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치혁의 건강클리닉]

‘천태만상(千態萬象)’. 세상 사물의 모습은 한결같지 않다. 각각 모습, 모양이 다르다. 같은 부모가 낳은 자식들의 모습도 같지 않다. 동식물들도 또한 천태만상이다.

▲ 한뜸 한의원 원장 (02)2052-7575
병도 마찬가지다. 머리가 아파도 양태가 다르고 원인도 각기 달라진다. 한의학이 양의학과 가장 큰 차이가 바로 동일한 병명도 환자의 상황에 따라 다른 치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문적으로 보면 동일한 질병에 다른 치료를 한다는 것은 큰 문제점일 수 있다. 같은 실험에서 항상 동일한 결과를 내고, 원인이 같다면 똑같은 상황이 나타나야 한다는 현대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한의학은 과학적이지 않다고 평가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인체를 현대과학의 관점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무리다. 실험 즉 약을 투여하는 인체의 상황이 항상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대과학의 실험에선 모든 변인을 통제한 상태에서 실험을 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몸은 다르다. 우선 체중과 키가 다르고, 각 장기의 활동력도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그날 먹어 뱃속에 있는 것도 다르다. 체지방이 많은 사람이 있고 근육이 발달된 사람도 있다. 감기에 걸려도 코감기가 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목감기를 호되게 앓는 환자도 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사람에게 동일한 질병이라고 같은 약을 주는 게 어찌 보면 더 비과학적일 수도 있다.

“머리가 아프고 먹구름이 낀 것처럼 맑지가 않아요.” 50대 초반의 여자환자가 두통을 5년 째 달고 산다고 호소했다. 당연히 맥진부터 시작했다. 간과 담경락의 맥에 열이 심하게 차있고, 소장과 심경락도 열이 있었다. 열로 인한 두통이라고 생각하고 문진을 시작했다.

“평소에 오후가 되면 눈이 빡빡해지는 증상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하니 “오후 5~6시 정도만 되면 모래알이 들어간 것처럼 불편해진다”고 말한다. 이 정도만 되면 치료방향은 거의 잡힌 셈이다. 맥으로 찾아낸 열증을 다시 확인해 주는 안삽(眼澁) 증상이 있으니 머리부위의 열을 빼주는 치료를 해주면 증상은 무조건 좋아질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입이 쓰진 않나요. 짜증을 잘 내는 편이지요. 머리에 땀이 많지요.” 이런 질문들은 꼭 필요하진 않다. 하지만 질문을 하는 이유는 환자가 치료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기 위한 수단이다. 환자들은 어떻게 그렇게 잘 맞추느냐고 감탄하는 걸 보면 기분도 좋고...

진단이 끝났으면 다음은 치료 차례다. 각종 검사를 하고 병명을 정해준 다음에 치료를 못한다면 그건 의학이 아니다. 머리가 아프다고 진통제만 던져주는 의사가 있다면 그건 돌팔이와 다를 바가 없다. 맥으로 볼 때에 간담 경락의 열이 가장 심했으니 담열을 줄여주기로 결정했다. 간을 고려할 수도 있지만 간의 음이 크게 손상되진 않은 것으로 보고 담경락을 선택한 것. 소장과 심경락의 열은 어떻게 처리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침법 중에 담의 열을 뺄 때에 소장의 열을 같이 빼는 게 효과적이라고 구성한 침법이 있다. 한의사들이라면 모두 아는 사암침의 담승격이다. 자주 오기 힘든 분이라고 해서 약도 처방했다. 두면부의 열을 잘 처리하는 ‘시호가용골모려탕’에서 대황을 빼고 다른 약재 두 가지를 추가했다. 이 환자가 어떻게 되었을까. 칼럼에 자세히 쓰고 있는 걸 보면 당연히 나았을 테다. 5년 묵은 두통을 3회 치료에 끝냈다.
이 환자라고 특별히 빨리 고친 환자는 아니다. 진료실에 들어올 때와 나갈 때의 표정이 확 다른 환자들이 많다. 정확한 진단과 그에 맞는 치료를 하면 당연히 병은 나을 수 있다.

두통이 생기는 가장 많은 이유는 소화기 장애다. 눈 주위가 빠지듯이 아프기도 하고, 앞머리 즉 이마가 아프기도 하다. 눈꼬리 끝의 태양혈이 아픈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엔 대개 소화기에 문제가 생긴 두통일 가능성이 높다. 맥을 보고 비위나 소대장의 맥이 좋지 않다면 당연히 소화기를 좋게 하는 침치료를 받으면 쉽게 낳을 수 있다.

감기로 인한 두통도 있다. 후두부와 어깨의 통증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도 맥으로 확인이 되면 침치료로 잘 낫는다. 이 칼럼을 쓰는 중에도 감기로 인한 두통 어깨통증으로 침을 맞은 환자가 있다. 어깨통증은 거의 사라졌고, 두통도 약 10% 정도만 남았다고 하며 한의원을 나갔다.

두통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의학이 그렇게 원시적인 의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한론과 같은 의서를 보면 그 체계의 정밀함에 입이 벌어질 정도다. 병의 다양한 증상과 원인과 치료방법은 물론이고 맥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잘못 치료하면 어떤 증상이 나올 수도 있다는 설명까지 나와 있다. 개인별로 나타나는 병증과 그에 대한 치료를 정확히 하게 만들어주는 선인들의 지혜에 감탄할 정도다. 두통의 경우 못 잡아 본 경우가 거의 없지만 나도 간혹 고민을 하는 병들이 있다. 그런 병은 한의학의 문제가 아니라 내 공부가 모자라서 고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는 한의학은 과학적이다. 표준성 재현성 객관성이라는 기준에는 못 미칠 수 있겠지만 그 자체의 논리에는 흐트러짐이 없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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