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치혁의 건강 클리닉

환자들에게 언짢은 말을 듣는 경우가 있다. “참 신기하다”는 말이다. 신통하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고생을 했는데 “원장님을 만나서 나았다”며 신통하다고 덧붙이는 것이니 분명 감사의 표현인데, 듣는 나는 마음이 불편해진다.

한의학적으로 진단하고 그에 맞는 침이나 약을 써서 나았는데 신기하다니. 그 말의 이면에는 ‘병이 나은 이유를 모르겠어요’라는 말이 생략돼 있음을 알기에 마음이 편치 않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동양학적인 사고체계에 익숙하지 않다. 아니 거의 무지하다고 보아야 한다. 한자를 모르는데 어찌 한문으로 서술된 이론체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

기(氣)라는 말을 치료현장에서 들었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한의대 학생시절 경희대 근처에 있는 석관동성당에서 의료봉사를 할 때였다. 오십견 증상으로 고생하던 70대 여자 환자분의 정수리 부근 백회혈에 뜸을 세 번 뜬 후 “어깨를 돌려보세요”라고 했더니 어깨의 통증이 거의 없어지고 회전도 자유롭다고 놀라워했다. 나도 놀라고, 환자도 놀란 순간이었다.

그 다음 이 환자가 왜 치료됐는지 너무 궁금했다. 기력이 좋아진다는 뜸을 12곳에 시술하는 뜸 치료법이었는데 첫 번째 혈자리에서 환자의 증상이 놀랄 정도로 좋아진 이유가 뭘까. 고민 끝에 뜸법을 알려준 선배에게 물었더니 “그게 기(氣)야”라는 대답이 나왔다.

신경학적으로도 해석을 할 수 없고, 혈관 근육 등 어떤 방식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상황을 기(氣)라는 한 단어로 설명하다니. 의사로 임상경험을 쌓은 뒤, 한의대로 편입해 한의사가 된 그 선배는 현대의학으로 해석되지 않는 현상이 많다고 설명해주었다.

실제로 한의학에서 가장 이해 받지 못하는 개념은 바로 기(氣)다. 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한의학을 무속신앙의 푸닥거리 수준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에 대해서 설명하면 학력이 높은 사람들일수록 못미더운 표정을 짓는다. 원시의학이라는 반응이다. 기가 존재한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21세기에 뭔 헛소리냐’라는 식이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임상초기 목을 돌리지 못하는 여자 환자는 또다시 기(氣)에 대해서 확신하게 만들어 주었다. 목을 전혀 돌리지 못하는 환자였는데 경추 부위에 기운이 울체된 것으로 보였다. “자기 전에 화가 아주 많이 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부부싸움을 심하게 했었다”고 대답했다. 등뼈를 따라 흐르는 독맥(督脈)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독맥을 소통시킨다는 새끼손가락 근처의 혈자리인 후계에 자침한 후 목을 돌려보라고 했다. 그 순간 부부도 놀라고 나도 조금은 놀랐다. 부부는 목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부드럽게 돌아가는 것에 경탄했고, 나는 기(氣)의 소통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 한마디로 ‘기가 막혀’ 생긴 증상이었다고 설명해주었다. 진료도 단 한 차례로 종료됐다.

한의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에 아픈 곳이 아니라 엉뚱한 곳에 침을 맞은 경우가 있다면 좌우 경락의 기를 조절하는 치료라고 생각하면 된다. 스트레스를 받아 소화가 잘 안 되고, 가슴이 답답할 때 정수리에 있는 백회에 침과 뜸 치료를 하는 이유는 몸의 정중앙선을 타고 흐르는 임맥과 독맥의 기를 소통시키기 위한 것이다.

기의 흐름을 조절하는 민간의 익숙한 치료법도 있다. 체했을 때에 손가락을 따는 행동은 기를 조절하는 방법이다. 체했다는 말은 “기가 정체됐다”는 의미이고 손가락에서 피를 내는 것이 정체된 기의 움직임을 자극하기 위한 치료라고 보면 된다. 침치료를 통해 막힌 기를 제대로 뚫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급할 때는 손가락 사혈을 해도 도움이 된다.

이처럼 침은 단순히 동통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몸의 기의 순환을 조절하는 것이 바로 침이다. 막힌 기의 흐름을 뚫고, 정체된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고, 편중된 기를 고루 나누는 게 침치료의 목적이다.

기의 흐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만 기가 부족할 수도 있다. 기운이 떨어지고, 안면의 색이 누렇고, 말소리도 미약해지고, 몸을 움직이기 귀찮다면 기가 부족하다고 보면 된다. 기가 부족한 사람은 소화가 잘 되지 않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기도 한다. 기허가 심해지면 추위를 많이 탄다. 기허일 경우엔 침보단 약을 쓴다. 인삼, 황기 등이 대표적인 보기약이다.

진맥(診脈)도 검증이 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만약 이런 생각을 하는 분이 있다면 나의 맥진방식과 침이나 약 치료의 과정을 얼마든지 공개할 용의가 있다. 우리 한의원의 환자는 근골격계 환자보다 오장육부의 문제로 오는 환자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맥진의 효용성을 검증할 케이스가 많다.

나는 맥진을 우선한다. 환자가 오면 당연히 불편한 증상이 무엇인지 확인한 후 맥을 살핀다. 솔직하게 말하면 환자의 불편함을 듣지 않고 맥을 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도 한다. 불편한 부위를 말하고 나면 맥을 볼 때에 그런 문제를 일으키는 부위의 맥에 더 신경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맥을 보고 나면 오장육부 중에 지나치게 기능이 저하된 부위가 보이기도 하고, 과 항진된 장부가 드러나기도 한다. 기가 부족한 장부는 활성화시키면 되고, 넘치는 부위는 깎으면 오장육부는 균형을 찾아간다.

기는 이처럼 한의학의 진단과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요체이다. 진료를 하다 보면 기의 실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단지 현대과학으로 규명하지 못하는 게 문제일 뿐이다. 진료 시에 느끼는 답답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병이 나은 환자에게 치료가 된 이유를 설명해도 이해를 하지 못한다. 순환 혈관 호르몬 신경 근육 등 많이 들어 본 용어로 설명을 하면 잘 알아듣지만 기(氣)와 맥(脈)으로 말하면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과학이 더 발달된다면 기(氣)의 실체를 밝혀 줄 연구결과가 언젠가는 나오지 않을까. 목마른 기대를 한다.
/한뜸 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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