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복의 미술관노트] 긴장의 미학, 들라크루아

-들라크루아 ‘단테의 배’

작은 배에 세 인물이 서 있다. 중세식 붉은 두건을 두른 단테가 월계관을 쓴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에 의지한 채 먼 곳을 바라본다. 대각선으로 뻗은 단테의 두 팔과 얼굴표정에서 놀라움과 공포가 엿보인다. 뱃사공 플레기아스(Plégias)는 배를 젓느라 여념이 없다. 배 주변에는 일곱명의 망자(亡者)가 서로 밀치고 물어뜯으며 먼저 배에 오르려고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다. 고통을 끝내고 안식을 얻으려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배에 매달린 왼쪽 끝 인물 뒤로 얼굴만 내민 채 허우적대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지옥이 따로 없다. 프랑스 화가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가 그린 ‘단테의 배 La Barque de Dante’다. 1822년 살롱에 출품하여 혁신적인 화풍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들라크루아를 키운 것은 전통이다. 미켈란젤로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던 고대 조각(‘벨베데레의 토르소’)에서 표현된 탄탄한 등근육이 뱃사공 플레기아스에게서 보인다.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의 ‘최후의 심판’에서 지옥의 강을 건너는 뱃사공의 모티브에서도 영감을 받은 듯하다. 마른 붓으로 표현한 물결, 캔버스에 넘쳐나는 자유분방한 색채와 꿈틀거리는 에너지는 루벤스의 작품〔‘마리 드 메디치의 마르세유 도착’(1622-1625)〕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단테의 얼굴은 데드 마스크를 참조했다. 왼팔로 배를 붙잡고 있는 오른쪽 끝의 인물은 르브룅(Le Brun)이 그린 분노의 감정을 나타낸 인물과 닮았다. 피라미드 구성은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의 ‘메두사의 뗏목’을 환기시킨다.  

단테는 1306년에서 1321년 사이에 ‘신곡 La Divina Commedia’을 쓴다. 고대 로마 시인인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본딴 구성으로, 지옥, 연옥, 천국의 이야기가 각각 9편씩 펼쳐친다.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지옥의 아홉 구역을 가로지른 단테가 연옥의 산 정상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나 천국에 함께 간다는 내용이다.  들라크루아는 고대 그리스, 로마적인 주제가 아니라 르네상스 작가 단테의 ‘신곡’에서, 그 중에서도 지옥의 다섯번째 구역인 진흙투성이의 스틱스강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망자들을 주제로 택했다. 지옥을 벗어나지 못하는, 분노에 찬,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작업방식 역시 독특한데, 친구 피에레(Pierret)의 낭독을 들으면서 그림을 그렸다. 생생하게 들려오는 지옥의 분위기가 들라크루아를 흥분시켰고 그 감흥을 살려 불과 두달여만에 완성했다. 빠르고 거친 붓질은 충동적인 숨결로 캔버스를 일렁이게 하고, 인물들을 교차적으로 빛 혹은 어둠에 잠기게 함으로써 긴장감과 빙글빙글 도는 듯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멀리 불타는 도시, 칠흙같은 하늘, 출렁이는 파도로 인해 장면은 더욱 불길하고 불안하다. 대담하고 새로운 주제를 자유롭고 즉흥적인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단테의 배’는 최초의 낭만주의 회화로 여겨진다. 태풍에 시달리는 배의 주제는 낭만주의에서 선호했던 삶의 표현으로 19세기에 빈번하게 등장했다. 들라크루아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제리코는 3년 앞선 1819년에 ‘메두사의 뗏목’을, 프리드리히(Carpar David Friedrich)는 1824년에 ‘얼음바다’를 그린다.

‘단테의 배’는 들라크루아가 화가로서 첫발을 내딛고 성공을 꿈꾸던 24세 때의 작품이다. 국민의회 의원을 지낸 아버지를 일찍 여읜 후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누구보다 유능한 화가로서 인정받기를 바라며 열심히 작업했다. 스승 피에르 나르시스 게랭(Pierre-Narcisse Guérin)은 살롱에 출품하려고 하자 탐탁치 않게 여겼다. 반면, 게랭과 함께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앙투안 장 그로(Antoine-Jean Gros)는 지옥풍경을 루벤스처럼 활력넘치게 그렸다고 해서 들라크루아를 ‘벌받는 루벤스 Rubens châtié’라고 명명했다. 신문기자 아돌프 티에르(Adolphe Thiers)는 « 어떤 거장의 미래를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작품은 없을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림은 2000 프랑에 국가가 사들여 뤽상부르 궁에 전시되었다. 훗날 보들레르는 « 들라크루아는 마지막 르네상스 거장이면서 최초의 현대적인 화가 »라고 추켜세웠는데, ‘단테의 배’는 이 말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작품이다.

문학을 좋아했던 들라크루아에게 단테를 비롯, 셰익스피어, 괴테, 바이런 등의 작품은 마르지 않는 창작의 샘이었다. 괴테는 들라크루아가 제작한 ‘파우스트’ 석판화를 보고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해주었다고 격찬했다. 1832년 모로코와 알제리를 방문한 이후 평생 이국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다. 1834년부터 사망하기 직전까지 공식적인 주문으로 그린 벽화나 천장화는 미켈란젤로나 루벤스 못지않은 공간구성력과 활달함을 보여준다. 사자 사냥이나 말 그림들이 보여주듯이 그는 최고의 동물화가이기도 하다. 이 모든 다양한 주제의 그림에서는 언제나 힘과 힘의 대결, 야만과 문명, 고요와 동요 사이의 긴장이 느껴진다. 결코 느슨해지지 않고 팽팽하게 유지되는 투쟁과 긴장이 들라크루아 작품의 본질이다. 그의 작품에 흐르는 시적 감흥과 드라마틱한 분위기는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직접 주제를 택해 그만의 방식으로 작업하면서 자신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캔버스에 쏟아부은 들라크루아. ‘단테의 배’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혁명적인 예술가의 탄생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걸작이다.  

/정연복 편집위원 www.facebook.com/yeonbok.jeong.75

으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 ‘단테의 배 La Barque de Dante’(1822, 캔버스에 유채, 189X246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선명한 화질의 그림으로 직접 가기:’단테의 배’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9/9f/La_Barque_de_Dante_%28Delacroix_3820%29.jpg

‘메두사의 뗏목’

https://fr.wikipedia.org/wiki/Fichier:JEAN_LOUIS_TH%C3%89ODORE_G%C3%89RICAULT_-_La_Balsa_de_la_Medusa_(Museo_del_Louvre,_1818-19).jpg

‘얼음바다’

https://fr.wikipedia.org/wiki/La_Mer_de_glace#/media/Fichier:Caspar_David_Friedrich_-_Das_Eismeer_-_Hamburger_Kunsthalle_-_0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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