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병과 혈관

119 구급대를 불렀다. 내원한 87세의 여자환자 분이 증세가 심상치 않아 급히 응급실로 보내기 위해서다. “어제 저녁부터 갑자기 왼팔의 힘이 확 떨어졌어요. 오른팔은 정상인데 왼팔로는 세수하기 위해 팔을 올리기도 힘드네요.” 언어장애나 어지럼증은 없었고,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시던 분이기 때문에 보행이상도 확인하기 힘들었지만 뇌졸중(중풍)의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어제도 이발사인 73세의 남자환자분이 손님의 머리를 정리해 주던 중에 갑자기 오른팔이 마비되고 얼굴 한쪽이 마비되었는데 5분여 지난 후에 풀렸다며 한의원을 찾았다. “원인이 뭐냐”고 묻는데 “확진할 수는 없지만 일과성허혈발작(TIA)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씀드렸다. 일과성허혈발작은 작은 혈전이 뇌혈관을 순간적으로 막아서 생기는 일시적인 뇌졸중이다. 계속 막혀 있었다면 후유증이 클 수 있었겠지만 운이 좋게도 자연적으로 혈전이 풀린 케이스다.

 

뇌출혈과 뇌경색을 포함하는 뇌졸중은 흔히 중풍이라고 불린다. 혈관에 문제가 생기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혈관이 터지거나 막힌 경우다. 이와 같이 혈관이 터지거나 막히게 만드는 원인은 바로 혈관의 노화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혈관도 늙게 마련이지만 혈관을 빠르게 손상시키는 질환도 있다. 바로 성인병이라고 불리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이다.

고혈압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현상이다. 나이가 들면 혈관이 좁아지게 된다. 혈관의 탄력도 저하된다. 이런 이유로 심장에서 보내는 혈액이 말초까지 도달하기 힘들어진다. 자연히 압력을 높인다. 손발 끝 등의 말단에 필요한 혈액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서다. 나이가 들면 혈압이 높아지는 게 당연한 현상이라고 보는 이유다. 그런데 왜 자연스런 고혈압을 낮추기 위해 약을 복용해야 하는 걸까.

혈압이 높아지면, 약해지고 탄력이 떨어진 혈관을 과하게 압박할 수밖에 없다. 과한 압력을 받은 혈관은 피로가 가중되어 더 경직된다. 경직도가 높아지면 당연히 탄력이 떨어지게 되어 순간적으로 혈관에 대한 압력이 올라갈 때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근근이 버티던 혈관이 터질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말단의 세포에 영양을 덜 보내더라도 뇌와 같은 중요한 장기의 혈관이 터지는 걸 방지하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다. 고혈압 약을 복용해야 하는 이유다.

고혈압 환자는 겨울에 조금 더 조심해야 한다. 추운 날씨 때문에 혈관은 수축되어 있는데 화장실에서 배변을 위해 힘을 주어 복압이 상승되면 혈관 벽은 압박을 더 받는다. 순간적으로 혈압이 급격하게 올라간다. 혈관이 약한 노인들의 경우 혈관이 파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만성병의 대표적인 질환인 당뇨도 살펴보면 결국 혈관질환이다. 당뇨병을 관리하지 못하면 나중에 신장이나 망막의 질환이 가장 먼저 나타난다. 더 심해지면 발가락이 작은 상처에도 괴사하기도 한다. 모두 모세혈관이 손상되어 일어나는 병이다.

10여 년 전에 많이 볼 수 있었던 ‘인체의 신비’라는 전시회가 있었다. 골격계와 근육계는 물론이고 신경계와 혈관계까지 자세히 해부해 놓은 인체를 보여주었다. 이 중에 혈관만을 보여주는 시신을 살펴보면 뇌와 신장에 모세혈관이 집중된 것을 볼 수 있었다. 당뇨는 이와 같이 혈관 중에도 모세혈관에 먼저 문제를 일으킨다. 혈당이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 혈관의 내부가 약해진다. 두꺼운 대동맥과 같은 혈관은 버틸 수 있지만, 얇은 모세혈관은 빨리 손상되게 마련이다. 모세혈관이 집중된 신장이나 두뇌, 망막, 손발 끝에서 먼저 합병증이 나타나는 것이다.

고지혈증은 혈관 내부에 기름기가 끼게 만든다. 콜레스테롤이 혈관 벽에 쌓이는 죽상경화증이 생기고, 심장의 관상동맥이 좁아져서 문제가 되는 심근경색이나 혈전이 떨어져 나와 뇌혈관을 막는 뇌졸중의 원인이 된다. 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위에서 설명한 병은 물론이고 온몸의 기능이 떨어진다. 혈관은 온몸으로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는 도로이고 세포의 대사활동 산물로 나타나는 노폐물을 신장으로 옮겨주는 통로이다. 이런 도로가 망가지고 손상되면 장기와 근육 골격계 등의 모든 기관에 원활한 영양공급이 어려워진다. 노폐물의 배출도 당연히 힘들어진다.

혈관이 튼튼해지면 노화를 상당히 늦출 수 있다. 건강수명을 늘릴 수 있다. 혈관을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은 아주 잘 알려져 있다. 운동이 심혈관계를 튼튼하게 만든다는 건 증명이 된 사실이다. 주4회, 한 번에 30분 이상의 유산소 운동이면 온몸에 있는 12만km의 혈관을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 운동 중에 혈류속도가 빨라진다. 빠른 혈류는 혈관에 끼어 있는 때도 벗겨내고, 탄력도 증가시킨다.

지나치게 오래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2시간이상 같은 자세로 앉아 있으면 다리 혈액의 점성이 높아져 혈전이 잘 생긴다. 비행기의 좁은 이코노미 좌석에서 발생하는 ‘이코노미 증후군’이 바로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어 생기는 혈전 때문이다. 한 시간에 한 번 정도는 일어나 조금이라도 걸어야 한다. 과도한 스트레스도 혈관건강에 나쁘다. 스트레스는 교감신경을 항진시키게 마련이다. 교감신경이 올라가면 혈압이 높아지고 혈당도 올라간다. 교감신경이 항진되면 혈관이 좁아지고 경직되기도 한다. 고혈압과 당뇨가 겹쳐 있는 것과 유사한 몸을 만든다. 자기 전에 긴장된 몸은 스트레칭이나 따뜻한 목욕이나 샤워로 이완시켜 주어야 한다. 금연도 중요하다. 흡연은 혈류량을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혈소판의 응집력을 높인다. 혈액이 혈관 벽에 잘 엉겨 붙게 만든다.

이처럼 혈관의 건강은 한 가지로만 유지할 수 없다. 좋은 생활습관과 성인병을 잘 관리해야 혈관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고, 건강수명도 늘릴 수 있다.
/한뜸 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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