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공간 활용'..'대체이수과목' 하위권 포용 보완책 눈길

[베리타스알파=김경 기자] 당장 내년 마이스터고부터 도입, 2025년에 전면시행되는 고교학점제가 안고 있는 난제에 대해 신선한 제안이 나왔다. 현 학종시대를 이끌며 서울대 학종과 지균의 기틀을 마련해 확장하면서 대입판에서 영향력 큰 인물로 꼽히는 서울대 김경범 교수는 '교육청별 새로운 교육과정을 만들어 교육부와 협의하자' '교육 사각지대의 하위권 학생을 위한 대체이수과목을 실질운영하도록 행재정적으로 지원하자' '기초학력 보장을 위해 국가가 온라인 학습플랫폼을 운영해 교육청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된 새로운 수업모형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과학고 선발 시스템을 없애고 과학고 시설을 오픈해 모두의 과학고로 전환하자'는 파격적 제안도 있다.

학생선택권을 골자로 한 2015개정교육과정이 이미 현 고2부터 적용되고 있는 가운데, 김 교수의 제안은 '교육과정' '시설' '교원 양성 및 임용' 측면과 맞물려 향후 개선해볼 수 있음직한 제안들이다. 물론 '고교체제' '성취평가제'에 이은 '대학입시'라는, 고교학점제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 다뤄야 할 현안은 많지만, 김 교수가 정책개선으로 제안한 '전제 사항'은 고교학점제의 실질운영을 위한 제언으로 귀기울여봄직하다.

김 교수의 제언은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고교학점제 실천과제' 토론회에서 나왔다. 토론회는 박찬대 교육위원회 위원(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여러 야당 의원들과 관련 협의회들, 고교와 대학 관계자들이 모여 토론회를 열고 있다. 7월9일 '고교학점제의 현재 진단과 현장 교사의 정책과제 제시', 7월24일 '고교학점제 도입에 앞서 교원수급 내신평가제 입시정책 학교시설 등의 선결과제와 고교교육개편의 장기적 방향 제시'에 이어 이번 21일 세 번째 토론회에선 고교학점제 안착을 위한 실천과제를 주제로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21일 오전10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고교학점제 실천과제'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김경범 서울대교수와 성열관 경희대교수가 발표했다. 김영선 서울시교육청 중등교육과장학관, 송현섭 면목고 교장, 장동만 상일여고 교무부장), 최승복 목포대 사무국장, 한은경 불암고 교사가 토론했다. 사진은 발표하고 있는 김경범 서울대교수. /사진=베리타스알파DB

<준비 안 된 고교학점제, 갈 길 멀어>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진로에 적성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이수하고, 누적 학점이 기준에 도달할 경우 졸업을 인정하는 제도다. 대입 중심으로 획일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고교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 교육부는 2025년 본격시행을 목표로 현재 연구학교 102개교, 선도학교 252개교를 운영하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마이스터고를 출발로 고교학점제가 실시된다.

다만 고교학점제는 현재 교육부가 손 놓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22대입이 2015개정교육과정이 적용된 첫 고교생이 입시를 치를 때라는 데서 2015개정교육과정과 문재인정부의 공약인 고교학점제실시가 낼 시너지에 대해 교육계 관심이 높았지만, 정작 교육부는 2022대입에 고교학점제와 거리가 먼 수능을 강화, 각 대학에 정원외모집을 포함해 전체 모집인원의 30%이상을 정시 수능위주전형으로 선발할 것을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과 연계해 사실상 강요했고, 현재 서울대를 비롯 상위권대학들이 올해 대입부터 정시를 확대하기 시작해 2022대입엔 수능30%이상을 맞출 예정이다. 2022년 전면 실시예정이었던 고교학점제는 3년 뒤로 미뤄져, 이미 2015개정교육과정 아래 놓인 고2학생 이후 교육과정의 기형적 운영은 불가피한 상태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를 2020년 마이스터고에 우선 적용하고, 2022년 일반고에 제도를 부분 도입한 후, 교육과정을 전면 개정하여 2025년부터 본격 시행할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중앙추진단을 중심으로 시도교육청 및 연구기관과 함께 협력하여 관련 제도를 충실히 마련해가고 있다'고 고교학점제 도입을 위한 고교교육 혁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현장 반응은 싸늘하다.

교육과정은 운영되고 있지만, 고교학점제를 실질운영하기 위해선 우선 교사의 수업권과 평가권을 보장해줘야 하고, 자칫 도외시될 하위권 학생들을 위한 교과를 개설해야 하며,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해 시설 측면에서의 보완이 필요하다. 민사고 하나고 등 전국단위 자사고 일부를 중심으로, 일반고 중에선 한민고 등 일찌감치 교육과정의 다양화를 보장해온 고교들이 있긴 하지만 극소수일 뿐이라 전국 고교로 확장하려면 정부의 행재정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아직 정부가 관련한 정책을 내놓은 바 없다.

<2025고교학점제교육과정.. 기초학력미달도 끌어안아야 '대체이수과목 실질운영'>
김 교수의 이번 제안 중 가장 돋보인 건 하위권 학생의 학습권 보장책이다.

교육과정은 현 고2부터 2015개정교육과정에 따라 크게 보통교과와 전문교과로 나뉘고, 보통교과는 다시 공통과목과 선택과목으로, 전문교과는 전문교과Ⅰ과 Ⅱ로 나뉜다. 공통과목은 모든 학생이 들어야 한다. 선택과목은 다시 일반선택과 진로선택으로 나뉘어 학생들이 선택한다. 전문교과Ⅰ은 특목고 학생들이, 전문교과Ⅱ는 특성화고 학생들이 듣는 교과다. 과거엔 특목고 학생만 들었던 전문교과Ⅰ을 2015개정교육과정을 통해 일반고 학생도 들을 수 있는 식으로 학생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교육과정을 전면개정해 2025년부터 도입되는 2025고교학점제교육과정은 국가수준과 교육청수준으로 나뉜다. 국가수준에선 보통교과공통과목과 보통교과선택과목으로 나뉜다. 보통과목선택과목은 일반선택과 진로선택(A/B)로 나뉜다. 교육청수준에선 전문교과(Ⅰ/Ⅱ)와 고교-대학연계과목으로 나뉜다. 주목할 건, 진로선택B다. A는 국가가 2015교육과정의 진로선택 교과목이 옮아온 것으로 똑같지만, B는 국가가 정한 교과목 외에 교사들이 심화과목 융합과목을 별도 교과로 구성해 각 교육청 인가 또는 확인을 얻은 과목을 말한다. 진로선택B를 얼마나 잘 운영하는지에 따라 학생 선택권이 보장된다. 김 교수는 진로선택B에 더해 '대체이수과목'을 강조했다. 대체이수과목은 온라인교육과정을 기본으로 개별학교가 개설하는 오프라인 수업방식을 혼합한 형태다. 김 교수는 "고교학점제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학생의 수요, 즉 '학생의 의지와 필요'가 있는 교과개설이 가장 중요하다"며 진로선택B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학습의지가 없는 학생들이) 학습을 보완해갈 수 있도록 대체이수과목을 다양하게 개설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혼합한 형태의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관련해 김 교수의 "기초학력 보장을 위해 국가가 온라인 학습플랫폼을 운영하고, 교육청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된 수업모형을 만들자"고 강조했다. 고교학점제가 자칫 상위권 중심으로 편제될 위험을 우려한 현장제언이다. "고교 교육과정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수포자' '영포자'도 있고,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도 적지 않다. 특히 고교교육과정의 기초교과인 국어 영어 수학 한국사에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많다. 고교학점제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그렇지 못한 학생도 모두 포괄해야 의미가 있지만, 기존 교육과정은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없다. 고교학점제를 시행하면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는 기초학력미달 학생을 위한 대체이수교과목을 개설해야 한다. 교사들이 소수 학생을 데리고 하는 개별화 수업이 가장 효과적으로 보이지만, 교사들의 수업 부담이라는 현실적 장벽과 만나게 된다. 온라인교육과정과 오프라인교육과정이 결합된 수업으로 규정한다면, 국가가 온라인 학습플랫폼을 구축해 기초교과에 한해 중학교 수준부터 고교 공통과목까지 상세한 설명이 붙여진 다양한 수업들을 게시하고 관련된 학습자료도 그 자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종의 수업과 학습자료 아카이브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김경범 서울대교수(사진)는 2025고교학점제 교육과정과 관련해 교육사각지대에 놓일 기초미달학생들을 고려한 온라인-오프라인 학습플랫폼을 만들어 이를 '대체이수과목'으로 활용하자 제안했다. 새로운 학교개념의 기존의 시설을 모든 학생이 공유할 수 있도록 과고 선발을 폐지하고 과고를 '모두의 학교'로 만들자고도 제안했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교원역할 규정하고 시설보완 서둘러야.. 과고시설과 인력 공용하자>
고교학점제 안착을 위해선 우선 교원의 활용과 시설의 활용을 전제할 수 있다.

교사가 잡무에서 벗어나 수업과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형편은 다르다. 교사 잡무로 손꼽히는 공문수발의 경우, 일부 교육청이 공문 수를 줄였다 하지만 이는 교사가 작성해 제출할 공문의 수가 줄은 것이지 사이트를 통해 입력해야 하는 식으로 확장되어 공문의 수는 절대 줄어든 상황이 아니다. 게다가 교사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예전같지 않고, 교사 스스로도 자괴감 열패감에 휩싸이는 경우도 많다. 김 교수는 "교사의 역할과 책임, 학부모의 역할과 책임을 재규정하고 이를 법률과 시행령 등에 반영하자"고 제안한다.

"고교학점제는 고교교육의 혁신을 지향하며, 혁신의 주체는 결국 교사다.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교권 침해 사례들은 전통적인 스승 개념의 교사가 이미 과거의 유산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우리시대 학교현실에 근거해 새로운 교사의 정체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우리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말이지만, 교사의 직업적 정체성을 수업과 평가 전문가로 규정하자. 그렇다면 수업과 평가에 관련되지 않은 사항들은 교사의 업무가 아니어야 하며, 지금 학교에서 교사가 하는 업무 중에서 수업과 평가 관련 사항과 그렇지 않은 사항을 구별해야 한다. 교사와 학교의 역할과 책임을 구분하는 데서부터 교원 업무경감을 논의해야 한다. 공문을 줄이자는 대책은 지엽적이며, 교사와 행정 인력을 늘리자는 주장은 현실적이지 않다. 교사가 담당할 업무를 줄이는 방안이 현실적이다. 교사업무를 줄이려면 학교의 자율권을 강화하고 교육청의 개입을 최소화하도록 교육청의 각종 규정과 지침을 개정해야 한다. 법령과 규정에 기초해 민원과 감사로부터 자유로워진 교사가 수업과 평가, 진로진학상담의 전문가로 역할전환해야 한다."

시설 문제도 크다. 대부분 학교의 1층은 학교를 소개하는 쓸데없이 넓은 로비와 행정실 교장실 교무실로 이뤄져 있는 경직된 구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제는 학생 수가 줄어들어 공간확보가 어느 정도 갖춰진 상황이다. 김 교수는 이런 자리 -본관1층과 남게 된 공간을 학생들의 '홈베이스'로 만들어, 학생들이 이동수업을 위해 교실을 들락거릴 동안 자신의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학생의 공간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다. 여기에 "과학고 시설을 활용하자"는 제안까지 있다. "과고 선발을 폐지하자"는 제안도 있어 파격적이다. 일부 반발이 예상되지만, 학교공간의 '공유' 개념에서 솔깃할 수도 있다.

김 교수는 "학생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지역적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개 학교의 수는 부족하지 않다. 학교 성격을 바꿔보자. 기존 학교개념에는 건물 교사 학생이 하나의 학교에만 전속되어 있지만, 새로운 학교개념은 건물 교사 학교의 전속구조를 공유구조로 전환하는 데 초점이 있다. 고교학점제가 전면시행되면 교과교실제 교과거점학교 교과중점학교 등 기존의 정책도 고교학점제로 수렴된다. 이런 상황이면 일반고에서 하기 어려운 특정 교과 중심의 학교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재 과학고(이하 과고)는 소수 학생만 다니지만 많은 과고 학생(재수생 포함)들은 일반고 학생처럼 수능을 준비한다. 과고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초등학교 단계에서부터 사교육을 통한 수학 과학 선행학습을 해왔지만, 결국 대학입시 앞에서 일반 학생처럼 수능을 준비한다면 존재이유가 사라진다. 소수를 위한 과고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과고로 전환하길 제안한다. 과학에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 과학 연구자로 살아갈 학생이라면 과학영재학교(전국 8개)가 있고, 국가적으로 필요하다면 더 많이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과고는 정체성이 확고하지 못하다. 모두를 위한 과고가 되는 방법은 학생을 모집하지 않는 것이다. 전속 학생이 없는 과고가 모두가 활용할 수 있는 과고이다. 모든 학생을 위한 과고가 된다면 과고는 일반고가 개설하기 어려운 수학과 과학 수업을 다양한 형태로 개설해 고교학점제 실현의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 과고에서 일반고로부터 수업개설을 제안받아 운영하거나, 일반고 교사가 과고의 시설을 활용하거나 과고 교사와 협력수업을 하거나, 과고 교사가 여러 학교를 순환하거나, 새로운 수업을 연구하고 개발해 일반고로 전파하는 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

<교원양성체제 손봐야.. '교육청-사범대' 협의기구 만들자>
김 교수는 고교학점제 실질운영을 위해 교원양성체제도 손보자 제안한다. 이를 위해선 17개교육청이 사범대와 협의기구를 만들어 교육부에 제언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새로운 교원 양성체제와 임용 제도가 필요하다. 여러 교과를 가르칠 수 있는 수업 전문가, 학생의 교과선택을 도와주는 수업 및 진학 상담자로 교사의 역할을 정립하려면 17개지역 단위로 사범대의 규모와 교육과정을 전면 재설계해 교원 양성방식을 혁신하고, 시험점수 위주의 임용 방식에서 수업 설계능력, 평가, 진로진학 상담 능력 위주의 다면적 평가라는 새로운 임용 구조를 도입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은 매우 거대하다. 전국 사범대 학부 통폐합, 사범대의 교육대학원 전환, 사범대 학부의 광역화 및 컴퓨터 관련 새로운 전공 신설 등 무엇 하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정부가 나서서 사범대 통폐합을 추진할 의지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각 교육청과 지역의 사범대 사이에 새로운 교원 양성을 위한 협의기구를 만드는 것부터 하자. 기존의 많은 사범대를 교사의 재교육을 위한 교육대학원으로 전환해 각 교육청과 지역 단위 교육대학원의 연계 체제를 설계해야 한다. 이렇게 많은 사범대는 학부에서 학생을 선발하지 않고 교육대학원으로 전환하며, 학부를 유지하는 사범대는 교과 위주의 학과 벽을 허물고 융합적인 학사구조를 만든다는 뜻이다. 그래야 새로운 지식과 역량을 가진 교사를 양성할 수 있는 유연한 토대가 만들어지고, 사범대의 교육에 맞춰 새로운 임용 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

새로운 임용 방식은 교과 지식을 넘어서 교사로서 수행할 실무 능력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 사범대 정원을 대폭 축소한다면 교사는 교육청에서 선발하고 3년 정도는 학교 현장에서 교사 시보로서 경험을 쌓고 재평가를 거쳐 학교에 임용되는 방식도 검토할만하다. 교사는 학교현장과 교육대학원을 주기적으로 순환하면서 전문가로서 역량을 길러가게 된다." 그런데 이 일을 누가 시작할 수 있을까.

고교학점제는 당장 내년 마이스터고 도입에, 2022년 일반고에 부분도입 후, 교육과정을 전면 개정해 2025년부터 본격 시행한다는 교육부 계획이다. 반면 성공안착을 위해 갈 길은 멀다. 김 교수는 "성취평가제, 고입체제, 고교유형, 대학입시는 여전히 난제로 남아있다"며 "난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고교학점제는 여전히 중장기 계획에 머무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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