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갈등에 안개속 입시, 당국 책임'.. '공교육 수월성 적대시 사교육만 키워'

[베리타스알파=손수람 기자] 올해 재지정평가 결과 자사고 11곳의 지정취소가 결정되면서 고입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전국단위 자사고인 상산고가 논란의 중심이다. 전북교육청이 일방적으로 재지정 기준점수를 다른 교육청들보다 높게 조정한 데다 사회통합 관련 지표의 적법성 등이 문제로 지적되면서 공정성 논란이 거세기 때문이다. 상산고를 포함한 11개자사고 모두 행정소송도 불사한다는 방침을 밝힌 만큼 입시혼란의 장기화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평가결과와 평가위원에 대한 불투명한 정보공개로 학교 관계자들과 수요자들의 불안감도 확산되고 있다. 내년엔 자사고 국제고 외고 등 52개교가 재지정평가를 받는다. 입시를 준비해온 수요자들의 피해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자사고 폐지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이 반복되면서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공교육이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인 수월성과 평등성을 분리시키며 정치적인 갈등을 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교육당국이 나서서 자사고들을 ‘귀족학교’나 ‘입시학원’ 등으로 몰아붙이며 ‘일반고 황폐화’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부당하다. 수월성교육 자체를 적대화하는 것도 그만둬야 한다. 소수에 불과한 자사고보다는 전체 고교 가운데 직업계고 비중이 낮은 점이 일반고의 교육수준을 낮추고 있다고 본다. 마이스터고 등에 진학할 수없는 상황에 밀려 대학진학의 의지가 없는 학생들까지 일반고로 진학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사고가 폐지된다면 오히려 공교육이 담당할 수 있는 수월성교육의 범주가 줄어들 것이다. 수요자들을 사교육으로 몰뿐 아니라 해외유학이 낫다는 판단을 하도록 밀어붙인 셈”이라며 “입시가 진행되는 도중에 정책을 뒤집는 것도 상식에 어긋난다. 입시를 준비해온 수요자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대입에선 수요자의 예측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전예고제를 확대하고 있음에도 고입에는 전혀 다른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실제로 8곳의 자사고를 지정취소한 서울교육청이 내놓은 대책은 현재 자사고를 다니는 재학생과 학부모를 위한 조치들뿐이다. 그렇지만 자사고를 준비해왔던 수험생과 학부모들도 재지정평가에 따른 일반고 전환의 실질적인 피해자들이다. 결국 힘겹게 입시를 준비한 학생들이 원하는 학교로 진학하지 못하는 피해에 대해선 보상하지 않은 것이다”고 말했다. 

전국의 42개자사고 가운데 24곳이 올해 재지정평가를 받았다. 광양제철고 김천고 민사고 북일고 상산고 포항제철고 하나고 현대청운고 등 전국단위 자사고 8개교와 경희고 계성고 동성고 배재고 세화고 숭문고 신일고 안산동산고 이대부고 이화여고 인천포스코고 중동고 중앙고 한가람고 한대부고 해운대고 등 광역단위 자사고 16곳이다. 최종적으로 전국단위 자사고인 상산고를 비롯해 안산동산고 해운대고 경희고 배재고 세화고 숭문고 신일고 이대부고 중앙고 한대부고 등 11개교가 재지정평가에서 탈락했다. 

자사고는 학교운영의 자율성이 있는 고교유형이다. 김대중 정부시절 고교평준화 정책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공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자립형사립고 시범학교’로 처음 도입됐다. 자율성이 보장되는 대신 정부지원이 적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자사고는 모집단위와 실질적 운영방식에 따라 ‘전국모집’과 ‘광역모집’으로 구분된다. 교육청의 운영성과평가 결과에 따라 자사고는 5년마다 재지정 여부가 결정된다. 평가지표에 따라 ‘매우우수’ ‘우수’ ‘보통’ ‘미흡’ ‘매우미흡’의 5등급으로 각각 점수가 배점된다. 모든 평가지표의 점수를 합산한 총점이 교육청이 정한 기준점을 넘지 못하면 자사고 지정이 취소된다. 

올해 재지정평가 결과 자사고 11곳의 지정취소가 결정되면서 고입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전국단위 자사고인 상산고가 논란의 중심이다. 전북교육청이 일방적으로 재지정 기준점수를 다른 교육청들보다 높게 조정하면서 평가의 공정성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11개교 탈락 충격’ 재지정평가.. ‘자사고 폐지 본격화’>
올해 재지정평가를 실시한 자사고 24곳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1개교가 탈락했다. 지난달 20일 상산고와 안산동산고를 시작으로 27일 해운대고도 자사고 지정이 취소됐다. 마지막으로 재지정평가 결과가 공개된 서울에서 광역자사고인 경희고 배재고 세화고 숭문고 신일고 이대부고 중앙고 한대부고 등 8개교가 한꺼번에 탈락해 일반고 전환절차를 밟게 된 학교들이 크게 늘었다. 전국단위 자사고 가운데선 상산고가 유일하게 재지정이 불발됐다. 나머지 10개교는 모두 광역단위 자사고였다. 후속 절차로 청문을 진행한 후 교육부 장관이 지정취소를 동의한 고교들은 일반고 전환이 확정된다.

상산고는 올해 재지정평가를 받은 전국단위 자사고 8곳 가운데 유일하게 탈락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일반고 전환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재지정 기준점수가 다른 지역보다 10점 높은 80점이었던 만큼 애초부터 불공정한 평가였다는 비판이 거세기 때문이다. 전북교육청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상산고가 동등한 지위의 다른 전국자사고들에 비해 불리한 평가를 받은 셈이다. 재지정평가에서 상산고보다 낮은 점수를 받고도 통과한 학교들도 나왔다. 실제로 재지정이 결정된 김천고는 78.2점, 북일고는 78.4점을 받았다. ‘사회통합 대상자 선발 지표’의 감점이 컸던 부분 논란이다. 학교의 사정을 고려해 정성평가로 반영됐던 타 교육청과 달리 전북교육청은 정량평가만 실시했기 때문이다.

절반이 넘는 13개자사고가 평가대상이었던 서울에서 8개교가 ‘무더기 탈락’한 점도 눈에 띈다. 지정취소된 학교의 수가 많지만 한대부고 이외의 고교들은 지난 1기 평가에서도 지정취소와 취소유예 처분을 받은 전례가 있었다. 자사고 관계자들 사이에선 교육부가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해 상산고의 지정취소에 대해선 부동의하는 대신 서울 자사고들을 일반고로 전환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현재 재지정평가의 결과대로 일반고 전환이 이뤄진다면 서울의 교육특구 영향력이 강화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재지정평가로 성동광진학군 성북학군의 자사고가 전멸했다. 전체적으로 강남구 서초구 양천구에 자사고들이 집중배치된 양상으로 전환됐다”며 “일부 지역에선 자사고 자체가 없어짐으로써 비교육특구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높아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인근 교육특구의 쏠림현상이 우려된다. 교육특구가 아닌 지역에 뚜렷한 성과를 내는 일반고가 없다면 지역간, 학교간 격차도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산동산고와 해운대고 역시 지정취소가 철회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표적인 ‘자사고 폐지론자’인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2017년 재지정평가를 통해 도내 외고 자사고를 모두 폐지하겠다고 밝히며 구설에 오르기도 했던 만큼 강경한 입장이다. 내년에 평가대상인 외대부고에 대해서는 기준점수를 상향할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해운대고의 경우 법인문제와 대입실적 하락 등으로 2년 연속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던 운영상의 어려움이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두 학교 모두 청문을 통해 소명을 진행했지만 교육청의 결정이 뒤집힐 가능성은 높지 않은 상황이다.

<‘청문, 교육부 동의’ 향후 일정.. ‘지정취소 뒤집힐 가능성 낮아’>
자사고의 지정취소는 청문을 거친 후 교육부 장관의 동의를 받으면 확정된다. 청문은 교육부에 동의를 요청하기 전 평가결과에 대해 학교로부터 소명을 듣는 절차다. 상산고 안산동산고 해운대고 등 3개교의 청문은 8일에 이미 실시됐다. 서울의 청문 대상 자사고들의 경우 22일부터 24일까지 사흘간 청문을 진행할 예정이다. 

교육감은 청문을 진행한 후 20일 이내로 교육부 장관에게 동의 신청을 해야 한다. 이후 교육부 장관은 50일 이내로 동의여부를 결정한다. 결정기한은 필요에 따라 2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올해 하반기 진행되는 2020고입을 차질 없이 치르기 위해서는 각 교육청이 고등학교 입학전형 시행계획을 9월6일까지 확정해야 하기 때문에 동의여부 결정이 지연되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교육부가 교육감의 결정을 뒤집을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예측된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현 정부가 내건 대표적인 교육 공약 중 하나인 만큼 전체적인 정책기조를 교육당국이 맞춰갈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지난달 26일 있었던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자사고가 공교육을 위협하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유 장관은 “지난 정부에서 서울 중심으로 자사고를 급격히 늘려 일반고 황폐화를 가져왔다. 창의성과 다양성, 협업 능력을 가진 미래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대입 경쟁과 입시전문학교로 변질된 자사고의 부작용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국 교육부가 상당수 자사고들의 지정취소에 대해 동의할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이다.

<‘깜깜이 평가’ 우려 확산.. ‘평가위원 미공개’ 정성평가 57점 반영>
재지정평가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교육청들의 ‘깜깜이 평가’가 도마에 올랐다. 교육청들이 각 자사고의 평가결과를 일부만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점 100점 가운데 정성평가의 비중이 57점을 차지하는데도 평가위원 명단을 밝히지 않는 부분도 논란이다. 자사고 관계자와 수요자들이 평가를 진행한 위원들의 전문성이나 중립성을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8일 진행된 상산고와 해운대고의 청문도 비공개로 진행됐다. 안산동산고의 경우 제한적으로 공개돼 학부모 25명이 참석했다. 투명하지 못한 정보공개가 누적되면서 재지정평가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권한이 교육감에게 있다며 교육부는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교육청의 경우 학교에게 정확한 평가결과를 제공하지 않은 상황이다. 각 학교별로는 총점, 영역별 점수, 미흡한 부분에 대한 평가위원의 의견만 전달했다. 지표별 세부점수를 알리지 않으면서 지정취소된 자사고들 사이에서 어떤 부분이 부족해 탈락했는지 알 수 없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내년에 평가를 받는 서울지역 자사고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한 자사고 관계자는 “올해 평가대상인 학교들의 결과에 대해 최대한 파악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확한 점수에 대해 알 수 없어 내년 재지정평가 대비에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1기 평가에서 지정취소가 됐던 학교들 위주로 탈락이 많았던 만큼 내년에도 비슷한 경향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특히 학부모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확산될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성평가의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교육청들이 평가위윈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도 상당하다. 교육부의 표준안을 기준으로 재지정평가에선 정성평가 항목이 10개다. 정성평가와 정량평가가 혼합된 항목도 7개다. 정량평가만 이뤄지는 항목은 15개다. 실제 정성평가가 반영되는 항목들의 총 배점도 더 높다. 정성평가 항목은 34점, 정성평가와 정량평가가 함께 이뤄지는 항목도 23점으로 총 57점이다. 100점 만점인 평가에서 절반이 넘는 점수가 평가위원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매겨지는 셈이다. 명단이 공개되지 않는다면 교육청이 편향되지 않은 위원들을 구성했는지 검증할 방법이 없다. 결국 평가의 공정성에 대한 시비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법적 대응 예고’ 자사고.. ‘예견된 혼란 밀어붙인 교육청’>
교육부가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동의해도 입시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상산고를 비롯해 지정취소 처분을 받은 자사고들이 법적 대응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상산고 안산동산고 해운대고 등 청문을 진행한 고교들은 이미 평가과정이나 세부적인 평가지표를 근거로 재지정평가 자체가 부당하게 진행된 점을 지적했다. 청문의 쟁점이 그대로 행정소송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청문대상인 서울의 8개자사고들도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학교 관계자들은 교육부 결정으로 지정취소가 확정될 경우 곧바로 가처분 신청과 행정소송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일반고 전환이 추진되는 고교들의 입학전형은 법정공방이 마무리된 이후 알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고입의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만큼 수요자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특히 수험생들의 관심이 높은 전국단위 자사고인 상산고가 지정취소된 점이 고입파행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예측까지 나온다. 한 교육전문가는 “전국단위 자사고 진학을 고려하는 학생들에겐 진로와 수험성향이 아닌 재지정평가 결과가 학교선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가처분 신청이 인용돼 입학한 후 졸업까지는 자사고 지위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본인이 재학 중인 학교가 일반고로 전환되는 것을 달가워 할 수험생은 없기 때문”이라며 “행정소송도 입시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다. 모집요강이 제 때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 입시가 언제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수험생들이 합격했더라도 추후에 일반고로 전환되는 경우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 평가 예정’ 자사고 국제고 외고 52개교.. ‘고입 불확실성 가중 전망’>
전문가들은 내년엔 현장의 혼란과 갈등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평가대상인 학교의 수가 늘어날 뿐 아니라 고교유형도 상이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관심이 높은 과고 자사고 국제고 외고는 물론 체육고나 특성화중도 재지정평가를 받는다. 다양한 형태의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수요자들이 모두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되는 셈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올해는 자사고 24곳만 평가대상이었음에도 현장의 혼란이 상당했다. 법정공방도 예고된 만큼 향후 입시도 가늠하기 어렵다”며 “내년엔 평가를 받는 학교들이 늘어날 뿐 아니라 유형도 제각각이다. 올해보다 고입혼란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자사고 국제고 외고 등 52개교에 대해 수요자들의 관심이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에는 전국의 30개외고 모두 재지정평가 대상이다. 외대부고와 인천하늘고 등 전국자사고 2곳과 경문고 경일여고 군산중앙고 남성고 대건고 대광고 대성고(대전) 보인고 선덕고 세화여고 양정고 장훈고 현대고 휘문고 등 광역자사고 14곳의 평가도 시행된다. 서울지역에서 지난 2015년 평가에서 취소유예를 받은 경문고 장훈고 세화여고 등 3개교의 지정취소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경일여고와 군산중앙고는 신입생 충원의 어려움을 이유로 일반고 전환을 추진하고 있어 평가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의 7개국제고 가운데 세종국제고를 제외한 고양국제고 동탄국제고 부산국제고 서울국제고 인천국제고 청심국제고 등 6개교의 재지정여부도 결정된다. 과고의 경우 재지정평가로 인한 일반고 전환은 거의 없을 전망이다.

상대적으로 다른 고교유형에 비해 외고가 재지정평가에 따른 변수가 클 전망이다. 학교별 대입실적과 수요자들의 선호도 격차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교육당국이 일방적으로 공립 중심으로 개편을 시도할 경우 현장혼란은 극심해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한 교육전문가는 “내년에는 전국 외고 30개교에 대한 재지정평가가 일제히 실시된다. 그동안 수요자들의 선택에 따라 자연스럽게 선호도가 나눠지고 있던 상황에서 다시 정부가 개입한 셈”이라며 “특히 교육당국이 공립 위주의 체제를 갖추기 위해 사립외고 위주로 일반고 전환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현장에선 순환근무 체제인 공립외고의 경쟁력이 대체적으로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한 학교에서 오래 근무하며 진학노하우와 데이터를 쌓아온 사립외고와 다른 환경이기 때문이다. 결국 재지정평가를 통한 인위적 개편이 교육의 질을 낮출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고 주장했다.

<‘수월성 교육 담당’ 자사고 역할.. ‘사교육, 해외유학 수요 억제 효과’>
재지정평가에 대한 갈등이 교육의 ‘수월성’과 ‘평등성’ 논란으로 번지자 자사고 폐지를 겨냥하고 있는 정부정책의 방향 자체가 잘못됐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평등성의 가치만 강조하는 편향된 입장으로 수월성교육에 대한 수요 자체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공교육에서 수월성교육을 실시해야 사교육 확대를 견제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자사고를 폐지한다면 사교육으로도 불충분하다고 판단한 우수 학생들의 해외유출까지 막기 어려운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특목고와 자사고가 사교육이나 해외유학으로 흐를 수 있는 수요를 공교육에 붙잡아두는 역할을 한다는 반론이 설득력을 얻는 배경이다.

정부가 자사고 폐지의 근거로 제시하는 ‘고교서열화’의 실체가 현장에선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교육전문가는 “현재의 고입 환경에선 ‘고교서열화’는 허상에 가깝다. 우수한 학생들을 특목고와 자사고가 ‘싹쓸이’하면서 일반고 학생들이 패배감에 시달린다는 식의 논리는 현장의 분위기와 전혀 다른 해석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진학성향에 따라 고교유형 선택이 가능한 상황이다. 자사고 진학을 위해 중학교 입시가 과열됐다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 학생들도 많다. 광역자사고의 경우 별도의 준비를 하지 않고 큰 부담 없이 지원해보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일반고에 진학한 학생들은 자사고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학교의 순위를 매기는 것에 학생들이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열화에 대한 우려 자체가 어른들의 시각을 지나치게 일반화했다는 말도 있었다”고 전했다. 

반면 공교육의 영역에서 수월성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자사고의 실질적인 의의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교육이나 해외유학도 고려할 수 있는 수요자들을 국내의 공교육이 수용한 셈이기 때문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공교육은 보편적인 형태의 교육은 물론 수월성 교육에 대한 수요까지 충족할 때 가장 이상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시각은 공교육 내부에서도 일반고와 자사고를 대립시키고 있다. 실제로 자사고에 대해 사실상 사교육과 다름없다고 진단하며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입시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일반고나 자사고가 마찬가지다. 대학진학 설립취지인 만큼 그것을 문제로 볼 수도 없다”며 “자사고가 모두 페지된다면 일차적으로 교육특구와 사교육의 강세가 이어질 것이다. 서열화를 잡는다고 자사고를 없앤다면 일반고는 다시 교육특구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오히려 ‘일반고 서열화’가 공고해질 수도 있다. 정시확대와 맞물리면서 재수가 양산되고 사교육이 성행할 우려도 크다. 결국 교육당국이 수요자들에게 공교육은 포기하고 사교육이나 해외교육을 받으라고 권유한 셈”이라고 말했다. 

특히 기숙사체제를 운영하는 전국단위 자사고들이 사교육 차단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 주목된다. 수월성교육에 대한 수요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 사교육을 견제하고 공교육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전국단위 자사고의 경우 대부분 기숙사체제다. 주말마다 외출이 가능한 학교도 일부 있지만 하나고 등은 주말외출도 자제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민사고의 경우 사교육의 접근 자체가 어렵다. 자사고의 사교육차단효과에 공감하는 전문가들이 많은 이유다. 이들 학교가 없어질 경우 우수자원들의 대부분은 해외유학을 준비하거나 교육특구 학교로 진학할 것이다. 우수한 자원을 바탕으로 사교육의 영향력이 확대될 여건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반대로 롤모델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특목자사고의 수시체제를 벤치마킹해온 일반고의 성장동력은 상당히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뢰보호 원칙’ 어디로.. ‘수요자 무시하는 교육당국’>
결국 교육당국의 자사고 폐지 정책이 ‘신뢰보호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비판도 나온다. 신뢰보호의 원칙은 행정기관이 행정적 조치에 대해 신뢰를 지켜야 한다는 행정법상의 일반원칙이다. 현 정부가 강조했던 대입 사전예고제가 대표적이다. 정책의 투명성을 확보해 수요자들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반면 고입에선 교육당국이 정책뒤집기를 남발하며 신뢰를 깨뜨리고 수요자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교육당국의 정책변화가 고입에 대한 수요자들의 신뢰를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고입 동시실시’에 대해 헌재는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재판관 9명 가운데 5명이 위헌의견을 밝혔기 때문이다. 당시 현장의 혼란을 자초하며 수요자의 피해를 키웠던 교육당국에게 자제할 필요성을 전한 의도로 해석됐다. 헌재의 서기석 재판관을 비롯한 5명은 “자사고 입학전형에서 교과지식 질문이 금지되는 등 특별히 고교입시를 과열시킨다고 볼 수 없다. 고입 동시실시와 이중지원 금지에 의해 자사고 불합격자는 평준화지역 후기학교 배정이 보장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자사고의 존폐 여부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당국의 일방적인 자사고 폐지가 ‘고입재수’를 유발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교육당국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높다. 자사고들이 강력한 대응에 나설 것을 충분히 예측했음에도 자사고 폐지를 밀어붙이면서 수요자 혼란을 키웠기 때문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한 관계자는 “최종 재지정 취소 여부를 놓고 학교 교육청 교육부 간 소송까지 예고돼 있어 앞으로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과 피해는 더 가중될 것”이라며 “현재의 자사고 존폐 논란은 학교 각각의 재지정 여부를 넘어 고교체제를 정권과 교육감의 성향에 따라 좌우하는 데 근본 원인이 있다. 고교의 종류, 운영 등을 시행령이 아닌 법률에 직접 규정해 교육법정주의를 확립함으로써 교육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회복하는데 국회와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입시에서 수요자에 대한 신뢰보호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만큼 고입혼란에 있어 교육당국의 책임이 크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한 교육전문가는 “입시나 선발을 위한 시험 등에 있어서는 수요자들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행정기관에 대한 ‘신뢰보호의 원칙’ 하에 수험생들이 준비하기 때문이다. 의전원이나 사시폐지의 과정에서 정부가 유예기간을 충분히 두고 피해자들의 구제방안을 마련했던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부의 교육당국은 공약이라는 한마디로 자사고폐지 고입동시실시를 밀어붙였다. 엄연히 수요자들이 존재하는 데도 아랑곳 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미 혼란이 예견됐던 재지정평가 역시 강행하면서 수요자가 있다는 인식조차 없는 듯하다. 이번사태로 진보교육감들 역시 교육계 인사가 아니라 이념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임을 확인시켰다. 정치인들이 더이상 교육을 농단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교육계와 현장에 교육거버넌스의 재편이 불가피함을 확인시켰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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