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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0.1%] 서울대 합격 뿌리치고 육사 진학[대한민국 0.1%] 육군사관학교 김미소
  • 이우희 기자
  • 승인 2013.04.30 17:30
  • 호수 157
  • 댓글 0

육군사관학교 73기 김미소(20) 생도는 서울대에 합격했지만 육사를 선택했다. 김 생도는 최종합격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기초군사훈련 기간에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비자아동학부는 지난해 서울대 정시 평균경쟁률 4.76대 1보다 치열했던 인기학과 가운데 하나. 경쟁률은 5.06대 1(17명 모집에 86명 지원)이었다. 김 생도가 육사에 남은 이유는 대학 간판이 아닌 미래를 봤기 때문이다. 고교시절 바쁜 와중에도 틈날 때마다 인문학 서적을 탐독했던 김 생도는 취업과 고시에 쩔쩔매는 오늘날의 대학생활에 대한 회의를 가졌고, 결국 ‘국가’라는 더 큰 가치를 마음에 새겼다. 기초훈련을 막 마치고 육사에 정식으로 입교한 김 생도를 만났다.

눈물로 환골탈태

   
▲ 육군사관학교 73기 김미소 생도는 서울대와 육사에 모두 합격했지만 국가에 헌신하면서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도 가능한 육사를 선택했다. /사진=신승희 기자 pablo@veritasnews.kr
[베리타스알파 = 이우희 기자] 김미소 생도는 목이 쉬어 있었다. 육사에 최종합격한 학생들은 정식으로 입교하기 전 5주 간 기초군사훈련(이하 기훈)을 받는다. 기훈을 마치면 비로소 군인이 된다. 김 생도는 “처음 한 주 간은 너무 힘들어 매일 울었다”고 말했다. “모교 김해외고는 학교 분위기가 굉장히 자유로웠다. 학교에 다니면서 두발이나 복장조차 통제 받아본 경험이 없었다. 군인은 모든 것이 통제 대상이었다. 완전히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었다.”

환골탈태의 시간, 가장 의지가 된 것은 동기였다. 육사에 오기 전 몇 시간씩 걸어본 경험이 전혀 없던 김 생도는 행군이 가장 힘들었다. “행군할 때 너무 힘들어서 자꾸만 뒤로 처졌다. 하지만 오와 열을 맞춰 가야 하니까, 앞이 가고 뒤가 오고 하니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를 악물고 걸었다. 행군 도중 동기들과 군가도 부르고 구호도 외치고 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힘든 일도 동기들과 함께하면 힘들지 않았다.”

실제 육사 기훈 기간에는 10여 명의 학생들이 육사 입교를 포기하고 떠난다. 육사에 지원하려면 우선 군인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해야 하는 이유다. “육사의 혜택만을 보고 지원하는 경우 주의가 필요하다. 육사에 대해 단순히 ‘혜택이 많은 대학’이라는 생각보다,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군인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기훈은 민간인을 군인으로 만드는 기간이다. 군인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들어오면 많이 힘들다.” 베레모가 잘 어울리는 당찬 김 생도의 조언이다.

육사를 선택한 세 가지 이유

김해외고를 나온 김 생도는 고2 때까지만 해도 서울대가 목표였다. 원래 서울대 갈 성적은 아니었지만, 목표를 위한 꾸준한 노력으로 고3 초 성적이 수직상승했다. 모의고사 언수외 300점 만점도 찍었다. 평범했던 전교 석차도 2~3등으로 올랐다. 김해외고는 매년 7명 내외의 서울대 합격자를 내왔다. 서울대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서울대에 대한 환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는 서울대 선배를 통해 서울대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며칠 동안 서울대생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생각보다 학구적이지 않아 실망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시준비에 쩔쩔맸고, 취업만을 위한 공부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대학을 다니다 졸업해 나중에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직업은 나와 맞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국가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은 ‘육사’라는 선택지를 갖게 했다. 김 생도는 “젊은 시절 공들인 연구들이 사회에 별다른 기여도 못했고, 나이가 들자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몇몇 교수님을 뵌 적이 있다. 훌륭하신 교수님들도 많으시지만, 아직 어린 내 눈엔 ‘재능과 열정을 좀더 숭고한 가치에 바치고 싶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 계기였다”고 회상했다.

늠름한 사관학교 제복에 대한 환상도 있었다. 육사에 관심을 갖고부터 육사에 진학한 고교선배에게 연락했다. 선배는 김 생도에게 육사관련 자료를 소포로 보내주는 등 적극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 생도는 “육사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먼저 진학한 선배들에게 연락하면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수학 고민에 탈모까지

고교시절 김 생도의 아킬레스건은 수학이었다. 수학 노이로제로 인해 탈모까지 생길 정도였다. 모의고사를 보면 언어와 외국어는 한두 개 틀리는 수준이었던 데 반해 수학은 60~70점 대였다. 김 생도는 “혼자서 인터넷 강의도 찾아 듣고 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며 “최대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 최고”라고 말했다. “단물나게 풀었다. 연습장만 40권을 썼다. 고2 땐 거의 수학만 했다.”

문제집은 ‘쎈’을 많이 풀었다. 다만, 문제집만 풀어서는 수능에서 4점짜리 문제는 맞추기 힘들다. 김 생도는 “모의고사와 수능 기출을 많이 풀라”고 조언했다. 오답노트는 만들지 않았다. 시간투자 대비 효과가 낮기 때문. 김 생도는 “자기 다이어리 하나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이 오답노트에 시간 투자 하는 것은 낭비”라며 “차라리 문제집을 풀고 또 풀라”고 충고했다. “양치기(많은 양의 문제를 푸는 것)’만 하면 벽에 부딪힌다. 난도 높은 문제를 섞어 푸는 습관을 들여야 벽에 부딪히지 않고 성적이 오른다.”

모의고사 점수에도 연연하지 않으려고 했다. 김 생도는 “‘공부’에만 집중하다 보면 ‘점수’에 무신경해진다”며 “자기 페이스대로 가라”고 조언했다. “공부하면 자연히 자신감이 오른다. 실력에 자신감이 더해지면 성적도 오르는 것이다.” 김 생도의 성적은 고3 초 거세게 요동쳤다. 모의고사에서 수학을 다 맞으면서 언수외 만점이 나왔다. 급격한 성적 향상에 다음 두 번은 성적이 저조했다. 김 생도는 “선생님의 칭찬과 모의고사 상패 수상, 부모님의 기대 상승으로 자만과 함께 점수 강박이 생겼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9월 모의고사 이후 ‘점수 신경 쓰지 말고, 수능까지 덤덤하게 가자’고 다시 한 번 마음먹었다. 전략은 적중했다. 수능 언수외 점수는 292점. 수리 두 문제, 언어 한 문제만 틀렸다. 등급은 언수외부터 국사 근현대사 한국지리까지 전 과목 1등급.

독서는 나의 힘

김 생도는 못 말리는 독서광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틈난 나면 책을 손에 들었다. 고2~3 때 ‘글벗 지킴이’라는 교내 책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고교 3년 동안 ‘들뢰즈의 니체(질 들뢰즈)’ ‘철학VS철학(강신주)’ ‘철학, 삶을 만나다(강신주)’ 같은 인문철학 도서를 폭넓게 접했다. 소설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안나 카레니나(레프 톨스토이)’ 등 톨스토이와 쿤데라의 소설을 즐겨 읽었다. 김 생도는 “서울대는 수능문제 2개 이상 틀려도 힘든데 난 4개 이상 틀리고도 합격했다. 돌이켜보면 서울대 정시 논술에서 고2 때 철학 책 많이 읽어둔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정시에서 인문계열의 경우 경영대학을 제외하고 논술고사를 실시한다.

정예 장교가 되는 길은 생각보다 힘들지만 후회는 없다. 걱정하실 부모님을 생각해 목이 쉴 정도로 열심히 생활한 김 생도의 모습이 늠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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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희 기자  woohee@veritas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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