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이는 특별하다

박혜란, 나무를 심는 사람들

[베리타스알파=김경 기자]  “육아는 버겁다. 하지만 인생에는 더 버거운 일이 쌔고 쌨다. 적어도 육아는 버거움만 주는 게 아니라 기쁨과 행복을 곁들여 주지 않는가. 그러니 될수록 버겁다는 마음은 빨리 털어 버리고 기쁨과 행복만을 오롯이 느끼는 게 현명한 노릇이 아닐까. 난 엄마들이 조금만 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조금만 더 쿨해졌으면 좋겠다.”

새책 ‘모든 아이는 특별하다’는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뿐 아니라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 과거가 괴로운 성인 등 모두 읽어도 좋을 고마운 책이다. 대상이 무엇이건 간에 책임감 또는 회한에 짓눌린 어깨를 쿨한 글솜씨로 다독이는 듯하기 때문이다.

가수 이적의 어머니, 아들 셋을 모두 사교육 없이 서울대에 보낸 ‘육아 달인’으로 이름 난 여성학자 박혜란이 썼다. 가수 이적의 ‘출신’ 덕분에 세상에 정체를 선보인 저자는 마흔 초반의 나이부터 일흔이 넘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육아멘토’ ‘육아의 달인’으로서 30여 년 간 3000번이 넘는 자녀교육을 해왔다. 저자는 “30년 넘도록 업그레이드 안 한 그 얘기가 그 얘기”라며 ‘육아 달인’ 등의 호칭을 민망해하지만, 문학작가도 아닌 저자의 필체는 나름의 소박한 경험담과 진솔한 말솜씨 덕분에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이 행복하다. 물론 그간 내놓은 책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결혼해도 괜찮아’ ‘오늘 난생처음 살아 보는 날’ ‘나는 맘먹었다 나답게 늙기로’의 면면을 보면 인생을 먼저 산 이가 깨달은 삶의 이치를 간접경험하게 하는 좋은 책들만, 저자는 썼다. 수필로 치자면 단연 문학작가라 해도 되겠다.

저자의 아들 셋은 유명인 이적이 둘째이고, 첫째가 건축가, 셋째가 드라마감독이다. 이제 와 살펴보니 셋 다 4차 산업혁명시대라는 거창한 세계적 울타리 안에서 돋보이는 ‘창의성’의 결과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창의성이 요즘 세상의 화두이고 보면, 예상은 하지 않았지만, 저자 말대로라면 ‘풀어 키웠다’ 하지만 미래를 견인할 인재를 양성한 셈이다. 저자가 자녀교육에 힘겨운 엄마들로부터 ‘인싸’로 대접받는 배경이기도 하다. 어떤 아기엄마는 저자의 강연회에 찾아와서 친정엄마 보듯 울기부터 한다고.

다만 저자는 함께 울어주지 않는다. 제3자의 시각으로, 그리고 자신이 해온 것처럼 ‘쿨’하게 조언을 툭 던진다. “다른 엄마는 그 엄마의 아이를 키우는 거고 나는 내 아이를 키우면 된다. 다른 엄마가 학원을 열한 군데를 보내건 말건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다. 아이가 어떤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하면 보내는 거고, 다니고 싶지 않다면 안 보내는 거다. 다른 엄마에 비하면 나는 어느 정도의 엄마라고 점수를 매기지 말고 스스로 내 아이의 맞춤형 엄마가 되면 그것으로 됐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런 엄마.”

저자는 “아이는 키워지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크는 존재이므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끝까지 인내하며 믿어 주는 것뿐”이라고도 강조한다. 창의적인 아이는 무엇보다 스스로 사고하며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아이가 자라는 데 부모의 믿음과 인내는 필수 조건이라는 것이다. 단지 믿어주고 참아준다는, 인류가 받은 부모 유전자를 발휘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실상 믿어주고 참아준다는 일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새책 ‘모든 아이는 특별하다’를 통해 어른들이 마음을 다독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바, 결국 저자가 자녀를 키워내며 했던 노력은 오히려 단순하다. 사람들이 가수 이적을 향해 ‘아들이 몇 살 때부터 싹수를 보였나’ 물어도 저자의 대답은 “모르겠다”이다. 그저 돌이켜보니 세 아들 중 둘째였던 이적은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흥이 많았을 뿐이다. 세 살 때 만화영화 ‘마루이 아라치’를 보던 극장 2층에서 노래가 나올 때마다 벌떡 일어나 목청껏(현재의 이적의 목청을 생각해봐도 그 때 목청이 가늠이 된다) 불렀다고 한다. 큰 아들인 형이 창피해할 정도로. 동네 엄마들이 노래를 시키면 다른 아이들은 머뭇거리는데 이적만은 언제나 대기상태였다고 한다. 시키기만 하면 쏜살같이 나가 입을 ‘짝짝’ 벌리며 온 힘을 다해 노래했다고. 그저 엄마는 아들이 건반을 종이에 그려가며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 하면 피아노를 가르치고, 기타를 배우고 싶다 하면 기타를 가르치고, 동네 학원 몇 달 보낸 게 다였다. 수험시절 집에만 오면 피아노 쾅쾅거리고, 내신기간에 기타학원 들락거리던 둘째 아들은 대학 3학년 때 부모도 모르게 음반을 내는 사고를 치고 현재 유명 뮤지션으로 자리한다.

건축가로 살고 있는 첫째 아들은 유치원 미술전시회에 ‘눈사람’이라는 그림을 냈는데, 하얀 도화지에 까만 크레파스로 동그라미 두 개를 그린 게 다였다. 다른 그림들은 모두 울긋불긋 예쁜 색깔로 꽉 채워져 있어서 엄마는 순간 부끄러워 얼굴이 홧홧해졌다. 미술학원을 안 보내 애가 그림을 너무 못 그린다고 변명하는 엄마에게 유치원 선생님은 ‘그림이 아주 독특하죠? 눈이 워낙 희니까 칠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구요’라고 응답했다. 아이들을 틀에 맞추어서 재단하지 않고 저마다의 개성을 인정해 주었던 40년 전의 그 선생님을 엄마는 지금도 멋진 교사로 기억한다.

드라마감독인 셋째 아들은 유난히 잘 웃어 어릴 때의 별명이 ‘미스터 스마일’이었다. 막내답지 않게 응석도 욕심도 없는 배려와 양보의 아이콘이었다. 너무 착해 험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이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유치원 연극공연에서 늑대역을 맡아 어찌나 실감나고 무섭게 연기를 하는지 온 식구를 놀라게 했다. 특별히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내비친 적도 없어서 남편은 공무원이 되는 걸 권했는데, 대학입시 원서를 쓸 무렵 영화감독이 되고 싶으니 거기 맞는 학과를 쓰겠다고 우겨 또 한 번 부모를 놀라게 했다. 저런 성격으로 어떻게 그 험한 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냐며 말려 보라는 남편의 말에 이미 아이 편이 된 저자는 머릿속으로 열심히 남편을 설득할 근거를 찾고 있었다. 큰소리를 내지 않고도 사람들을 잘 리드하는 성품은 물론 몇 시간이고 혼자서 여러 사람 역할을 하며 노는 습관, 스토리만화를 그려 내는 능력 등 설득의 근거는 차고 넘쳤다.

결국 자기 길은 자기가 개척하도록 어른의 잣대를 거두고 참아주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을 우연히 나한테 온 고마운 손님으로 대하려고 노력했어요. 손님으로 봐야 쓸데없는 간섭을 안 하게 되니까요. 저는 아이들이 완성된 어떤 미래를 자기 안에 갖고 태어난다고 보고, 아이들이 크는 과정은 그것이 바깥으로 어떻게 드러나는가 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즉 아이는 키워지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크는 존재라고 굳게 믿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에 비춘 조언을 기본으로, ‘부모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도 간명하게 정리해준다. 웬만한 학력만 갖추고 있으면 먹고살 수 있던 시대를 살았던 부모세대는 특별히 적성을 살리지 않아도 되었기에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 몰라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려면 적성에 맞는 일로 창의성을 발휘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기성세대인 부모들이 창의적인 사람 하면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뉴턴, 스티브 잡스, 백남준 등 누구나 알 만한 세계적인 예술가들이나 과학자들을 떠올린다는 것이다. 그러고선 이런 사람들은 타고나는 것이지 길러지는 것이 아니며, 이들이 내는 아이디어 또한 처음부터 ‘번쩍’ 하고 떠오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평범한 우리 아이는 창의력과 상관없으니 하던 대로 학교 공부나 열심히 시킬 수밖에 없다고 결론짓는다.

반면 저자는 하지만 창의력은 개념을 달달 외우고 단순 지식을 많이 쌓는다고 결코 얻어질 수 없다고 강조한다. 생물학적으로 타고나는 것도 아니다. 창의력은 오직 자유로운 환경과 분위기 속에서 자발적이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된다. 우연한 기회에 TV 다큐멘터리를 본 중학생이 건축가의 꿈을 키우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부모와 함께 한 한옥여행에서, 도서관에서 집어 든 책 한 권에서 미래 직업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아이들은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어서 어떤 아이는 그 싹을 조금 빨리, 또 다른 아이는 조금 늦게 틔울 뿐 부모가 강요하고 재촉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창의적인 아이로 키우기 위해 부모가 할 일은 자유로운 환경을 만들어 아이가 자신의 적성을 찾도록 도와주는 일이며, 절대 하지 않아야 할 일은 외부의 기준에 맞추어 아이를 재단하고 비교해서 상처 주지 않는 일이라는 게 저자가 권하는 육아법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창의적인 아이가 가져야 할 네 가지 특성인 자율성, 공감능력, 사고력, 젠더력을 키워주기 위해 부모가 할 일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야 할 자녀를 위해 학부모 입장에선 필독서라 하겠다. 읽다 보면 어린시절 때론 원망스러웠던 부모님이 떠올라 효심이 불끈 솟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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