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클리닉] 같은 증상도 원인은 다를 수 있다

 “감기가 들었어요. 기침이 나고 몸살 기운이 있어요. 두통도 있고, 콧물도 납니다.” 이렇게 환자 스스로 진단을 하고 치료를 원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맥을 보면 감기에 나오는 부현맥(浮弦脈)이나 부긴맥(浮緊脈)이 아니다. 감기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오면 우리 몸의 면역계와 싸움이 난다. 그 결과로 몸에는 열이 나고, 맥은 살짝 대기만 해도 느껴지는 부맥(浮脈) 나타나게 되어있다. 그런데 열도 없고, 부맥도 잡히지 않는다. 당연히 감기가 아니다.

 

감기에 걸려도 콧물이 날 수 있지만 코가 지나치게 냉각되어도 맑은 콧물이 나올 수 있다. 비장의 기운이 떨어져도 콧물과 가래가 많아진다. 위의 환자는 소화기 즉 비장의 기능이 저하되어 콧물이 나오고 몸살처럼 몸이 무거워진 상태였다. 이 경우엔 머리가 아프기보다는 묵직하게 불편하다. 당연히 비장을 따뜻하게 만드는 침치료를 하니 “몸이 가볍다”고 말한다.

이렇게 같은 증상이라도 병의 원인은 아주 다양하다. 그래서 진료를 하면서 항상 마음 속으로 다지는 치료의 원칙이 있다. “환자의 몸을 파악하지, 병명을 보지 말자”는 것이다. 환자분들의 증상을 듣다 보면 환자의 몸을 파악하기 보다 증상을 쫓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무릎이 아프다고 하면 비장(脾臟)이 허해져서 습이 생기고, 그 때문에 통증이 생겼을 수 있다. 그런데 아픈 곳만 신경을 쓰면 무릎주위에만 침을 놓고 있는 경우가 생긴다. 병의 본질을 치료해야 한다는 원칙이 흔들린 것이다.

진단의 초점은 오장육부의 기능이어야 한다. 몸의 모든 장부가 원활하게 작동하면 불편할 이유가 없다. 독감과 같이 우리 몸이 겪어 보지 못한 바이러스나 세균은 예외이겠지만 면역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대부분의 균들도 이겨낼 수 있다. 병들의 대부분은 오장육부 어느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나타난다.

소화불량이나 체증을 살펴보자. 소화기의 문제는 과식도 하나의 원인이 되지만 위장이 꿈틀운동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에 배탈이 생긴다. 문제는 복진시에 과식이나 위의 운동저하가 비슷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맥을 보아야 한다. 위의 운동이 저하된 맥이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찬 것을 먹거나 몸의 신진대사가 떨어져 위가 뻣뻣해져 있다면 긴맥(緊脈)이 나온다. 스트레스를 받아 문제가 생겼다면 현맥(弦脈)이 나온다. 위가 있는 부위에 긴침을 자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차가워진 위는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스트레스로 긴장된 위는 긴장도를 떨어뜨리는 처치를 해주면 소화가 원활해진다.

통증부위와 진단 및 치료부위가 다른 대표적인 질환이 바로 두통이다. 만성두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의외로 많지만, 원인만 파악되면 쉽게 치료되는 것이 바로 두통이다. 위(胃) 담(膽) 방광(膀胱) 간(肝) 등 두통을 일으킬 수 있는 장부도 많고, 장부들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해 나오는 나쁜 기운(邪氣) 때문에 두통이 일어나기도 한다. 60대 중반의 환자는 처녀 때부터 머리가 아팠다고 했다. 두통 때문에 인상을 써서 미간의 주름이 깊이 파여 있었다. 진단을 해보니 위의 문제가 두드러졌다. “소화가 잘 안되시네요”라고 물으니 “소화불량 때문에 고생한 것이 수십 년”이라고 했다. 1주일여 치료를 받아 고질병이던 두통이 사라졌다. 위의 기능을 좋게 해주니까 두통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한의학의 장점이고, 한의사로서 치료하는 재미이다.

이렇게 다양한 병인을 치료하는 방법도 각기 원인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한의학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치료방법은 바로 침 탕약 뜸이다. 침은 기운을 조절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오장육부의 기운을 살펴 너무 많으면 깎아내고 부족하면 다른 장부의 기운을 이용해 채워 넣는 게 바로 침이다. 기(氣)를 조절하므로 의외로 효과가 빠르게 나타난다. 담열을 줄이려 특정혈을 강하게 자극하면 맥에서 담열이 줄어드는 것을 바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심한 두통과 복통도 침을 맞은 뒤에 빠르게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부족함이 심한 허증(虛症)으로 인해 침치료만으로 치료하기 힘든 경우이다. 이 때는 탕약을 함께 쓰는 것이 효과적이다. 몸 안에 돌아갈 기운이 없으면 침치료 효과도 적을 수밖에 없다. 물론 침으로도 기혈이 좋아지게 만들 수 있다. 혈(血)이 부족하면 간, 심, 비의 세 개 장부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이 세 장부의 기능이 좋아지면 혈액의 생성능력이 좋아지고, 천천히 혈허(血虛)증상이 개선될 수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얘기다. 하지만 탕약으로 보혈제를 쓰면 빠르게 혈허증상이 개선될 것이다. 혈액을 만드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약을 직접 공급하고, 장부의 기능을 좋아지게 하는 약재까지 첨가한다면 침보다는 아주 빠르게 혈허증상을 치료할 수 있다.

임상경험으로 보면 발병한 지 오래되지 않은 병들은 대부분 침으로 잘 치료가 된다. 하지만 오래된 병들은 침과 약을 병행해야 한다. 오래된 병들은 대개 장부의 기능저하가 심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병을 고치는 것은 무너진 담장이나 집을 고치는 것과 비슷하다. 필요한 벽돌을 사올 수도 있고 만들어서 쓸 수도 있다. 심한 허증을 침으로만 치료하는 것은 벽돌을 만들어서 쓰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래와 시멘트를 구해야 하고, 벽돌을 찍어내는 틀도 구해야 한다. 모래와 시멘트를 잘 섞어 틀에 집어넣은 뒤에 찍어내고, 몇 일 건조한 후에 겨우 쓸 수 있는 벽돌을 만들 수 있다. 담장은 계속 허물어지는데 한가하게 벽돌을 만들기 보다는 사다 쓰는 게 효율적이다.

뜸은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효능이 강하다. 몸에 습(濕)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쌀알 크기로 쑥을 말아서 피부에 직접 태우는 직접구 방식도 있고, 피부 위에 생강이나 링 등을 대고 그 위에서 쑥을 태우는 간접구도 있다. 물론 몸의 상황에 따라 뜸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동일한 병에 한의학의 치료방법이 다르다고 비판하는 분들도 있다. 일관성과 재현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 이유는 바로 병명이 아니라 병의 원인에 따라 치료를 하기 때문이다. 병의 원인을 잘 진단하면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있다. 같아 보이는 병도 원인은 다른 경우가 많다.
/한뜸 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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