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한족열

“눈이 쉽게 충혈되고 오후가 되면 눈이 뻑뻑해집니다. 심하면 눈에 모래가 들어간 것처럼 아프기도 합니다.” 눈의 피로를 호소하는 대학생의 말이다. 모니터를 오래 보면 나타나던 증상이 이젠 책을 잠깐 보아도 눈이 시릴 정도로 불편하다고 한다. 안과에선 안구건조증이란 진단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한의학에서 안삽(眼澁) 또는 백삽(白澁)이라고 부르는 안구건조증은 이젠 아주 흔한 병이 됐다. 전엔 노화의 과정 중 하나라고 평가되던 안구건조증이 요즘엔 10대들에게도 흔히 나타난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사용시간의 증가로 눈이 혹사당하고 있는 데다 대기오염 등으로 눈의 피로가 가중됐기 때문이다.

안구건조증은 한마디로 말하면 눈물이 부족한 병이다. 눈물은 깜박임을 통해서 안구의 표면에 얇은 막을 만들어 눈을 보호한다. 외부로부터 세균침투를 막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눈에 영양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이런 역할을 하는 눈물이 부족하면 눈을 감고 뜰 때마다 껄끄럽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단순한 불편함에 그치지 않고 결막이나 각막이 손상된다. 염증이 생겨 충혈이 되고 눈곱이 끼며 간질거릴 수도 있다.

한의학에선 눈물의 부족도 원인이지만 눈물을 빨리 말려 버리는 열도 문제라고 본다. 스트레스 피로 음주 등으로 생기는 간열도 문제고, 소화기의 문제로 생기는 위열도 안삽의 원인이 된다. 위의 학생은 위열로 인한 안구건조증으로 진단됐고, 2주간 5회의 치료로 환자가 만족할 정도로 치료됐다.

위열이 생기는 기전은 비교적 간단하다. 위를 포함한 소화기의 움직임이 원활치 않아서 음식물이 정상적이 속도로 흘러내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위부터 대장까지 우리 몸의 소화기는 꿈틀운동을 한다. 운동을 통해 음식물을 소화액과 잘 섞기도 하고 잘게 부수는 작용도 한다. 꿈틀운동의 또 다른 작용은 음식물의 이동이다. 소화기가 움직이면 자연스럽게 음식물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반대로 움직임에 문제가 있으면 음식물이 정상보다 오랫동안 위를 비롯한 소화기에 남아 있게 된다.

특히 위의 경우 음식물이 쌓여 있는 때가 많다. 위는 아랫부분(위저부)이 조금 처져 있는 주머니 모양이라서 움직임이 적으면 위저부에 쌓인 음식물이 십이지장 쪽으로 잘 넘어가지 않는다. 이렇게 쌓인 음식물이 오래되면, 탁기가 만들어진다. 음식물이 부숙되며 생기는 나쁜 기운은 열기를 띠고 있어 머리 쪽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위열이 만드는 불편함은 안삽뿐만이 아니다. 역류성식도염도 유발한다. 위의 열은 음식물이 부숙되며 나오는 가스도 함께 만들어 낸다. 위의 운동이 잘 되지 않아 위장 내 압력이 높아진 상황에서 가스까지 만들어지면 위의 윗부분(분문부)을 조이고 있는 괄약근을 뚫고 위액과 가스가 올라간다. 식도부위로 위액이 역류하는 것이다. 강한 산성인 위액이 식도부위를 자극하는 일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식도부위에 염증이 생겨난다.

역류성식도염 치료의 첫 단계는 위운동의 활성화이다. 위장운동이 원활하게 되면 음식물이 십이지장으로 적절하게 내려가 위장의 압력이 줄어든다. 당연히 위열도 줄게 마련이다. 가슴의 쓰림과 답답함, 목의 이물감과 신트림 등이 나타나는 역류성식도염은 식사직후 눕거나 과식을 하면 심해질 수 있다. 분문부에 압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술이나 담배 등 위를 자극하는 행동도 피해야 한다. 역류성식도염 증상이 심할 때는 콩이나 고기 등 단백질 음식을 줄여야 한다. 단백질을 소화하기 위해선 위산이 더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위열은 기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폐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내장기에서 올라오는 열을 잘 식혀주는 것이다. 외부의 공기를 이용해 장기 내부에서 생기는 열을 몸 밖으로 배출시켜 주는 공랭식 기관이 바로 폐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폐로 올라오는 열이 지나치게 많으면 폐가 갑갑하게 느끼고 이런 갑갑함을 해소하기 위해 기침을 하게 된다. 여러 장부에서 열을 과도하게 발생시킬 수 있는데, 드물게 위도 과도한 열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있다. 위열로 인한 기침으로 오래 고생하는 경우 위열증상을 개선하면 아주 빨리 치료된다.

이외에도 위열이 방광을 자극해 소변에 문제를 만들기도 하는 등 위열로 인한 증상은 아주 다양하다.
위열로 인한 증상을 치료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위를 활발하게 움직이도록 만들면 된다. 침으로 위와 대장의 경락 등을 적절하게 조절해주면 소화도 잘되고 위열로 인한 증상도 잡을 수 있다. 다른 병보다 위열은 빨리 치료된다. 3개월이상 고생하던 역류성식도염이 1회의 침치료로 회복되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인터넷에서 수삼리 족삼리 곡지 입읍 함곡 등의 혈자리 위치를 확인해 ‘꾸욱’ 눌러 보아 통증이 심한 곳을 세게 자극하는 방법을 써 볼 수도 있다. 정확한 혈자리면 눈이 시원해진다.

임상에서 가장 큰 문제는 과연 그 증상의 근본원인을 잘 진단해 내느냐는 것이다. 경험이 많은 한의사나 맥을 잘 보는 한의사라면 우측의 맥에서 위열증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위열로 인해 기침이 나오거나 안삽증이 있을 때에 위열을 치료하지 않으면 다른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다.

위열 증상이 확실하다면 환자들이 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손바닥을 배꼽 윗부분에 5분 정도만 대고 있는 것이다. 손바닥을 배에 대고 1분 정도만 있으면 위가 움직이는 걸 느낄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가슴이 편해진다. 손바닥에서 나오는 기운이 위의 운동을 촉진시켜 주기 때문이다.
/한뜸 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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