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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 "인권차원서 다뤄야" vs "동물 의인화한 조작극"
[논술 이슈 NIE] 찬성 : 생명체 존중, 도덕적 당위성 반영  -  반대 : 인간의 지적 우월감 자랑하는 행위

 

왜 동물의 권리인가?

피터 싱어(Peter Singer)의 저서 <동물해방론 (Animal Liberation)>(1975)은 동물권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제공하였어요. 싱어의 문제작이 언급한 수많은 동물들의 비참한 상황은 독자들에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동물관을 갖게 했죠. 예컨대, 질병 연구 및 생체 해부용으로 희생되는 동물 모르모트의 너무나 불쌍한 운명, 피실험 동물의 50% 이상이 고통 속에 죽어가는 의약품 독성실험 LD-50의 잔혹성, 신상품 화장품의 유해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토끼 눈에 강제로 샴푸 방울을 떨어뜨려 눈동자를 파괴하는 잔인함이 공개되었지요. 오직 인간의 미각을 위해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는 비좁고 더러운 ‘공장식 농장(factory farm)에서 하루 종일 햇빛도 보지 못한 채 강제로 살찌워지다가 어느 날 도살이라는 이름으로 짧은 일생을 마감하는 식용가축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서구 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동안 인간과 동물의 차별적 대우를 죄책감 없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서양인들의 전통적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았지요. 싱어가 불러일으킨 엄청난 반향으로 동물의 권리를 이야기하기 시작하였고 곧이어 동물권리를 주장하는 시민운동 단체들까지 생겨났습니다.

 

동물권에 대한 엇갈린 입장


우리 사회에는 낯설게 들릴지 모르지만 서구에서는 이른바 ‘동물권’(animal rights) 또는 ‘동물해방론’(animal liberation)에 대한 논의가 이미 30여 년 전부터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습니다. 애완/반려동물을 최소한 현관 안에서 재우도록 법률로 규정하고 있는 것도 우리의 현실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지요. 지역신문에서 집나간 동물을 찾는 광고 포스트를 보는 것도 흔한 일상이지요. 애견/반려견 장례문화도 인간의 경우처럼 이미 정착되었어요.

일상적이며 실천적인 문제 뿐 아니라 이론적인 연구도 상당히 축적되고 있습니다. 환경 철학자들은 동물의 권리를 인권의 차원에서 다루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제 서구인들에게 있어 동물의 권리는 인권의 한 영역으로 여겨질 만큼 당연한 요구가 되고 있답니다.

물론 한국사회에는 아직 동물권이란 주제가 일상적인 이야기꺼리가 될 만큼 아직 익숙한 상황은 아니지요.  ‘인권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판국에 무슨 동물의 권리란 말인가’라는 냉소적인 반응뿐만 아니라 ‘개의 팔자가 개 팔자지 뭐, 개의 권리란 말이 도대체 무슨 얼어 죽을 소리’라고 빈정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젊은 세대들 사이에 애견/반려견문화가 하나의 생활영역으로 정착되어가는 상황에서, 동물권 논쟁은 더 이상 이웃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랍니다.

 

짐승은 짐승이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사회는 생명의 가치를 인정하는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있어요.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 또한 당당한 하나의 생명체로 마땅히 이 세상을 살아갈 권리를 갖고 있지요. 이런 생명중심의 윤리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것, 즉 모든 생명체가 나름의 존엄성을 가진다고 보는 견해로 모든 생명체에게 도덕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확대 적용하고 있답니다. 알버트 슈바이쳐(A. Schweizer)는 생명이란 그 자체가 신성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폴 테일러(Paul W. Taylor)는 모든 생명체가 내재적 존엄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살아 있는 자연에 대해 존중의 태도를 가지라는 메시지를 전했어요. 동양의 도가의 사상 또한 서구 석학들의 생각과 맥을 같이 하지요. 장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네에게 묻겠네. 사람이 습지에서 자면, 허리가 아프고 반신불수가 되겠지. 미꾸라지도 그럴까? 사람이 나무 위에서 산다면 겁이 나서 떨 수밖에 없을 것일세. 원숭이도 그럴까?” 2300여 년 전 이미 장자는 다른 생물에게도 인간과 똑같은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인간이 집에서 살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꾸라지가 진흙 바닥을, 원숭이가 나무 위를 좋아한다는 것이지요. 모든 생명체는 자기 고유의 방식으로 자기 고유의 선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물의 권리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30여 년 전 호주의 철학자 피터 싱어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싱어에 따르면 동물또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유정체(有情體, sentient being)입니다. 동물에게도 괴로움(suffering)과 즐거움(enjoyment)이 있으므로, 인간과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그들의 수준에서 이를 고려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개밥과 사람의 식사 내용이 같을 필요는 없으나, 인간은 동물의 자연적 본성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감정을 느끼는 동물에게 그들의 본성에 맞는 적절한 고려를 해주는 것이 필요하며, 이것은 동물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하는 첫걸음이 된답니다.

생명 중심 윤리의 측면이나 동물 본성 고려의 차원에서 동물의 권리를 논하는 이러한 작업들은 인간다움의 참된 모습과 인권의 의미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동물권 개념은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서로의 영역을 지키면서 함께 더불어 살지 않으면 안 될 도덕적 당위성과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기 때문이지요. 여기에는 인간과 동물 모두 그 생명의 가치와 본성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상이 토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인간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듯이, 동물의 권리도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짐승은 짐승이다

동물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운동 내지 활동에 회의의 시선을 보내는 주장들도 존재합니다. 물론 동물생명의 가치 그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물에게 어떤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처럼 사고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는 동물을 마치 권리를 이해하는 존재로 의인화하는 조작극이라는 생각이지요. 권리주장은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로부터 자신의 부당한 현실의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랍니다. 동물과 인간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전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동물권을 운운한다는 것은 오히려 인간의 지적 우월감이나 자만감을 드러내는 것이라 볼 수 있지요.

인간과 동물을 근본적으로 구분 짓는 점은 정신적이고 가치적인 욕구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욕구는 동물들에게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지요. 타조는 에로티시즘이 뭔지 모르며, 호랑이는 미식법이 뭔지 모른답니다. 철학 있는 토끼, 종교를 믿는 사자, 기술을 사용하는 아프리카의 얼룩말, 예술품을 감상하는 악어를 발견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지요.

선과 악, 정의와 불의, 땅과 하늘,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을 구분하는 일은 오로지 인간의 정신적 활동에서 이루어진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Rene Descartes)는 동물을 가리켜 인간처럼 이성적이지 않은 모든 존재는 쾌락이나 고통조차 느낄 수 없는 생물학적 로봇(biological robot) 또는 의식적인 기계장치(conscious automata)라고 칭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는 동물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인격체라고 생각하지 않았답니다. 칸트에 의하면 인격이라는 것은 사물을 파악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율적인 존재이지요. 여기에는 당연히 도덕적 사유능력도 포함됩니다. 이와 같은 능력은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에서는 찾아 볼 수 없지요. 동물은 인격의 전제조건이 되는 이성적 사유능력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도덕의 영역을 벗어난 세계의 존재로 봐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인간이 아닌 동물은 사고와 언어 능력을 갖춘 인간과 구별될 수밖에 없으며 동물이 인간과 같은 도덕적 권리를 가진다는 발상은 당연히 무리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동물의 사육, 도살,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윤리성을 짚어내고, 생명가치에 대한 논의는 분명 필요하지요. 하지만 동물에게 권리를 부여하자는 주장은 인간과 동물의 본성적 차이점을 간과하는 현실성 없는 지극히 ‘낭만주의적인’ 입장이랍니다. 

 

짐승은 짐승이 아니다. 아니다 짐승은 짐승이다. 이처럼 동물의 존재이해, 더 나아가 동물의  권리 유무와 관련해서 단순히 어느 한쪽의 입장만을 옳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동물이 인간과 견줄 수 있는 가치나 내재적 특성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입장은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생각 펼치기
[문제 1] 동물실험은 꼭 필요한가요? 필요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만약 필요하지 않다면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요?
[문제 2] 인간의 식문화를 위해 동물사육은 필요한가요? 필요하다면 어떤 사육방식이 바람직한가요? 만약 필요 없다면 어떤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을까요?
[문제 3] 만약 집에서 5년 동안 키우던 개가 죽었다면, 여러분의 경우 어떻게 처리하나요?

 

성시정 연구위원 (초암논술콘텐츠연구소 부소장 www.ech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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