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분산과 농어촌 살리기 취지 역행’ ..지역 반발 커질 듯

[베리타스알파=손수람 기자] 고교서열화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공교육 롤모델’로 평가받는 전국모집 자율학교까지 겨냥하면서 현장의 당혹감이 커지고 있다. 교육부가 7일 내놓은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에 의하면 전국모집 일반고까지 모집범위가 축소되기 때문이다. 현장에선 대부분 지방 소도시와 농어촌에 소재해 학생모집이 어려운 일반고들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사실상 학교운영을 포기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는 반응이 학교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우수한 교육성과로 주목받으며 지역발전의 거점 역할을 해왔던 전국모집 자율학교를 약화시키는 것이 ‘시대착오적 정책’이라는 지역사회의 반발도 상당하다. 

전국모집 자율학교는 8개 시/도에서 총 49개교가 운영 중이다. 대부분 지역적으로 불리한 곳에 있어 모집범위가 축소될 경우 상당수가 폐교 위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한 교육전문가는 “문재인 정부는 자율학교들이 전국모집을 실시하는 이유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는 듯하다. 지역 소도시나 농어촌의 일반고들이 전국모집을 실시하게 된 것은 그렇지 않을 경우엔 학교운영 자체가 안 되기 때문이다. 학령인구 감소와 인구의 공동화가 겹치면서 지역 내 학생만으로 정원을 채우기 못하는 학교들이 속출하면서 이들 학교의 전국단위 선발이 허용된 것이다. 특히 일부 학교들은 자율성을 기반으로 경쟁력 있는 교육과정을 갖추면서 '공교육 롤모델'로 부상했다. 강력한 사교육 차단효과까지 인정받기도 했다”며 “그런데 교육부는 전국모집을 실시하는 것이 고교서열화의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전국단위 자율학교들의 모집범위도 광역단위로 변경할 계획이다. 대도시 지역에 인구가 집중된 상황에서 일반고의 모집범위까지 무조건적으로 제한한다면 농어촌이나 소도시 학교들은 폐교를 피할 수 없다. 특히 우수성을 입증한 지방의 자율학교들의 교육의 질 하락이 우려된다. 서열화를 없앤다는 교육부의 정책이 사실상 ‘지방 일반고 죽이기’로 여겨지는 이유”라고 말했다.

고교서열화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공교육 롤모델’로 평가받는 전국모집 자율학교까지 겨냥하면서 현장의 당혹감이 커지고 있다. 교육부가 7일 내놓은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에 의하면 전국모집 일반고까지 모집범위가 축소되기 때문이다. 현장에선 대부분 지방 소도시와 농어촌에 소재해 학생모집이 어려운 일반고들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고교서열화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공교육 롤모델’로 평가받는 전국모집 자율학교까지 겨냥하면서 현장의 당혹감이 커지고 있다. 교육부가 7일 내놓은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에 의하면 전국모집 일반고까지 모집범위가 축소되기 때문이다. 현장에선 대부분 지방 소도시와 농어촌에 소재해 학생모집이 어려운 일반고들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모집범위 축소’ 전국모집 자율학교.. ‘학생선발권도 상실’>
2025년부터는 전국모집을 실시하는 자사고와 일반고의 모집범위가 모두 축소된다. 교육부는 7일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을 통해 2025년 3월부터 고교유형 단순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현재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이 고1이 되는 시점부터 자사고 외고 국제고는 모두 일반고로 전환된다. 자사고와 함께 자율고로 분류되는 자공고 역시 마찬가지다. 일반고 전환으로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학생선발 권한은 사라진다. 반면 과고 예고 체고 마이스터고는 특목고를 유지해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 영재학교와 특성화고 역시 별도의 고교유형으로 남는다.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학생모집방식을 일반고와 동일하게 변경하면서 전국단위 자사고의 모집범위도 변경된다. 광역단위 내에서 평준화지역은 교육감 배정, 비평준화지역의 경우 학교장 선발을 실시한다. 예를 들어 현대청운고는 평준화지역인 울산 시/도교육감 배정에 따라 2단계 지원이 가능하다. 비평준화지역에 있는 민사고는 학교가 소재한 강원 전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장 선발을 진행한다. 광역모집인 외고의 경우 학생모집방식만 달라진다. 

교육부는 전국단위로 학생을 모집하는 일반고 49개교의 모집범위도 함께 축소한다. 전국 각지에서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기숙사체제까지 갖춘 자율학교들이 지역 내 학생들만 모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학생선발권도 박탈된다. 현재 이들 학교는 전국자사고와 마찬가지로 전국의 학생들이 지원가능한 구조지만, 2025년 3월부터는 소재한 지역에 따라 일반고의 배정/선발방식을 따르게 된다. 교육부 관계자 “자사고와 특목고를 폐지해도 농어촌 자율학교의 학생선발권을 유지하면 또 다른 형태의 고교서열화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모집 특례를 폐지하려 한다”며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이 시행되는 2025년 3월 동시 적용해 학교현장에 충분한 준비기간을 부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장 뒤엎는’ 교육정책.. ‘탁상행정으로 폐교위기 유발’>
현장에선 곧바로 교육부의 ‘탁상행정’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전국모집을 실시하는 일반고들은 대부분 지방의 외진 곳에 자리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광역모집으로 일괄 변경된다면 학생모집 자체가 불가능해져 학교의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 이미 지역전형으로 학생선발을 실시하고 있음에도 지원자 미달이 누적되고 있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애초에 이들 학교가 지역학생만으로 학교운영이 어려워 전국모집을 실시했던 만큼 이제 와서 고교서열화를 이유로 모집범위를 축소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간 전국모집 자율학교가 교육의 거점이 되면서 ‘지역 살리기’의 동력이 됐던 것을 교육부가 부정했다는 우려도 크다.

학교 관계자들 사이에선 학교운영을 포기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불리한 지역적 조건을 가진 전국모집 농어촌 자율학교의 특성을 무시한 일방적인 조치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 교육전문가는 “학령인구 감소로 폐교위기에 몰렸던 농어촌 지역 학교들은 전국모집 자율학교 전환을 통해 반전을 꾀한 사례가 많다. 남해해성고가 대표적이다. 지역적으로 매우 외진 곳에 위치해 있지만, 재단의 과감한 투자로 교육수준을 끌어올리고 학생기숙사도 제공했다. 사교육 없이도 꾸준한 대입실적을 내면서 전국의 학생들이 지원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광역모집으로 축소될 경우 학교가 유지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지역 인근의 일반고 3곳과 신입생 정원을 합칠 경우 남해군 중학생 인원보다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학령인구 감소의 위기를 직면한 지방 소도시의 실정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 전국모집 자율학교들이 지역전형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전국모집을 실시하는 것만으로 고교서열화를 유발한다는 교육부의 주장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율학교 대표주자’ 한일고는 신입생 140명 중 30%인 42명을 충남 출신 학생들로 선발한다. 나머지 70%(98명)를 전국단위로 모집한다. 교육계 한 관계자는 “한일고는 충남모집을 운영하고 있지만, 지역 인구가 감소하면서 매년 미달을 빚고 있다. 충남 중학생만으로 모집정원 자체를 채울 수 없는 것”이라며 “정부가 모집범위 축소를 결정하기 이전에 각 학교들의 지원현황만 미리 파악했어도 이렇게 무책임한 정책을 펼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 전국모집 자율학교의 강점은 다양한 지역의 학생들이 함께 수업받는다는 점도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고교서열화를 이유로 그 교육적 가치를 전형 인정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부처간 엇박자가 유발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행정안전부를 중심으로 여러 부처와 지자체 등이 ‘지역 살리기’의 일환으로 우수학교 육성을 지원해왔기 때문이다. 실제 지역사회에서도 전국적인 명문고로 부상한 자율학교들이 지역발전의 동력이 되고 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상대적으로 산업이 낙후된 경남 거창군에선 거창고의 역할이 상당하다. 전국의 학생과 학부모가 지역을 방문한 계기가 됐기 때문”이라며 “충남의 공주사대부고와 한일고 등 전국적인 명성을 가진 자율학교들은 지역의 교육거점으로 평가된다. 실제 정부와 일부 지자체는 이들 학교를 중심으로 지역의 우수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교육부는 이 모든 성과를 부정하며, 교육의 질까지 낮출 가능성이 큰 방안을 내놨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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