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군’조차 화들짝.. ‘대입4년예고제, 공론화도 무시한 독단적 정치행위’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0월22일 정시확대를 공식화한 이후 후폭풍이 거세다. 교원단체뿐만 아니라 현 정권의 지지기반인 진보성향의 교육감, 시민단체까지 정시 확대에 대해 반대하고 나서 ‘아군조차 등을 돌린’ 형국이다.

수요자가 가장 혼란스러운 지점은 3년동안 오락가락했던 대입 상황이 가닥잡혀가는 시점에 현장은 물론 교육당국과 사전 교감도 없이 대통령이 돌연 폭탄선언의 형식으로 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교육부는 정시 확대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선을 그었지만 이튿날 대통령이 정시 확대를 공식화하며 판을 뒤집었다. 중장기적 교육정책을 논의할 국가교육회의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있는 듯한 모양새이긴 하지만, 정시 확대 방향과는 반대 입장을 내비쳤다. 진보교육감들은 들고일어나 정시확대에 명확한 반대입장을 표명한 상태다. 대통령의 돌출발언에 교육당국간에도 엇박자를 내거나 심지어 반대입장을 표명하는 보기 드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교육부도, 국가교육회의도 교육감도 아닌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시확대’라는 중요한 사안을 돌발적으로 내놓았다는 점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퍼센트에 대해 정해진 게 없다”며 급히 진화에 나섰지만, 오히려 충분한 정책적 검토 없이 정치적 국면전환용으로 내놓은 발언이라는 점만 입증한 꼴이 됐다.

한 교육 전문가는 “이달 내내 교육부장관은 수시정시비율 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현장을 수습해왔다. 교육부의 입장을 뒤집은 대통령의 정시확대발언은 도대체 정책 결정권자가 누구인지조차 헷갈리게 만들었다. 정책은 사라지고 정치만 남았고 교육정책에서만큼은 이제 누가 정책결정권자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얘기다. 게다가 대통령과 교육부, 국가교육회의, 교육감 저마다 따로 노는 듯한 모양새다. 느닷없이 정치가 끼어들어 정책을 뒤집으면서 정책의 신뢰보호원칙도 사라진 상황이 되면 대입에 촉각이 곤두선 학생/학부모들의 혼란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정시확대 발언 이후 후폭풍이 거세다. 교육계전반에서는 물론, 진보성향의 언론 시민단체 등 모두 비판의 날을 세웠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대통령의 정시확대 발언 이후 후폭풍이 거세다. 교육계전반에서는 물론, 진보성향의 언론 시민단체 등 모두 비판의 날을 세웠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아군들의 반발’.. “교육이 한낱 국면타개용 희생양인가”>
대통령의 발언 직후 현 정권의 ‘아군’으로 분류되는 진보성향의 단체에서도 한목소리로 우려를 제기해 아군들까지 일제히 등을 돌리는 보기 드문 상황까지 연출했다. 전교조, 진보 교육감을 막론하고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언론까지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교원단체들은 특히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좌지우지되는 교육정책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전교조는 성명서를 내놓고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오랜 논의 끝에 사회적 합의에 이른 과정은 모두 무위로 돌아가도 되는가”라며 비판했다. “사교육 업체의 주가가 폭등하고, 교육 현장을 대혼란 속에 빠트린 지금의 사태가 발생해도 지지율만 올리면 되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사회적 합의를 이룬 정시 비중을 1년 만에 더 확대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교육에 대한 무시’라고 비판했다. “지지율에 눈이 멀어 교육 현장에 미칠 영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함의 극치”라며 “오랜 세월에 걸친 공교육 정상화를 향한 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한순간에 무위로 돌리는 결정에 우리는 분노한다. 교육이 한낱 국면타개용 제물이 된 것에 참담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당정청 밀실 논의를 중단할 것도 촉구했다. 전교조는 민주당의 ‘교육공정성 강화 특별위원회’의 인적 구성에서부터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며 “공교육을 책임지는 교사는 빠진 대신 정시확대를 주장해 온 사교육 출신 인사가 그 자리를 채웠다. 당정청은 처음부터 ‘정시확대’라는 결론을 내놓고 이를 위한 깜깜이 밀실 논의를 진행한 것이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정시확대의 방향성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전교조는 정시확대가 공정성 강화의 답이 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미 밝혀진 많은 연구와 통계에 따르면 정시는 학생부중심전형에 비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사교육 영향을 많이 받는 전형이다. 수능은 한날한시에 똑같은 시험지를 받아 든다는 것을 제외하고, 오히려 계층 대물림이 이어지는 등 공정성을 해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형식적 공정성의 신화에 빠져 과정과 결과의 공정은 무시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정시확대는 공교육 정상화에 역행하는 것이라 봤다. “토론과 학생 참여 수업을 강조하는 현재 교육과정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학교현장은 과거로 회귀해 다시 문제풀이에 몰두하게 될 것이며 학교는 그저 ‘잘 찍는 기술’을 연마하는 곳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진보교육감, 진보언론도 한목소리로 비판
진보교육감도 반대하고 나섰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장이자 전북교육감인 김승환 교육감은 박종훈 대입제도개선연구단장과 함께 내놓은 성명서를 통해 “수능위주의 정시전형은 학교 교육과정의 파행을 부추기고, 문제풀이 중심의 수업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학종과 학생부교과전형이 정착단계에 접어들면서, 교육과정의 정상적 운영을 위한 교육현장의 노력이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 때에 정시확대를 주장하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설득력이 없다”고 덧붙였다. 학종이 고교교육과정 운영 정상화에 기여해온 긍정적 측면을 배제한 채, 공정성 확보를 위해 정시확대를 주장하는 것은 학교현장을 혼란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고도 비판했다. 조희연 서울교육감 역시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교육부의 일관된 입장은 학종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고, 수능확대로 연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저도 그런 입장”이라고 말했다.

진보정당인 정의당도 등을 돌렸다. 정의당 여영국 원내대변인은 “청와대 몇몇의 얄팍한 생각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반영돼 그들끼리 협의하고 방안을 내놓은 ‘깜깜이 의사결정’에 현 정부 위기 원인을 확인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동안 교육부가 추가적인 정시 확대는 없다고 일축해 왔음에도 이를 번복해 교육 현장 혼란만 가중시킨다고도 비판했다. 여 원내대변인은 “수능 정시확대가 사교육 의존도를 더 높여 자사고 외고 등 특권학교, 강남3구 등 고소득층에게 유리하다는 것은 이미 각종 통계를 통해 증명됐다”고 덧붙였다.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언론마저 날을 비판에 가세했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교육정책이 오락가락한다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유지하던 입장이 대통령 발언으로 방향을 튼 사례는 이번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존 특목자사고의 단계적 전환을 고수하던 교육부가 돌연 일괄전환하는 방안으로 바뀐 점이 대표적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 역시 대통령의 교육에 대한 정치 개입을 가장 먼저 우려했다. 교총은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정시 확대 등을 포함한 입시 개편을 공식 거론한 것은 당정청간 엇박자를 드러낸 것이자, 학생/학부모 등 교육현장의 혼란과 혼선만 초래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며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대입제도 개편 논의가 대통령의 정시확대 입장으로 또 다시 급선회하는 것은 교육에 대한 정치 개입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미 2022대입개편을 통해 정시 비중을 30%이상 반영하기로 했기 때문에, 향후 대학이 자율적으로 확대해 나가도록 안착시킬 일이라고 봤다. 교총 관계자는 “이번 발언이 30%이상을 뛰어넘는 비율을 각 대학, 특히 학종 실태조사를 진행 중인 특정 대학에 강제하겠다는 의미라면 새로운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교육 현안과의 연계성을 고려하지 않고 지엽적으로 논의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학종 등 수시제도 개선, 2025년 전면 도입 예정인 고교학점제 및 내신 절대평가제 등과 분리해 논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대입개편이 정치적 수사로 흔들리거나, 목소리 큰 소수의 주장에 좌우되지 않아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중장기적 교육정책을 논의하는 목적으로 설립한 기구인 국가교육회의도 정시확대의 맥락과는 반대되는 입장을 내놨다. 10월23일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수능에 서술/논술형 문항을 출제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오지선다형 수능시험만으로는 좋은 학생들을 뽑기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 패싱’ 논란.. 사전 교감 없었다는 분석 힘 얻어>
기존 ‘정시확대는 없을 것’이라고 못박은 교육부는 체면을 구기게 됐다. ‘교육부 패싱’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자녀 입시논란을 계기로 대통령이 대입개편을 지시한 이후 수시/정시 비율이 조정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하며 혼란이 가중되자 교육부장관은 비율조정의 문제는 아니라고 선을 그어왔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교육부장관이 정시확대가 아닌 학종 문제점 개선에 집중하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튿날 대통령이 교육부장관의 발언을 정면 반박하는 모양새가 연출되면서 교육부와의 사전교감이 없었다는 점이 증명된 셈이 됐다. 한 교육전문가는 “대입정책이 대통령의 입에 달린 모습이다. 교육부장관의 발언조차 믿을 수 없게 됐으니 사실상 교육부는 대입개편의 주도자가 아닌 방관자로 전락했다”고 꼬집었다.

교육부는 대통령의 발언이 있은 직후 부랴부랴 입장문을 통해 “학종비율 쏠림이 심각한 대학들, 특히 서울소재 주요대학에 대해서는 수능비율 확대를 권고하는 방안을 당정청 같은 의견으로 협의해왔다”고 밝혔으나 이전까지의 교육부장관 발언과는 배치되는 내용인 데다 교육부 패싱 논란을 반박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대학 자율성 침해 심각>
대통령의 발언은 대학 자율성을 무시한 것이라는 점에서도 우려를 자아낸다. 대학은 자율성을 지니고 선발방법을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음에도 대통령의 발언 한 마디로 입시를 바꿔야 할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대입전형 규모는 교육당국이 임의대로 정할 사안이 아니다. 대학별로 우수 인재 선발에 가장 적합한 도구를 찾아 활용하는 방법 역시 대학이 가진 자율성의 일환인데, 이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실정법에도 맞지 않다”라며 "현재 대입의 틀은 대입기본사항을 교육부가 설정할 뿐 대학총장협의체인 대교협이 자체적으로 대학별 전형계획을 취합해 전형계획을 공개하고 대교협이 대학 요강들을 다시 취합해 진행하는 자율적 형식을 취하고 있다. 교육부가 대입기본사항에서 전체 틀을 제시하는 것은 기존 3년예고제의 정신에 맞춰 교육부가 맡지만 나머지 대입의 진행은 대학자율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대입은 국민의 관심이 많고 수요자를 위한 신뢰보호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세심한 메커니즘을 내세운 것이다. 문 대통령이 갑자기 이를 모두 무시하고 정시확대하라고 지시한 것은 법의 틀내에서 진행되는 입시를 깡그리 무시한 셈이 됐다”고 비판했다.

대입의 주체인 대학들의 속내도 정시확대와는 거리가 멀다. 마침 이날 대학들이 가장 적정하게 보고 있는 대입 정시비중은 30%미만 수준이라는 설문결과가 공개됐다. 국회 교육위 소속 전희경(자유한국) 의원이 공개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견을 낸 89개교 가운데 52.8%가 30%미만이 적정하다고 답했다. 30%이상 40%미만이라고 답한 대학이 34.8%(31개교)로 뒤를 이었다. 40%이상 50%미만이라고 답한 곳은 5.6%(5개교)에 불과했다. 50%이상이어야 한다고 답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답한 곳도 6.7%(6개교)나 됐다.

<4년예고제 절차도 무시한 정치행위>
수요자의 예측가능성 역시 무시되긴 마찬가지였다. 현 정부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예측가능한 입시가 되도록 대입 법제화를 추진하겠다’는 공언도 또다시 뒤집혔다. 올해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통해 대입정책 공개시기를 기존 대학입학 3년3개월 전에서 4년 전으로 앞당긴 ‘4년예고제’까지 도입된 상황에서 대통령 스스로 이를 무시한 꼴이 됐다.

대입 사전예고제의 도입 취지는 입시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미리 대입정책을 예고해줌으로써 수요자가 대입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적이었다. 대학들도 정책방향 틀에 따라 미리 전형설계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입시 현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한 목적도 더해졌다. 

교육정책은 교육부가 기본적인 사항을 정하지만, 대교협이라는 대학 협의체를 통해 대학 자율을 지키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대입 관련 절차는 ▲대입정책 발표 ▲대입전형기본사항 ▲대입전형 시행계획(전형계획) ▲모집요강으로 구성된다. 대입정책은 교육부가 공표하며, 대입전형기본사항은 대학 협의체인 대교협이 발표한다. 시행계획과 모집요강은 대학이 발간 주체다. 대입정책이 발표되면 이를 기반으로 대입전형기본사항이 먼저 나온 후, 전형계획이 발표되고, 이후 더욱 구체화된 모집요강이 발표되는 순서다.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대입 사전예고제의 취지조차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3년예고제를 4년예고제로 강화한 것 역시 허울일 뿐 실효성은 보장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출범 초기 교육부는 대입 사전예고제를 기존 3년에서 4년으로 늘리면서 수요자들의 예측가능성을 가장 중요한 정책기준으로 삼겠다는 선언처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정작 대입사전예고제를 가정 먼저 무시한 것 역시 교육부였다. 지난해 박춘란 전 차관이 직접 대학에 전화를 걸어 정시 확대를 주문한 사실이 알려진 게 바로 사전예고제를 스스로 무력화한 첫 시도로 전문가들은 본다. 각 대학이 2020전형계획 발표를 앞둔 시점이었다. 이전까지는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과 연계해 학종확대를 장려하던 교육부가 돌연 정시확대로 대입기조를 바꿨다는 점도 문제였지만, 대입 사전예고제를 무시하고 급작스러운 교육정책 변화를 줬다는 점이 비판의 대상이 됐다.

물론 대통령의 정시확대발언은 아예 국회시정연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대놓고 대입4년 예고제를 무시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대통령 발언으로 인해 당장 현 고1이 치르게 될 2022입시부터 정시비중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아직 대학들은 2022시행계획을 확정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입 4년예고제에 따르면 대교협이 발표하는 기본사항을 발표하는 시점까지 고려해 2023학년부터 적용돼야 하지만 이보다 1년 더 당겨지는 셈이다.

<“표준화가 공정으로 이어지진 않아”.. 세계적 흐름에도 역행>
세계적인 교육 흐름과도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월23일 열린 ‘한-OECD 국제교육콘퍼런스’에 참석한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교육국장은 “표준화가 공정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표준화된 평가보다는 학생의 다양한 역량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다. 그는 “많은 나라가 대학 입학제도를 갖고 있지만 학생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전체적으로 들여다본다”며 “학교생활의 증거들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표준화된 시험’인 수능만이 바람직한 평가방식은 아니라는 의미다.

해외의 경우 일률적인 평가만으로는 학생들의 잠재력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인식에서 대입변화가 이뤄지는 추세다. 한국의 수능시험과 비슷한 미국 대학입학시험 SAT에서는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학업을 지속한 학생들에게 부여하는 가산점을 도입하기도 했다. 학업역량 이외에 지역, 가정, 고교환경 등을 수치화한 역경점수를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소득, 환경, 교육에서 발생하는 학생간 차이를 줄이기 위한 제도다.

우리나라의 수능(정시) 역시 고소득층에게 유리하다는 점이 각종 통계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미국 SAT의 ‘역경점수’처럼 환경의 불평등을 보완하는 장치도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정시만 확대하는 것은 특정계층에게 유리한 현상을 심화시킨다는 지적이다.

<‘무리수’ 발언 배경은?>
문 대통령의 무리수의 배경은 조국 사태로 위기를 겪은 지지율을 반등시키기 위해 정시확대 여론을 이용한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학종공정성 논란을 빌미로 정시확대 여론이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자녀의 입시논란이 불거지면서 정시확대 여론은 더욱 힘을 얻었다.

내년으로 다가온 총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정시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자유한국당은 정시를 50%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을 당론으로 정해 발표하기까지 하다 보니 폭탄급 논란으로 진영을 확실하게 갈라낼 수 있는 ‘정시확대’라는 카드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이다.

조국 자녀 입시 논란을 개인 비리 문제가 아닌 대입제도 탓으로 돌리려는 아집도 작용했으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교육 전문가는 “조국 전 장관이 결국 사퇴하긴 했으나 조국 자녀 개인의 문제는 아니라고 끝까지 밀고 나가려는 독선으로 비친다”고 꼬집었다.

<고교학점제 엇박자.. 공교육 정상화 역행>
정시확대 방침으로 인해 현 정부가 추진 중인 고교학점제는 좌초될 위기다. 교육부는 내년 마이스터고부터 고교학점제를 도입한 후 2022년 특성화고/일반고 등에 부분 도입해 2025년 전체 고교에서 본격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고교학점제는 대학처럼 학생이 원하는 수업을 선택해 수강할 수 있는 것이 핵심이다. 고교학점제 성공을 위해서는 자유로운 수업 선택권이 필수다. 하지만 수능 영향력이 클수록 수능과 관련 있는 과목이 인기를 얻을 수밖에 없다. 수능에서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해 적성이나 진로에 맞는 과목이 아닌 대규모 수험생이 몰리는 과목을 선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사걱세 역시 “수능 위주의 정시 비중이 확대될 때, 학생의 과목 선택권이 확대되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고, 결국 고교학점제는 시행 전부터 난맥에 부딪히게 된다”고 지적했다.

공교육 정상화에 역행한다는 우려도 있다. 수능의 확대는 교실을 다시 문제풀이식 수업으로 돌아가게 해 공교육의 힘을 뺀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수월성교육을 담당하던 특목자사 폐지까지 겹치면서 공교육 체제를 급격하게 약화시킨다는 지적이다.

이를 증명하듯 사교육 주가는 장중 한때 16.45%까지 치솟았다. 반복학습이 유리한 정시의 특성상 사교육에 대한 의존율이 높아지는 데다, 오락가락하는 대입정책으로 인해 향후 대입 변화가 어떻게 될 것인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워지다 보니 사교육에 몰린다는 분석이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 자체 그리고 수요자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교육 전문가는 “절차도 명분도 없이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갈아엎는다는 학습효과로 인해 아무도 정책을 믿고 따르지 않을 것”이라며 “3년 동안 대입을 흔든 것도 모자라, 이제는 공론화 결과마저 무시하기에 이르렀다. 앞으로 정부 입시정책이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는 학습효과를 수요자들에게 남겼다. 정책의 지속성 안정성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고 여기면 수요자들의 불안과 혼돈은 날로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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