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슈윈 (George Gershwin) : 랩소디 인 블루 (Rhapsody in Blue)

요즘 젊은이들이 춤을 추기 위해 찾는 클럽을 7,80년대에는 ‘고고장’이라고 불렀다. 직장에서 봄, 가을에 한차례씩 치렀던 야유회 행사의 종착지는 항상 고고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렬한 비트와 빠른 템포의 음악에 묻혀 직장 동료들과 막춤을 추다보면 선후배들 사이의 서먹했던 관계가 해소되고, 업무 스트레스에서도 잠시나마 벗어나는 긍정적인 효과가 분명 있었다. 빠른 템포의 디스코 풍 음악이 서너 곡 계속된 후 잠시 조용해지면서 느린 곡조의 음악이 흐르면 무대 위의 남녀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셨다. ‘블루스 타임’이다. 몇몇 용기 있는 남녀들이 함께 블루스 춤을 추기도 했지만 대부분 직장 동료들 관계라 껴않고 춤을 추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해했던 시절이다. 그 시절 나는 블루스(Blues)라는 것은 느린 템포의 음악에 맞춰 남녀 간 껴않고 추는 약간 퇴폐적 성향의 춤으로만 알고 있었다.

블루스(Blues)는 19세기 말 미국 흑인들에 의해 탄생한 음악의 한 형식이다. 미국으로 끌려온 아프리카 흑인들이 아프리카 전통음악을 유럽의 포크(folk)계열과 접목시켜 만들어 낸 음악의 한 장르다. 아프리카의 전통 타악기 대신 서양악기인 기타나 하모니카의 반주로 노예의 고달픈 삶을 노래로 표현해냈다. 같은 흑인들 사이에서 불렸지만 기독교 찬송가의 영향을 받아 신앙적인 내용을 담아 주로 합창으로 노래하는 흑인영가와는 달리, 일상의 고된 삶을 반영한 슬프고 우울한 분위기의 노래들이다. 또 하나의 미국의 대표적인 음악인 재즈(Jazz)도 흑인들에 의해 탄생한 음악이다. 블루스와 재즈는 비슷한 시기에 미국 남부에서 시작됐고 그 둘은 서로 영향을 끼치면서 다양하게 발전해 왔지만 태생적으로는 다른 음악이다. 재즈의 탄생지는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스(New Orleans)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중심도시이자 무역항으로, 다양한 인종들이 혼재해 자유분방함을 지닌 그 도시의 분위기와 흑인들의 즉흥적인 음악성이 결합해 현재 미국의 대표적인 음악인 재즈가 태동한 것이다. 이후 블루스는 팝(Popular music)으로 대변되는 로큰롤, 록, 리듬 앤 블루스, 소울 등 거의 모든 대중음악에 영향을 주었고, 재즈는 독자적인 예술 분야로서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재즈는 피아노, 클라리넷, 트럼펫, 기타 등 클래식음악의 악기들을 사용해 연주되지만 클래식음악과는 완전히 구분된다. 클래식음악의 경우 작곡자가 가장 중요하고, 따라서 훌륭한 연주란 작곡가의 의도에 가장 충실하게 연주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반면, 재즈는 미국 흑인들 특유의 약동적인 리듬감인 스윙(swing)과 즉흥성을 기본으로 탄생한 음악이기에 곡의 형식이나 곡 그 자체 보다는 연주 스타일 및 연주자의 감각과 표현력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클래식음악과 재즈는 태생적으로 다르고 감상자의 태도나 연주회장의 분위기도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1924년 한 천재 작곡가에 의해 이 두 이질적인 음악이 완벽하게 결합했다. 그 해 2월 12일, 뉴욕 맨해튼의 에올리안 홀(Aeolian Hall)에서 ‘재즈 왕(King of Jazz)'으로 불리는 폴 화이트먼(Paul Whiteman)이 이끄는 재즈밴드 연주회가 ‘현대음악의 실험’이라는 테마로 열렸다.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재즈와 클래식음악들이 다양하게 연주되었지만 연주회가 끝난 후 유독 한 작품,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 1898~1937)의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 초연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재즈와 클래식이 접목돼 하나의 새로운 퓨전음악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거슈윈은 12세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클래식 레퍼토리로 피아노를 익혔지만 대중음악 연주를 즐겼고,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대중가요 악보 출판사에 취직 해 악보를 사러 온 고객들에게 피아노를 들려주는 일을 하면서 틈틈이 가요를 작곡했다. 21세 때인 1919년에 작곡한 가요 ‘스와니(Swanee)'의 악보가 100만장 이상 팔리는 큰 히트를 치면서 거슈윈은 일약 대중가요 작곡가로 이름이 알려졌고, 그의 재능을 간파한 ‘재즈 왕’ 화이트먼은 거슈윈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자신이 이끄는 악단을 위해 피아노와 관현악단이 함께 연주하는 심포닉 재즈 음악, 즉 재즈를 클래식에 접목한 새로운 음악 작곡을 의뢰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심포닉 재즈 ‘랩소디 인 블루’로 인해 거슈윈은 대중가요 작곡가가 아닌 미국을 대표하는 클래식음악 작곡가로 이름을 떨쳤다. 이후 본격적인 클래식음악 작곡을 공부하기 위해 1928년(30세)에 프랑스로 건너 가 ‘음악가들의 스승’으로 불리던 나디아 블랑제와 대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제자가 되길 원했지만 거절당했다. 거슈윈의 재능을 높이 평가한 그들은 전통적인 유럽음악을 공부하는 것이 재즈에 바탕을 둔 그의 개성을 해칠 수 있음을 우려해 제자로 받아들이질 않은 것이다.

거슈윈의 대표적인 작품 ‘랩소디 인 블루’는 피아노협주곡의 형식을 빌었지만 음악 내용면에서는 화려한 재즈 풍의 리듬이 곡 전체를 지배하고, 주 선율은 슬픔과 고독이 담긴 블루스 곡을 듣는 듯하다. 애절한 클라리넷 선율이 길게 글리산도 주법(glissando, 높이가 다른 두 음 사이를 급속한 음계에 의해 미끄러지듯이 연주하는 방법)으로 상승하면서 시작되는 이 작품은 20세기 초엽 경제대국 미국의 화려함 속에 감춰진 이민자들이나 흑인들 삶의 단면을 블루스와 재즈 특유의 애환이 깃든 리듬과 멜로디로 그려낸 명곡이다. 훗날 거슈윈은 그의 전기 작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건 기차 안이었다네. 열차 바퀴가 선로 이음새와 마찰하는 덜컹거리는 소리는 종종 작곡가들에겐 좋은 자극이 되지. ... 거기서 갑자기 ‘랩소디 인 블루’의 구조가 처음부터 끝까지 번쩍 하고 떠올랐지. ... 그건 마치 미국을 묘사하는 음악적 만화경이나 다름없었지. 거대한 용광로와 같은, 다른 데서 찾아볼 수 없는 미국적인 기운이랄까. 블루스라든지 도시의 광기 같은 것 말일세.”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작곡가이자 뉴욕 필하모니 상임지휘자였던 레너드 번스타인은 ‘랩소디 인 블루’를 좋아하고 즐겨 연주했다. 직접 피아니스트로 연주한 음반도 남겼다. 인종차별이나 흑인 인권문제 등 사회적 이슈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그가 미국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거슈윈의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으리라는 믿음이 간다.

/유재후 편집위원 yoojaehoo56@naver.com

https://www.youtube.com/watch?v=7s39QMJlBYA (디즈니 만화영화 'Fantasia 2000' 중 ‘랩소디 인 블루’)

https://www.youtube.com/watch?v=cH2PH0auTUU (‘랩소디 인 블루’, 번스타인 지휘 및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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