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격차 정부가 부추긴 셈'

[베리타스알파=유수지 기자] 미국에서 SAT(Scholastic Aptitude Test, 미국 대학입학 자격시험)만으로 대입을 진행할 경우, 최대 수혜자는 부자들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23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The Wall Street Journal, WSJ)은 최근 조지타운대(Georgetown University)의 연구결과, 대입에서 SAT점수와 고교내신 등을 함께 활용하지 않고 SAT로만 선발을 진행 할 경우 미국 상위 200개대학 신입생의 부자/백인/남성의 비율이 증가한다고 보도했다. 

조지타운대 연구원은 "시험점수로만 평가를 진행하면 피해는 소득분위가 낮고 유색인종인 학생들에게 돌아간다"며 "SAT 성적 순으로만 대학 신입생 비율을 산정해본 결과, 소득 분위 상위25%의 가정 출신자는 60%에서 63%로 증가하며, 하위75% 가정 출신자는 40%에서 37%로 감소한다. 흑인/중남미/아시아계 학생의 비율은 9%p 가량 감소세를 보이는 반면 백인은 9%p 증가한다. 전체 비율 중 백인의 비중이 무려 75%를 차지하게 되는 셈이다. 성별의 경우는 남학생 비율이 50%에서 55%로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단순 성적순으로 대입을 진행할 경우 통상 기득권층으로 여겨지는 구성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다.

이번 WSJ 기사는 최근 입시부정 사건이 크게 이슈화되면서 미국 일부 여론이 펼친 "대입에서 SAT점수 외 고교성적과 특기/적성활동, 교사추천을 함께 반영하는 것은 부잣집 학생들에게 유리하다"는 주장에 대한 정면 반박으로 읽힌다. 한 교육 전문가는 “현재 미국 대학가는 SAT와 같은 일률적인 평가만으로 학생들의 잠재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점수 하나로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을 모두 평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하기 때문”이라며 "특히 시험점수 순으로 학생들을 선발할 경우 교육투자가 많은 상위층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여러 연구 결과가 확인되고 있는 만큼, 미국 대학들은 정량평가를 보완하기 위한 평가요소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SAT 자체도 ‘역경점수’를 도입하는 등 대입에서 학생들에게 발생될 수밖에 없는 소득/지역/환경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변모하고 있다. 역경점수는 학업역량 이외에 지역, 가정, 고교환경 등을 수치화한 점수다. 지난달 WSJ는 미국 대학입학시험 SAT를 주관하는 대학위원회가 ‘역경점수’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학 입학처에 지원자의 SAT성적과 출신고교/지역환경 기준에 따라 환산한 역경점수를 같이 제공하는 방식이다. 실제 평가에 활용할지는 대학이 결정한다. 대학위원회는 지난해 예일대를 포함한 50개대학에서 시범적으로 역경점수를 적용했다. 올해 가을부터 150개교 이상까지 늘린 후 2021년까지 폭넓게 확대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반면 국내에선 교육당국이 대학들에게 미국의 SAT격인 정시 확대를 주문한 상황이다. 현장에서는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교육격차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수능은 사교육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정시확대는 사교육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교육특구 출신이나 고소득 계층이 대입에 유리해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SAT만으로 대입을 진행할 경우, 최대 수혜자는 부자들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최근 미국 일부 여론이 “대입에서 SAT점수 외 고교성적과 특기/적성활동, 교사추천을 함께 반영하는 것은 부잣집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정면 반박이다. /사진=The Wall Street Journal 홈페이지 캡처

<SAT 역경점수 도입.. '잠재력 발견' 긍정여론 확산>
지난달 WSJ는 SAT의 '역경점수' 도입을 소개하며 SAT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학생의 어려움이나 곤경을 점수로 인정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미국 대학위원회는 오래 전부터 소득불평등이 SAT성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우려해왔다. 여러 차례 평가결과를 분석한 결과 고학력, 고소득 부모를 가진 수험생들의 점수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백인 학생들의 SAT성적은 흑인에 비해 177점, 히스패닉계 보단 133점이 높았다. 상대적으로 가정환경이 부유한 경우가 다수인 아시아계 학생들은 백인보다도 100점 더 높은 평균점수를 나타냈다. 

대학위원회의 데이비드 콜먼 위원장은 “SAT성적이 낮더라도 더 많은 성취를 이룬 학생들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며 “부의 불평등이 SAT성적에 반영되는 것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고 역경점수를 도입한 배경을 설명했다. 현장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예일대는 역경점수를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대학 가운데 한 곳이다. 최근 몇 년간 사회경제적 다양성을 높이며 저소득층 학생의 수를 거의 두 배 늘렸다. 예일대 입학처장 예레미아 퀸란은 “역경점수는 우리가 지원자를 평가하는 모든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그동안 다양한 신입생을 선발하는 것에 상당히 기여해왔다”고 말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역경점수 도입에 대해 대체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부 평가지표가 불완전할 수 있지만 정량평가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시도로 긍정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스탠포드대 숀 리어돈 교수는 “당신이 가난한 지역에 살고 있는 고학력, 고소득층 가정일 경우 역경점수는 당신이 직면하고 있는 불이익을 과장할 수도 있다. 이처럼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평가기준이 완벽한지를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이전까지 대학들이 취해왔던 방법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면 고려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역경점수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교육특구 강화’ 정시확대.. ‘부모 경제력 영향 커져’>
반면 국내의 경우 미국과는 정반대의 기조로 대입지형이 급속하게 전환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교육당국이 나서서 수능의 비중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년부터는 대학들의 예산지원과 직결되는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에도 정시확대 항목이 평가에 반영된다. 현장에선 정시확대가 결국 사교육의 강력한 지원으로 뒷받침되는 교육특구를 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시의 문호가 넓어진다면 재수나 N수를 결심하는 학생도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교육특구 진입이나 재수 모두 부모의 경제력에 좌우되는 만큼 정부가 정시확대에 따른 문제를 방관한 채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특히 교육특구를 중심으로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국내여건에선 결국 부모의 소득수준이 높은 수험생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수능은 사교육 투자가 많은 교육특구가 유리한 전형이다. 최근 10년간 서울지역 고교의 서울대 등록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정시가 확대됐던 시기에 교육특구 출신들의 비율이 늘었다. 정시비중이 절반을 넘겼던 2007학년의 경우 교육특구 출신이 등록자의 42.3%를 차지했다. 반면 수시비중이 82.6%로 대폭 늘어난 2014학년엔 39.5%로 줄었다”며 “정시가 확대될 경우 결국 사교육의 충분한 지원이 가능한 교육특구의 강세로 이어지는 것이다. 최근 ‘역경점수’를 도입해 변화를 꾀하는 미국과 달리 문재인 정부의 ‘정시확대’는 교육에 있어 부의 대물림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미 서울 내에서도 교육특구 쏠림현상이 시작됐다는 분석도 있다.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 서울로 전학한 학생 중 2명 중 1명 꼴로 강남구 노원구 서초구 송파구 양천구 등 교육특구 5곳으로 향한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서울 내에서 이동한 경우도 포함한 수치다. 곽상도(자유한국) 의원이 서울시에서 제출받은 ‘2019년 1,2월 서울 초등학교 1학년(2012년생) 전입/전출현황’에 따르면 집계된 전체 4939명 가운데 2203명이 교육특구에 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송파(787명) 강남(468명) 양천(362명) 서초(323명) 노원(263명) 순이었다. 가장 전입자가 많았던 송파 내에서도 강남/서초와 상대적으로 먼 동쪽 지역에 비해 대치동 등 사교육 밀집지역으로 다니기 쉬운 서쪽 지역으로 학부모들이 이동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정시가 사교육과 부모의 재력에 따른 영향이 크다는 점은 재수생과 N수생의 입학비율에서도 드러난다. 고교 졸업후에도 수능을 대비하기 위해 수험생들이 대부분 사교육을 찾는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 부모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정시 입학생 중 N수생 비중은 연세대의 경우 2016학년 50%에서 2017학년 55.1%, 2018학년 58.3%로 꾸준히 상승해 60%에 육박했다. 고려대 역시 2016학년 50.8%에서 2017학년 53.1%로 소폭 상승했다가 2018학년 64.4%로 뛰어올랐다. 고려대가 정시비중을 대폭 줄인 2018학년은 반복학습이 유리한 수능 특성상 상위권 N수생 비중이 그만큼 많았던 것으로 해석된다. 재수는 부모의 경제력과 연관이 있다. 정시 등록생 중 재수생 비중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교육특구를 중심으로 재수생이 양산됐다는 의미다”고 설명했다.

<고소득 계층 ‘수능선호’.. ‘소득 600만원 이상’ 38.2%>
실제로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계층에서 수능선호가 두드러지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일각에선 학종을 ‘금수저 전형’으로 몰아붙이지만 실상은 오히려 고소득 계층에서 정시확대를 지지하는 셈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12월 ‘2018교육여론조사’를 통해 소득계층별로 ‘대입에 가장 많이 반영돼야 할 항목’에 대해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대입전형 반영요소 조사는 수능성적 내신성적 특기적성 인성/봉사활동 글쓰기/논술 면접 동아리활동 수상실적 등이 항목으로 제시됐다. 

가장 소득이 높은 계층으로 구분된 월 소득 600만원 이상의 응답자 가운데 38.2%가 1순위로 수능성적을 꼽았다. 뒤를 이어 특기적성 21%, 인성/봉사활동 20.5% 순이었다. 한 단계 아래 소득군인 월 소득 400-600만원 미만에서도 수능성적은 29.7%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계층으로 분류된 응답자들 사이에선 조사결과가 달랐다. 월 소득 200-400만원 미만에선 수능성적을 선택한 응답자의 비중이 가장 적었다. 특기적성 30.4%, 인성/봉사활동 23.9%, 수능성적 23.6% 순이었다. 월 소득 200만원 미만인 응답자들의 경우 특기적성 28.6%, 수능성적 24.9%, 인성/봉사활동 23.0%의 결과를 보였다.

특기적성은 사실상 학종으로 평가할 수 있는 요소다. 따라서 고소득 계층이 수능을 선호하는 것과 달리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계층은 학종의 확대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교육전문가는 “수능 위주 입시가 사교육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고소득군 수험생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조사결과를 통해 입증된 바 있다. 반면 학종은 학생부 자소서 면접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사교육을 통해 준비한 학생들의 획일화된 유형을 구별해낼 수 있는 편이다. 특기적성에 무게를 둔, 소득군이 낮은 그룹의 학생과 지방 수험생들이 학종을 통해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정부의 정시확대 정책 역시 고소득층의 여론을 반영한 결과가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실제로 정부의 정책변화로 당장 대입기조를 바꿔야 하는 고려대 서울대 이화여대 중앙대 등은 강남권 교육특구의 선호대학이다. 그럼에도 이들 대학이 그간 수시 학종확대를 해온 데 대한 반감이 특구 내 교육소비자들 사이에서 생기면서 정부의 공론화 과정에서부터 상당부분 압력이 가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난은 결국 수능 확대를 원하는 이해관계자들이 만들어낸 구실에 불과하다. 교육특구나 사교육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수능의 선호도가 높을수 밖에 없다. 단적으로 정시비중이 상당한 의대실적이 사교육을 중심으로 한 교육특구 중심인 점을 봐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교육 키우는’ 수능.. ‘정량평가 한계 인식해야’>
일각에서 정시확대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엔 가장 ‘공정한 평가방식’이라는 믿음이 자리한다. 수험생이 취득한 점수를 통해 줄을 세우고 순위에 따라 대학에 입학하는 구조를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국가 주도 객관식 시험인 만큼 학업역량 측정에 탁월하고 결과에 대해서도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SAT의 공정성에 대한 맹신을 경계하는 미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물론 국내에서도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수능의 사교육 유발효과를 지적하고 부모의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 등의 영향이 크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지만 일방적인 반발로 건설적인 논의보단 소모적인 논쟁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정시확대를 주장하는 측의 근거처럼 수능은 국가가 출제와 채점, 시행과 관리의 일체를 관장한다는 점에서 객관성이 높은 전형이다. 특별한 전형대비 없이 기출문제 풀이 등의 학습을 통해 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에는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동아줄로 인식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시는 획일적인 선발방식과 지나친 점수경쟁, 학생 줄세우기를 통한 서열화 논란 등 문제점 또한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국가에서 제공한 수능점수를 통해 일괄적 선발을 할 수밖에 없어 대학의 특색이나 수험생의 전공적합성, 진로에 대한 확고한 꿈 등이 무시되는 천편일률적인 전형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내신 등 학생부가 미미하게 반영돼 고교현장이 황폐화되고, 단편적 지식암기 위주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라는 부정적 견해도 뒤따랐다.

수능위주 정시확대의 목소리에는 등수나 점수로 수험생의 능력을 수치화할 수 있다는 그릇된 신념이 기반한다. 수험생의 개별적 특성을 무시한 채, 일괄적 시험을 통해 석차를 나누는 방식이 공정하고 객관적이라는 견해다. 대입전형이 교육정책에 그치지 않고 정치/사회적 화두로 자리잡은 한국 교육현실에서 수능위주 정시가 그나마 군소리 없는 전형으로 인식된 데서 나오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수능이 공정하다는 믿음은 어떤 학생이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없이 수험생이 취득한 점수가 곧 실력이라는 입장을 기반으로 한다. 고교 3년의 교육과정이 수능점수를 높이기 위한 시기로 절하되고, 단 한 번의 시험에 국가 전체가 매달리는 비정상적 상황도 공정성과 객관성의 환상 아래 희석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수시가 축소되고 정시위주전형으로 입시가 회귀하면, 가장 쾌재를 부를 집단은 사교육업체라는 분석이 이어진다. 과거부터 학생들을 한 강의실에 모아두고 끊임없는 문제풀이식 교육을 통해 입시성과를 냈던 사교육업체들은 현재도 정시로 수험생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을 지속해오고 있다. 문제는 사교육에 대한 투자가 많을 수록 정시의 합격률도 함께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저소득층 학생들의 동아줄이었던 정시가 이제는 고액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수험생들은 넘보기 조차 어려운 전형이 됐다는 분석이 계속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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