대해 따가운 시선이 생긴 것이나 전기모집에서 후기모집으로 밀어버린 데 더해 이제는 전국모집을 폐지하려는 정부의 무신경함이 거슬리지만, 한일고의 설립배경을 알고 나면 ‘견딜만한’ 작은 고난들에 불과하다.

설립자는 현제(玄濟) 한조해 선생이다. 함경남도 정평 출신으로 한국전쟁 직후 가족을 잃고 혈혈단신 한약방에서 출발, 서울 후암동에 ‘한일한의원’을 운영하며 명의로 알려졌다. 평생 근검절약으로 어렵게 모은 정재 200억 상당을 쾌척, 1985년 한일학원을 세우고 1987년 소원하던 한일고를 개교했다.

한일고 설립준비부터 함께 해온 신인수 교장과 최용희 법인국장이 회고하는 현제 선생은 언제나 한복 바지저고리에 검정 고무신이다. 시레기를 주워 김치를 담그는 등 평생을 검소하게 살았다. 행색이 초라해 학교인가 과정에서 무시 받는 상황도 있었지만, 결국 지역민의 협조로 예로부터 아홉정승이 나온다는 구작골 전설의 명당 10만평 부지 위에 학교를 세울 수 있었다. 풍수상으로 학생을 양육함에 전국 최고의 적지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근거로 결정한 자리다.

현제 선생이 한일고에 남긴 정신은 사람을 하늘과 같이 섬긴다는 뜻인 ‘사인여천(事人如天)’과 몸소 이행한다는 뜻인 ‘실천궁행(實踐躬行)’이다. 북에 고향을 둔 현제 선생은 8도의 인재를 모아 기른다는 의미로 ‘8인1실’ 기숙사학교를 구상했다. 건축설계는 지식전수만이 아닌 인간중심의 교육관을 반영한 특징이 있다. 현제 선생은 교사들에게도 공경과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인사하고 존대하는 등 바르고 깨끗한 성정으로 남아있다. 1997년 8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현제 선생의 창학정신은 한일고의 입시실적은 물론 교육과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전형과정에서 중요시하는 것 역시 현제 선생의 정신을 이어 세상에 공헌할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지 여부다. 신 교장은 “한일고엔 형언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며 한일고 교풍을 설명했다.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신뢰는 ‘한일마니아’ ‘한일마피아’라 할만하다. 졸업 후에 더 강해진다. 축구 한일전 열릴 때 생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서와 비슷하다. 한일고에서 교육할 기회를 가져 감사하다. 감동교육을 위해 남은 시간도 한일고의 전 구성원이 열심히 노력해갈 것이다.”

<8도의 인재들로 9명의 정승을 만드는 구작골>
남학생들만의 한일고는 기숙사전통이 유별나다. ‘8인1실’ 체제는 ‘전국 8도의 인재를 모아 기른다’는 설립자의 구상에서 출발, 8도까진 아니어도 전국 각지에서 모인 학생들의 고향사투리가 섞이며 끈끈한 관계를 엮어준다. 호실을 배정받은 ‘전국8도’의 인재들은 지난해 같은 호실 선배 같은 침대를 사용했던 선배와 ‘침대 선후배’ 관계를 맺는다. 침대선배에게 학업과 생활 측면의 조언을 받는 것은 물론 신 교장의 말마따나 “졸업 이후 사회에서의 한일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 8도의 인재들이 한일고를 통해 공시적 통시적으로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이는 것이다. 서인우 교사는 “처음에는 8인1실 기숙사 생활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형제 없이 자란 학생이 많은 요즘 학생들은 8인1실 생활을 통해 공동체 생활이 어떤 것인지 배우는 기회가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학생수가 줄어들어 7인1실 정도로 운영되고 있다.

교문 교복 공해 없는 ‘3無환경’ 역시 끊임없이 거론되어온 한일고 특색이다. 산과 들에 둘러싸인 한일고엔 일단 환경적 공해가 없는 것은 물론, 학습을 방해하는 휴대전화 인터넷 텔레비전 등 사회적 공해도 없다. 일견 결핍된 환경에서 자기절제의 가치를 몸소 배워간다. 학생들은 학습동아리를 자치적으로 개설하고 운영한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주말스포츠로 태권도 검도 유도 골프 승마 수영 스키 등을, 화랑교육으로 충무공순례 레프팅 해병대캠프 해외교류 등의 활동을 경험하게 한다. 이에 더해 학부모와 함께 하는 입학 100일 잔치, 부모님과 함께하는 수능 100일전 다짐은 한일고 교풍을 바로 설명해주는 이색적인 연례행사다.

특별한 외박규정이 없어 자율적으로 집에 다녀올 수 있지만 대다수 학생들이 365일 중 대부분을 자발적으로 학교에서 보낸다. 외부와의 연결고리가 적은 만큼 학교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춘 덕이다. 이미 ‘국가대표 자율학교’로 자리잡은 지 오래지만 끊임없이 내부 프로그램을 갈고 닦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방과후학교는 모두 무학년제로 운영한다. 올해 2학기 개설된 강좌 34개 중 ‘고전문학 강독’ ‘특차대 영어 기출문제 특강’ ‘수학: 사관학교 기출문제 풀이’ 외에 ‘보컬 트레이닝’ ‘축구 특강’ 등 수요를 꽉 채우는 프로그램을 교사들이 직접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실시하고 있는 ‘교사와 함께하는 독서토론’도 진화된 한일고의 프로그램이다. 올해 11개의 독서토론반이 운영된 가운데 교사뿐 아니라 교장까지 토론수업을 함께할 정도로 전 구성원의 공력을 올인한 상태다. 독서 관련해서는 졸업생도 참여한다. 독서 멘토로 한일고 졸업생이 참여하며 멘토들은 매 주말 학교로 찾아와 후배들과 독서토론을 한다. 올해 16명의 선배들이 찾아와 16권의 도서에 대해 각 후배들과 토론을 진행했다. 지리적 제한을 뛰어넘기 위해 해외 자매학교와 1대1 교류 프로그램인 국제화상수업(IVECA) 프로그램을 도입한 점 역시 돋보인다. 웹 가상교실을 활용해 지난해 미국 캐나다 인도 브라질 과테말라에 이어 올해 미국 중국 브라질 우크라이나 등 지구촌 각지의 학생들과 실시간을 화상수업을 진행 중이다.

‘뛰어난 대입실적’과 ‘선후배간 유대감’의 시너지는 졸업생 선배의 대입 컨설팅으로 연결됐다. 애교심이 가득한 선배들이 학교로 방문해 본인의 합격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선호도 높은 상위대학에 진출한 선배가 많다는 점이 후배들에게 직접적인 장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가장 실질적인 대입 고민인 자소서 작성법, 면접법 등 노하우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SKY’라 불리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학생들이나 한일고와 가까운 KAIST 학생들이 한일고를 방문해 재학생들이 안고 있는 진로, 학업생활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한다. 특히 ‘이공계열 캠프’ ‘의학계열 캠프’ 등을 진행해 희망전공과 매치한 활동도 적극 실시하고 있다.

진학관리도 치밀하다. 교장과 교감, 3개 학년부장, 교무부장과 진로상담부장이 주 1회 진로진학협의회를 연다. 각 학년 및 학교의 학력 증진 방안 및 현안 등을 토의하고 결정하는 자리인데, 특히 진학지도 사례를 공유해 현재 학년에 맞는 전략을 검토하고 수립한다.

수시와 정시의 지도를 병행하는 특징도 있다. 3학년1학기까지 과목별 세특에 개인별로 기재할 수 있는 수업 내용을 확보하고, 학생참여수업과 강의식수능지도수업의 적절한 균형을 추구한다. 주말 및 야간 시간에 제2외국어 및 인문면접 수업을 실시하고, 3학년1학기 방과후 교육활동 시간에 수학면접 과학면접 의대면접 인문면접의 4개강좌를 개설해 학생선택에 의해 교육을 실시한다. 기출문제를 분석하고 풀어보는 것은 물론 모의면접 장면을 녹화해 피드백해준다.

류연득 3학년부장은 “한일고 전교생이 기숙사생활을 하는 만큼, 한일고 전 교사도 야간 및 주말 자율학습 감독에 임한다”며 “특히 담임교사와의 상시적이고 자유로운 생활 및 진학 상담이 특징”이라 전했다.

<미래교육 선도, 충남교육의 중심>
최근 한일고는 교육구조를 더욱 정교하게 구축했다. 그간 한일고 교풍을 만들어왔던 여러 측면을 명문화해 더욱 강조한 데 이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두고 교육과정을 혁신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 한일고는 교육청과 연계해 2019년 고교 교육력 제고 사업의 일환으로 ‘교과중점학교’를 운영한다. 교과중점학교란 특정 분야에 소질이나 적성이 있는 학생이 특성화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중점교과 관련 과목을 다양하게 개설해 운영하는 학교를 말한다. 2015개정교육과정 적용(현 고2) 이후 고교학점제 도입과 맞물려 전국의 고교들이 고민하고 있는 사항으로, 한일고는 이미 교육청의 예산을 지원을 받으며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고교중점학교로서 한일고는 교과목 선택권 확대와 학습권 보장을 통해 학교에 대한 만족도를 증대하고, 특성화된 교육 및 진로설계 지원으로 학습 선택권에 유연함을 부여하며, 교육과정 다양화를 통해 공교육 만족도와 신뢰도를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1학기부터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 공동교육과정인 ‘미래로 스쿨’도 돋보인다. 단위학교에서 개설하지 못하는 교양과목과 소인수/심화과목, 진로선택과목을 토론식 실시간 쌍방향 온라인 수업으로 제공해 학생의 과목 선택권과 학습권을 보장하는 미래형 학교교육과정으로, 시골 논밭 한가운데 자리한 한일고가 이를 국내최초로 도입해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올해 고급화학 러시아어Ⅰ 과학사 영어권문화 음악사의 5개 과정을 운영했다.

고교학점제 도입 기반마련을 위한 ‘징검다리 공동교육과정’도 올해부터 실시하고 있다. 2015개정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를 연결, 학생들의 과목선택이 진로실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학교간 협력, 지역사회와 연계한 인적/물적 인프라 구축, 온라인 수업 플랫폼 구축 등으로 고교학점제의 기반을 조성하고, 단위학교를 넘어 개방적이고 유연한 학생선택중심 진로맞춤형 교육과정 운영을 목표한다. 거점학교가 중점과목 소인수선택과목 심화과목을 개설해 인근학교 학생에 개방하는 것인데, 한일고가 거점학교가 되어 이미 국제정치와 화학실험의 2개 심화과목으로 지난해에 개시했다.

무엇보다 ‘마을교육공동체’ 운영이 인상적이다. 매년 70%를 넘긴 충남 외 지역의 입학생들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 학생들까지 합심해 한일고 학생들이 지역사회가 인정하는 도민으로서 입지가 확고한 상황이다. 한일고 학생들은 매년 5월과 10월에 모심기와 벼베기의 농촌체험활동을 통해 농촌의 실정과 우리문화에 대해 이해한다. 매년 5월에 경로효친 및 의료봉사 활동을 통해 농촌의 독거노인에 대한 경로의식을 고취하고, 매 주말 다문화 교육공동체 활동을 통해 지역내 다문화 아동에 대한 지도함으로써 현장에 대한 이해력을 키운다. 매 주말 재능기부 활동으로 인근 중학생에 대한 방과후 주말 방학 중 다양한 교육과정도 학생들이 직접 운영한다. 매년 6월 자매결연마을과 상생 한마당 잔치를 운영하고 정안면 주관 음악회에 참여하고 있는 한일고 학생들은 비단 대입실적뿐 아니라 인성을 잘 다진 지역 내 우수인재로서 인정받고 있다.

신 교장은 “한일고는 국가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창학정신을 잘 실현시킬 수 있는 교내 전통과 문화가 잘 형성되어 있다”며 “올해는 전 교직원의 의견을 수렴해 학교비전을 ‘세상을 품어라 한일 큰 그릇’이라 설정하고 세계적인 리더를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교육정책과 입시정책의 잦은 변화로 일선 학교로서 혼란이 극대화하고 있는 상황, 특히 보편적 교육을 내세워 특목자사고에 대한 폐지 움직임과 전국단위 자율학교의 전국모집 폐지 행보에 대해선 “지금껏 우리나라는 인적자원에 의존해왔다. 교육열이 매우 높은 덕에 세계적으로 우수한 인재들이 육성되어 왔다”며 “그러나 현재의 교육정책의 변화는 지나친 보편적 교육을 앞세워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한다. 교육현장에서는 하향평준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매우 높다”고 입장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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