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준 한양대ERICA 입학처장 (경영학부 교수)

십여 년 전 대학에 교수로 부임하면서 처음 가졌던 각오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생각해 본다. 주로 논문으로 평가되는 연구 성과를 많이 만들어내고, 그런 성과를 바탕으로 연구비를 수주하고, 그래서 더 많은 제자들과 더 좋은 연구환경을 구성하고, 계속 많은 연구성과를 만들어내면 그저 좋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 속에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인재들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입학처장이라는 직책을 맡은 지 2년, 우리대학은 어떤 학생을 선발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앞서 이 변화의 시대에 대학은 어떤 인재를 길러낼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인정할 정도로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동네마다 영어 수학을 가르치는 입시학원 하나 없는 곳이 없고, 수능이 있는 날이면 기도하는 부모의 모습이 해마다 TV에서 방영될 정도로 지역과 계층을 초월해 자녀교육에 운명을 거는 교육열은 세계를 놀라게 한다. 작은 땅덩이, 보잘것없는 자원, 험난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사에 유래가 없다는 속도로 기적을 이루어낸 근원에 우리들 속에 녹아 있는 교육에 대한 열망이 있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황승준 한양대ERICA 입학처장 (경영학부 교수)
황승준 한양대ERICA 입학처장 (경영학부 교수)

 

이러한 고도의 산업발전 과정에서 우리대학들은 소위 공장에서 상품을 만들어내듯 산업화 속도에 맞추어 필요한 인력을 고속으로 만들어내는 데 그 사명을 다했던 것 같다. 공장에서 양품의 물건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품질이 좋아야 하고 원가가 싸야 하며, 수요의 요구에 맞추어 생산속도를 빠르게 끌어올려야 했다. 세상과 경쟁하기 위해서 국가의 인재육성의 방향도 소위 ‘공장형 인간’, 다시 말해 업무지시를 빠르게 파악하고 그 지시사항을 정확하게 수행하는 인재를 사회에 대량으로 빨리 공급해야 했다. 대학의 교육도 이러한 ‘공장형 인간’에 부합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데 맞춰져 있었고 그간의 대입제도 역시 그러한 교육을 가장 잘 습득할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고안된 가장 효율적인 제도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교과서의 내용을 공장의 작업지시서처럼 정확히 암기하고 그 내용을 빨리 기억해내는 인력을 선발하고 교육해서 대학 졸업장이라는 마지막 포장을 한 후 세상에 내놓은 것이 그동안 사회가 대학에 부여한 역할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교육에서의 소위 Fast Follower 전략이 지금의 고속성장을 이루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물질의 풍요를 가져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략이 앞으로도 계속 유용할 것인가? 앞으로는 주어진 일은 정확하고 빨리 수행해내는 능력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협력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해낼 수 있는 협업 능력을 갖춘 인재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눈치채고 있으며 이러한 인재를 대학이 과연 양성해낼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미 세계의 여러 대학들은 이러한 사회적인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로 대학교육의 내용과 방식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전통적인 학문의 분야를 상호 융합하고 새로운 시대의 여러 기술적 화두들을 인문 사회 공학 자연과학 예체능을 망라한 다양한 전공에 접목시키고 있으며, 수업의 방식에 있어서도 일방적 강의 중심에서 탈피하여 교육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여러 형태로 진화시켜 나가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양대ERICA에서도 IC-PBL(Industry coupled Problem Based Learning)이라는 방법을 적용한 교육의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사회 현장에 실제 있는 문제를 강의실로 들여와서 학생들이 창의적인 해결 대안을 제시하는 수업의 방식이다. 수업 과정에서 교수는 답을 제공하는 teaching보다 coaching을 하는 형태의 실험적 수업을 전 전공 영역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 수업에서 문제를 제공하는 기업이나 각종 사회기관들은 단순히 문제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만든 수업의 결과물을 직접 평가하여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현실에서 구현될 것인지 펼쳐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협업을 통한 성과를 만들어내는 경험을 체험하게 도와준다. 아직은 이러한 교육 혁신의 시도가 성공하리라 예단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고교 교육과정에서 암기식, 정답 찾기형 문제 풀이에 시달리던 학생들에게 신선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학습 방법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대학의 평가는 대학의 간판이나 졸업장이라는 포장보다는 그 대학이 얼마나 양질의 교육을 충실히 제공하는지 그 내실을 바탕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처음 대학 교수로 부임할 때는 연구만 잘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자꾸 고민이 많아진다. 그래도 우리대학들이 아직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다양한 변화의 시도를 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의 노력들이 또 한 번의 기적을 가져올 밑바탕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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