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계고 확대’로 일반고 강화 유도해야.. ‘교육특구 쏠림 막기 어려워’

[베리타스알파=손수람 기자] 교육부가 10월30일 공개하기로 했던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의 브리핑이 돌연 연기됐지만, 현장에선 예측됐던 사태라는 반응이다. 당초 교육부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괄전환 방침과 일반고 경쟁력 강화 방안을 포함한 고교체제개편의 전반적인 내용을 모두 설명할 예정이었다. 그렇지만 브리핑을 하루 앞두고 별다른 예고도 없이 일정이 취소됐다. 

교육계에선 애초부터 브리핑이 미뤄질 수 있었다는 관측이 많았다. 대통령의 의지로 특목자사고 일괄폐지 방안의 논의가 급물살을 탔지만, 현실적으로 검토해야 할 부분이 작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었기 때문이다. 역풍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여론의 향배를 가늠하기 위해 발표시점을 늦췄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교육전문가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괄전환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된 내용이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 나서면서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지만, 현장에선 회의론이 우세하다. 사립학교들의 재산권 문제와 신뢰보호 등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 교육부 입장에선 법적인 부분에서 추가적으로 검토할 부분이 있었을 것”이라며 “현장의 반발을 넘어 가능한 정책추진의 역풍이 부담이 될 것이다. 특히 일괄폐지의 대상이 되는 학교들은 물론 입시의 수요자들까지 반대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론의 향배를 좀 더 가늠한 후 정책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교육부가 브리핑을 미뤘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장에선 자사고 외고 국제고 폐지보다 일반고 역량강화 방안이 먼저 나왔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반고의 경쟁력에 대한 수요자들의 신뢰를 충분히 쌓아야 특목고와 자사고가 폐지된 이후 사교육 과열과 고입혼란을 덜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한 관계자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없앤다고 입시경쟁과 고교서열화가 없어질 것으로 기대할 수 없으며, 오히려 강남8학군이나 지역 명문고 부활 등 과거 평준화 시절의 폐해가 재연될 우려가 크다. 입시경쟁의 근본 원인은 임금 차별과 학벌주의가 공고한 사회/노동 구조에 있다는 점에서 자사고와 특목고에 그 책임을 온전히 돌리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반고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를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금처럼 일부 특목고와 자사고만 문제 삼을 경우 해결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교육계 한 관계자는 “사실 ‘일반고 황폐화’는 현 정부가 지적하는 것처럼 ‘고교 서열화’ 때문이 아니다. 일반고의 학생들이 자사고 학생들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려 학업에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라며 “오히려 일반고에 대학진학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 학생들이 대거 유입되는 구조 자체가 문제가 된다. 현재의 고교체제로는 대학진학보다 취업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도 상당수 일반고로 가게 된다. 마이스터고나 인기가 높은 특성화고에 불합격한 학생들이 일반고를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교개편을 시도한다면 일반고의 비중을 과감히 낮추고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안에서부터 실마리를 찾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육부가 10월30일 공개하기로 했던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의 브리핑이 돌연 연기됐지만, 현장에선 예측됐던 사태라는 반응이다. 대통령의 의지로 특목자사고 일괄폐지 방안의 논의가 급물살을 탔지만, 현실적으로 검토해야 할 부분이 작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었기 때문이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교육부가 10월30일 공개하기로 했던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의 브리핑이 돌연 연기됐지만, 현장에선 예측됐던 사태라는 반응이다. 대통령의 의지로 특목자사고 일괄폐지 방안의 논의가 급물살을 탔지만, 현실적으로 검토해야 할 부분이 작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었기 때문이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예견됐던’ 브리핑 연기.. ‘실현가능성 검토도 필요’>
교육부가 10월30일 진행할 예정이었던 ‘고교서열화 해소방안’ 브리핑이 미뤄져 7일 발표됐다. 사전에 보도계획을 통해 교육부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괄폐지와 일반고 경쟁력 강화 등을 포함한 내용의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을 지난달 30일 발표한다고 공지했었다. 그렇지만 아무런 사전예고 없이 급작스럽게 일정이 취소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브리핑 자체가 취소된 것은 아니고 연기됐다”며 “본래 30일 논의 내용을 정리해 브리핑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렇지만 비슷한 시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회의가 열리는 만큼 시/도교육감들과 한번 더 논의하는 방향으로 결정됐다. 일반고 경쟁력 강화 방안을 포함한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은 그 이후에 브리핑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교육계에선 애초부터 교육부가 계획한 대로 방안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었다. 결과적으로 브리핑이 연기된 상황 역시 현실적 여건과 여론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의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한 교육전문가는 “본래 8월중 일반고 경쟁력 강화 방안을 내놓는 것이 교육부의 계획이었다. 그렇지만 자사고 재지정평가에 따른 논란과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입시비리 등이 겹치면서 계속 발표시점이 늦춰졌다. 그런 와중에 갑작스럽게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괄전환 방안이 부상했다.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 교육부가 더욱 분주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다수의 사립고교들이 존폐가 걸린 문제는 법을 떼어놓고 볼 수 없다. 청와대와 여당 인사들의 시각에선 시행령 개정으로 충분한 사안이지만, 사학이 얽힌 재산권 문제는 복잡해질 수 있다.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교육부가 단시간에 결론내긴 어려웠을 것“이라며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해봤을 때는 현장의 반응도 중요하다. 반발이 계속 이어진다면 정상적인 정책의 운영이 어렵기 때문이다. 여론의 의중을 조금 더 살펴본 뒤 발표의 수위를 정하려 하는 정치적 고려가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실제 고교현장과 교육단체의 의견을 무시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꾸준히 반대의견이 나오고 있음에도 당정청이 비공개로 논의했던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괄폐지 방안이 공식적인 교육정책으로 채택되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교육계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시행령을 개정하는 것은 무책임한 의사결정이라는 지적이다. 교총 한 관계자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 등 고교체제와 관련된 사항은 시행령으로 간단히 없애서는 안 된다. 이들 고교유형을 일반고로 일괄 전환할 경우 교육다양성을 포기해야 한다. 정권 따라 고교의 존폐가 달라진다면 혼란만 유발할 가능성도 크다”며 “고교체제는 학생에게 다양한 교육기회를 열어주고 미래사회에 대응한 인재 육성을 고려해 국가적 검토와 국민적 합의로 결정돼야 하며, 이를 시행령이 아닌 법률에 직접 명시해 교육법정주의를 확립해야 한다”고 전했다.

<‘고입혼란’ 손 놓은 교육부.. ‘일반고 경쟁력 의구심 여전’>
현장에선 교육당국의 기본적 시각부터 문제라는 지적이다. ‘고교서열화 해소’가 시급하다는 이유로 일반고 경쟁력 강화방안보다 특목자사고 일괄폐지 계획이 먼저 구체화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월성교육을 담당해왔던 특목고와 자사고들이 한꺼번에 일반고로 전환될 경우 공교육 약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일반고의 경쟁력에 대한 수요자들의 신뢰가 충분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전문가들이 일반고 경쟁력 강화방안이 보다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그럼에도 여전히 당정청은 고교서열화가 일반고 학생들의 의욕을 꺾고 있다는 인식에만 머물러 있다. 그간 발표를 미뤄온 일반고 경쟁력 강화방안이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에 포함된 점 역시 실질적인 대안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현장의 우려가 큰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가 다양한 고교유형의 경쟁체제가 구축된 현재의 상황에서 ‘고교서열화’의 폐해를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대학에 비해서 고교간 순위는 크게 매기지 않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현재의 고입 환경에선 ‘고교서열화’는 허상에 가깝다. 우수한 학생들을 특목고와 자사고가 ‘싹쓸이’하면서 일반고 학생들이 패배감에 시달린다는 식의 논리는 현장의 분위기와 전혀 다른 해석이기 때문”이라며 “자사고 진학을 위해 중학교 입시가 과열됐다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 학생들도 많다. 광역자사고의 경우 별도의 준비를 하지 않고 큰 부담 없이 지원해보는 경우가 빈번하고, 전국자사고 역시 과거의 특목고에 비해 사교육의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일반고에 진학한 학생들은 자사고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서열화에 대한 우려 자체가 어른들의 시각을 지나치게 일반화했다고 말한 학생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조국사태’ 이후 갑작스럽게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괄폐지가 결정되면서 현장의 반발까지 커지고 있다. 현 정부가 현 정부가 편향적 인식으로 절차를 무시한 고교개편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교육계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는 애초부터 고교체제 개편과 일반고 강화를 위한 정책 마련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본다. 자사고폐지로 고교서열화가 해소되면 일반고 경쟁력이 강화된다는 안일한 인식을 고수했기 때문”이라며 “2020년 하반기부터 고교체제개편을 논의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갑작스럽게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괄폐지로 상황이 급변했다. 일반고 경쟁력에 대해 확신을 줄 수 있는 방안이 없다고 판단하면 수요자들은 사교육과 같은 대안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교체제개편 ‘관점부터 바꿔야’.. ‘직업계고 확대가 실질적 대안’>
고교체제개편이 결국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일반고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고교체제 구축의 장기적인 계획 없이 자사고 외고의 폐지부터 실행하고 있어 순서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실제 전체 고교유형 가운데 극소수에 불과한 자사고가 일반고의 황폐화를 일으켰다는 주장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 현장의 반응이다. 오히려 마이스터고나 특성화고 등 직업계고가 부족해 대학진학의 의지가 낮은 학생들까지 진학하고 있는 것이 일반고 경쟁력이 하락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시각이 힘을 받는다. 직업계고를 늘려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학생들을 충분히 수용한다면 대학진학을 위한 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 일반고의 경쟁력이 충분히 향상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교육계에선 직업계고인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대학진학의 의지가 크게 없는 학생들도 상당수 일반고로 진학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전국에 소재한 2358개 고교 중 일반고는 1556개로 전체 66%를 차지한다. 반면 특성화고는 490개교로 20.8%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부족한 학교의 수로 인해 직업계고로 진학하기 위한 진입장벽이 세워졌다는 분석이다. 2017년 7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마이스터고에 진학한 중3 내신등급이 평균 3.6등급으로 일반고의 3.8등급보다 높다. 학생 선호도가 가장 높은 마이스터고로 꼽히는 공군항공과학고의 경우 2019학년 신입생 선발결과 최종합격 내신 커트라인이 남자 일반 22.8%, 여자 일반 12.3% 수준이었다.

직업계고의 비중이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모두 수용할 만큼 늘어날 경우 일반고 황폐화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일반고로는 상급학교를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주로 모이게 되면서 수업분위기도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교육계 한 전문가는 “대입 진학에 뜻이 없는 학생들이 일반고에 진학한다는 게 ‘일반고 황폐화’의 원인이다. 중학교 때부터 직업교육을 택할 학생과 대입진학을 할 학생을 나눠줘야 하지만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직업교육을 받고 싶어도 직업계고 정원 자체가 적어 어쩔 수 없이 일반고에 가는 일도 발생한다”며 “직업계고를 일반고와 비슷한 수준까지 확대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다. 진로교육을 미리 시작하고 직업계고를 확대해 학생들이 진학과 취업을 빨리 결정해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접근도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시각처럼 자사고 외고 국제고만 문제 있다고 결론을 내는 것은 현장의 갈등만 키울 뿐이다. 고교체제 개편을 논의하기 위해선 전체적인 학생들의 수요를 공교육에서 수용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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